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123
54. 절체절명(3)
사천지부의 지부장이란 자리는 비록 가문에서 밀어준 덕분에 오를 수 있었다지만, 그게 아니어도 당사준은 절정의 고수이며 무림에서 닳고 닳은 경험이 많은 무인이다.
하지만 그런 당사준도 눈앞에서 벌어지는 상황에는 제대로 정신을 차리기가 쉽지 않았다.
‘권마? 무슨…… 서로 아는 사이라 농이라도 치는 건가? 아무리 그래도 그런 끔찍한 소리를?’
연맹의 무인에게 있어 마인들의 꼭대기에 있는 오악이라는 이름은, 사망선고라는 단어와 거의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무림 전체를 통틀어서도 극소수만 존재하는 초절정의 고수와 그를 보조하는 절정무인 수십 명.
거기에 미리 준비한 진법 안으로 끌어들여 합격을 가해야만, 그나마 비등하게 상대가 가능하다고 알려진 이들이 오악이라는 괴물들이다.
그렇기에 당사준은 대화를 들으면서도, 앞을 막아선 자가 권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하지만 싸움이 시작되고 나서는 믿기 싫어도 믿게 될 수밖에 없었다.
‘커윽!?’
마인들 특유의 수법인 소름 돋는 귀곡성.
그리고 그와 함께 흘러나오는, 절정의 무인인 자신조차 무력화시키는 농밀한 마기.
‘이럴 수가! 요즘 뭔가 일들이 잘 안 풀리는 게 재수가 없다 싶긴 했다만, 설마 오늘이 내 제삿날이 되는 건가!?’
눈앞이 어지러워져 절로 눈이 질끈 감겼다.
반쯤 죽음을 받아들이고 주마등 비슷한 것을 떠올리던 당사준.
하지만 이어서 들려온 또 다른 소리와 함께, 마기가 흩어지는 것을 느끼고 감았던 눈을 다시 떴다.
“허억!?”
방금까지보다 더 믿을 수 없는 일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선명한 강기를 두 손으로 만들어내며, 권마임이 확실해 보이는 마인을 상대로 홀로 맞서 싸우는 소종천의 모습.
‘소 단주가…… 초절정이라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저 나이에 절정의 무위라는 것도 두 눈으로 보지 않았다면 믿지 못했을 텐데, 그보다 한술 더 떠서 초절정의 경지라니?
상식을 벗어나도 너무 벗어났다.
‘절정까지는 그래도 귀한 영약과 보기 드문 재능, 거기에 운까지 따라준다면 어찌어찌 가능하겠다고 납득할 수 있었지만…….’
비현실적인 광경을 넋 놓고 보고 있던 당사준은, 문득 조금 전 저 두 사람이 하던 대화를 떠올렸다.
‘분명 권마가 반로환동을 운운했었다. 그렇군! 소 단주는 사실 어린 나이가 아니라 정체를 숨긴 노고수였던 거야!’
반로환동이란 현상은 이야기에나 나오는 허구라는 것이 정설이지만, 약관도 되지 않은 이가 초절정의 경지라는 말보다는 더 신빙성이 있다.
실제로 초절정에 오른 고수가 경지가 더욱 깊어질수록, 젊음을 어느 정도 되찾는 것도 사실이지 않은가.
‘도마를 죽였다는 이야기도 했었지? 정말 엄청나군.’
어째서 정체를 숨기는 건지는 모르지만, 나이 많은 무인 중엔 성격이 괴팍하고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는 이들도 간혹 있다.
당사준은 소종천이 그런 기인 중 하나일 것이라고, 거의 확신에 가까운 짐작을 했다.
“뭐 합니까!”
무인이라면 꿈꿀 수밖에 없는 절대자들의 싸움에 정신을 팔고 있자니, 긴박함을 담은 목소리로 누군가가 외쳤다.
쾅!
“끅! 무슨 놈의 화살이…….”
사일검법 중 가장 빠른 검속을 지닌 절초 후예사일로 날아드는 화살을 쳐낸 장자군은, 시큰거리는 손목의 통증에 신음을 흘렸다.
“한눈팔 때가 아닙니다!”
“그, 그렇지. 미안하네.”
적은 권마뿐 아니라 하나가 더 있다.
무림에서는 보기 드문 병기인 활을 다루는 무인.
‘권마와 같은 마인이고 궁사라면, 저자가 그 궁마인가 보군.’
일반적으로 활은 군문의 병사들에게나 유용한 무기이지, 무림인이 사용하기엔 그리 적합하지 않다.
전쟁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무기라지만 개인의 전투, 그것도 무공을 익힌 무인들 사이에서는 장점보다 단점이 많은 수단인 것이다.
장력을 이용한 무기이니만큼 무인이 가진 가장 큰 힘인 내공을 활용하기가 어렵고, 개인의 역량으로 위력을 끌어올리는 데 한계가 있다.
일류 정도만 되어도 날아오는 화살을 보고 피하는 것이 어렵지 않기에, 첫발의 기습이 성공하지 못한다면 전투를 유리하게 이끌어 가기 힘들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도 초절정의 경지쯤 되면 이야기가 다르군.’
