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145
59. 속가제자(5)
쉬이익!
조희칠의 도가 휘둘러지며 날카로운 소리를 만들어낸다.
하지만 참격은 애꿎은 허공만 가를 뿐, 소종천의 몸에는 전혀 닿지 않았다.
손가락 한 마디만큼의 차이로 도초의 경로에서 몸을 빼낸 소종천의 주먹이 조희칠의 옆구리에 닿았다.
툭.
“소림의 권법은 대부분 강건함과 쾌속함을 주로 삼는다.”
“으윽! 이놈!”
약간의 통증을 느끼는 수준에서 그치는 미약한 타격.
때렸다기보단 그냥 건드리는 정도에서 멈춘 소종천이 다시 한번 간발의 차이로 도격을 흘리며, 조희칠의 가슴을 손바닥으로 가볍게 밀어냈다.
“들어갈 때와 물러날 때마다 정교한 법칙이 있어 얼핏 보면 단조로워 보일 수 있지만, 응용을 통해 이루어지는 변화는 가히 무쌍이라 할 수 있지.”
“이야아악!”
얼굴을 붉게 물들인 조희철이 고함을 지르며 필사적으로 움직여 주변의 공간을 마구 헤집었지만, 여전히 칼날에 무언가가 베이는 감각은 느껴지지 않는다.
고작 한 마디의 간격.
어디로 어떻게 도를 움직여도 딱 그 한 마디의 차이로 공격의 반경에서 벗어나니, 조희칠은 귀신을 상대하는 기분이 들어 기절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머리, 어깨, 팔꿈치, 엉덩이, 무릎, 발. 같은 자세에서 손을 뻗어도 축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다른 변화가 발생하는 법. 자, 방금 전과의 차이가 느껴지지?”
앞에 선 조희칠은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소종천은 하나의 식을 펼칠 때마다 백서향에게 시선을 향하며 말을 건넸다.
싸우는 것이 아니라 제자에게 무술을 가르치듯 같은 동작을 여러 번 되풀이하며 느긋하게 입을 놀리는 모습이, 더더욱 조희칠을 미치게 만들었다.
그야말로 농락 그 자체.
‘저, 정말로 절정급의 무인이었단 말인가? 내 나이의 반도 되지 않아 보이는 이런 젊은 놈이?’
조희칠의 얼굴이 자괴감으로 일그러졌다.
비록 말년에 양심을 저버리고 사기꾼 짓을 하고 있었지만, 무인으로서의 자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무림의 밑바닥에는 평생 칼밥을 먹고 살면서 일류의 벽조차 넘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나이가 몇이 되던 죽기 전까지 절정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면 나름 성공했다고 할 수 있으니, 무인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만큼은 그만두지 않고 무공을 수련해 왔다.
한데 지천명이 넘어가도록 아직 실마리도 잡지 못한 경지를, 약관이나 되었을까 싶은 어린 녀석이 먼저 올라 자신을 이리 가지고 놀다니.
“끄으, 흐, 크흐흐!”
조희칠의 눈이 뒤집히며 입에서 실소가 흘러나온다.
일그러진 얼굴 위로 핏줄이 불거지며 흉측한 몰골이 만들어졌다.
심마에 빠져들며 몸 안에 쌓은 기운이 통제력을 잃고 날뛰는 모습이었다.
심법의 수련은 마음의 수양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조희칠은 기형적인 심법으로 탁하고 불안정한 기운을 몸 안에 쌓은 탓에, 작은 충격만으로도 정신이 송두리째 흔들리며 무너져 내리게 된 것이다.
“크아아!”
“음? 갑자기 맛이 가버렸네. 신기하다 싶더니, 역시 뭔가 문제가 있는 무공이었나.”
소종천은 조희칠의 기운이 난폭하게 요동치는 것을 느끼고 눈살을 찌푸렸다.
당장 제압해서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조희칠은 단전이 망가지고 기혈이 갈기갈기 찢겨 폐인이 되고 말 터.
물론 소종천이 그런 사정 하나하나까지 챙겨줘야 할 이유는 없긴 하다.
“에이. 아직 시범을 다 보여주지도 못했는데.”
잠깐 투덜거린 소종천이 내력을 끌어올렸다.
조희칠이 폐인이 되는 건 알 바 아니긴 하지만, 정신이 나가버린 사람을 계속 상대하는 건 그다지 흥이 나질 않는다.
그렇기에 날뛰는 조희칠을 단번에 제압할 일격을 준비했다.
쿵!
강력한 진각과 함께 소종천의 모습이 일순간 모두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이어서 교대라도 하듯이 조희칠의 신형이 사라지며, 권을 내지른 자세를 취한 소종천이 모습을 드러냈다.
요란한 소리와 함께 담벼락이 무너져 내렸다.
