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14
9. 성장의 틀(2)
자세한 정보를 알려주지는 않지만 그나마 설명이 달려 있던 영약들과 다르게, 무공 비급은 따로 설명이 붙어 있지 않다.
그렇기에 이름만 보고 어떤 종류의 무공인지 유추해야 하며, 정확히 알고 싶으면 그냥 사용해 보는 것밖에는 답이 없다.
‘은색 등급이면 그래도 제법 가치 있는 무공일 텐데. 기묘하긴 하지만 무슨 마공 종류처럼 불길한 이름도 아니니 익혀도 문제는 없겠지?’
정 이상한 무공이면 사용하지 않으면 그만.
동색 등급의 추혼퇴도 잘 써먹은 마당에, 그보다 상위인 은색 등급을 이름이 괴상하다고 배우지도 않을 순 없었다.
[철면피 비급을 사용하시겠습니까?]고민은 잠시뿐, 이내 결심을 굳히고 긍정을 표했다.
[철면피 4성 습득.]무공에 대한 지식이 머릿속으로 흘러 들어온다.
살짝 우려했던 것만큼 괴상한 무공은 아니었다.
오히려 충분히 은색의 가치를 하는 무공이다.
‘오호! 이번엔 4성의 성취까지 단번에 얻었네. 그런데 이건…… 외공의 일종인 건가?’
무협 소설을 보다 보면 흔히 외공이라 하여, 철포삼이나 금종조라는 이름의 무공들이 등장하곤 한다.
사실 넓게 분류하자면 병기술이나 경신법 혹은 단순히 육체를 단련하는 수련공 등, 내공을 쌓는 심법을 제외한 모든 무공이 외공에 속하긴 한다.
소종천이 떠올린 외공이란 그중에서도 특히 육신을 질기고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종류의 무공을 뜻했다.
‘이름은 이래도 좋은 무공이기는 하네.’
철로 된 옷을 입은 것처럼 피부가 단단해진다 하여 철포삼이란 이름으로 유명한 외공의 경우, 대성하면 도검불침(刀劍不侵)의 막강한 육신을 손에 넣을 수 있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평범한 검격에 베였을 때를 상정한 이야기.
만약 상대가 검에 내기를 실어 절삭력과 강도를 강화할 수 있게 되는 어기충검(御氣充劍)의 경지에 오른 무인이라면 통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일반적으로 외공은 제대로 된 내공심법을 익히지 못한 삼류 무사, 혹은 흑도의 잡배들이나 수련하는 무공이라는 인식이 크다.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무인, 그러니까 이류를 넘어 고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일류에 속하는 자들의 공격 앞에선, 아무리 외공으로 보호받는 몸이라 해도 버텨낼 수 없기 때문.
무공을 익힌 무인치고 상승의 경지에 오르기를 원하지 않는 자가 없으니, 자연스럽게 대중의 인식도 고수의 기준에 맞춰 외공이 수준 낮은 공부라고 평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외공이 쓸모없는 무공인 것은 절대 아니지.’
외공이 경시받는 이유 중 또 다른 하나는 굳이 그런 수련을 하지 않아도, 고수들은 내기를 일시적으로 집중해 몸에 가해지는 충격을 감소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만약 외공을 대성한 이가 내공 역시도 넘치게 보유하고 있다면?
그때는 훨씬 효율적인 내기의 소모로 더 강도 높은 방어력을 손에 넣을 수 있다.
이론적으로는 어기충검에서 더 나아간 경지인 검기상인(劍氣傷人), 흔히 검기라고 부르는 검예(劍藝)까지도 버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물론 어디까지나 이론일 뿐.
외공과 내공의 조화를 그만한 수준까지 익힌 무인은 넓은 무림에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굳이 그런 대단한 경지까지 외공을 익힐 필요는 없고, 중요한 건 닷새 뒤의 대결에서 이 무공이 도움되냐이기는 한데…… 이만하면 충분히 효과를 보겠어.’
철면피는 외공 중에서도 특이하게 얼굴의 피부를 강화하는 무공이었다.
정확히는 견갑골 위로 목을 포함한 피부와 근육을 단련하는 무공.
누가 만든 무공인지 실로 정직한 이름이다.
몸 전체가 아닌 좁은 부위를 집중적으로 단련하는 공부이기 때문인지, 철면피는 4성의 경지만으로도 검에 베였을 때 옅은 생채기만 생길 정도의 방어력을 얻게 해주었다.
당연히 제대로 내공을 실은 검격엔 그보다 더 큰 상처가 생기겠지만, 일단 안면부에 대한 높은 방어 효과를 가졌다는 것만으로도 모용설호와의 비무를 한층 수월하게 만들어 줄 터.
‘사람의 얼굴은 거의 전부가 급소나 마찬가지잖아?
목 위로 허점을 드러내면 분명 노리고 공격을 해오겠지.
그걸 얼굴로 받아내면 상대가 크게 당황할 테고, 그때 반격을 가한다면 커다란 기회를 잡을 수 있을 거야.’
