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134
57. 여로(3)
당당한 태도를 보이며 느긋한 걸음으로 다가오는 소종천의 모습에, 산적들은 더더욱 당황하여 어수선한 움직임을 보였다.
“이놈들은 어디서 튀어나온 거지?”
“알게 뭐야! 다들 가진 걸 다 내려놓아라!”
“그, 그렇지. 저항할 생각하지 마라! 이 어르신들은 아주 무서운 분들이시다!”
일행들을 좌우로 빙 둘러싸며 어설프게나마 포위진을 구성한 산적들이, 손에 든 무기를 앞으로 내밀며 으름장을 놓았다.
‘6명. 무력은 뭐, 없다시피 하고.’
자세, 호흡, 눈빛.
경지가 경지이다 보니 가볍게 쓱 훑어보기만 해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다.
네 명은 무공을 배운 적도 없는 사람이고, 두 명은 그나마 동네 무관에서 형(形) 정도는 수련한 수준.
무인이라 할 수도 없는 잡배들에 지나지 않았다.
‘깜찍하네.’
털이 북슬북슬한 아저씨들을 보며 할 생각은 아니지만, 너무 실력차이가 나는 이들과 마주하고 있자니 애들 재롱을 보는 기분이다.
“이, 이봐. 이 녀석들 무림인 아니야?”
“저 뒤쪽 놈들은 검을 가지고 있는데…….”
산적들 역시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긴장감이라곤 눈곱만큼도 드러내지 않는 일행들의 모습에, 사내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며 먼저 나서길 주저했다.
“무림인은 무슨! 그래 봐야 어린 연놈들이잖아!”
하지만 어디에나 그렇듯이, 항상 분위기 파악을 못 하는 사람은 있는 법이다.
“이놈들! 당장 엎드려라!”
별로 위협적으로 보이지도 않는 짧은 손도끼를 들이밀며 호통치는 모습에, 소종천은 피식거리며 대답해 주었다.
“싫은데.”
“뭣! 반항할 셈이냐!”
“역으로 제안하겠는데, 죄를 빌고 자수하겠다고 하면 관아에 넘기는 거로 끝내주지.”
“이런 정신 빠진 놈이!”
범죄자에 대한 인권 따윈 없다시피 한 세상이다.
도적질을 하다 끌려가면 대부분은 관노가 되어, 더럽고 궂은일을 도맡아 하는 노비 생활을 하게 된다.
혹여 풀려난다 해도 몸 성히 나올 생각은 버려야 한다.
그나마 코를 베어내는 의형이나 발뒤꿈치를 자르는 월형 같은 잔인한 형벌은, 한나라 시절의 성군 문제에 의해 공식적으로 폐지되긴 했다.
하지만 바늘로 살갗을 찌르고 먹물을 피부 깊숙이 새겨 범죄사실을 몸에 문신으로 새기는 묵형은, 여전히 남아 범죄자들에게 뗄 수 없는 꼬리표를 남긴다.
그렇게 낙인이 찍힌 범죄자들은 풀려봐야 다른 일을 하기도 어려워 결국 다시 범죄자가 되기 마련.
초범 때야 목숨을 구했지만, 재범으로 잡혀 온 이들은 자비를 기대할 수도 없다.
자살하고 싶을 정도로 힘든 노역에 시달리거나 사형을 당하는 것으로 인생이 끝나는 것이다.
“죽엇!”
산적 사내가 소종천을 향해 달려들며 도끼를 휘둘렀다.
만나자마자 자수하란다고 그 말에 따를 사람이 있을 리가 없다.
관아에 잡혀가면 그대로 미래가 사라지게 되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귀결.
여유로운 표정을 짓고 있던 소종천의 얼굴에 싸늘함이 감돌았다.
“이것 봐라?”
기분이 급격하게 나빠졌다.
공격당했다는 점에서만 화가 난 것이 아니다.
사내는 소종천이 무공을 배운 적 없다고 판단한 이들 중 하나.
역시나 도끼를 휘두르는 모습이 어색하고, 힘의 전달이 비효율적이기 그지없다.
그런데 그와 별개로 소종천의 날카로운 감각은, 사내의 움직임과 기세에서 묘한 얼룩 같은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뭘 배우진 않았어도, 이미 손에 피를 묻혀봤구나.’
명확한 근거는 없다.
하지만 소종천은 상대가 이미 사람을 죽여본 일이 있다는 것을 직감했다.
초절정의 경지에 오른 뒤로 여러 무인들을 만나며, 그들에게서도 간간이 맡은 적 있던 비릿한 내음을 느껴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후각을 통해 파악되는 기운은 아니지만, 비유하자면 그렇다는 것이다.
소종천의 손이 가슴팍을 향해 다가오는 도끼날을 붙잡았다.