소종천과 권마의 싸움에서 눈을 돌린 당사준은, 마치 근거리에서 찌르는 검처럼 강한 힘을 품고 날아드는 화살을 피하기 위해 온 신경을 집중했다.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그나마 상대가 궁마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활이 아닌 다른 무기였다면, 일행들이 이렇게 초절정 고수의 공격을 회피하는 것도 불가능했으리라.
* * *
“쯧! 잔챙이들도 제법 실력이 있군.”
몇 차례 화살을 쏘아 보냈던 궁마 원여율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혀를 찼다.
어지간한 무인 따위는 이 거리에서도 사살할 능력이 있기에, 목표인 소종천에게 접근하기 전에 나머지들을 처리하려고 공격을 개시했었다.
한데 생각보다 잔챙이로 취급한 자들의 수준이 높아, 아무래도 거리를 좁히고 나서 다시 손을 써야 할 모양이다.
활은 원거리 무기이지만 근거리라고 해서 위력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거리가 가까워질수록 상대가 공격에 반응할 시간이 줄어들어, 명중시키기가 더욱 수월해진다.
물론 활을 쏘기 위해 필요한 일련의 과정이 필요한 만큼, 상대와 무기를 맞부딪쳐야 할 정도의 거리까지 붙는 것은 문제가 있긴 하다.
하지만 처리해야 할 상대는 동급의 무인도 아니고, 고작 절정 이하의 무인 넷.
저 정도면 완전히 근접전으로 돌아선다고 해도 불리할 이유가 없었다.
거리를 좁히기 위해 신법을 펼친 궁마의 신형이 일행들을 향해 빠르게 다가왔다.
* * *
퍼엉! 쿵! 콰지직!
폭발물이 터지는 듯한 소리가 연달아 울리며, 인근의 지형지물이 점점 황폐하게 변해갔다.
주변 초목은 전부 박살 나거나 뿌리가 뽑혔고, 땅거죽이 전부 뒤집혀 흙먼지가 사방으로 거세게 나부낀다.
권마와 격돌했다가 튕겨져 나가기를 반복하던 소종천은, 온몸의 뼈마디가 비명을 지르는 듯한 느낌이 얼굴을 찌푸렸다.
‘뭔 놈의 힘이 저래! 아라한신권을 더하고도 정면충돌은 밀리는 감이 있잖아?’
짧게 투덜거린 소종천이 다시 땅을 박차고 달려들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실보단 득이 많다.
소종천이 직접 나서서 권마와 공방을 벌이는 동안.
뒤로 물렸던 분신들로 간간이 날려 보낸 강환이, 그럭저럭 재미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딱히 이렇다 할 부상이 없는 소종천과 달리, 권마는 몸 여기저기에 강환이 찢고 지나간 상처가 생겨 피를 흘리고 있었다.
“쥐새끼 같은 놈! 과연 생긴 것처럼 아주 얍삽하게 싸우는구나!”
“칭찬 고맙다! 개자식아!”
비난을 가해오는 권마를 향해 악을 지른 소종천은 다리를 노리는 척 거짓 동작을 취하다가, 옆으로 신형을 날리며 상대의 쇄골 아래 중부혈을 향해 권을 내질렀다.
백보신권의 요결에 따라 움직인 내력이, 공간을 뛰어넘는 권격이 되어 목표를 향해 날아갔다.
“어림도 없다!”
하지만 소종천이 내보낸 백보신권의 권력은, 권마가 뻗은 주먹에 의해 거센 바람 앞의 촛불처럼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아오씨! 진짜 더럽게 무식한 권법이네!’
권법 자체는 굉장히 단순하지만, 오히려 그래서 상대하기가 더 까다롭다.
백보신권처럼 격공권의 한 종류인 것도 아닌데, 주먹질을 할 때마다 강맹한 권풍이 일어나 비슷한 효과를 일으킨다.
효과 범위가 넓다는 점에서는 오히려 더 상위호환이라 할 수 있었다.
저런 걸 공수일체라고 칭하는 건 조금 억울한 기분이지만, 아무튼 틈을 파고들기가 굉장히 어렵기는 했다.
분신으로 펼치는 탄지신통의 강환으로 뒤를 노리는 것을 제외하면, 계속 제대로 된 타격을 주지 못하고 있었다.
‘강환을 만드는 데 소모되는 내력을 생각하면, 사실 이득이라고 하기도 애매하고.’
부상을 입히고는 있다지만 전투에 지장을 줄 만큼 치명적인 상처를 만들 기회는 아직 오지 않고 있다.
널찍한 방패로 후려치는 것 같은 광범위한 권격을 피해 뒤로 물러나며, 소종천은 자신에게 남은 내공을 확인했다.
‘큭! 벌써부터 슬슬 바닥을 드러내고 있잖아?’
그렇지 않아도 내력 소모가 큰 강기를 분신을 동원해 펼치려니, 내공이 떨어지는 속도가 이전보다 몇 배로 빨라졌다.
초절정의 경지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아직 효율적으로 강기를 다루지 못하는 점도 한몫하고 있다.
