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13
9. 성장의 틀
어지러웠던 시야가 정상으로 돌아왔다.
소종천은 바로 알림부터 확인했다.
[내공 0.12 상승.]‘엥? 고작?’
기대했던 것에 미치지 못하는 낮은 수치.
하지만 알림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오성 3.58 일시적 상승.]“일시적 상승?”
글자를 따라 읽은 소종천이 헛웃음을 짓는다.
이건 기대했던 효과와는 전혀 달랐다.
‘능력치를 일시적으로 증가시켜 주는 물건이었어? 이런…….’
시야 끝에 지속 시간이 표시된다.
240시간에서 몇 초가 줄어든 시간.
‘지속 시간은 열흘인가. 게다가 오성이라니. 어째 머리가 좋아지는 약이라고 부자 동네에 떠돌 법한 불법 약물 같은 느낌이네. 이런 건 딱히 쓸모가 없…… 으음, 아니다. 아주 쓸모없진 않은가?’
오성 수치가 확 올라서 그런지 머리가 활발하게 돌아가는 느낌이다.
소종천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일단 기대했던 성장은 아니긴 해. 내공이 오르긴 했지만, 은색 등급 영약의 반절밖에 되지 않는 수치고, 이 정도로는 모용설호와의 대결에 큰 영향을 끼칠 수 없지.’
현 상황에서 기대할 수 있는 것은 한 가지뿐.
‘반야신공의 구결을 마저 암기해야 한다. 지금이라면 다 외울 수 있을 것 같아. 다시 지속 시간이 끝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당장은 기대할 수 있는 것이 무공 습득 임무로 받게 될 보상 정도니까.’
생각을 정한 소종천은 그대로 만룡각으로 달려가 비급을 펼쳐 들었다.
그리고 한 시진이 지난 후.
“미쳤구나.”
소종천은 반야신공의 비급 전체를 몽땅 머릿속에 외울 수 있게 되었다.
범인을 초월한 기억 능력.
거기에 선문답 같았던 구결의 내용 역시 일부나마 이해가 되는 듯싶다.
‘머리가 확실히 엄청나게 좋아졌네. 이리 쉬운 걸 그동안 고작 외우는 것만 해서 절반이라니. 내가 머리가 나쁜 건지 이 약효가 엄청나다고 해야 하는 건지.’
이 세계에서 살아가게 된 지 오늘로 십칠 일째.
지금까지 반야신공을 익혀보겠다고 매달렸던 시간이 아까워 미칠 지경이다.
자신의 재능 수치들을 잠시 떠올린 소종천은 환혼천통단의 효과가 굉장한 것인 게 맞을 거란 결론을 내렸다.
‘평균값의 기준을 구하기엔 표본이 너무 적긴 하지만, 한사혜와 모용설호의 재능 수치들을 생각하면 지금의 오성 수치가 비정상적으로 뛰어난 게 맞겠지.’
잠룡학관에 입관한 생도들은 하나같이 전국 각지에서 가려 뽑은 인재들이다.
물론 이들이 강호무림 최고의 무재(武才)들이라고 할 수는 없다.
명문세가와 대형문파 출신 중 가장 우수한 재능을 가진 이들은, 당연히 그들 세력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미래를 짊어질 후계자로 키워지고 있으니 말이다.
보통 잠룡학관에 입관하는 생도들은 그런 후계구도의 선별에서 떨어져 나온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말하자면 이들은 최고에 못 미치는 차상의 재능을 가진 새싹들.
다만 대주로 뽑힌 이들이나 그와 비교되는 성적의 몇몇 생도들은 이야기가 조금 다르다.
아주 근소한 차이로 자신의 세력에서 선택받지 못한 이도 있고, 재능은 충분하나 내부의 알력 다툼이나 정치적인 문제로 후계 구도에서 밀려난 이도 존재하기 때문.
‘대주급. 그러니까 모용설호나 한사혜 같은 녀석들은 무림 전체를 뒤져도 충분히 수재로 손꼽힐 수 있을 만한 재능이라는 거지. 뭐 무공에 한해서만이지만.’
그리고 그들이 무재를 인정받는 기준이 되는 재능 수치는 다름 아닌 근골.
‘두 사람 다 근골 수치가 9점을 넘었던 것을 생각하면, 그 정도 수치가 평범한 사람이 따라잡을 수 없는 재능인 거라 여겨도 억측은 아니겠지.’
그리고 만약 오성과 감각 역시도 동일한 기준이 적용된다면?
현재 영약의 효과로 늘어난 소종천의 오성 수치는 두 자릿수를 돌파한 10.01점이다.
‘10점을 넘어선 지금의 내 오성 수치는 거의 천재의 영역에 발을 걸친 게 아닐까?’