다만, 그전에 검에 얼굴을 베이는 상황에서 오는 심리적인 공포감을 먼저 극복해야 한다는 문제가 있긴 했다.
‘내가 좀 새가슴인데, 할 수 있으려나? 10성 대성한 상태라면 모를까, 4성으로는 역시 겁이 나긴 하는데.’
괄육취골(刮肉取骨).
내 살을 내주고 상대의 뼈를 취한다는 의미지만, 말로는 간단해도 쉬이 행할 수 있는 일은 아니긴 하다.
그나마 어기충검의 경지는 일반적으로 30년 정도의 내공을 갖춰야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생도 중에 그만한 수준에 도달한 이가 있는 것도 아니니, 4성의 성취면 이곳 생도들과의 비무에서는 충분히 써먹을 수 있을 터.
‘에이 모르겠다. 급한 상황이면 싫어도 어떻게든 하게 되겠지.’
소종천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또 다른 결과물인 상등품 수갑으로 관심을 돌렸다.
‘장비 계열이라. 소지품창에서 꺼낼 수 있긴 한 건가?’
소지품창에 놓여 있는 상등품 수갑의 정보를 확인해 보았다.
[상등품 수갑] [실력 있는 장인이 숙련된 솜씨로 만들어낸 보호 장구.]매우 간단한 설명.
머릿속 상상의 손가락으로 수갑을 건드리자 알림이 떠오른다.
[상등품 수갑을 출고하시겠습니까?] [일회성 알림! 한번 출고한 물품은 다시 반입할 수 없습니다.]‘음. 그런 건가.’
장비 계통의 물품은 한번 꺼내면 그걸로 끝.
게임 속 인벤토리처럼 넣었다 뺐다 할 수 없다는 것이 조금 아쉬웠다.
출고를 선택하자 상등품 수갑이 아무것도 없는 눈앞에서 뿅 하고 튀어나온다.
“우왓!”
수갑을 받아들고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런 기현상을 누가 본다면 곤란한 처지에 놓일 수도 있었겠으나, 다행스럽게도 근처에는 다른 사람이 없는 것으로 보였다.
‘난 왜 이리 조심성이 없냐. 그나저나 이거 괜찮은데?’
팔꿈치에서 시작해 손목을 덮고, 끝은 반장갑의 형태로 손가락을 끼워 주먹까지 감싸주는 수갑.
상등품 수갑은 이름 그대로 제법 고급스러운 물건이었다.
조금 묵직하긴 하지만 좋은 가죽과 철을 사용했는지 상당히 튼튼한 느낌.
수련장에서 빌려서 써본 보급품 수갑보다는 확실히 품질이 뛰어났다.
‘겨우 동색 등급인데도 이 정도인가? 무구는 무공이나 영약보다는 상대적으로 가치가 낮은 모양이네.’
아마 은색 등급이었다면 흔히 볼 수 없는 최상품의 물건이, 금색 등급이라면 보물 취급을 받는 대단한 명품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소종천은 수갑을 팔에 두르고 이리저리 몸을 움직여 보며, 본인에게 맞게 끈의 조임이나 부착된 철편의 위치 등을 조절했다.
“좋구먼.”
조절을 마친 소종천은 씩 웃음을 지었다.
무수히 많은 무구 종류 중에서 나온 것이 하필 딱 써먹을 수 있는 수갑이라니.
운이 좋아도 너무 좋다.
‘아니면 무구는 사용자 편의를 봐서 맞춤형으로 나와 주는 건가?’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괜찮은 장비가 생겼으니 이 역시도 대결에서 도움이 될 것이다.
뽑기를 마치고 결과물까지 전부 확인한 소종천은 수련장으로 이동했다.
여러 일이 있었고 어느 정도 성장하긴 했지만, 결국 비무에서 주력으로 써야 하는 무공은 아직 추영권과 추혼퇴뿐.
지금까지 자연스럽게 사용해 온 청명토납공이 아닌 반야신공으로 내기를 운용해 펼치는 것도 익숙해져야 하고, 남은 닷새간 조금이라도 더 권법을 가다듬을 필요가 있었다.
여기저기서 무공을 수련하고 있는 사람들을 방해하지 않도록 거리를 두고, 소종천은 빈 곳을 찾아 자리를 잡았다.
생도들 사이에서 안 좋은 의미로 유명인사라 할 만한 위치에 있는지라, 시선들이 은근히 이쪽을 향해 모인다.
주변의 관심들에 신경을 끊고, 소종천은 천천히 반야신공을 운용하며 추영권의 초식들을 풀어가기 시작했다.
휘익, 펑!
쿵! 파앙!
“음?”
몇 차례 동작을 행하다가 말고 움직임을 멈췄다.
몸이 기억하고 있는 추영권을 펼친 것인데 뭔가 느낌이 많이 다르다.
‘이게 원래 이랬던가?’
주먹을 내지를 때마다 공간을 찢는 것처럼 소리가 퍼지고, 발을 디디면 땅이 울리며 흙먼지가 거세게 피어오른다.
딱히 내공을 과하게 실은 것도 아닌데 기존의 위력과 차이가 눈에 보일 지경이다.
