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125
54. 절체절명(5)
소종천이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서 장검을 꺼내 드는 모습은, 산전수전을 다 겪으며 무수히 많은 무인을 학살한 권마에게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소종천이 펼치는 무공이, 너무나도 고절한 검법이라는 점에 있었다.
“끄으윽!”
비명과 함께 핏물이 바닥에 흩뿌려졌다.
한쪽 손목이 잘려 나간 권마가 경악하며 뒤로 물러났다.
“제왕검형!? 그, 그럴 리가!”
중원에서 가장 유명한 검가의 오의를 권마쯤 되는 이가 몰라볼 리 없다.
방금까지 주먹을 맞대며 싸우던 소림의 권사가 갑자기 전혀 다른 문파의 검법을 사용하는 모습에, 권마는 기절초풍하다시피 하며 말을 더듬었다.
웅웅웅!
쉬익!
강하게 울리는 검명과 함께 검격이 이어졌다.
상대가 놀라거나 말거나 의문을 풀어준다고 떠들고 있을 여유는 없기에, 소종천은 몸에 깃든 창천검성의 기운에 따라 제왕검형의 형을 계속해서 풀어나갔다.
“크윽!”
권마는 차마 소종천의 검격을 받아칠 엄두를 내지 못하고, 검로에서 벗어나기 위해 속절없이 몸을 날려야만 했다.
강기를 다루는 경지쯤 되면 맨손으로 병기와 부딪치는 것이 더 이상 불리함으로 적용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권마가 손목을 잃고 또 도망치기 급급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만큼 소종천이 구현하는 창천검성의 검법이 엄청난 위력을 가졌기 때문.
“대체 어떻게!”
권마가 외친 어떻게 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소종천이 선보인 소림의 여러 절학들과 창천검성의 제왕검형.
어느 한쪽이나 평생을 수련에 바쳐도 성취를 보기 어려운 무공들이다.
그런 무공을 한 사람이 모두 펼쳐낸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첫 번째 의문.
그리고 두 번째 의문은 제왕검형의 위력에 대한 것이었다.
남궁세가의 제왕검형이란 무공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이, 모르는 이가 있다면 그 사람이 이상한 것이라 할 정도로 유명한 검법.
하지만 제왕검형이 아무리 대단한 검법이라 해도, 권강을 두른 권사의 손을 단숨에 잘라낼 정도로 절대적인 무공은 아니다.
천하에 다시없을 절세의 신검을 사용했다면 모를까, 소종천이 손에 쥔 것은 그럭저럭 품질은 좋지만, 명검의 반열에 들지도 못하는 평범한 검이었다.
강기를 두르며 권법을 펼치고 있던 권마의 손을 베어냈다는 것은, 아무리 제왕검형을 대성한다고 해도 보일 수 있는 위력이 아니다.
‘대영웅인 미래의 남궁건의 검법은 기존의 것과 다른 특별한 힘이 담겨 있다는 거지.’
소종천이 익힌 백보신권이나 아라한신권 같은 절학처럼, 식(式)이 없이 형만 존재하는(形) 무공인 제왕검형.
창천검성의 제왕검형은 그보다 한 단계 더 진보하여, 형을 초월한 어떤 미지의 힘이 담겨 있는 검법이었다.
‘초절정의 끝에 도달해 미증유의 경지라 일컬어지는 다음 단계를 더듬고 있던, 미래의 남궁건 정도나 펼칠 수 있는 검공이라는 거지.’
창천검성의 능력을 빌려 쓰고 있는 소종천조차 단지 다룰 수 있을 뿐이지, 도대체 검에 어떤 고절한 무리를 담고 있는 것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어쨌거나 수단을 사용할 수만 있다면 원리를 알지 못한다고 딱히 문제 될 것도 없기에, 소종천은 쩔쩔매며 도망치는 권마의 뒤를 쫓아 계속해서 검법을 펼쳤다.
하지만 신이 나서 추격하는 것도 잠시.
소름이 쫙 돋아나며 온몸의 신경이 경고를 보내오는 듯한 감각에, 소종천은 반사적으로 몸을 돌리며 검을 휘둘렀다.
째앵!
검이 산산조각 나며 파편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이런 망할?’
조금만 반응이 늦었어도 화살에 꿰뚫릴 뻔했다.
여태까지와 전혀 다른 위력이 실린 화살.
권마의 위기에 궁마가 감춰두고 있던 자신의 비기를 선보인 것이었다.
