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137
58. 삼도현
한번 힘의 격차를 보여주고 나니 이야기는 쉬워졌다.
“저 외형에 권강이라면…….”
“사천에 나타났다는 소문의 고수?”
“유언비어가 아니었던 건가.”
차이가 적당히 나야 자존심을 챙기지, 초절정의 고수 앞에서 목숨 걸고 칼춤을 추고자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애초에 사단이 일어난 원인도 한사혜에게 집적거렸던 연합의 하급무사들에게 있지 않은가.
괜히 싸움이 벌어졌다가 생길 피해를 생각하면, 잘못이 없더라도 숙여야 할 판이다.
관련자들이 죄다 심한 부상을 입었지만, 그들이 소속된 방파에서도 과한 손속이 아니냐고 따질 수 있는 자는 없었다.
“사소한 오해로 생긴 일이니 넘어갑시다.”
“그, 그렇지요. 하하!”
“그럼 이만.”
“대협! 결례가 아니라면 저희 거정문에 한번 들려주시지요. 극진히 모시겠습니다!”
“아뇨, 바빠서.”
“그래도 어떻게…….”
“한 번만 기회를!”
역으로 어떻게든 연줄을 대보고자 각 방파의 인물들이 달라붙었지만, 귀찮은 일은 사양이고, 자잘한 콩고물 따위 관심 없기에 거절했다.
갈 길이 바쁘다며 연맹주의 직인이 찍힌 서찰을 보여주자, 어미 닭을 쫓는 병아리처럼 따라와 알짱거리던 무인들은 아쉬운 얼굴로 물러났다.
“피를 보지 않고 끝나서 다행이오.”
“싸운다고 딱히 위험했을 리도 없지만 말이지.”
“그런 문제를 떠나서 종천 친우는 이제 몸가짐에 주의해야 하는 위치라는 걸 인지해야 하지 않겠소?”
“그것도 그래. 소문이란 건 생각보다 빨리 퍼지는 법이잖아? 대형문파의 노고수들이 괜히 엉덩이가 무거운 게 아니라고.”
“흐음.”
동료들의 말에 소종천은 머리를 긁적이며 입을 다물었다.
‘평판을 관리하라는 건가. 하긴 심 사형도 내 소문을 들었다고 했고, 이렇게 다른 지역에까지 알아보는 이가 나올 정도면 언행에 신경 써야 할지도.’
생각은 그렇게 하지만 솔직히 잘 모르겠다.
그야 자신이 고수다운 무게감이 부족하단 것은 알지만, 애초에 성격이 그런 것을 어쩌라는 건가?
‘뭐……. 이 부분에 관해서는 천천히 고민해 봐야겠구만.’
당장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여겨지는 것도 아니기에, 그에 대한 고민은 뒤로 미뤘다.
어쨌거나 이제 더는 앞을 막아서는 장애물이 없다.
소종천은 일행들을 이끌고 본래의 예정대로 귀양을 떠났다.
* * *
최소한의 휴식을 가지며 강행군으로 최단경로를 돌파한 일행들은, 오래지 않아 목적지인 삼도현 인근에 도착할 수 있었다.
“좀 쉬자. 이대로 집에 가면 그것도 민폐겠네.”
이제 본가까지는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였지만 다들 지쳐 있었기에, 소종천은 저번처럼 객잔을 하나 잡고 쉬는 시간을 가지기로 했다.
촌구석치고는 제법 규모가 있는 곳이라 손님들이 따로 씻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꼬질꼬질한 모습으로 집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은 없기에, 비용을 더 내고 장작을 때워 더운물에 몸을 담갔다.
‘좋구나.’
이참에 옷가지도 빨아 때를 싹 벗겨냈다.
따로 열양공(熱陽功)을 익히진 않았지만, 고강한 내력을 이용하면 물기를 날려 보내는 것은 일도 아니다.
어디 한 곳 상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내공을 운용하여, 순식간에 젖은 옷을 뽀송뽀송해지도록 만들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깨끗해진 소종천은 상쾌한 기분이 되어 1층의 회관으로 내려왔다.
이어서 일행들 역시 비슷한 과정을 거쳤는지, 말끔한 외관으로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수고들 했어. 이제 다 끝났으니 배나 좀 채우고 움직이자.”
“짧은 기간에 이렇게 긴 거리를 이동하려니 보통 피곤한 일이 아니네.”
“체력은 나름대로 자신 있다고 생각했는데, 꽤나 쉽지 않은 일이었소.”
“그래그래. 내 사정에 어울려주느라 고생들이 많았다. 근데 사혜 얘는 왜 또 이리 늦어?”
좀처럼 내려오지 않는 한사혜를 기다리며 투덜거렸다.
