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118
53. 중원제일독문(7)
“나사못? 그게 뭔가?”
“그러니까 이렇게 나선형으로 홈을 파서…….”
손짓 발짓을 해가며 설명을 해주고 나니, 야장은 깊은 생각에 빠졌는지 멍한 얼굴이 되어 혼잣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나선…… 나선 형태의 암기에 회전을 통해 파고드는 힘을 강화한다? 하지만 그래서는 다루는 요령이 기존과 꽤 달라질 텐데. 투척할 때 과연 힘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을까?”
“그런 류의 암기를 반드시 가늘고 뾰족하게 만들어야만 하는 건 아니잖아요? 개량을 하려면 이런저런 시도를 해봐야죠.”
“으음! 확실히 범상치 않은 발상이긴 하군. 실험해 볼 가치는 충분하겠어.”
“그렇죠? 이게 또…… 어라.”
갑자기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든 야장은, 대화를 나누던 소종천을 두고 어딘가로 달려가 버렸다.
혼자가 된 소종천이 머쓱해 하며 다시 주변의 광경을 구경하기 위해 시선을 돌리고 있자니,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네는 누구인가? 이곳은 외부인이 허가 없이 들어와도 될 곳이 아니네만.”
뒤를 돌아보니 나이든 사내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과 동일한 형태의 작업복을 입고 있는 것을 보니, 말을 건 이 역시 야장 중의 하나이리라.
다만 장식이 달려 있고 수가 놓아져 있는 등 미묘하게 조금 더 고급스러워 보이는 복장인 걸 보아, 다른 이들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이 아닐까 짐작이 되었다.
“저는 지부장, 아! 그러니까 당사준 대협을 따라 당가를 방문한 소종천이라 합니다.”
소종천은 대답을 하면서 상대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오랜 시간 열기에 노출되어 손상된 피부에 녹아내린 것처럼 늘어진 주름살.
중년을 지나 노년에 접어든 나이임은 분명했지만, 야장 일로 단련된 몸의 윤곽은 근육질의 젊은이들 못지않았다.
게다가 초롱초롱한 어린아이의 눈동자를 보는 것처럼 마주한 시선에 생기가 넘쳐, 더더욱 정확한 나이를 짐작하기가 어려웠다.
‘목소리도 그렇고 느껴지는 분위기가 연배가 높은 사람인 것 같긴 한데. 오십? 육십? 어쩌면 더 나이가 많을 수도 있겠고.’
그런 생각을 하며 보고 있자니, 상대가 자신의 신분을 정확히 밝혀왔다.
“당사준? 아, 사천지부의 그놈. 그래, 허가 없이 막 들어온 손님은 아니었군. 나는 이곳 천화장을 책임지는 대야장인 당곡이라 하네.”
당가의 야장들 중 뛰어난 장인이 아닌 자가 없지만, 그중에서도 대야장의 직책을 맡은 이라면 명인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다.
야공 분야에서는 그야말로 최고의 전문가라 할 수 있는 사람이며, 그렇기에 당가에서도 발언권이 굉장히 높은 존재.
‘대야장이라. 대자가 붙을 정도면 뛰어난 기술자인 모양이네. 책임자라 했으니 그럭저럭 높은 위치일 테고.’
그런 사실에 대해선 잘 모르는 소종천은, 그저 막연히 실력 좋은 야장인가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방금 그 친구와 무슨 이야기를 나눴던 겐가? 꼭 장난감을 받은 어린아이처럼 신이 나서 뛰어가던데.”
“아! 그거요. 그냥 암기에 대한 대화를 하다가 제가 조금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혹시 개발에 대한 실마리가 되지 않을까 싶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발언이었기에, 소종천의 대답을 들은 당곡의 눈이 살짝 커졌다.
“호오? 자네도 이쪽 일에 몸담은 사람이었나?”
“아, 아뇨. 그런 건 아닙니다만.”
“허어. 관계자도 아닌데 그런 도움을 주었다니 대단하구먼.”
