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149
61. 호북성 무한
몇 번의 실랑이 끝에 소종천은 송호빈이 제안한 권한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그의 집무실을 나섰다.
맹주의 자필로 소종천의 조사 활동에 각 지부들은 최대한 협조할 것을 요구하는 서면을 작성하고 직인을 찍어 받았지만, 솔직히 이런 것이 제대로 도움이 될까 싶기는 하다.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지만 마냥 기다리고 있어 봐야 차일피일 미루며 말을 바꿔대겠지. 그럴 바에야 뭐라도 최대한 받아두는 게 낫긴 한데.’
소종천은 이쯤에서 연맹본부를 떠나기로 결정했다.
대형문파들의 분파가 여기저기에 들어선 호남에서는 어차피 소종천 일행이 기웃거릴 만한 일거리가 없다.
가능성은 낮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느니, 다른 지부들을 돌아다니며 조금씩이라도 병력을 모아보는 편이 나을 것이다.
‘사천에서처럼 중소문파 출신의 무인들 중 부당한 대우에 지쳐 지원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르니. 실력은 크게 기대할 수 없겠지만, 그런 이들이라도 수가 모이면 그럭저럭 힘이 되어주겠지.’
어차피 백씨 부녀와 모친을 소림에 데려다주기도 해야 한다.
소종천은 하남에 들러 심익한을 만나 일은 잘되어 가는지 둘러보고, 주변 성들을 순회하며 각 지부의 무인들을 차출해 보기로 결정을 내렸다.
* * *
호남에서 호북을 거쳐 소림이 위치한 하남성까지.
사천에서 연맹본부까지 이동했던 거리와 별 차이가 없을 정도의 먼 길이지만, 일정을 짜는 것은 꽤나 간단했다.
연맹본부가 위치한 장사는 중원 최대의 담수호인 동정호가 지척에 있고, 그곳과 이어져 있는 장강의 물길의 따라 흘러가다 보면 호북의 성도인 무한이 나온다.
여기까지는 배편을 이용하니 딱히 고민할 거리도 없고, 이후 관도를 타고 조금만 이동하면 하남성으로 진입할 수 있는 것이다.
동정호를 낀 항구에 들어서자 작은 어선부터 거대한 상선까지, 다양한 종류의 배가 눈에 들어온다.
연맹 산하의 금화상단에서 배를 제공해 주기로 미리 이야기를 나눠두었기에, 일행들은 따로 승선 준비를 할 필요 없이 배편에 올랐다.
병력을 지원받진 못했어도 본부소속의 수뇌부에 준하는 고위직의 증표를 받았기에, 이런 소소한 권한을 누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작은 뗏목이나 몇 번 타봤지 이런 큰 배는 처음 올라보는군요.”
“저는 아예 배를 타는 것이 처음이에요. 귀주 산동네에서 평생을 보낸 촌년이다 보니.”
“저런, 혹시 뱃멀미를 하게 되면 저한테 말씀해 주십시오 부인. 제가 약을 구해다 드리겠습니다.”
“어머. 고마워요.”
꽤나 사이가 살가워진 모친과 백무종의 대화를 들으며, 소종천은 그 근처 어디엔가 있을 백서향의 모습을 찾았다.
“서향아.”
“네, 사숙님.”
소종천의 부름에 조용히 서서 주변을 구경하던 백서향이 쪼르르 달려왔다.
아홉 살배기 답지 않게 말수가 적고 튀는 행동을 하지 않는 아이다.
‘자라온 환경이 그랬으니 당연하겠지. 가난한 집 아이가 눈에 띄어봐야 좋을 게 없으니.’
소종천은 백서향을 앞에 세우고, 최근 며칠간 가르친 소림오권의 형을 펼쳐 보일 것을 지시했다.
연맹본부에 머무르는 동안 특별히 할 일도 없었기에, 백서향의 무공을 지도하는 쪽에 시간을 많이 할애했었다.
백서향이 기존에 익힌 소림오권은 애초에 원형을 제대로 전수받지 못해서, 유실된 초식도 있고 형의 투로 자체가 변질된 부분이 많아 제 위력을 낼 수 없는 수준이었다.
심법에 관해서는 어차피 본인의 노력이 아니면 성취를 볼 방법이 없기에, 구결을 외우도록 시키는 것 말고는 해줄 수 있는 것이 없다.
하지만 권법에 대해서는 온전한 형을 가르치거나 잘못된 부분을 수정하는 등 해줄 수 있는 것들이 있기에, 틈틈이 시간이 나는 대로 손을 봐주고 있는 중이었다.
“얏! 합!”
“다리를 벌리면서 발목이 살짝 틀어졌잖아. 그리고 오른손의 위치가 너무 높아.”
“네! 사숙님!”
동작의 미세한 차이 하나하나가 초식의 위력을 달라지게 만들 수 있다.