“우리가 빠른 거겠지.”
“원래 여성들은 몸가짐을 정돈하는 데 시간이 걸리지 않소?”
“그야 그렇긴 한데. 쩝, 먼저 먹고 있지 뭐.”
남녀 간에 발생할 수 있는 차이를 모르는 것도 아니니, 홍일점인 한사혜가 시간을 잡아먹는 것을 마냥 타박할 수는 없긴 했다.
목적지에 도달했으니 어느 정도 풀어져도 괜찮을 거라 생각하고, 남자들끼리 각자 술 한 병씩 시켜놓고 주거니 받거니 하며 천천히 식사시간을 가졌다.
“볼일을 보고 나면 다시 또 한참 움직여야겠네.”
“일단 연맹본부까지는 가야 하니까. 그래도 오늘까지처럼 뛰어다니는 건 그만둬야지. 호남까지는 며칠이 걸리던 그냥 느긋하게 움직이자고.”
“흠. 호남에 도착해도 계속 눌러앉을 생각은 아니지 않소?”
“그렇긴 하지. 대형문파들의 정치놀음에 끼자고 가는 게 아니니까. 일선에서 뛰려면 아마 북부로 올라가야 하지 않을까?”
“요즘 계속 말이 나오는 산서나 하북으로 향할 가능성이 높겠구려.”
“아마도?”
어디 숨어 있을지 모를 마교의 세력을 찾는 것도 필요한 일이지만, 일단 마인들의 출몰이 잦다는 북부지방부터 털어보는 편이 가장 쉬운 길이긴 할 터다.
이야기를 나누던 소종천은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어 남궁건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렇게 되면 올라가는 김에 너희 세가에 들려도 괜찮아. 건이 너도 집에 가고 싶겠지?”
호남성에서 북부의 다른 성으로 향하는 길 사이에는 안휘성이 끼어 있고, 안휘성에는 그 유명한 남궁세가가 위치해 있다.
“으음! 가문 사람들과는 사이가 좋지 않지만, 확실히 한 번쯤은 얼굴을 비치긴 해야 하오. 학관이 그리된 뒤로 복귀하지 않고, 이리 내 마음대로 행동하고 있으니…….”
“에…… 혹시 뭐 귀찮은 일이 생기려나?”
“아마도 괜찮을 거라 생각되오. 만약 문제가 생긴다 해도, 더는 예전의 내가 아니니 걱정할 것 없소.”
“하긴.”
남궁세가가 최강의 검가로 유명하긴 하지만, 지금은 그 명성에 비해 전력이 많이 약화된 상태다.
과거에 있었던 천마의 난에서 세가 내 최고수이자 태상가주였던 남궁건의 고조부가 목숨을 잃었고, 가문의 주축이 되는 여러 무인들 역시 많은 피해를 입었기 때문.
현 남궁세가주는 절정 상위급의 경지로 알려져 있고, 아직 살아 있는 전대의 고수들 중에서도 초절정의 벽을 넘은 이가 없다고 한다.
‘그 말인즉슨 현재 남궁세가의 최고수는 건이 녀석이라는 거지.’
가장 강한 무인이라고 해서 폭군처럼 행동해도 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가문의 꼬장꼬장한 노인네들의 입김에 시달릴 일은 없을 것이다.
잡담을 나누며 천천히 음식을 들고 있자니 익숙한 기운의 소유자가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야야, 빨리 오…… 궯!?”
걸어오는 한사혜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가, 깜짝 놀라 입을 다문다는 게 혀를 씹었다.
귀양에서 구입한 것인지 화려한 수가 놓인 비단옷을 입고, 한껏 화장을 한 한사혜의 모습은 굉장했다.
너무 대단해서 차마 얼굴을 마주할 수가 없었다.
“아아…….”
“오, 저런…….”
탄식과 함께 장자군과 남궁건이 눈을 질끈 감았다.
소종천 역시 같은 심정이었지만 그래도 피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기에, 마음을 굳게 먹고 눈을 부릅떴다.
“저기, 나 어때?”
‘거울도 안 보고 내려왔니? 그러니 면상이 그 모양이지.’
머뭇거리며 말을 걸어오는 한사혜를 향해 턱 끝까지 올라온 말을 내뱉을 뻔했던 소종천은, 간신히 자제력을 발휘해 입을 다물었다.
옷차림은 귀한 집 아가씨라는 느낌이라 괜찮지만, 얼굴은 정말이지 엉망이었다.
‘조커가 여자였다면 저 꼴은 캐스팅 일 순위였겠네. 뭐…… 평소에 하지도 않던 화장을 벼락치기로 배웠다고 잘할 리가 없겠지.’
너무 과하게 칠을 해놔서 원판을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다.