화살이 쏘아지는 소리보다도 빠르게 날아가, 상대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목숨을 앗아간다는 궁마의 무음시(無音矢).
그렇지 않아도 평범한 검이라, 절대적인 검력을 행사하며 발생하는 부하를 간신히 감당하고 있던 차다.
그런 상태에서 궁마의 공격을 튕겨냈으니 검이 박살나는 것이 당연하긴 했다.
무음시를 날려 소종천을 멈춰 세운 궁마는 이어서 등허리에 매달려 있던 화살 뭉치의 매듭을 끊어내고, 벼락같은 손놀림으로 화살들을 쏘아 보내기 시작했다.
한번 시위를 튕길 때마다 세 발씩.
눈 깜짝할 사이에 발사된 도합 열다섯 발의 화살은, 제각각 다른 방향을 향해 날아갔다.
모르는 이가 봤다면 너무 마구잡이로 쏘아대서, 전부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할 법한 광경.
하지만 잘못 쏘아진 것처럼 보였던 화살들은 이내 급격하게 꺾이는 움직임을 보이며, 하나도 빠짐없이 소종천을 향해 방향을 틀었다.
신들린 듯한 속사에 도무지 경로를 예측하기 어려운 곡사의 결합.
화살 하나하나가 전부 다른 각도의 휘어짐과 비행속도를 가졌기에, 소종천은 권마를 쫓는 것을 멈추고 날아드는 공격을 피하거나 쳐내는 데 정신을 집중해야 했다.
‘지금이 저 괴상한 놈의 명줄을 끊을 수 있는 마지막 순간이다.’
반대로 이 상황은 권마에게 있어, 다시 찾아올 거라 장담할 수 없는 기회였다.
원거리에서 행해지는 궁마의 지원사격은 매우 효과적이긴 하지만, 화살이라는 유한한 소비품을 사용하는 궁술의 특성상 언제까지고 계속 상대를 묶어둘 수는 없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검격으로 인해 한쪽 손을 잃은 이상, 더 이상 일대일로 소종천을 상대하기란 버거운 일.
궁마와의 합공이 가능한 동안 상대를 해치우거나, 싸움을 포기하고 달아나거나 둘 중 하나를 지금 선택해야 했다.
‘놈의 권법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조금 전에 펼친 검법보다는 덜 위협적이지.’
무기를 잃었으니 다시 검이 아닌 권을 사용할 수밖에 없을 터.
술법 같은 것에도 조예가 있는지 아까는 허공에서 검을 꺼내는 신기한 짓을 하긴 했었지만, 보아하니 그런 수법은 다시 사용하지 못하는 모양이다.
권마는 이 합공으로 소종천을 쓰러뜨리겠다는 선택을 내리고, 남은 내력을 최대로 쥐어 짜내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심상을 공유받고 있기에 궁마의 화살에 실수로라도 피격될 가능성은 없다.
여기서 결착을 지으려 하는 권마의 의도를 파악한 궁마 역시, 가진 화살을 전부 소모할 기세로 쉬지 않고 연사를 가했다.
사방팔방에서 들이닥치는 화살을 피해내는 데 집중하던 소종천은, 권마까지 공세로 돌아서자 다시금 위태로운 광경을 연출하게 되었다.
손을 하나 잃었다고 해도 여전히 권마의 권격은 위력적이다.
“으아압!”
악을 지름과 동시에 소종천은 연대구품을 사용해 자신 근처로 분신을 되돌렸다.
공격이 이쪽으로 집중되고 있으니, 더 이상 일행들을 지킨다고 분신들을 보내둘 필요가 없다.
궁마가 재차 목표를 바꿀 가능성도 있을 수 있겠지만, 그런 것을 일일이 따지기엔 당장 자신이 죽어 나갈 수도 있는 상황이다.
어차피 여기서 자신이 당하게 되면 다른 동료들도 전부 죽은 목숨인 것은 마찬가지.
권강을 손에 두른 분신들이 주변으로 퍼져 나가며 날아드는 화살을 막아냈다.
‘크으! 3갑자에 가까운 내공이 있어도 이 미친 소모량을 감당하기는 쉽지 않네!’
쭉쭉 빠져나가는 내력을 느끼며 잠시 인상을 찌푸린 소종천은, 이내 덤벼드는 권마를 마주하며 다시 처음과 같은 일대일 구도를 만들었다.
“이놈! 이제 그만 죽어라!”
“지랄! 너나 뒈지세요!”
