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138
58. 삼도현(2)
소종천은 남의 집이 되어버린 땅에서 일단 물러났다.
대화를 엿들으며 분위기가 영 이상하게 흐르는 것을 본 일행들이 걱정이 담긴 시선을 보내며, 차마 뭐라 말을 꺼내진 못하고 그 뒤를 따랐다.
소종천은 주변을 돌아다니며 모친에 대한 정보를 수소문했다.
학관에 입관하기 위해 고향을 떠난 지가 아직 2년이 채 안 되었다.
원래 살고 있었던 기억 속의 집을 차지한 일가는 아무런 면식이 없긴 했지만, 다른 주민들 중에는 소종천을 알아보는 이가 적지 않게 있었다.
“소씨네 아들 아닌가?”
“맞구먼. 몸이 엄청나게 탄탄해졌네.”
“예, 어르신들. 말씀 좀 묻겠습니다.”
빚 때문에 쫓겨났다는 모친의 행방에 대해, 소종천은 어렵지 않게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덤으로 삼도현이 돌아가는 상황에 관해서까지도 알게 되었다.
“여긴 이제 사람이 살 만한 동네가 아니여. 늙은이들이야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았거니 하며 그냥 붙어 있지만…….”
“소씨 부인은 남문 쪽 장터 근처에 머문다고 알고 있네. 자네도 고향이라고 머물 생각하지 말고 어여 데리고 떠나게.”
“열호방의 그 깡패 놈들이 그냥 보내주겠는가?”
“으음, 그도 그렇구먼…….”
열호방.
근 1년 사이에 삼도현에 들어섰다는 무력 단체의 이름이었다.
이야기를 자세히 들어보니 수준 낮은 깡패집단이 아닌 제법 규모가 큰 사파세력이라는 모양.
다만, 하는 짓거리는 이쪽이나 그쪽이나 다를 바가 없다.
오히려 규모가 큰 만큼 더 악착같이 주민들에게 돈을 뜯어내는 악질이다.
‘하여간 어딜 가나 알량한 힘으로 사람들을 위협하며 사는 기생충들이 문제구만.’
이런 가난한 동네에 뭐 주워 먹을 게 있다고 자리 잡은 건지 모르겠다.
물론 귀주성이 궁핍한 지역이긴 해도 현 단위의 도시면 인구수가 적지 않으니, 어떻게든 뽑아먹으려면 돈이 되기야 하긴 할 터다.
당하는 주민들이 죽어나가는 걸 무시한다면 말이다.
‘아무튼 그 열호방이라는 놈들이 원주인의 집과 뭔가 안 좋게 엮여 있는 모양이네. 쯧…….’
이야기는 들을 만큼 들었기에, 소종천은 모친을 찾아서 기억을 더듬으며 남문의 장터를 향해 움직였다.
“휑하네.”
도착한 곳은 장터라고 부르기엔 너무 황량한 모습이었다.
장사하는 사람이나 행인이 없는 건 아니지만, 뭔가 제대로 거래가 이루어지는 것 같지가 않다.
다들 표정이 어두워서 그런지 밝은 대낮임에도 음산한 분위기를 풍기는 거리였다.
‘그런데 여기 어디에 주택지가…… 으음, 있긴 하네.’
두리번거리던 소종천의 눈에 주거구역으로 보이는 건물들이 들어온다.
집이라기보단 폐허라고 부르는 것이 더 어울릴 법한 생김새긴 해도, 사람들의 기척이 느껴지는 걸 보니 적잖은 이들이 생활하고 있는 곳임을 짐작할 수 있는 장소였다.
‘피난민들이 지은 판자촌 같은 느낌이네. 하아…….’
비좁고 허술할 뿐 아니라 더럽고 냄새나기까지 한다.
이런 곳에 원주인의 모친이 머물고 있다고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와보길 잘했네. 어떻게든 도움을 줘야겠어.’
빈민가에 들어선 소종천은 오래지 않아 만나고자 했던 인물을 찾아낼 수 있었다.
“아, 아이고! 우리 아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을 법한 평범한 생김새의 여인이 달려와 소종천의 손을 붙잡았다.
대체 어떤 고생을 하며 살아왔는지, 권법을 수련하며 굳은살이 박인 소종천의 손보다 더 거친 손이다.
“살아, 살아 있을 거라 믿었단다. 돌아와 줘서 고맙구나.”
“예. 어…… 머니.”
눈물을 글썽이는 여인을 보며, 소종천은 어색한 심정으로 입을 뗐다.
“소식을 묻기 위해 편지를 보냈는데, 학관은 문을 닫았다 하고 네 행방을 알 길이 없어 얼마나 속이 탔는지 아니?”
“그게, 음. 죄송합니다. 사정이 좀 있어서 돌아다니다 보니.”
차마 관심이 없어서 잊고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어, 바쁜 일이 있었다고 대강 둘러대었다.
할 일도 없이 빈둥거리는 주제에 바빠서 명절에 찾아가지 못한다고 변명을 늘어놓는 자식이 된 기분이다.