그렇다고 여기면 고작 한 시진 만에 이 두꺼운 비급을 달달 외운 것도 납득이 간다.
소종천은 비급을 반납하고 심법을 수련하기 위해 장소를 옮겼다.
임무의 완료를 위해서라도 당분간은 평소보다 더욱 심법에 매진해야 한다.
머릿속으로 오늘 외운 구결들을 암송하며 내기의 운용을 반복했다.
무고집멸도(無苦集滅道) 무지역무득(無智亦無得).
심무가애(心無佳碍) 무가애고(無佳碍故) 무유공포(無有恐怖).
‘비우고 없앤다. 불교에서 근본교리로 삼는다는 공(空)에 관한 구결인가.’
무협과 판타지 소설들을 섭렵하며 보낸 세월이 몇 년이던가.
이해는 못 하지만 그런 개념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 만한 짬밥이다.
그리고 오성 수치가 비약적으로 증폭되어 있는 지금, 난해하기 짝이 없다는 반야신공의 구결들이 머릿속에서 조금씩 풀어 헤쳐지고 있었다.
불교 가르침의 중심이 되는 경전 대반야바라밀다경의 깨달음이 스며든, 불가계통 내공심법의 정수.
그것이 반야신공.
‘아…… 이 방법이 맞구나.’
구결을 완벽히 외운 것이 정말로 영향을 미친 것일까?
지금까지 기단을 형성할 낌새가 전혀 보이지 않았던 기운들이 슬며시 한 점에 모이기 시작했다.
어쩌면 아직 뜻을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으나, 일부나마 구결의 내용을 풀이하며 사색에 빠진 것이 도움이 된 건지도 모르겠다.
소종천은 온 정신을 반야신공의 수련에 집중했다.
먹고 자고 운공을 반복하는 생활.
하루, 이틀, 사흘.
마치 정신이 나가버린 사람처럼, 사용할 수 있는 시간 대부분을 심법 수련에만 빠져 지냈다.
어떤 날은 침식(寢食)도 거르며 죽은 듯이 한자리에 박혀 수련에 매진했다.
그렇게 열흘째가 되던 날.
[임무 : 무공 습득을 완료했습니다.]드디어 소종천의 정보창에, 반야신공 1성이라는 한 줄이 추가되었다.
번뜩.
내기를 갈무리하고 일어나는 소종천의 눈에서 알 수 없는 기운이 일렁이다 사라졌다.
“후우…… 성공했네.”
뿌드득. 으득.
얼마나 오래 앉아 있었는지 뼈마디에서 비명이 들려온다.
천천히 몸을 풀면서 소종천은 알림의 나머지를 확인했다.
[결과 등급 : 최상] [추가 보상이 지급됩니다.] [300은 획득.] [200금 획득.] [5청강석 획득.]“오?”
보상은 상당했다.
기본 보상으로 보이는 300은이야 그렇다 쳐도, 추가 보상이 무려 200금과 5청강석.
‘역시 반야신공은 급이 다른 무공이구나. 결과 등급이 최상이라.’
기대를 충족시켜 주는 보상이다.
소지품창을 열어 재화 칸으로 시선을 향했다.
2,800은, 230금, 5청강석.
일분일초도 아끼며 수련에만 미친 듯이 몰두하느라, 열흘간 받은 일일 보상조차 쓰지 않고 계속 쌓아두고 있었다.
‘청강석. 그냥 푸른색 돌멩이의 생김새인데 이게 최고 등급의 재화란 말이지. 일단 5개만으론 쓸 수가 없으니 고이 모셔두고, 200금이면 지급 보물을 두 번 뽑을 수 있긴 한데.’
신공의 습득에 성공했고 보상도 빵빵하니 평소 같으면 환호를 지를 만한 일이다.
다만 밤낮으로 반야신공을 파고들며 끊임없이 사유를 하다 일어나서 그런지, 뭔가 기쁘긴 하면서도 덤덤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환혼천통단의 효과가 사라집니다.]딱 지속 시간이 끝나며 일시적으로 올랐던 수치들이 원래대로 돌아오자, 찬물을 뒤집어쓴 것 같은 충격과 함께 심장이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아, 아아!? 이게…… 허 참, 갑자기 꿈에서 깨어난 듯한 기분이네.’
다급하게 반야신공의 구결들을 떠올려보았다.
다행히 열흘간 죽어라 암송했던 것이 뇌리에 박히긴 했는지, 머릿속에 뭔가 지저분한 때가 낀 느낌이긴 하면서도 구결이 온전히 떠오르긴 했다.
“햐…… 그나저나 정말 미친 무공이네.”