소리가 들린 방향을 쫓아 시선을 움직인 사람들은, 그곳에서 잔해에 반쯤 파묻힌 조희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주먹질 한 번에 사람의 몸이 십여 장의 거리를 날아가 담을 무너뜨린 것이다.
“음…… 너무 과했나.”
죽일 생각은 아니었기에 속도와 힘의 집중을 줄이고, 적당히 타격의 힘이 몸 전체로 퍼지도록 내공의 운용을 조절하긴 했다.
그게 아니었다면 아마 주먹이 몸통을 관통해 상대를 즉사시켰을 것이다.
다만 그럼에도 내력의 분배에 조금 착오가 있어, 조금 과한 공격이 되어버렸다.
단전이 완전히 손상되어 폐인이 되는 건 막아내긴 했는데, 온몸의 뼈와 근육이 잔뜩 상해 후유증이 심하긴 할 것 같다.
방금까지 소림오권의 형을 자유자재로 펼치는 모습을 보이고자, 내공을 억제하며 오로지 권법의 정수만 다룬 게 화근이었다.
막아두고 있던 힘을 조금만 더 쓴다는 게 초절정의 기준에서 움직이다 보니, 약간의 오차로도 저 꼴이 만들어져 버린 것이다.
사실 초절정의 고수씩이나 되어서 내공을 자유자재로 세밀하게 조절하는 것에 미숙하다는 게 이상한 일이긴 한데, 소종천은 워낙 특이한 경우다 보니 이런 상황이 나오게 되었다.
직접 수련을 통해 쌓은 내공보다 뽑기 능력을 통해 더해진 내공이 훨씬 많다 보니, 경지에 어울리지 않게 조금 미흡한 부분이 드문드문 드러난다.
“히이익!”
“주, 죽었어!”
“안 죽였는데. 조금, 아니…… 많이 망가지긴 했겠지만.”
넋 놓고 구경하고 있던 하인들이 벌벌 떨며 바닥에 주저앉는다.
그들 입장에서는 조희철이 하늘을 날아다니는 신선과 동급으로 여겨지는 존재였으니, 그런 무인을 손쉽게 해치운 소종천이 괴물처럼 여겨지긴 할 것이다.
소종천은 망연자실하고 있는 총관에게 다가갔다.
“으, 으허엄! 대혀어어업! 이 미련한 자가 귀인을 몰라보고 무례를 저질렀습니다!”
사색이 된 총관이 곧바로 태세를 전환하며 소종천을 향해 오체투지를 했다.
“거, 뭐, 몰라볼 수도 있지. 안 때리니까 일어나쇼.”
무공을 모르는 평범한 아저씨에게 손을 댈 생각은 없다.
조금 가증스럽긴 해도 그가 무슨 구제 불능의 악인인 것도 아니지 않은가.
소종천은 총관을 일으켜 세우고 대화를 청했다.
“대충 듣긴 했을 텐데, 저 사람 사기꾼입디다. 특이한 무공으로 도기와 비슷하게 보이는 현상을 일으켰을 뿐이지, 절정의 경지는 아직 문도 못 찾은 상태거든요?”
“그, 그럴 수가! 아이고! 이 일을 주인 나리가 아시면 크게 진노하실 텐데.”
“그거까진 제가 신경 쓸 일은 아니고. 아무튼, 전 여기 부녀에게 용건이 있으니까, 이제 방해하지 말아줬으면 합니다만.”
“예예, 그럼요. 말씀들 나누십시오. 자네! 다른 일은 더 하지 않아도 되니까 어서 가보시게!”
아까까지 떠들던 책임을 지니 마니 하던 소리는 쏙 들어갔다.
소종천은 백씨 부녀와 다시 이야기를 나누었고, 원하던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제자가 될래요.”
“음. 그래야지.”
눈을 반짝이며 말하는 백서향의 모습에 소종천은 만족스럽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가 사기꾼이긴 했어도 어쨌거나 일류 수준의 무인을 가볍게 압도하는 모습을 보였으니, 좋은 인상을 새긴 모양이다.
‘일부러 구경하기 쉽게 수준을 맞춘 보람은 있구만.’
당사자의 관심을 끄는 것은 성공했으니 남은 것은 보호자의 동의뿐.
물론 백무종 역시 반대할 이유가 없었다.
처음에는 걱정과 의심이 많긴 했다.
소림이 과거에는 따라올 곳이 없던 거대문파였다 해도 이미 한번 망해 사라졌으니, 재건하겠다 말해봐야 제대로 된 기반도 없는 쭉정이 같은 문파이지 않을까 생각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 곳에 딸을 보내봐야 고생만 하고 배우는 것은 없을지도 모른다고 여겼다.
하지만 소종천의 무위를 직접 목도했으니 그런 걱정은 이제 눈 녹듯이 사라졌다.
‘완전한 소림오권이라는 게 저리 뛰어난 무공이었다니! 부친께 무공을 온전히 전수받지 못하며 유실된 부분이 많은 것 같다 여기긴 했는데, 이제 보니 내가 익힌 것은 수박 겉핥기만도 못했었구나.’