“그래. 아무튼, 돌아왔으니 되었다. 네가 무사하리라 믿고 계속 기다리고 있었단다.”
“예에…….”
몸만 같을 뿐 영혼은 다른 사람이니, 자연스럽게 대할 수가 없어 참으로 어색했다.
그나마 기억하기로는 원래도 싹싹하게 어머니를 대하는 아들이 아니었던지라, 부자연스러운 태도를 딱히 이상하다고 느끼지는 않는 모양이다.
딱딱한 분위기에도 모친은 뭐가 그리 좋은지 함박웃음을 지으며 자식을 반긴다.
“그런데 뒤에 계신 분들은……?”
“아, 학관에서 사귄 친구들이에요.”
“어머님께 인사 올립니다.”
모친의 시선이 뒤로 향하기 무섭게, 한사혜가 재빨리 앞으로 나섰다.
“소 가가를 따라다니며 곁에서 섬기고 있는 한사혜라고 합니다.”
“가가? 야, 너…….”
가가라는 호칭은 상당히 친밀한 남녀 사이에서나 쓰이는 단어다.
평소와 다른 다소곳한 태도로 오해를 살 만한 말투를 쓰는 한사혜의 모습에, 소종천은 살짝 당황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에구머니나!”
어딘가의 지체 높은 집안 여식 같은 외형으로 꾸민 한사혜의 말에, 모친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옷이 더러워지는 것도 신경 쓰지 않고 길바닥에서 절을 올리니, 모친은 크게 놀라며 한사혜의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웠다.
“아이고 세상에! 어떻게 이런 아가씨랑 우리 아들이…….”
“편하게 대해주세요, 어머님.”
‘저것 보게? 참나…….’
치장에 공을 들이는 이유를 대충 짐작하긴 했지만, 이렇게 앙큼한 수작을 부릴 줄은 몰랐다.
“후후.”
“청춘이구려. 훗.”
“끄응.”
히죽거리는 두 사내놈들에게서 고개를 돌리며 소종천은 조용히 입을 다물었다.
기뻐하는 기색의 모친을 보고 있기에, 분위기에 초를 치는 말을 하기도 뭐했다.
장소에 어울리지 않게 근질근질한 공기가 흘렀다.
잠깐 동안 일행들이 자신을 소개하며 인사가 오간다.
마냥 밖에 서 있을 수는 없기에, 일행들은 모친의 안내에 따라 초라한 집 안으로 들어갔다.
워낙 누추하고 좁은 곳이라 네 사람이 들어서니, 무너지진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어머니. 원래 살던 집은 어떻게……?”
“……후우”
말하고 싶지 않은 주제가 나오자 모친은 낯빛이 어두워지며 한숨을 푹 내쉰다.
그래도 마냥 숨길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기에, 이내 소종천에게 그간의 사정에 대해 풀어놓기 시작했다.
사실 예상하지 못할 만큼 특별한 이야기도 아니긴 했다.
그렇지 않아도 먹고 살기가 어려운 지역에서, 여성이 홀몸으로 아들의 뒷바라지를 하는 것이 쉬울 리가 없다.
살림살이에 깊게 관여하지 않아 모르고 있었을 뿐, 소종천이 출가하기 전부터 집안에는 빚이 쌓이고 있었다는 모양.
그나마 소종천이 학관으로 떠나고 나서는 입이 줄어 조금씩 빚을 갚고 있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상황이 급변하게 되었다.
“뒤안길 맞은편에 사시던 주씨 어르신은 기억하니?”
모친의 질문에 소종천은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떠오르는 얼굴이 하나 있다.
“뭐냐, 그…… 땅 부자 할아버지요?”
형편없는 토양이긴 하나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을 가지고 있어, 마을 사람들에게 소작을 주던 지주 노인이다.
이 주변에서는 누구보다 목에 힘을 주고 다니던 지역 유지였다.
“그래. 그분의 도움을 받아 금전을 융통받을 수 있었단다. 하지만 다 갚기도 전에 변을 당하셔서…….”
가만히 듣고 있자니 조금 전에도 언급되었던 열호방이란 이름이 다시 거론되었다.
삼도현에 들어서 온갖 행패를 부리고 다닌다는 열호방의 방도들은, 지주 노인을 살해하고 가진 재산을 다 빼앗았다고 한다.
거기에 더해 기존의 채무관계가 자신들에게 넘어왔다 말하며, 모친에게 원래의 몇십 배에 달하는 터무니없는 이자를 요구하는 식으로 계속 돈을 뜯어갔다.
그리고 나중에는 무력으로 집을 점거하여, 모친을 내쫓기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아니, 뭔. 할 말을 잃었습니다.’
고작 몇 푼의 생활비 때문에 빌린 돈.
이자가 붙어봐야 집값에 비할 바는 아니다.
‘사채 수준이 아니라 그냥 강도짓에 당한 건데?’
힘이 없으면 말 같지도 않은 억울한 일을 당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일어나는 세상이다.
