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143
59. 속가제자(3)
“그러니까 소림무문이 부활했다는 말이군요.”
“그렇죠.”
제대로 다시 설명하느라 시간을 조금 잡아먹긴 했지만, 소종천은 말하고자 하는 바를 백무종에게 전달할 수 있었다.
“그럼 서향이를 본산제자로 받아주시겠다는 겁니까?”
“그 부분은 조금 애매하긴 한데, 일단 소림모찰이 있는 숭산으로 데려가긴 할 겁니다. 마침 방장되는 분이 제 사형이니, 부탁드려서 직접 가르침을 받게 해드리죠.”
“방장께서 직접! 아, 하지만 소림은 본산은커녕 속가 중에도 여성 제자를 둔 일이 없는 것으로 아는데…… 정말 딸아이가 문하로 들어갈 수 있는 겁니까?”
“뭐…… 신소림은 이제 막 새로 설립되는 단계니까요. 예전 규칙을 그대로 다 따라야 할 필요는 없지 않을지. 제가 방장님과 잘 논의해 보죠.”
“……으음.”
솔직히 별로 신뢰가 가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백무종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소종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사실 자신의 집이 다른 이들처럼 일반적인 가정이기만 했어도, 필요 없으니 헛소리 말라며 쫓아냈을 것이다.
미래가 어둡기만 한 절박한 천민의 삶을 살고 있으니,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이야기를 듣고 있을 뿐.
‘나는 괜찮다 쳐도 서향이에겐 제대로 된 배움의 기회가 필요해.’
자식에게 더 나은 기회를 주고 싶은 것은 부모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는 욕심이다.
백무종은 자신의 딸이 궂은 노역에 시달리며 천대받는 삶을 살길 원하지 않았다.
‘내 딸이라서 하는 말이 아니라, 서향이는 똘똘한 아이기도 하고 근골도 나쁘지 않아. 제대로 된 스승만 구할 수 있다면 자기 앞가림 정도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아이다.’
대형문파까진 바라지도 않으니 작은 곳이라도 그럭저럭 명성을 가진 무인의 제자로 보낼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던 차에 이런 만남이 찾아왔으니,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겠거니 싶긴 하다.
문제는 저 소종천이란 자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도 되는 것일까 하는 의문.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사라진 문파가 되살아났다는 말을 믿어도 되는 건가? 사실이라면 하루하루 간신히 벌어먹는 게 전부인 내 밑에서 자라는 것보다야, 그곳의 제자로 살아가는 것이 낫겠지만…….’
소림에 대해서는 그저 집안에 내려오는 무공의 뿌리라고 부친으로부터 이름만 전해 들었을 뿐이다.
이미 몇 대 전에 망해버렸던 문파가 과연 정상적으로 재건되긴 했을지 걱정이다.
겉보기엔 그냥 평범한 어린 무인으로 보이는 소종천의 말만 믿고, 마냥 딸을 맡기는 것도 불안했다.
“보십시오, 소협. 우리 집안이 대대로 소림의 속가였던 것은 사실이나, 솔직히 너무 오래된 일이라 마냥 좋게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일단 조금 더 자세히 이야기를 해주시겠습니까?”
백무종의 발언에 소종천은 살짝 난감한 기색을 드러냈다.
‘어째 신뢰받지 못하는 느낌이구만. 뭐 저쪽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이긴 하지만, 여기서 더 대화해 봤자 말로 설명하긴 어려운데.’
그저 문파 재건의 뜻을 품은 심익한을 사형으로 뒀을 뿐이지, 새로 재건될 소림이 현재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에 대해선 전혀 아는 점이 없다.
세세하게 따져 물으면 소종천의 입장에서는 대강 두루뭉술한 대답을 할 뿐, 정확한 답변을 해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냥 힘자랑이라도 해야 되나? 그래도 전에는 무인이었다니 무공의 경지에 대해선 알고 있을 테고, 권기 정도만 보여줘도 냉큼 제자로 삼아 달라 할 것 같은데.’
매번 무슨 일만 생기면 무력 과시로 상황을 해결하는 게 너무 품위 없는 행동 같아 얌전히 대화를 나눴는데, 이대로는 영 이야기의 진도가 나가질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이번에는 딱히 무공으로 누굴 위협하는 것도 아니고. 이렇게 강한 무인이 소속된 믿음직한 곳이다, 라는 점을 보여주려는 목적이니까.’