소종천은 정확히 힘을 전달할 수 있도록 어긋나는 점이 보일 때마다 자세를 교정해 주었고, 백서향은 그때마다 빠르게 잘못을 수정하며 제대로 된 소림오권을 익혀갔다.
‘작은 나룻배면 자거나 물 구경을 하는 것 외엔 할 짓이 없었을 텐데, 공간이 충분하니 무공 지도라도 해줄 수 있어서 심심하지 않네. 그나저나…… 이 녀석 진짜 똘똘하구나.’
소종천은 백서향을 가르치며 꽤 놀라움을 느꼈다.
어찌나 머리가 좋은지 한번 보여준 동작들을 전부 잊지 않고, 오권의 형을 처음부터 끝까지 거의 정확하게 풀어내는 모습을 보여준다.
교정을 받은 동작들도 아직 스스로의 신체를 완벽하게 통제하지 못해 차이가 발생했을 뿐.
소종천의 시범을 본 것으로 머릿속에 명확하게 형상을 잡아둔 모양이니, 조금만 수련을 지도해 줘도 빠르게 성취를 올릴 수 있을 것으로 보였다.
다섯 가지의 형에 속한 기본초식은 수십 개이며, 거기에서 파생되는 변초는 수백, 수천 가지로 갈라질 수 있다.
아직은 각 형의 초반부 초식들만 가르칠 뿐이고 후반부 초식과 변초에 대한 진도까진 나가지 않았지만, 워낙 오성이 뛰어난 아이인지라 나머지를 배우는 것도 멀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도 아무리 머리로만 전부 외워봤자,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수준이 되지 않으면 실전에서는 소용이 없어. 몇 번을 펼쳐도 오차 없이 정확한 동작이 나오도록 숙달되려면, 지루한 수련을 끊임없이 반복해야 하지.’
오성이 뛰어난 사람은 무공을 배우는 속도가 빠르지만, 배운 것을 몸에 체득하는 것은 또 별개의 이야기다.
그 부분은 오성보다는 근골이나 감각 수치가 높은 편이 시간 단축에 도움이 된다.
근골이 뛰어나면 몸으로 하는 모든 행동들을 수월하게 할 수 있고, 감각이 뛰어나면 힘의 배분을 세세하게 신경 쓰거나 정교한 동작을 수행할 때 도움이 되는 편이다.
‘뭐 서향이는 근골도 제법 괜찮은 편이고 감각도 준수해서 전체적으로 다 균형이 잘 잡힌 아이이니, 여러모로 훌륭한 성장을 기대할 수 있겠지.’
땀을 뻘뻘 흘리며 고사리 같은 손으로 가상의 적을 가격하는 백서향을 지켜보며, 소종천은 귀엽다는 듯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힘들면 쉬어가면서 해라. 아직 처음부터 끝까지 형을 다 펼치기엔 체력적으로 어려울 거야.”
“흐으, 히, 할 수 이, 있어요.”
“음. 뭐 되는 데까지 해보던가. 그래도 출항 이후에는 무리하지 말고 오형을 하나하나씩 나눠서 해라. 흔들리는 배 위에서 정확히 동작을 펼치는 데 집중하려면, 훨씬 더 힘들고 빠르게 지칠 테니까.”
“넷!”
아직 한창 어린 나이지만 환경 때문에 그동안 천대를 받고 살아와서 그런지, 백서향은 무공을 배우는 것에 상당히 의욕적이다.
가르침을 받을 때 보이는 태도를 보면, 힘을 가지고 싶다는 열망이 강하게 드러난다.
제법 성깔이 있다고 해야 할까?
성장 환경이 좋지 않다 보면 사람이 매사에 주눅이 들어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는데, 백서향에겐 반대로 자신을 몰아붙이는 원동력이 되어준 모양이다.
‘열심히 하는 건 좋은 거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 안쓰럽기도 하고. 나중에 심 사형을 만나게 되면 잘 이끌어줬으면 좋겠네.’
어떻게 소림의 무공을 여자아이에게 가르치느냐고 펄쩍 뛸지도 모르긴 한데, 그 부분은 소종천이 잘 설득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한번 고기 맛(?)을 본 사람이라 마냥 꼬장꼬장하기만 한 성격은 아니니, 무조건 반대하며 거절하진 않을 것이라고 본다.
선상에서의 생활은 당연히 단조로울 수밖에 없고, 하루하루가 어제와 다를 것 없는 반복적인 시간을 보내야 한다.
소종천은 백서향을 지도하는 데 집중하며 지루한 나날을 나름대로 의미 있게 보냈고, 일행을 실은 배는 강을 타고 흘러 어느새 호북성의 성도 무한에 도착했다.
* * *
“역시 사람은 땅을 밟고 살아야지! 어휴, 이제 더는 물비린내를 안 맡아도 되는구나.”
