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136
57. 여로(5)
한사혜가 뭔가 사고를 쳤나 싶어, 장자군을 닦달해 자세한 사정을 들었다.
“……그렇게 돼서, 뭘 하고 있는지 나도 잘 모르겠어.”
“식사를 하지 않고 어디로 가버렸다는 거지?”
“그래.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는 아닌 거 같고, 아예 뭔가 다른 일을 하겠다는 눈치였는데 말이지.”
“어디 있는지는 전혀 모르고?”
“이왕이면 같이 돌아가려고 근처를 둘러보긴 했는데, 전혀 보이질 않네. 그렇다고 도시를 다 찾아다닐 수도 없으니…….”
한사혜의 행방에 대해 알 수 없다는 장자군의 말.
그래도 곰곰이 생각해 보면, 딱히 뭔가 큰일이 났다고 할 정도는 아닌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뭔가 준비할 것들이 있다고 해서 성도에 들르면 사라고 했었지. 급하게 이동하기로 일정이 조절되는 바람에, 밥도 안 먹고 움직인 건가?’
한 시진은 한 끼 식사를 하기에는 충분히 넉넉한 시간이고, 그렇기에 아직 만나기로 한 때까지는 시간이 조금 남아 있다.
한사혜의 성격이 원체 예측 불허이긴 해도, 벌써부터 사고를 쳤다고 생각하고 찾아다니는 것은 과하다.
아마도 자신의 본가에 빈손으로 들릴 수는 없다고 여겨 뭔가 준비를 하는 모양이니, 일단은 기다려 보는 것이 순리이리라.
‘그나저나 삼도현까지는 여태 지나온 것보다 거리가 더 먼데, 빈속으로 괜찮을라나 모르겠네.’
절정급의 무인이 하루쯤 굶는다고 심각한 문제가 생기진 않겠지만, 쉬지 않고 종일 이동하려면 상당한 체력이 소모될 텐데 조금 걱정이긴 하다.
‘약간 시간이 더 지체되더라도, 제대로 밥은 먹이고 출발해야 하겠네.’
한사혜의 돌발 행동 때문에 예정이 틀어지게 되는 것은 달갑지 않지만, 이런 일에 하나하나 화를 낼 만큼 상황이 빡빡하진 않다.
애초에 본가로 향하는 것은 원래는 있지도 않았던 선택지고, 성의 분위기가 영 좋지 않아 서둘러 보는 것이지 반드시 시각을 다퉈야 하는 것도 아니다.
‘설마 이쪽에서 찾아다녀야 할 만큼 늦진 않겠지. 예정에 맞춰오지 않으면 주의를 주긴 해야겠지만…….’
일단은 기다리기로 한다.
라고 생각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소종천은 바깥의 분위기가 뭔가 굉장히 어수선하다는 느낌에 창밖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사혜?”
길 한복판으로 유유히 걸어오는 한사혜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뭘 싸맨 것인지 모를 못 보던 등짐을 지고 있었는데, 그보다는 옷 여기저기에 묻어 있는 붉은 얼룩들에 신경이 더 쓰였다.
어떻게 봐도 핏자국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주변의 술렁거림은 그런 위험해 보이는 복장 상태에 놀란 사람들의 동요 탓.
‘잠깐 사이에 무슨 사고를 치고 온 거야…….’
재빨리 밖으로 나간 소종천은 한사혜에게 다가가 말을 걸었다.
“야야, 어디서 누구랑 싸우고 온 거야?”
“이것저것?”
“이것저것이라니…… 무슨 대답이 그러냐?”
“누구라고 설명할 만큼 알지도 못하고, 한둘도 아니라서.”
확실히 옷에 튄 피는 적어도 한 자릿수의 사람을 넘어선 것으로 보였다.
양이 많은 것은 아니지만, 핏자국의 형태를 보며 상황을 유추해 본 결과가 그렇다.
한사혜의 무공에 대해선 나름대로 잘 아는 편이기에, 어떤 식으로 싸워서 저런 흔적이 남게 되었는지 보지 않아도 머릿속으로 그려낼 수 있었다.
