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15
9. 성장의 틀(3)
“자네는 이름이 뭔가?”
“소종천이라 합니다. 그런데 제가 소림의 내공심법을 익히긴 했어도, 그쪽하고 무슨 연관이 있고 그런 신분은 아닙니다만?”
일단 오해부터 바로잡았다.
“으응? 소림의 전인이 아니란 말인가? 허면 누구에게 그 심법을 전수받았는가?”
“만룡각에서 서적을 빌려서 익혔는데요?”
“뭐라!?”
소림의 무공들이 만룡각에 보관되어 있다는 것은 곽진도 알고 있다.
하지만 잠룡학관에 들어와서 심법을 새로 수련한다는 기행은 그렇다 쳐도, 그 말대로라면 공부를 시작한 지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의미.
신입생도들이 입관한 지 고작 한 달도 되지 않은 시기다.
물론 평범한 심법이라면 1성의 성취 정도야 빠르면 사나흘 만에 오를 수 있겠지만, 곽진은 소종천에게서 느껴지는 내공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 잘 알고 있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것은 오래전 마교와의 혈전에서 목숨을 잃은, 그의 은인이자 친우였던 이의 내공심법과 같은 것이기에.
“자네가 말하는 만룡각에서 빌린 서적이 반야신공의 비급을 말하는 것이 맞는 겐가?”
“네. 맞습니다.”
“허어…….”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곽진은 눈을 감았다.
기억이 수십 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다.
아직은 팔팔했던 사십 대의 자신과 등을 맞댄 채 마교도들과 싸우던 친우.
효원선사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곽 시주. 꼭 살아남으십시오.
-효원! 멈추게!
당시 소림의 장문제자이자 손꼽히는 기재(奇才)였던 효원은, 마교 세력의 기습에서 동료들을 살리고자 스스로 미끼가 되어 죽음을 맞이했다.
그때까지 함께 목숨을 건 전투를 치렀던 기억이 셀 수도 없기에, 그가 가졌던 내공의 기운 역시 한참의 시간이 지난 지금에 와서도 익숙하게 느껴진다.
‘분명 효원 그 친구와 같은 반야신공의 기운인 것은 확실하다. 하나 그것을 비급만으로 익혔다니…….’
오래전 마교도들의 시체 사이에서 건량을 뜯으며 친우와 나누웠던 대화가 생각난다.
-그런 고강한 내력을 가졌는데도 심법의 성취가 고작 6성이란 말인가? 믿기 어렵군!
-끝을 알 수 없는 무공이긴 합니다. 처음 1성의 성취를 얻는 데에도 백일이 넘는 시간이 걸렸지요.
-자네 같은 기재가 그 정도라니, 나 같은 범부는 익힐 수도 없는 무공이겠군.
-무슨 말씀이십니까? 곽 시주의 재능 역시 범인을 초월한 것임을 소승은 잘 알고 있습니다.
-흐흐, 내가 확실히 칼 쓰는 재주는 남부럽지 않긴 하네.
서로를 추켜세우며 말은 그렇게 했지만, 곽진은 효원의 무재가 자신보다 위에 있음을 인정한지 오래였었다.
살아 있었다면 분명 초절정의 벽을 깨고 천하제일의 수좌를 다퉜을 무인.
그런 이조차 백일을 넘게 수련해 익혔다는 1성의 성취를, 고작 한 달 남짓한 기간에 얻었다?
거짓이거나 따로 숨기는 것이 있다고 생각될 수밖에 없었다.
친우와의 추억을 더듬던 곽진은 눈을 뜨고 소종천을 향해 말을 건넸다.
“자네. 내가 진맥 한번 해봐도 되겠는가?”
“예 뭐, 그러십쇼.”
소종천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팔을 내밀었다.
변화한 내공에 적응하며 무공을 단련하기도 바쁜데, 처음 보는 노인이 귀찮게 하니 불편함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도 교관일 것이 분명한 상대고 연배를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로 나이가 많아 보이는 이였기에, 나름대로 예의를 차려 순순히 요구를 따라주었다.
“으윽.”
곽진이 무언가를 파악하기 위해서 손목을 잡고 내력를 흘리자, 소종천은 몸을 떨며 신음을 내뱉었다.
마치 옷 속에 누가 손을 넣어 더듬는 것처럼 불쾌한 기분.
다른 사람의 내력이 몸 안에 들어오는 것은 썩 유쾌하지 않은 경험이었다.
“허어!”
소종천과는 다른 이유로 곽진은 깜짝 놀라며 소리를 냈다.