‘반야신공의 공능이구나!’
영약으로 전체적인 내공이 늘기도 했지만 그래 봐야 기존에 비하면 1할 정도의 상승.
그것만으로는 이렇게 위력이 달라질 리가 없다.
이건 심법을 바꾸며 내공의 성질이 변화했기에 생긴 일이 분명했다.
‘내공에 무게가 있다고 표현하면 조금 이상하지만, 확실히 뭔가 웅장하다고 해야 할지…… 무게감이 달라졌다는 기분이 들어.’
과연 소림 최고의 신공.
1성임에도 8성의 청명토납공을 가뿐히 능가하는 뛰어난 효능을 보인다.
소종천은 반야신공으로 변화한 정순한 내공의 느낌에 심취한 채 추영권의 수련을 이어갔다.
“저 녀석, 그때 그 녀석 맞지? 심법을 새로 익힌다고 했던?”
“묘한 권법이군. 투로는 단순해 보이는데, 실린 힘은 굉장히 강맹해.”
“제법 그럴듯해 보이는데? 한번 겨뤄보자고 해볼까?”
소종천이 보인 무공의 시연에 주변에서 지켜보던 이들이 술렁거린다.
그리고 그들 중에는 생도의 신분이 아닌 이도 한 사람 섞여 있었다.
“허어…… 이 기운은?”
수련장에서 멀찍이 떨어진 위치.
소종천의 무공에 실린 내공의 기운을 감지한 노검호, 만개검(滿開劍) 곽진은 깜짝 놀라며 경탄을 터뜨렸다.
잠룡학관의 가장 햇병아리들이 모여 있는 황룡단의 교관직에 지원해, 검법에 관한 강연을 도맡고 있는 곽진.
그는 겉으로 보기엔 그냥 백발이 성성하고 왜소한 체구의 평범한 노인이었다.
하나 그의 진면목은 화산파의 고위 장로라는 신분이자 절정의 경지에 도달한 고수.
구십을 넘어 백세를 바라보고 있는 나이도 그렇고 무림에서의 배분 또한 견줄 사람이 드물기에, 정사 연맹의 누구에게나 공대를 받는 이가 곽진이었다.
비록 천하제일을 논하는 최고수중 하나로 거론되는 인물은 아니긴 하나, 능히 정사 연합에서 백대고수 안에는 들 만한 능력을 가진 고수 중의 고수.
그만한 위치에 있는 이라면 잠룡학관의 관주를 시켜 달라 해도 두말없이 허가가 떨어졌겠지만, 본인이 강력히 희망한 탓에 일개 교관직에 머무르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 곽진의 신형이 일순 사라졌다가 소종천의 근처에서 다시 나타났다.
천 보(步)이상 떨어진 거리를 단숨에 이동하는, 일반인은 눈으로 좇을 수도 없는 상승의 경신술.
“엇! 저분은…….”
“검법 지도 교관님이시잖아?”
곽진을 발견한 생도들이 작게 수군거렸다.
화산파에서도 반쯤 은퇴하다시피 한 전전 대의 인물이다 보니, 세대 차가 많이 나는 생도 중에선 곽진의 무위나 명성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그저 다른 교관들과 마찬가지로 실력 있는 고수 중 하나인가 보구나 하는 정도.
고작 열다섯에 불과한 생도들이 수십 년 전에 활동했던 무림의 명사들을 줄줄 외우고 있을 리도 없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긴 했다.
“허어, 허헛!”
소종천에게서 열 걸음가량 뒤에 떨어져 선 곽진은, 무엇이 그리 신기한지 연신 알 수 없는 감탄을 터뜨렸다.
“응?”
한참 흥이 올라 무공을 펼치던 소종천은, 뒤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감지하고 몸을 돌렸다.
‘뭐야 이 할아버지는?’
황룡단주이자 담임 교관인 추오명은 매일 얼굴을 볼 수밖에 없지만, 그 외의 다른 교관들은 강의에 참가하지 않고서는 만날 일이 거의 없다.
그리고 지금껏 검법 쪽의 수업에 관심을 두지 않고 있던 소종천으로선, 검법 교관인 곽진과는 초대면인 상황.
그래도 관계없는 외부인이 수련장 안을 돌아다닐 리는 없으니, 정체를 추측하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교관 중 한 분이신가? 엄청 나이 들어 보이는데…… 근데 눈빛이 어째 굉장히 부담스럽다?’
무공을 펼치느라 조금 흐트러진 무복을 정리하며, 소종천은 곽진을 향해 말을 걸었다.
“제게 용무가 있으십니까?”
주름살이 자글자글한 얼굴과는 어울리지 않는 초롱초롱한 눈으로 소종천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곽진은, 이내 입가에 미소를 머금으며 입을 열었다.
“드디어 소림이 봉문을 풀고 다시 무림의 일에 나서기로 한 겐가?”
“예?”
생각하지 않고 있었던 질문에 소종천은 살짝 당황했다.
뭔가 큰 오해를 산 듯했다.
뽑기로 무림최강 1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