“그게 뭐 대단할 것까지야. 제 구상이 유의미한 도움이 될지는 아직 모르는 일인데요.”
“아닐세. 장인에게 있어 영감을 주는 존재라는 것은, 결과를 떠나서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걸세.”
당곡은 호감이 서린 눈빛으로 소종천을 보며 말을 이어갔다.
“이거 우리 식구가 도움을 받았다니 뭐라도 보답을 해야겠군. 그런데 소협은 여기에 어쩐 일로 걸음 했는가?”
“아참! 그렇지. 원래는 무구의 정비를 맡길 수 있다 해서 왔는데…… 멋진 구경을 하느라 정신을 놓고 있었네요.”
“정비라. 지금 착용하고 있는 그것 말인가?”
말을 내뱉으며 그대로 소종천에게로 다가온 노인이, 서슴없는 태도로 팔을 붙잡아 들어 올렸다.
“흠. 자네는 권사인가보군.”
“예.”
“이건 제법 잘 만들어진 물건인데, 너무 험하게 다뤘구먼. 이런 장비는 날붙이처럼 세심하게 관리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틈틈이 정비를 해줘야 하는데 말일세.”
“그러게요. 제가 조금 배움이 짧아서 관리법을 잘 모르다 보니.”
“벗어서 주게. 마침 바쁜 일도 끝났으니 내 손을 봐줌세.”
“엇! 감사합니다.”
업계의 거물이란 느낌을 풀풀 풍기는 이가 직접 맡아주겠다고 하니, 소종천은 얼른 수갑을 벗어 넘겼다.
“매일 같이 암기만 만드는 것도 지겨우니, 가끔 이렇게 다른 무구를 만지는 것도 내게는 기분 전환이 되는 일이지.”
“수리하시는 걸 제가 구경해도 되겠습니까?”
“상관은 없지만 지금 바로 손을 댈 건 아니라네. 천화장의 작업 상태를 점검하며 돌아다니던 중이거든. 내가 점검하지 않아도 어련히 다들 알아서 잘 하겠느냐마는, 이것도 내가 해야 할 업무의 하나인지라.”
“음. 그렇군요. 아쉽지만 구경은 포기해야겠네요. 그러면 결과물은 언제쯤 받아볼 수 있을까요?”
“오래 걸리는 작업은 아니지만 지금은 점검을 겸해 휴식을 취하는 중이니, 보자…… 내일 오후쯤에 찾으러 오게나.”
“알겠습니다.”
수갑을 맡긴 소종천은 당곡과 헤어진 후, 조금 더 주변을 구경하다가 천화장을 나섰다.
입구 근처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기다리고 있던 당수현이, 소종천을 발견하고는 재빠르게 웃음을 머금고 다가왔다.
“앗! 공자님! 다 구경하셨나요?”
“네. 이제 숙소로 돌아가려고요.”
“바쁘신 일이 없다면 제 방에서 차를 대접해 드리고 싶은데, 어떠세요? 마침 좋은 차를 들여온 게 있어서 귀인과 나누고 싶어요.”
“그래요? 흠흠! 그럼 잠깐 가죠 뭐.”
연회의 시작도 이틀이나 더 남았다는데, 소종천이 바쁠 이유 따윈 없었다.
일찍 돌아간다고 할 일도 없으니, 소종천은 조금 더 이 상황을 즐기기로 했다.
‘얼마나 좋은 차일지 너무 궁금하네. 무슨 흑심이 있어서 따라가는 건 아니고.’
당사준의 의도대로 놀아나 코를 꿰일 생각은 없지만, 이렇게 대접받으며 겪는 좋은 기분을 바로 포기할 마음도 없었다.
당가를 떠나기 전까지는 이렇게 아슬아슬하게 선을 유지하며, 적당히 호사를 누리다 갈 생각이었다.
‘이렇게 인기를 끄는 경험은 처음이라 꽤 기분이 좋단 말이지. 뭐랄까 막…… 절세미남이 된 거 같고.’