“어억!?”
초식이니 권기이니 하며 무공을 사용할 필요도 없다.
이미 신체 능력 자체가 차원이 다른 수준이다.
어떻게 힘을 줄여야 의도치 않게 상대를 죽이지 않을까 신경 써야지, 힘이 부족할 일은 전혀 없었다.
콰자작!
호흡에 따라 전신으로 흐르는 내력을 적당히 조절하며 손을 움켜쥐자, 손가락이 강철을 파고들며 도끼날을 산산조각으로 박살 내었다.
상황이 이쯤 되자, 전력의 차이를 뒤늦게 알아본 산적의 안색이 창백하게 변해갔다.
“자, 잠끄아아악!”
뭐라 말하려는 사내의 오금을 걷어차자, 다리가 나무젓가락마냥 간단하게 부러졌다.
직접 타격을 받은 다리 한쪽이 무릎뼈가 완전히 사라지기라도 한 듯 기괴하게 꺾여 버렸다.
그러고도 남은 충격이 반대편 다리 역시 부러뜨려, 더 이상 제 기능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단순한 위협 정도는 애교로 봐줄 수 있었다.
길에서 마주친 조막만 한 강아지가 왕왕거리며 짖어댄다고, 화를 내며 진심을 다해 상대하려는 이는 드물다.
하지만 어디서 이미 누군가를 물었는지 이빨에 피를 묻히고 있고, 내게도 달려들어 발목을 물어뜯으려 한다면?
그때는 ‘이 개새끼가!’ 소리가 절로 나오며 전력으로 걷어차도 이상한 반응이 아닐 것이다.
“커흐, 흐그으으.”
겪어본 적 없는 심한 통증에 눈물 콧물을 흘리며 바닥을 기는 사내.
그런 상대를 무심히 내려다보던 소종천은 이내 뒤편의 산적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이런 빌어먹을! 무림인이 맞잖아!”
“어쩔 수 없으니 싸워! 어차피 도망쳐도 소용없다고!”
산적들 중 소종천이 무공을 익혔으리라 판단했던 두 사내가, 이를 악물고 살기를 드러내며 달려들었다.
확실히 배운 놈들답게 움직임이 신속하고 동작에도 더 힘이 실려 있다.
다루는 무기도 품질은 떨어져 보이지만 일단은 제대로 된 칼이다.
하지만 그래 봐야 삼류에 간신히 걸친 정도의 실력들이다.
그야말로 수박 겉핥기식으로나마 무공을 배운 정도.
소종천의 입장에서 다른 산적들이 민달팽이만큼의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면, 이 둘은 그냥 달팽이에 비유할 수 있었다.
손가락으로 눌러 죽였을 때, 깨진 껍질 조각이 살갗을 찌를 수도 있다는 차이가 있다.
물론 그래 봐야 따끔하지도 않겠지만 말이다.
“후.”
살짝 입을 벌려 숨을 내쉰 소종천이, 양손을 뻗어 두 사내의 목줄을 움켜쥐었다.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동작이었기에, 마치 일부러 두 사람이 목을 내어준 것처럼 보이는 광경이었다.
“켁!”
“컥!”
“아저씨들은 냄새가 더 심하네.”
소종천은 두 사람에게서도 미세한 혈향을 맡았다.
다리를 부러뜨린 산적처럼, 이들 역시 몇 차례 사람을 죽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지나다니는 행인들을 털어먹으면서 몇 사람 죽여 봤다는 거겠지.’
살인이란 것은 당연히 큰 죄다.
하지만 이 미쳐 버린 것 같은 무림 세계에 몸담은 무인으로서, 살인자라는 이유로 누군가를 혐오하고 비난할 생각은 없었다.
따지고 보면 자신 역시 죽인 사람의 수가 수십 명에 육박하는 살인마고, 우리 귀여운 동료들 또한 우수한 살인자들이 아닌가.
‘근데 또 그게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거거든.’
결국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자신의 판단이다.
남을 죽일 수 없어 스스로가 죽는 것을 받아들이는 자가 있다면, 누군가는 숭고하다고 말할 수도 있고 누군가는 미련하다 말할 수도 있다.
죽고 죽이는 일에는 제각각의 이유가 달려 있기 마련이고, 그 이유에 따라서 동일한 죄를 이고 간다 해도 느끼는 무게는 달라질 수 있다.
누구나 자신의 마음 안에 기준 하나쯤은 정해두고 있는 것이고, 그걸 넘느냐 아니냐에 따라 많은 것들이 달라지기 마련.
날 살해하려고 공격하는 마인?
죽일 수 있다. 죄책감도 느끼지 않겠다.
내 재물을 뺏기 위해 공격하는 산적?
글쎄, 이렇게 약한데 봐줄 수도 있긴 하다.