“그래서 왜 싸운 건데?”
“그게…….”
소종천의 질문에 한사혜는 시선을 내리깔며 말꼬리를 흐렸다.
자세히 설명하고 싶지 않은 기색이었지만 묻지 않고 넘어갈 사안이 아니었기에, 집요한 추궁 끝에 사건의 전말에 대해 알 수 있었다.
“기루를 찾아갔다가 어떤 남자들과 시비가 붙었다고?”
“응.”
“평범한 한량들을 상대로 날뛴 건 아니겠지?”
“건달패들이었어.”
“역시…… 깡패 놈들하고 엮인 건가.”
기녀들이 술과 웃음을 파는 기루는 꽤나 돈이 되는 사업이기에, 열이면 열 전부 뒤를 봐주는 무력 단체를 두고 운영되기 마련이다.
소위 주먹이니 어깨니 하며 불리는 족속들.
유흥가라는 곳은 특성상 대체로 저녁에 활성화되기에, 아직 환한 낮인 지금 시간대에 기웃거리면 그런 자들과 엮이기 십상이다.
물론 그런 패거리들은 대체로 무인 취급도 받기 힘든 삼류 이하의 실력을 가졌고, 우두머리급이라 해봐야 이류를 벗어나는 경우가 드물다.
한사혜의 무위라면 모기 몇 마리 때려잡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정도.
“너무 과하게 손을 쓴 거 아냐?”
“날 억지로 만지려고 하지만 않았어도 싸울 생각은 없었어.”
한사혜가 하는 짓은 조금 이상해도 외모만으로 평가한다면, 곁을 지나가는 남자들 중 열에 아홉은 돌아볼 만한 미녀에 속한다.
기방이 즐비한 그런 거리를 혼자 돌아다녔으니, 당한 놈들도 그녀가 화류계에 몸담은 사람인 줄 알고 수작을 부린 것일 터.
들어보니 저승사자를 몰라보고 더러운 말로 희롱하며 은근슬쩍 추행을 시도했다는 모양이다.
“그건 탈탈 털려도 할 말 없긴 하겠다만…… 애초에 그쪽에는 왜 간 거야? 식사도 거르고 볼일이 있다며 따로 움직였다던데?”
아마도 등에 멘 봇짐과 관계가 있겠지만, 정확한 사정이 어떤지 감이 잡히지 않아 물어보았다.
그런 소종천의 질문에, 한사혜는 그녀치곤 보기 드물게 수줍은 기색을 드러내며 대답을 피하려 했다.
하지만 억지로 눈을 마주치며 묵묵히 시선을 보내니, 결국 버티지 못하고 모든 것을 실토해 냈다.
“화장술…… 잘 몰라서 조금 배워보려고.”
“화장?”
뜬금없는 이야기에 소종천은 헛웃음을 지었다.
이쪽 세계는 여인들은 현대처럼 일상생활과 화장이 밀접하게 붙어 있진 않지만, 그렇다고 아예 화장을 하지 않는 것도 아니다.
한사혜가 평소에 화장을 하는 모습은 본 적도 없지만, 저 나잇대의 여성이 그쪽으로 관심을 갖는 것이 사실 자연스러운 일이긴 했다.
‘다만 하필 이 시기에 갑자기 저런다는 건, 역시 본가에 들리는 것 때문이겠지?’
소종천의 모친을 만나게 될 테니, 잘 보여야겠다는 생각에 안 하던 짓을 하는 것이다.
보아하니 봇짐 안에는 치장을 위한 여러 화장품이 들어 있는 듯했다.
화장은 배운 적도 해본 적도 없는 그녀이기에, 속성으로라도 익히고자 무작정 기루를 찾아갔다는 이야기.
확실히 평범한 동네 아낙보다는 기녀들이 그쪽 방면으로는 전문가이긴 할 것이다.
‘모친이라고 해봐야 그냥 도리상 챙겨주려는 거라, 그쪽에 내숭 떨어봐야 나한테 별 영향은 없을 텐데. 참…… 별짓을 다 한다.’
“화났어?”