그렇게 당수현을 따라간 소종천은 꽤나 좋은 분위기를 유지하며 어울리다가, 해가 질 무렵에 은근하게 유혹하며 잡아끄는 손길을 거절하고 숙소로 돌아가게 되었다.
괜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정말로 차만 마시고 나왔다.
* * *
“이야. 드디어!”
감격에 겨운 외침이 내뱉어졌다.
일일보상의 알림과 함께 눈을 뜨며 하루를 시작한 소종천이다.
마침 1,000은이 넘어 인급 보물상자를 개봉한 것까지는, 평소와 그리 다를 바 없는 상황.
[동색 무공 당첨!] [감정 성공.] [사군총연장법 비급 획득.]거기서 전혀 쓸 일이 없어 보이는 무공을 얻고, 마침 재료가 충분히 모여 무공 합성을 돌렸다.
여기까지도 역시 그리 특별할 것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그 결과물이 나오고 나서부터는 이야기가 달라졌다.
[소림오권 3성 습득.] [동일한 무공을 습득한 상태입니다.] [소림오권 10성 습득.]그동안 소종천의 기본 무공으로 9성의 성취도에 머물러 있던 소림오권이 중복으로 뽑히며, 드디어 처음으로 10성 대성한 무공이 생겨난 것이다.
‘뛰어난 무공이긴 해도 엄청 난해한 절학도 아닌데, 초절정의 경지를 뚫고 나서야 완벽히 익히게 되다니.’
일반적으로 외공의 공부가 내공의 수련보다 더 빠르게 성취를 볼 수 있기에, 소림오권 정도의 무공이라면 주력으로 익힐 경우 늦어도 절정의 경지에 오를 때쯤이면 대성을 이루기 마련이다.
뽑기를 통해 무공을 익히는 몸이다 보니, 무위가 발전하는 순서가 참으로 뒤죽박죽이다.
‘아무튼 지금이라도 대성했으면 된 거지 뭐. 앞으로도 더 뛰어난 권법이 나오지 않는다면 계속 써야 할 텐데. 으음, 말하고 보니 조금 아쉽네.’
소림오권은 분명 상급의 무공이지만, 소종천이 익힌 칠십이종절예들과 비교하기엔 아무래도 격이 떨어지는 무공이다.
대성하고 나서 하기에는 늦은 생각이지만, 더 수준 높은 권법을 배우면 좋겠다는 마음이 일었다.
물론 아직 주변에 자신의 경지를 제대로 공개하지 않아서 그렇지, 초절정에 발을 들인 소종천은 지금의 무공들로도 충분히 무림에서 열 명 안에는 들어가는 극강의 고수일 것이다.
게다가 새로 소림오권보다 더 뛰어난 무공을 익힌다 해도, 높은 성취도가 동반되지 않으면 대성한 소림오권만큼의 위력이 나오지 않을 것이기도 하다.
‘그런 건 다 알고 있지만, 그래도 역시 기본 무공을 더 고오오오급의 절학으로 바꿀 수 있으면 좋겠단 말이지.’
예를 들자면 남궁건의 제왕검법이나 장자군의 사일검법 같은 무공.
무림의 절기 중에서도 최고로 손꼽혔던 소림의 칠십이종절예를 일곱 가지나 날로 배워놓고 할 말은 아니긴 하지만, 인간의 욕심이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게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다음에 혹시 금색 이상의 무공을 뽑게 된다면 익히고 있는 다른 무공들과 잘 어울리면서 위력이 끝내주는 권법이 등장하게 해달라고, 잠시 경건한 마음으로 무릎을 꿇고 하늘에 빌었다.
기도를 마친 소종천은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조금 있으면 조식 시간이 다가오니, 식전에 가볍게 몸을 풀 겸 10성의 소림오권을 펼쳐볼 생각이었다.
“어라?”
“안녕.”
숙소 건물을 나서려는데 마당으로 이어지는 툇마루에 가만히 앉아 있는 한사혜의 모습이 보였다.
“뭐 하고 있어?”
“벌레를 쫓는 중.”
“잉? 음…… 그래. 수고해라.”