그런데 뭐? 이미 강도짓으로 사람을 죽인 전적이 있다고?
‘거기서부터는 내 선을 넘은 거지.’
아마도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저항한 사람이 있어, 그를 죽이고 금품을 강탈했을 것이다.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며 쌓인 피의 무게가, 산적들에게서 느껴진다.
우드득!
손에 힘을 주어 목뼈를 으스러뜨리는 것으로 두 사내의 숨통을 끊었다.
살인강도.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몇 번의 경험이 있는 이라면, 어차피 관아에 데려가도 사형이나 그에 준하는 중형을 받는다.
일부러 성도까지 끌고 가서 판결이 내려지고 처벌을 받도록 하느니, 그냥 여기서 끝내주는 편이 낫다.
준법정신이 투철하다면 번거롭더라도 그런 절차에 따르겠지만, 본인이 그런 인물은 아니지 않은가.
‘사적인 처벌이 바르지 않다고 그냥 풀어준다면, 다른 피해자가 생길 테고.’
이게 죽을 만한 죄니 아니니 따지는 것은 하지 않기로 했다.
자신이 무공의 고수가 아닌 평범한 일반인이었다면, 이미 가슴이 쩍 벌어져 피를 쏟고 죽어갔을 것이다.
예의를 갖추는 이에겐 최소한의 예의 정도는 차리고, 무례한 자에겐 더 무례하게 대해주는 것이 소종천의 성향.
마찬가지로 악의에는 악의로, 살의에는 살의로 갚아준다.
“으으!”
“도, 도망쳐!”
순식간에 수가 반 토막 나버린 산적들이 등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물론 그런 행동도 그리 오래가진 못했다.
소종천의 뒤에 있던 일행들이 뛰쳐나가, 한 사람씩 맡아 일격을 가했기 때문.
급소를 노리고 깔끔하게 들어간 공격에, 도망치던 산적들은 비명소리도 내지 못하고 그대로 풀썩 쓰러졌다.
“어, 다 죽여 버렸네?”
사실 달아나는 이들까지 따라가 죽여야 하는지는 소종천도 잠깐 고민했었는데, 죄다 그 자리에서 즉사해 버렸으니 생각할 이유도 없어져 버렸다.
“혼자만 손을 더럽힐 이유는 없으니까.”
“혹시 그냥 살려둘 생각이었소?”
“아, 하긴. 굳이 덤벼들지 않는 자들까지 죽일 필요는 없었나?”
“흠.”
다들 성격은 제각각이지만 살인에 무감각한 무인답게, 손을 쓰는데 주저함이 없다.
소종천은 머쓱해하며 뺨을 긁적거렸다.
“뭐…… 됐어. 그럼 가던 길이나 가볼까.”
“저거는?”
한사혜가 두 다리는 부러졌지만, 아직 살아 있는 사내를 향해 손가락질했다.
“물론 마무리 짓고 가야지.”
“으으, 살려, 살려주시오!”
소종천의 대답에 고통을 참으며 죽은 듯이 누워 눈치를 살피던 산적이, 신음을 흘리며 목숨을 구걸했다.
“그 다리로는 그냥 두면 어차피 죽을 텐데? 그냥 깔끔하게 고통을 덜어 줄 테니 가만 있으쇼.”
이런 험한 산속에서 저런 부상을 입고 살아남을 가능성은 극히 적을 것이다.
“아, 아닙니다. 아니…… 엇! 자, 잠깐?”
다가오는 소종천을 보며 도리질 치던 사내가, 불현듯 무언가 떠올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소, 소씨! 소씨네 아들 아닌가? 종천! 마, 맞지!?”
“엥?”
뜬금없이 자신의 이름이 튀어나오자, 막 출수하려던 소종천의 눈이 커졌다.
“나 임가일세! 푸줏간 건너편에 살던!”
“흐음.”
딱히 바로 무언가 생각나지는 않았다.
그래도 사내의 얼굴을 천천히 잘 살펴보니, 과연 몸의 원주인이 지닌 과거에 속해 있던 인물이긴 한 것 같았다.
“뭐야, 이거. 동향 사람을 이렇게 다 만나네.”
“무슨 학관인지 간다더니 제대로 배워 온 모양이구만! 나 좀 살려주게! 내가 소씨가 그리 가버리고 알게 모르게 자네 집에 도움을 많이 줬었어!”
귀주에 들어서면 자신을 아는 사람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설마 그게 산적이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기막힌 우연에 소종천은 어이가 없어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어째 기억하는 것보다 더 거지 같은 동네가 된 모양인데?’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는 사내 앞에 쪼그려 앉으며, 소종천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화를 이어갔다.
“거, 아저씨. 상황이 웃기긴 한데, 일단 이야기나 좀 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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