그런 생각을 한 소종천이 막 자신의 무위 중 일부를 보여주기 위해 말을 꺼내려던 차였다.
“백씨! 당장 나오게!”
누군가 백무종을 찾으며 마구간 앞으로 뛰어왔다.
차림새를 보아하니 이 집에서 일하는 하인 중 한 사람으로 보였다.
“총관님께서 찾으시, 으응? 누구…….”
백무종을 부르며 달려오던 남자는, 외부인인 소종천을 발견하고 입을 다물었다.
잠시 머뭇거리는 사내에게, 백무종이 말을 걸었다.
“총관님께서 절 찾으신다고 했습니까?”
“아! 그, 그렇지. 빨리 가야하네. 그…… 마침 자네 딸도 같이 있었구먼. 둘이 같이 따라오도록 하게.”
“예? 서향이까지 말입니까? 무슨 일 때문에…….”
“크흠! 낸들 아나? 총관께서 시키신 일이니 따지지 말고 냉큼 움직이게!”
사내는 백무종을 재촉하고는, 몸을 돌려 다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소협. 미안하지만 이 이야기는 나중에 다시 하도록 합시다. 아직 일과가 끝나지 않은 터라…… 이따가 저녁에 찾아와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럼요. 저는 신경 쓰지 말고 일 보시죠.”
소종천의 대답에 백무종은 고개를 가볍게 숙여보이고는, 백서향과 함께 하인의 뒤를 쫓아갔다.
잠시 멈춰서 있던 소종천은 천천히 백씨 부녀가 사라진 방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냥 돌아가기엔 찝찝하단 말이지.’
조금 전에 나타났던 하인이 좋은 일로 백무종을 찾아오진 않았으리란 생각이 든다.
총관이라는 자가 단순히 업무에 관한 일로 호출했다면, 딸인 백서향까지 찾았을 리 없을 터.
‘그 싸가지 꼬마가 이 집 아들이라고 했던 걸 보면, 아무래도 아까 전의 일로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
보아하니 꽤나 사는 집인 듯한데, 자식이 밖에서 기절해 실려 들어왔으니 조용히 넘어가진 않을 것이긴 하다.
소종천은 몸을 숨긴 채 조용히 발을 움직였다.
따로 은신술을 배운 적은 없지만 경지가 경지이다 보니, 평범한 이들의 눈을 피해 이동하는 것이 어렵진 않았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감지되는 백씨 부녀의 기척을 쫓아 이동하자, 역시나 예측했던 대로 상황이 흘러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놈! 몸도 성치 않은 자를 불쌍히 여겨 거두어들였더니, 결국 이런 사고를 일으키는구나!”
“아니, 총관 어르신. 대관절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네놈의 딸년이 도련님을 제대로 모시지 못해 이런 변고가 생겼으니, 응당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어찌 그런! 서향이는 그저 도련님께 불려가 그 자리에 있었을 뿐인데, 호위무사도 아니고 아홉 살짜리 아이에게 무슨 책임을 묻는단 말입니까?”
억울하다는 듯이 항변하는 백무종의 말에, 총관이라 불린 이는 더욱 목소리를 높였다.
“어허! 아랫것이 주인 되는 분의 가족이 해코지당하는 것을 막지 않고 보고만 있었으니, 어찌 책임이 없다고 하겠느냐?”
“말도 안 되는 소릴! 제가 비록 이곳의 하인으로 일하고 있다지만, 서향이는 그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아이이지 않습니까!”
“아비가 종놈이면 딸년도 같은 신분이나 마찬가지인 것을! 감히 어딜 바락바락 따지고 드는 게냐!”
“그런!”
“주인 나리의 자비로 네 딸과 함께 생활하도록 먹을 것과 잠자리를 허락해주고 있거늘, 어찌 배은망덕하게 아무 관계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야? 그럼 오늘부터라도 따로 집을 구해 나가 살겠느냐?”
“크윽…….”
총관의 말에 백무종은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였다.
몰래 대화를 엿듣고 있던 소종천은 절로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혹시나 했는데 진짜 나 때문에 저러는 거였네. 근데 그걸 또 왜 어린 애한테 책임을 따지고 있어? 어처구니없구만.’
몸을 숨기고 있던 소종천은 신법을 펼쳐 허공으로 몸을 솟구친 뒤, 백무종의 곁으로 떨어져 가볍게 착지했다.
별일 아니면 조용히 기다리려 했는데, 자신과 관계된 일이니 끼어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으헉!”