조용히 일행들 몰래 계획한 것을 처리하고 돌아오려고 했던 한사혜는, 문제가 생기고 이를 들킨 탓에 살짝 주눅 든 태도로 소종천의 눈치를 살폈다.
“어흠! 종천, 너무 따지지 말고 넘어가는 편이 좋겠소.”
“맞아. 사실 이건 종천 때문에 벌어진 일이기도 하니까.”
두 사내 녀석들이 은근슬쩍 한사혜의 편을 들어준다.
“야, 아무리 그래도 내 탓이라고 하면 억울하거든? 아무튼, 나도 뭐라 잔소리할 생각은 없었어.”
소종천은 혀를 한번 차고는 손을 내저었다.
그래도 의도는 기특하다고 해야 할지, 아무튼 사정을 알았기에 그냥 귀엽다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뒷골목 건달패들과 생긴 충돌이라고 해봐야 딱히 큰일도 아니다.
“그렇지만 여기 오래 있어 봐야 좋을 건 없을 테고, 일단 빨리 출발하도록 하자.”
“으응.”
가능하면 따로 식사 정도는 시켜주고 기다렸다가 가려고 했지만, 작게나마 문제를 일으켰으니 얼른 떠나는 편이 좋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일행들은 생각과 달리 곧장 움직일 수가 없었다.
“흉수가 여기 있다!”
“이년! 저항하지 말고 순순히 투항해라!”
“감히 본문의 제자를 건드리다니!”
사방에서 몰려와 무기를 겨누는 무인들 때문이다.
대로를 뛰어오며 주변을 포위하는 무인의 수는 당장 보이는 것만 사십은 되고, 그 뒤로도 무리 지어 속속 달려오는 것이 어쩌면 세 자릿수를 넘어설지도 모를 것처럼 보였다.
“……이게 무슨 난리야?”
절반쯤은 삼류지만 이류에 속한 자들도 제법 되었고, 드물게 일류로 측정되는 무인도 두엇 보인다.
그들의 목표는 누가 봐도 한사혜인 것 같았다.
“야, 그냥 건달패랑 시비 붙었다며? 일이 왜 이렇게 됐어?”
“헷, 모르겠어.”
답지 않게 혀를 내밀고 귀여운 척을 하려 드는 한사혜의 모습에, 소종천은 인상을 쓰며 그녀의 혓바닥을 잡아당겼다.
“모르면! 무림 생활이! 끝나냐!”
“으긋!?”
울상을 짓는 한사혜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소종천은 손가락을 바지춤에 문지르며 무인들의 모습을 살폈다.
‘저쪽은 복장이 동일한데 그 옆에는 또 아니고. 보아하니 하나의 세력은 아닌 것 같은데?’
한사혜와 시비가 생겼던 자들이 속한 집단일 텐데, 어째…… 한 단체에서 나온 것 같지 않아 의아했다.
답은 바로 알 수 있었다.
“감히 이곳 귀양에서 우리 귀주북부연합의 식구를 상하게 하다니. 죽고 싶어 안달이 난 것들이렷다!”
“연합? 흠…….”
보아하니 여러 방파가 힘을 합쳐 구성된 연합체인 모양이다.
‘뒷골목 건달패 수준은 확실히 벗어난 세력 같은데?’
생각해 보면 이곳이 비록 다른 지역보다 낙후된 귀주라 하나, 그래도 한 성의 성도인 곳이다.
이런 곳의 기방이라면 제법 규모 있는 세력이 상권에 관여하고 있는 것이 당연하긴 했다.
“너희들은 그 여자와 한 패거리인가? 순순히 따라와서 조사를 받는 것이 좋을 것이다.”
그들 무리 중 지위가 있어 보이는 일류급의 무인이, 일행들을 향해 다가오며 목청을 높였다.
남자의 말에 소종천은 난처한 얼굴이 되었다.
솔직히 상황 자체는 전혀 위협이 되지 않는다.
평범하게 따져 봐도 삼류와 이류수준의 무인들이라면, 아무리 백여 명씩 몰려와 봤자 절정 무인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
절정에서도 상위권에 속한 수준인 한사혜나 장자군 한 사람만 나서도 싹 쓸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일류 무인 몇 사람이 걸림돌이 되긴 하겠지만, 그쯤이야 그저 진지하게 전투에 임해야 한다는 생각을 심어줄 뿐.