표현은 안 했어도 그간 꽤나 지겨웠는지, 장자군이 진저리를 치며 말한다.
“확실히 수로보단 육로가 낫소.”
“그렇지? 사방이 뻥 뚫린 풍경도 처음에나 시원스럽지, 하루 종일 물만 보고 있으려니 점점 답답해져서 숨이 막히더라니까.”
일행들의 대화를 듣던 소종천은 턱을 긁적거리다가 끼어들었다.
“고생들 했어. 이제 절반 좀 넘게 온 거지만…… 급한 일정도 아니니 하루 정도 푹 쉬었다 출발하자.”
“오호? 그럼 내일까진 무한에 머무는 거야?”
“호북성 성도는 다른 성도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구경 정도는 해봐야지. 일단 나는 좀 맛있는 밥을 먹고 싶은데.”
“나도.”
“배 위에서의 식사는 아주 형편없었어.”
“본인도 같은 생각이오.”
그래도 나름대로 상단에서 신경 써준 식사였지만, 다들 성에 차지 않았었는지 한마디씩 불평이 나온다.
확실히 뱃사람들의 식사라는 게, 육지의 제대로 된 음식점에서 나오는 것과 비교하기엔 많이 부족한 점은 사실이긴 하다.
“그럼 오늘 저녁은 간만에 근사한 곳에서 배불리 먹어볼까.”
그 말에 반대하는 의견을 내는 사람은 당연히 아무도 없었다.
소종천은 전낭을 열어보며 자금 사정이 어떤지 살펴보았다.
대번에 얼굴이 구겨진다.
요사이 어떠한 수입이 생길 만한 활동 없이 소비만 해왔기 때문에, 전낭은 뭐가 들어 있긴 한가 싶을 정도로 가벼워진 상태다.
‘중원제일을 다툴 만한 무위에 닿았는데 주머니는 빈털터리라니. 돈벌이에 연연하지 않고 행동해 왔으니 어쩔 수 없긴 하지만.’
본부에 있을 때 활동 자금 명목으로 조금이라도 받아올 걸 그랬다.
소지품 창에 잠들어 있는 무기라도 몇 자루 팔아야 하나 생각하던 소종천은, 이내 떠오르는 것이 있어 인상을 풀었다.
‘연맹 산하의 사업체가 상단하고 표국만 있는 건 아니지. 성도쯤 되는 도시에 관계처가 하나도 없을 리도 없고.’
찾아보면 공짜 밥을 먹을 수 있는 음식점이 하나쯤은 있을 것이다.
정확히 어디로 가야 한다는 정보는 없지만, 연맹과 관련 있는 곳을 찾아내는 것 자체는 쉽다.
연맹과 관계된 곳이 허접스러울 리는 없으니, 돈 냄새 나는 화려한 건물들이 몰려 있는 거리를 중심적으로 뒤져보면 된다.
음식점 중에서도 고급 요정쯤 되는 곳은 무력단체의 비호를 받는 곳이 대부분이고, 당연히 그런 표식을 잘 보이는 곳에 두기 마련.
보통은 깃발을 대문 앞에 달아두는 것이 일반적이니, 그중에서 연맹과 관련된 표식이 걸린 장소를 찾아내면 되는 일이었다.
소종천은 잠시 발품을 팔기 위해 돌아다녔고, 곧 생각한 대로 연맹의 사업체에 속한 고급스러운 객잔 한곳에 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조금 문제가 생겼다.
“엇, 여기 어째…….”
“에구머니나!”
“크흠! 종천?”
객잔이라 하면 보통 숙박 시설과 요식업소가 합쳐진 형태가 대부분인데, 이곳은 거기에 한 가지를 더해 기루까지 운영하고 있는 가게였다.
“그…… 분위기가 조금 그렇긴 한데. 다들 생각하고 있는 그런 곳은 아니거든?”
그럼에도 소종천이 당당히 들어올 수 있던 것은 이곳이 창기들이 모여 있는 홍루가 아닌, 춤과 노래의 재주를 파는 기녀들만 존재하는 청루라는 점 때문.
아무리 소종천이 어디서나 뻔뻔하게 군다지만, 돈을 아끼자고 모친과 어린아이가 섞인 일행을 매춘을 겸하는 곳으로 데려오는 미친 짓을 하진 않는다.
“으음. 꽤나 고급스러운 가게 같으니 확실히 음식은 잘 나오겠다만.”
“아무리 그래도 대범하다고 해야 할지, 잘도 이런 곳으로 데려올 생각을 하는구려.”
“아들…… 아이고, 어쩌면 좋을꼬.”
“아니, 이상한 곳 아니라니까 그러네!?”
어색한 공기가 감돌자 소종천은 살짝 짜증을 내며 안으로 들어섰다.
민망한 표정으로 주저하던 일행들도, 결국 하나둘씩 그 뒤를 따라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뽑기로 무림최강 15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