저런 무인이 몸담은 곳이라면 적어도 제 한 몸 건사할 정도는 배워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백무종은 적극적으로 딸의 입문 의사를 밝혔다.
그렇게 소종천 일행에 머릿수가 하나, 아니…… 둘이 추가되었다.
원래는 예비제자가 될 백서향 한 사람만 합류시킬 생각이었으나, 백무종 역시 따라가고 싶다며 동행을 요청했기 때문이다.
“서향이는 제 삶의 전부나 마찬가지인 아이입니다. 소협이 딸을 잘 보살펴주실 거라 믿어 의심치 않으나, 멀리 떨어진 채 아무런 근심 없이 지낼 자신이 없습니다.”
유일한 혈육이자 똘똘하다 해도 고작 아홉 살배기인 딸과 떨어져 지내려니, 걱정이 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개처럼 부려도 좋으니 가까운 곳에서 머물며 일할 수 있게 해주십시오.”
“음…… 뭐 상관없으려나. 그럼 같이 가시죠.”
사실 숭산에 도착하게 된다면 이들을 돌보는 것은 자신이 아니라 심익한이 해야 할 일이 되겠지만, 소종천은 별 고민 없이 이를 받아들였다.
‘사형에게 맡기면 다 알아서 해주시겠지 뭐. 하하!’
어깨를 으쓱인 소종천은 두 사람을 데리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일행들에게로 돌아갔다.
* * *
“남자 혼자 아이를 키우는 일이 쉽지 않았을 건데…… 몸도 성치 않은 분이 고생이 많으셨네요.”
“그래도 딸이 없었다면 이렇게 살아갈 생각도 하지 못했을 겁니다. 제 삶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아이지요.”
“그 맘 잘 알지요. 저도 바깥양반을 일찍 보내고 하나 있는 아들만 바라보며…….”
백무종과 모친의 대화를 듣던 소종천은 어색한 표정을 지었다.
과부 사정은 홀아비가 잘 안다더니, 두 사람은 꽤나 죽이 잘 맞아가며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사회적인 약자의 위치에서 모진 풍파를 겪으며 힘겹게 살아왔던 사람들이니, 그간의 고생을 서로 이야기하는 것만으로도 꽤나 위안을 받는 모양이다.
‘설마 저러다 눈이 맞는 건 아니겠지…….’
괜히 살짝 걱정이 된다.
백서향을 소림의 제자로 들여 심익한에게 맡기게 되면 자신과는 사숙과 사질의 관계가 되는데, 잘못하면 족보가 이상해질지도 모르겠다.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소종천은 백서향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어느 정도나 외웠니?”
“아직 반 정도밖에…….”
마차로 이동하며 무공을 가르치는 것은 아무래도 제약이 있기에, 현재는 반야신공의 구결을 암기시키고 있는 중이다.
아직 백서향을 본산제자로 들이는 것이 확정된 것은 아니기에 규율대로라면 함부로 절기를 전수해선 안 되지만, 따지고 보면 소종천 자신도 본산제자가 아니면서 신공을 익힌 존재.
어차피 여자아이를 소림 제자로 들이려는 파격을 시도하는 마당에 고리타분한 규율 따위 따지고 싶지 않았다.
‘그나저나 며칠이나 지났다고 벌써 반이나 외웠어? 확실히 머리가 좋긴 좋구나…….’
학관 시절 반야신공을 익히고자 머리를 싸매고 고생했던 것이 생각난다.
환혼천통단을 얻지 못했다면 반야신공의 습득은커녕, 단순히 구결을 암기하는 데만 몇 개월은 소비했을 것이다.
과연 오성 수치가 높은 아이라 지식을 빨아들이는 속도가 남다르다.
물론 구결을 암기하는 것과 실제로 불경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심법의 성취를 보는 것은 또 다른 이야기지만, 머리가 좋은 아이니 어쩌면 심익한을 만나기 전에 1성의 성취를 이룰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서향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칭찬해준 소종천은 정면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넓은 관도를 돌아다니는 수많은 인파의 행렬이 눈에 들어온다.
통행하는 사람들의 수가 확연히 늘어난 것이 체감된다.
이리저리 돌아다니느라 꽤나 기간이 소요되었지만, 그래도 결국 연맹본부가 위치한 호남의 성도에 가까워진 것이다.
‘부른 지가 언제인데 이제 왔냐고 뭐라 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긴 한데. 뭐 꼬우면 자기가 초절정 무인 하던가.’
중원에서 가장 영향력 높은 연맹본부의 인물들.
과연 어떤 인간 군상들을 보게 될지 궁금해지는 마음과 함께, 소종천과 일행들을 태운 마차가 호남의 성도 장사에 도착했다.
뽑기로 무림최강 146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