이제 간신히 1성.
1성의 성취가 그 무공의 진수라 할 수 있는 10성과 비교했을 때 과일의 껍질만 한번 핥아본 정도의 수준임을 생각하면 정말 터무니없다.
평범한 사람은 일평생을 바쳐 익혀도 초반부의 성취를 넘어설 수 없고, 대성한 이가 소림 역사 전체를 통틀어도 찾기가 힘들다는 절세의 신공절학.
소종천은 구결을 해석하며 사색에 빠졌던 기억들을 떠올려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건…… 무리야. 내 재능으로는 제대로 익히는 것이 불가능한 무공이라고.’
오성 수치가 원래대로 돌아오고 나니, 방금까지 자신이 뜻풀이했던 구결조차 내가 무슨 개소리를 했던 거지? 하는 생각이 든다.
소종천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영약의 도움으로 1성을 이루며 기존에 형성된 기단의 내공들을 반야신공에 맞춰 다룰 수 있게 되었지만, 다음 단계인 2성의 경지는 닿을 수 없을 것처럼 까마득하기만 했다.
내공심법이란 성취도가 높을수록 내기가 쌓이는 속도도 빨라지고 기운의 질도 향상되게 마련이다.
또한, 전신으로 흘려보내는 내기의 수발이 물 흐르듯 자연스러워지고 소모한 내공의 회복 속도도 빨라지게 되니, 심법의 성취도를 올리는 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중요한 일 중 하나다.
‘평생 1성이나 2성 정도의 성취도에 머물 것 같으면…… 차라리 적당히 일류 수준으로 평가되는 심법을 익히는 것이 낫겠는데.’
그래도 덕분에 임무 보상을 좋게 받기도 했고, 성취가 낮아도 청명토납공보다 효율적으로 내공을 다룰 수 있어 보이니 아주 쓸데없는 짓을 했다고 볼 건 아니긴 하다.
‘그래도 또 모르지. 이번처럼 뽑기를 하다 보면 다시 발전의 기회가 올 수도 있을 테고.’
무거워지는 마음을 애써 달래며, 소종천은 시야 구석에 있는 뽑기창으로 시선을 옮겼다.
슬슬 모인 재화들을 사용할 시간이다.
‘하아, 일단은 가까이 닥친 일부터 걱정해야지. 대결까지 앞으로 5일. 뽑기가 이번에야말로 실용적인 결과물을 내줬으면 좋겠는데.’
2,000은을 소모하여 먼저 인급 보물 상자부터 개봉했다.
“……그래 뭐, 그럴 수 있지.”
이전의 뽑기에서 금색을 뽑기도 했으니, 이 정도의 끗발은 너그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
감정서를 구매해 결과물을 확인한다.
[감정 성공.] [30년 하수오 획득.] [뭉개진 영초]이미 뽑았던 전적이 있는 영약들.
설명을 볼 필요도 없으니 바로 사용해 버렸다.
[내공 0.01 상승.] [내공 0.01 상승.]‘음?’
하수오야 이전에도 내공을 올려주긴 했는데, 뭉개진 영초는 지난번엔 분명 근골을 올려줬었다.
‘뭉개져서 원판을 알 수 없는 약초라는 설정이라서 그런가? 무작위로 수치 하나를 올려주는 걸지도.’
어차피 끽해야 0.01일뿐이니 뭐가 오르던 별다른 차이는 없긴 하다.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이번에는 진짜배기라고 할 수 있는 지급 보물 상자를 향해 눈길을 준다.
임무 보상으로 받은 200금이 소모되었다.
[지급 보물 상자 2개를 개봉하시겠습니까?]‘앞에서 제일 낮은 등급만 나왔으니 이번에는 제대로 하나 건져보자!’
지금까지 계속 만족할 만한 결과를 가져왔던 금, 은, 동 삼색의 원판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동색 무구 당첨!] [은색 무공 당첨!]동색 하나 은색 하나.
동색 이외의 확률이 매우 낮아 보이는 것을 생각하면 나쁘지 않은 결과다.
‘그런데 무구? 처음 보는 게 등장했네.’
감정서 두 개를 더 구입해 곧바로 감정을 시도했다.
이걸로 남은 재화는 400은과 30금, 그리고 5청강석.
[감정 성공.] [상등품 수갑 획득.] [철면피 비급 획득.]‘오! 수갑이? 그런데, 이건 또…….’
수갑은 알겠다만 철면피 비급은 뭔가 싶다.
철면피라면 염치없고 뻔뻔한 사람을 뜻하는 단어가 아니던가?
의문이 가득 담긴 눈으로 소종천은 비급을 바라보았다.
뽑기로 무림최강 1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