무슨 소린지 몰라 의아해하던 소종천은, 한사혜가 엉뚱하게 여겨졌던 것이 하루 이틀도 아닌지라 그냥 그러려니 하고 지나쳤다.
그러다가 문득 이상한 점이 느껴져 다시 뒤를 돌았다.
“어라. 잠깐? 너 혹시 안 자고 여기 있었던 거냐?”
“응.”
“아니 왜? 밤새 계속 그러고 있던 거야?”
밤이슬을 맞아 옷의 표면이 촉촉하게 젖어 있는 게 눈에 띈다.
야영을 한 것도 아닌데 왜 혼자 불침번을 서고 있다는 말인가?
“날아드는 벌레가 한두 마리가 아니어서.”
뾰로통한 얼굴로 대답하는 한사혜에게서 살짝 살기 같은 것이 느껴진다.
뭔가 자신을 향한 불만이 담겨 있는 듯한 눈빛에 소종천은 움찔하며 시선을 돌렸다.
‘무슨…… 아? 벌레라는 게 설마?’
소종천은 유혹의 몸짓을 하며 적극적으로 몸을 접촉해 오던 당가의 여인들을 떠올렸다.
자신이야 선을 넘지 않고 돌아오긴 했지만 그쪽에서 코를 꿰려고 작정했다면, 밤중에 방으로 찾아오는 이가 있어도 이상할 건 없긴 하다.
‘그런 사람이 있다면 어차피 상대해 주지 않고 돌려보냈을 텐데. 얘는 또 그런 상황은 어찌 알고 이러고 있었다냐.’
한사혜와의 관계란 참 뭐라고 딱 잘라 말하기가 애매하다.
대놓고 말은 안 했어도 자신을 향한 연애 감정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으니, 믿을 수 있는 동료이면서도 한편으로는 부담스러운 면이 있다.
맹신과 연정 그리고 집착.
한사혜의 정보창에 감정 관계라고 표시된 것들은 전부 심득을 양도하며 나타나게 된 것이다.
시스템의 힘이 사람의 감정에까지 영향을 끼친 것인가 싶어 괜히 죄의식이 들기도 하고, 진지하게 대하기엔 여러모로 복잡한 심경이 든다.
“뭐냐 그…… 뭘 걱정한 건지는 대충 알겠는데, 꼬신다고 넘어갈 생각 없으니까 가서 좀 쉬어.”
“응.”
혹시 뭔가 원망의 말을 듣지 않을까 싶었는데, 한사혜는 그저 시키면 시키는 대로 소종천의 말을 따른다.
“쩝…….”
학관에서 생활하던 초창기에도 영 속을 알 수 없던 아이였는데, 제법 오래 함께한 지금은 여려가지 의미로 대하기가 조금 어렵다.
배정받은 본인의 방으로 들어가는 한사혜의 뒷모습을 착잡하게 보던 소종천은, 이내 입맛을 다시고는 처음의 목적대로 가벼운 아침 수련을 하기 위해 움직였다.
완전한 수준에 다다른 소림오권을 음미하며 적당히 몸을 풀고 있는데, 당가의 사용인으로 일하는 사람 하나가 헐레벌떡 뛰어와 소종천을 불렀다.
“헉헉! 소종천 소협이십니까?”
“네. 그런데요?”
“대야장께서 급히 찾으십니다.”
“음? 아, 어제 그분. 오후에 찾아오라고 하셨는데?”
해가 뜬지 얼마나 지났다고 갑자기 자신을 찾는지 모르겠다.
정비를 맡겼던 일 외에는 딱히 접점이랄 것도 없는 사람 아닌가.
‘다 고쳤으니 빨리 찾아가라고 부르는 건 아닐 테고. 설마 수갑을 수리하다가 망가뜨리기라도 한 건가?’
“빨리 모셔오라는 말씀이 있으셨는지라, 지금 걸음 해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끄응. 알았어요. 갑니다, 가.”
남자의 재촉에 소종천은 한차례 혀를 차고는 천화장을 향해 발길을 옮겼다.
뽑기로 무림최강 119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