그런 사실을 전부터 알고는 있지만, 이렇게 자신과 관계된 이가 연루되고 나니 느껴지는 감정이 또 새롭다.
“어쨌든 전부 다 지나간 일이란다. 네가 이렇게 몸성히 돌아왔으니, 이제 다른 곳으로 떠나서…….”
모친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이없어하고 있는데, 바깥에서 고함이 들려왔다.
“어이! 안에 있으면 튀어나오슈!”
“아, 아이고! 저자들이 또…….”
소종천은 모친의 표정이 어두워지는 것을 보고는, 곧바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엥? 여기 남자가 살았던가?”
“네놈은 누구냐?”
나 불량한 놈이오 하고 써져 있는 듯한 인상의 사내들이, 소종천을 보며 인상을 찌푸린다.
“이 집 아들인데?”
“뭐? 이 아줌마가 아들도 있었나?”
“거, 잘됐네. 자식이면 부모의 빚을 대신 갚아야지.”
사내들을 둘러보고 있자니 모친이 다급히 뛰쳐나오며 소종천의 앞을 막아섰다.
“이보시오! 원래 살던 집까지 뺏어가 놓고, 무슨 빚을 더 갚으라는 말입니까!”
“어허! 그깟 낡은 집이 몇 푼이나 된다고 생색이야?”
“그동안 불어난 이자가 그 집값의 열 배는 되겠네. 그러게 착실하게 갚았어야지.”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돈은커녕 당장 내일 먹을 곡식조차 없으니, 괜한 행패 부리지 말고 돌아가 주시오.”
“아, 이 아줌마가 말이 안 통하네.”
사내 중 하나가 인상을 쓰며 위협적인 몸짓으로 얼굴을 들이댄다.
“거, 이렇게 몸도 튼튼한 자식새끼가 있는데, 돈을 못 갚는다는 게 말이야 방구야? 이걸 확 그냥!”
더는 지켜볼 수 없었던 소종천은, 모친의 어깨를 감싸며 부드럽게 뒤로 밀어내었다.
“처, 천아.”
“괜찮으니 뒤에 계세요. 그래서, 갚을 돈이 얼마라고?”
“뭐? 어…… 야, 얼마냐?”
“몰라 새꺄. 그게 중요해?”
“아, 그것도 그렇지.”
소종천의 말에 잠시 다른 놈들과 쑥덕거리던 사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얼마 빌렸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고, 네가 얼마를 낼 수 있느냐가 중요한 거지. 암.”
“흠. 계산법이 신박하네. 상환액도 모르면서 그냥 무조건 돈을 내놓으라고?”
“……아니, 근데 이놈의 새끼는 왜 이리 말이 짧아?”
평범한 주민들과는 다른 소종천의 태도에, 사내들이 눈에 힘을 주며 이를 드러냈다.
“꼴에 보아하니 어디 무관이라도 다니다 온 모양인데, 괜히 함부로 나대다가 뒈지는 수가 있다 아가야.”
뚜둑 소리가 나도록 관절을 돌리며 위협하는 사내들.
물론 소종천의 입장에서는 웃음밖에 나오지 않는 모습이다.
“사혜.”
“응.”
“어머니 좀.”
“응. 어머님, 이쪽으로 오셔요.”
“천아? 무슨…….”
한사혜가 모친을 뒤로 이끌며 시선을 가렸다.
이제부터 벌어질 일은, 무인의 아내로 살았다지만 무림의 잔혹함을 볼일은 없던 평범한 아낙에게 보여줄 만한 것이 못된다.
“헙! 이야! 이 동네에 저런 외모를 가진 년이 있었나?”
“이거 푼돈이나 가져갈 때가 아닌데? 흐흐!”
한사혜의 얼굴을 본 사내들이 자신에게 들이닥칠 미래도 모르고, 음탕한 시선을 보내며 웃음을 지었다.
“야! 이번엔 나부터다!”
“지랄, 당연히 내가 먼저지!”
“바쁜데 언제 한 놈씩 올라타고 있냐? 둘씩 붙…….”
지저분한 대화가 흘러나오는 틈사이로, 소종천의 신형이 파고들었다.
파앙!
사람이 움직여서 발생했다고 생각하기 어려운 소리가, 주변으로 울려 퍼졌다.
“……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알지 못하고 낄낄거리던 맨 앞의 사내가, 뒤늦게 눈을 끔벅거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피떡이 된 끔찍한 형체들이 시선에 들어온다.
“어, 뭐, 어어?”
홀로 남겨진 사내의 어깨에 소종천의 손이 내려앉았다.
“야. 너희 본거지로 가자.”
“그, 에? 무, 왜……?”
갑작스레 지옥도처럼 변해 버린 풍경에 뇌가 따라가질 못한다.
더듬거리며 제대로 된 말을 내뱉질 못하고 있는 남자에게.
“왜는 무슨 왜야 임마. 빚 갚아주려고 그러지.”
소종천은 차갑게 웃으며 대꾸했다.
뽑기로 무림최강 139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