다만 그렇게까지 해서 저 무슨 연합이라는 단체와 척을 지어도 좋을지는 또 별개의 문제다.
‘북부 연합이면 뭐 서부나 동부 연합 같은 것도 있나 보지? 아오씨, 괜히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은데.’
어쨌거나 문제가 생겼으니 어떤 식으로든 처리를 하긴 해야 했다.
짜증 난다는 듯이 머리를 벅벅 긁어댄 소종천은, 이내 앞으로 나서며 대표로 보이는 무인에게 대화를 시도했다.
“이봐요. 우린 정사연맹 쪽에 속한 사람인데, 일 키우지 말고 조용히 해결 봅시다.”
“허어!”
소종천의 말에 남자는 같잖다는 듯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멍청한 놈이군. 우리 북부연합이 비록 정식으로 정사연맹에 소속되진 않았지만, 귀주지부와는 반쯤 발을 걸치고 있는 동맹이나 다름없는 곳. 그런 헛소리로 상황을 모면할 수 있으리라 여긴다면 큰 착각이다!”
“……아, 그러쇼?”
귀주지부가 중소문파들을 주축으로 이루어져 있다더니, 저 북부연합이란 곳도 일종의 협력업체 비슷한 위치에 있는 모양이었다.
질 나쁜 흑도방파나 중립을 벗어난 사파세력이라면 무력으로 쳐내도 크게 뒤탈이 없을 텐데, 이렇게 되면 그리 단순하게 해결하기가 곤란해진다.
“미안해. 내가 처리할게.”
일이 귀찮아진다 싶어 어쩔까 싶었는데, 한사혜가 투기를 내뿜으며 앞으로 나서려 했다.
괜히 불안해진 소종천은 한사혜의 손목을 잡아 멈춰 세웠다.
“야야, 어떻게 할 건데?”
“싹 묻어버릴까?”
“미쳤니?”
아무리 남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산다지만, 같은 연맹의 지부와 연결되어 있는 단체를 박살 내는 짓은 사양이다.
그렇지만 상황은 힘을 쓸 수밖에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좋게 데려가려 했더니 결국 저항하는 건가. 제압해라!”
한사혜가 흘린 투기에 움찔한 남자가, 마주 기세를 끌어올리며 공격을 지시했다.
일행들의 수준을 제대로 파악했다면 결코 내리지 않았을 결정이지만, 잠깐 드러낸 기운이 강렬했기에 보기보다 위험한 놈들이다, 라는 인상만을 심어준 것이다.
‘끄응! 이거 차라리 힘의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 더 빠르고 원만하게 해결되겠네.’
소종천은 한숨을 내쉬고 내력을 극성으로 끌어올렸다.
“허억!”
“윽!”
막 이쪽을 향해 달려들려던 무인들이, 보이지 않는 밧줄에 묶인 걸린 것처럼 멈춰 섰다.
초절정 고수가 전력으로 뿌려낸 기세.
고작 일류 이하의 무인들이 견뎌낼 리가 없었다.
갑작스레 몸을 짓누르는 중압감에 압도되어 무인들은 정신을 제대로 차릴 수가 없었다.
경지가 낮은 이들 중에는 거품을 물고 실신하는 자까지 생겨날 지경.
혹시나 싶어 주먹에 강기까지 서리게 만들자, 무인들은 완전히 투지를 잃고 안색이 창백해졌다.
“가, 강기!”
“맙소사, 권강이라니!?”
앞에 나서서 말을 나누던 일류급의 무인은 아예 그 자리에 서서 졸도한 듯한 얼굴이다.
“정말 주먹으로 대화하고 싶다면 상대해드리지.”
“자,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역시 품위 없긴 해도 힘으로 찍어 누르는 게 가장 빠르고 편하다고 생각하며, 소종천은 좌중을 둘러보면서 천천히 기운을 거두었다.
뽑기로 무림최강 13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