분신들에 의해 궁마의 지원이 잠시 차단되었기에, 싸움은 한 손을 잃은 권마보다 소종천에게 더 유리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쉽사리 권마를 제압할 수 있을 만큼은 또 아닌 상황.
확실하게 승기를 잡았다고 말하기는 애매한 공방이 잠시 이어졌다.
‘이렇게 질질 끌었다간 끝이 어떻게 될지 몰라. 위험을 감수하고 승부수를 던져야 할 때다.’
권마의 생각과 마찬가지로 승부를 걸려면 지금이라고 여긴 소종천은, 분신들이 발하던 권강을 해제하고 궁마의 화살에 맞아 소멸당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위험을 감수하고 권마를 공격권 안으로 깊게 끌어들이려는 수작.
“으윽!”
신음을 흘리며 휘청거린 소종천은 아예 팔을 내리고 허점을 완전히 드러내 권마의 공격을 유도했다.
‘괴물 같은 놈! 드디어 내력이 다 떨어진 건가!’
권마의 입장에서는 물 수밖에 없는 떡밥이었다.
연기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하기에는 너무 크게 빈틈을 노출했다.
‘함정이라면 오히려 고맙군! 이 거리에서 내 공격이 빗나갈 리도 없으니, 일격을 교환하기만 해도 손해가 아니다.’
단순히 권법의 위력만을 논한다면 상대보다 위에 있다고 자신한다.
권마의 주먹이 내질러졌다.
그에 대응하여 소종천의 몸 앞으로 강기의 막이 만들어졌다.
“그까짓 것쯤!”
겨우 호신강기를 믿고 함정을 판 것이라면 실수한 것이다.
그 정도로는 자신의 전력이 담긴 권격을 막아낼 수 없다.
입가 가득 비웃음을 띄운 권마의 주먹이 강기의 막을 찢으며 소종천의 가슴팍을 파고들었다.
직후, 권마의 안색이 확 바뀌었다.
주먹 끝에서 느껴지는 기묘한 감각이, 권마에게 무언가 일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게 만들어주었다.
“우웩!”
울컥하고 올라오는 핏물을 뱉어내며 고통에 얼굴이 찌푸려진 소종천은, 이내 도박이 제대로 통했음을 알고 일그러진 미소를 지었다.
‘더럽게 아프지만 막긴 막았네!’
소종천이 노출한 허점은 가슴 어림의 심장부였고, 권마의 주먹은 정확하게 용린이 위치한 부분을 때렸다.
호신강기를 통해 일차적으로 위력을 감소시키고, 용린으로 나머지 권력을 감당한다.
그것이 소종천이 띄운 승부수였다.
약간 도박이긴 했지만 권마와 권을 주고받으며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파악했기에, 이런 모험을 시도할 수 있었다.
물론 대단한 기물인 용린과 호신강기의 결합이라 해도, 초절정 고수의 전심전력을 다한 일격을 완전히 상쇄시킬 수는 없다.
피를 토해낸 것은 그로 인해 적지 않은 내상을 입었기 때문.
그래도 이 정도는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행한 일이다.
‘운신이 어려울 정도의 중상만 아니면 돼.’
치료가 시급하긴 했지만, 아예 당장 무공을 못 쓰거나 쓰러질 만큼 심각한 부상인 것은 아니다.
욱신거리는 통증을 참아내며 소종천은 소지품 창을 조작했다.
[중등품 검을 출고하시겠습니까?]‘끝이다.’
소지품 창에 박혀 있는 예비용 검은 한 자루가 아니다.
상대가 경계하여 미끼를 물지 않을 수도 있겠다 싶어, 일부러 이 순간까지 검을 다시 꺼내지 않고 있었다.
권마의 눈이 찢어질 듯이 커졌다.
죽음의 선이 그어진다.
어떻게든 공격을 피하고자 몸을 뒤로 뺐지만, 지고한 무학의 묘리가 담긴 소종천의 검은 무자비하게 권마의 몸을 가르고 지나갔다.
“이런 육시랄…….”
푸악!
말을 다 내뱉기도 전에 상처가 쩍 벌어지며, 핏물이 세차게 솟아올랐다.
권마의 몸이 뒤로 넘어가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동시에 손에 쥔 검이 가루가 되어 뿌려진다.
품질이 썩 좋지 않은 검이라 고작 한 번의 일격에 수명이 다해 버린 것.
‘자, 그럼 이제 어쩐다?’
권마를 해치웠지만, 아직 궁마가 남아 있으니 싸움이 끝나진 않았다.
소종천은 궁마가 있는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뽑기로 무림최강 126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