“놈! 벌써부터 힘이 빠지는 것이냐? 크흐흐! 기대보다 영 약골이군!”
두 손에 선명하게 서렸던 권강이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것을 눈치챈 권마가, 소종천을 조롱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설상가상으로 저 멀리 떨어져 있던 궁마의 기운이, 이쪽을 향해 다가오는 것도 느껴진다.
‘염병할! 오더라도 한 놈씩 오라고! 원래 악당은 약한 순서대로 하나씩 당해줘서 경험치가 되는 게 국룰이잖아!’
자신 외에는 아무도 이해해 주지 못할 공허한 외침을 마음속으로 내지른 후.
소종천은 새로 연대구품을 펼쳐 줄어든 분신의 수를 복구하고, 동료들이 있는 곳을 향해 지원을 보냈다.
버텨달라고 말은 했지만, 초절정의 마인을 상대로 일행들이 견딜 수 있는 시간은 지극히 짧을 것이다.
순식간에 다들 죽어 나가는 꼴을 보지 않으려면, 분신을 활용해 도움을 주기라도 해야 한다.
“놈! 감히 나와 싸우면서 다른 곳에 한눈을 팔다니! 빨리 죽고 싶은 것이라면 소원대로 해주마!”
그나마 유효한 피해를 입히고 있던 분신들을 다른 쪽으로 빼는 모습에, 권마가 불쾌감을 드러내며 더더욱 거칠게 소종천을 몰아붙였다.
우르르릉! 쿵! 꽈앙!
“으윽!”
연달아 가해지는 극강한 권격에 소종천은 속절없이 뒤로 밀려났다.
“네깟 놈이 도마를 혼자 꺾었다고? 괜히 긴장했던 스스로가 한심해지는군. 굳이 둘씩이나 모일 필요도 없었겠어.”
“거, 쫑알쫑알 시끄럽구만!”
입안이 흙먼지로 인해 텁텁해진 소정천은 침을 퉤 뱉고서는 권마를 향해 입을 열었다.
“그래, 도마가 내 덕분에 저승 구경을 하고 있지. 그리고 귀마도 나한테 뒈졌고. 댁도 곧 그 뒤를 따라가게 해주지.”
“귀마? 연락이 닿지 않는다고 하더니…… 결국 그자도 당한 거였나. 설마 본교에 이리도 피해를 입히는 자가 나타날 줄이야. 네놈은 결코 곱게 죽이지 않을 것이다!”
“아니, 나 말고 그쪽이 죽게 될 거라니까?”
“끝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 놈이군. 보아하니 내력도 다 떨어진 모양인데, 그따위 허세를 부린단 말이냐?”
코웃음을 치며 내뱉어진 권마의 말에, 소종천은 씨익 하고 웃음을 지어 보였다.
상황이 좋지 않지만, 그래도 아직은 믿는 구석이 있지 않은가.
“떨어진 내력은 채우면 그만이지.”
소종천은 잠깐의 대화로 시간을 끌면서 영웅 뽑기를 시도하고 있었다.
천급 영웅을 무조건적으로 불러올 수 있는 확정 영웅 뽑기도 이번 기회에 사용해 보았다.
[업적 점수 2,000점 소모.] [소환을 희망하는 대상의 모습을 떠올리십시오.]‘어…….’
알림을 확인한 소종천은 잠시 멈칫했다.
조건을 지정할 수 있다는 설명을 보긴 했었는데, 이런 방식일 줄은 몰랐다.
‘희망 대상이라고 해봐야 어차피 누가 있는지도 모르는데. 차라리 목록이라도 보여줄 것이지.’
살짝 투덜거린 소종천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 생각했다.
‘그냥 내공이 많은 사람이면 상관없는데. 아, 그래도 심득을 생각하면 소림 쪽 인물인 게 더 좋겠구나. 저번의 그 신승 같은 분이면 충분하겠…….’
[시간 초과.]‘……뭐야!? 생각할 시간이 너무 짧잖아!’
이어지는 알림에 소종천은 분개했다.
이제 막 신승의 모습을 떠올리고 있었는데, 시간 초과라니?
[사용자의 입력 조건을 확인했습니다.] [신체적 특징: 독두(禿頭)]‘어이?’
독두, 흔한 표현으로 대머리.
신승의 얼굴을 심상 속에 그리며 솔직히 머리카락이 없는 것부터 생각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대머리 영웅을 원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어이가 없었지만 그래도 이미 벌어진 일이기에, 소종천은 어쩔 수 없이 결과를 기다렸다.
‘망할! 그래도 이런 조건이면 소림승이 나올 확률이 높겠지. 설마 세상에 머리털 없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 으음…… 별로 없겠지? 그래, 그럴 거야. 초절정 고수가 대머리라니. 불가의 무문이 아니고서야 그럴 리가 없지.’
[천급 영웅 당첨!]이윽고 확정 뽑기의 효과에 따라, 천급 영웅의 힘이 소종천의 몸에 깃들었다.
“……뭐? 누구라고?”
떠오른 영웅의 이름을 확인한 소종천은 황당함을 금치 못했다.
뽑기로 무림최강 12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