“뭐, 뭐야! 누구요 당신!”
“지금 거론되고 있던 도련님이란 꼬맹이 녀석을 기절시킨 장본인입니다만.”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져 내린 소종천의 모습에 흠칫하던 사람들은, 이어지는 대답을 듣고는 멍한 얼굴이 되었다.
“무슨…….”
그나마 총관이라는 자가 가장 빨리 정신을 차리고 소종천의 몸을 위아래로 재빨리 훑었다.
“그쪽이 우리 도련님을 해코지한 흉수란 말이오?”
백무종을 상대할 때와는 달리 적당히 예의를 갖춘 말투.
귀신처럼 갑작스럽게 나타난 소종천이 무인임을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으니, 정확한 무위를 알지 못해도 일단 조심하고 보는 모양새였다.
“흉수라는 표현은 좀 그러네. 내가 여기 서향이와 대화를 나눴는데, 그쪽 도련님이 다짜고짜 공격을 하기에 한번 노려본 게 전부인데. 혼자 겁먹고 기절했다고 그걸 해코지라고 말하면 억울하지.”
“크흠! 이곳은 제형안찰사를 지내신 왕정운 영감의 사돈댁 되는 집안이오. 소협이 어느 문파에 속한 사람인지 모르나, 우리 막내 도련님의 심신을 상하게 만든 것은 결코 가볍게 넘어갈 일이 아니외다.”
들어보니 어디 관직에 오른 이와 연줄을 가진 집안인 모양이다.
안찰사가 얼마나 대단한 자리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저리 거들먹거리는 꼴을 보니 꽤 지체 높은 관리인 듯했다.
“흠. 거, 미안하게 됐수다. 사과할 테니 좋게 넘어갑시다.”
아니꼽긴 했지만, 너무 뻗대는 것도 백씨 부녀를 곤란하게 만들까 싶어, 소종천은 일단 적당히 사과의 말을 건넸다.
물론 그다지 효과는 없었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이놈 백가야! 이자가 네놈 딸년의 이름을 말하는 것을 보니 필시 모르는 사이가 아닐 터. 설마 감히 주인집에 위해를 가하기 위해 무슨 작당을 한 것이더냐!”
“아, 아니! 그건 또 무슨 말도 되지 않는…….”
총관의 말에 백무종은 당황하여 말을 더듬었고, 소종천 역시 어이가 없어 입을 다물었다.
‘아까부터 자꾸 이상한 쪽으로 몰아가는 걸 보니, 저 총관이란 자가 어떻게든 아저씨한테 책임을 씌우려고 작정한 듯하네. 끄응, 어쩌지? 괜히 나 때문에 이곳에서 쫓겨나게 되는 건가?’
어째 돌아가는 꼬라지가 백서향을 소림의 제자로 추천하는 것뿐 아니라, 백무종의 일자리와 지낼 곳까지 따로 알아봐 줘야 하게 생겼다.
‘그냥 다 같이 심 사형한테 데려가야 되나? 거기도 뭐 일손이 필요 없지는 않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소종천은 누군가 가까이로 다가오는 기척에 고개를 돌렸다.
“무슨 소란이시오?”
허리에 유엽도를 찬 중년의 무인이, 장내에 발을 들였다.
중년인을 발견한 총관이 안색을 환하게 바꾸며 입을 열었다.
“오오! 조 대협! 어쩐 일로 이 시간에 외당에 계십니까?”
“생각할 것이 있어 가볍게 산책을 하던 참이었소.”
“마침 잘 되었군요. 이노오옴! 여기 이분은 막내 도련님의 무공 사부로, 너 따위 어린놈은 감히 범접할 수도 없는 지고한 경지를 이룬 분이시다. 어디 아까처럼 불손한 태도를 계속 취해 보거라!”
조 대협이라 불린 무인이 등장해 곁으로 다가오자, 총관은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턱을 치켜세우며 소종천을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지켜줄 사람이 생겨서 더는 조심할 필요가 없다고 여기는지, 소종천을 대하는 말투도 확 달라졌다.
“음…….”
소종천은 뒷목을 긁적거리며 가까이 다가온 중년인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사실 이미 한참 전부터 주변에 있던 그의 기운을 감지했었기에, 상대가 어느 정도의 무위를 지닌 자인지는 파악한 뒤다.
“그래, 지고한 경지시라고?”
소종천의 얼굴에 묘한 웃음이 걸렸다.
뽑기로 무림최강 14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