이걸 뭐라고 대답해줘야 하는 걸까?
“……이상해?”
“으음. 괜찮긴 한데. 난 그 뭐냐, 화장 안 한 여자가 더 보기 좋더라.”
“이상하다는 거구나.”
한사혜의 얼굴이 찌푸려졌다.
괴랄한 화장 탓에 외관이 더욱 무섭게 변했다.
잘 돌려 말했다고 여겼는데 정답은 아니었나 보다.
‘아니, 망할! 제 손으로 저 꼴을 만든 걸 왜 내가 눈치를 봐야 되나?’
이걸 꼭 자신이 달래줘야 하는 건가 싶어 속으로 툴툴대고 있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제삼자의 개입으로 문제가 해결이 되었다.
“에구머니나! 젊은 아가씨가 무슨 화장을 그리 과하게 했대?”
평범한 직원은 아니고 객잔의 안주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한사혜의 몰골을 보고 다가와 호들갑을 떨었다.
“화장이란 게 한 듯 안 한 듯 해야지, 아무리 좋은 제품이라도 너무 많이 바르면 안 한 것만 못해요. 아직 경험이 부족한 모양인데, 어디 내가 조금 도와드릴까?”
안주인의 말에 한사혜의 눈이 흔들렸다.
본인도 혼자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은 잘 알고 있다.
“거, 저 여편네가 지금은 신경 안 쓰고 다녀서 그렇지, 처녀 적에는 화장을 기가 막히게 하고 다녔습니다. 그게 화장발인 줄도 모르고 홀라당 넘어가는 바람에…… 크흠! 종식아! 이 층 청소는 다 끝냈느냐!”
마침 곁을 지나가던 객잔 주인이 대화에 끼어들다가, 부인의 눈초리가 사나워지자 후다닥 도망간다.
“……부탁해요.”
어쨌거나 남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임을 스스로도 알기에, 한사혜는 드물게 얌전한 태도로 고개를 숙였다.
그렇게 안주인을 따라간 한사혜는 잠시 뒤 완전히 달라진 모습으로 일행들 앞에 나타났다.
“와!”
“허어!”
일행들에게서 이번에는 아까와 전혀 다른 의미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원래부터 본판이 보기 드문 미소녀인 한사혜다.
거기에 객잔 안주인의 화장술도 정말로 상당한 수준이었는지, 그야말로 선녀가 따로 없을 만큼 아리따운 자태로 변해 있었다.
“……어때?”
“어어, 예쁘네. 최고야.”
소종천도 이번에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솔직히 그간 볼 꼴, 못 볼 꼴을 다 보며 이성으로서의 매력을 그다지 느끼지 못하던 한사혜였는데, 저렇게 꾸며놓으니 조금 두근거리기까지 했다.
‘역시 이래서 사람은 얼굴이 잘나고 봐야 한다니까. 크으…… 인물이 완전히 달라졌네.’
소종천의 칭찬에 한사혜는 생긋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이 또 수컷의 심장을 뒤흔들기에, 소종천은 애써 눈을 돌리며 평정심을 되찾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일이 있고 나서, 식사를 마친 일행들은 소종천의 본가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사실상 처음 오는 길이었지만 어렴풋하게 떠오르는 원주인의 기억을 더듬으며, 소종천은 집이 있던 위치를 찾아 나아갔다.
“여기네.”
조금 해매긴 했지만, 목적지까지 큰 탈 없이 도달할 수 있었다.
주변의 다른 집들에 비해 부지가 넓고 제법 훌륭한 형태의 기와집이 눈에 들어온다.
재산이 넉넉한 집안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자택 하나만은 다른 지역 유지들 부럽지 않았던 것이 기억난다.
‘그런데…… 뭔가 아닌 것 같다?’
소종천의 모친 한 사람만 살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집에는, 꽤 여러 사람의 인기척이 느껴지고 있었다.
문을 밀고 들어가자 누군지 모를 사내가 다가오며 소종천을 맞이했다.
“어떻게 오셨소?”
“음…… 혹시 여기 집주인이 바뀌었습니까?”
이상하다 싶어 물어보자, 사내는 소종천을 훑어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바뀐 지 몇 달 안 됐수다. 거, 부인 한 사람이 혼자 살았던 것으로 아는데, 그 집 식구요?”
“예. 죄송한데 혹시 어디로 이사 갔는지 알고 계십니까?”
“잘 모르겠는데. 빚 때문에 쫓겨났다고 들었으니, 아마 다른 지역으로 떠나지 않았다면 변두리 어딘가에 자리 잡지 않았겠소?”
“빚?”
소종천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뭔가 또 생각하지 못했던 이야기가 나왔다.
뽑기로 무림최강 13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