‘이리도 평범한 근골이라니. 다른 아이들과 비교하면 너무도 보잘 것 없지 않은가?’
무공을 익히기에 적합한 재능인지를 가장 쉽게 알 수 있는 근맥과 골격의 형태.
정보창의 기준으로 5.03의 수치를 기록하고 있는 소종천의 근골은, 잠룡학관의 생도라기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하찮은 수준이었다.
‘이런 몸으로는 뼈를 깎는 수련 후에 연달아 깨달음을 얻지 않고는 일류의 벽을 넘어서기도 쉽지 않을 것을. 하지만…… 허허! 정말 괴상한 일이로구나!’
진맥을 마친 곽진은 붙잡고 있던 소종천의 손목을 놓아주었다.
“입관한 후에 심법을 익혔다는 말이 사실이로구나. 괴사로다.”
내력을 움직여 샅샅이 훑어보았기에 알 수 있다.
단전과 기혈에 두 종류의 심법을 통해 내공을 쌓은 흔적이 분명 남아 있었다.
‘족히 십 년 이상 수련한 심법이 따로 있다.’
기가 움직이는 통로인 기혈은 운공을 반복할수록 단련이 되게 마련.
사람이 많이 다닌 길과 그렇지 않은 길에는 차이가 나듯이, 내기를 꾸준히 운용하다 보면 기혈에도 조금씩 변화가 생긴다.
물론 진맥을 한다고 아무나 다 알아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절정의 고수인 곽진은 그런 미세한 흔적을 잡아낼 수 있었다.
‘반야신공을 오래 익혔다면 효원과 비슷한 발달의 흔적이 남아 있었겠지. 확실히 수련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게야.’
곽진은 소종천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대체 이 녀석은 뭐하는 물건인가 싶다.
“뭐, 뭔가 문제라도 있습니까?”
그런 곽진의 행동에 살짝 불안해진 소종천은 말을 더듬으며 눈치를 살폈다.
‘나한테 왜 이러지? 교관이랑 얽혀서 좋은 꼴을 보진 않을 것 같은데.’
그런 소종천을 한참 응시하던 곽진은 불쑥 질문을 던졌다.
“무공은 어디서 배웠는고?”
“예? 아, 어릴 적에 아버지가 조금 봐주시다가…… 사고로 돌아가신 뒤로는 그냥 계속 혼자 수련했습니다.”
“오호라. 그래서 실력이 그 모양이로구나.”
“…….”
곽진의 말에 소종천은 입을 다물었다.
‘아니, 뭔 만나는 인간마다 시비를 터네. 그래 내 무공 별로다! 아오! 씨!’
소종천이 속으로 투덜거리는 동안, 곽진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천재라 불리는 이들을 수없이 만나봤지만, 이 아이만큼 대단한 재능은 찾기 어렵겠구나. 그 난해하다는 신공을 이리 짧은 시간에 홀로 익혀 내다니. 그런데 그에 비해서 무공 실력은 답답할 정도로 평범하다는 게 웃지 못할 일이로다.’
소속된 문파도 없고 가르침을 줄 스승 없이 독학만 했다고 하니 그럴 수도 있긴 하다.
근골이 너무 보잘 것 없으니 제자를 원하는 고수들의 눈에 띄지도 못했을 것이고, 그렇기에 저런 총명한(?) 머리를 가지고도 제대로 무공을 배우지 못한 것일 터.
‘안타까운 일이야. 근골이 무공을 익히는 데 있어 전부가 아니거늘.’
일류의 경지까지는 타고난 근골과 양질의 재능을 갖고 있다면, 일정한 수련을 통해 어렵지 않게 다다를 수 있다.
하지만 절정의 경지는 한순간에 번뜩이는 깨달음을 잡지 못한다면, 평생을 걸쳐 수련해도 도달하지 못하는 이가 부지기수.
근골이 좋은 이는 일류의 경지까지 빠르게 오를 수 있겠지만, 그 너머부터는 오성이 뛰어나거나 끝이 보이지 않는 두드림을 견뎌낼 독심을 가진 이가 오히려 유리해진다.
‘대부분의 무인들이 자신의 무공을 한계까지 익히고도 상승의 경지에 도달하는 실마리를 잡지 못해 헤매는데, 이 아이는 그와는 반대되는 상황이로구나.’
오랜만에 친우와의 추억을 떠올리게 해준 아이인데, 처한 상황이 안쓰럽게 느껴졌다.
물론 소종천은 환혼천통단이라는 편법을 통해 반야신공을 습득할 수 있었던 것이지만, 그런 사실을 그가 알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소종천에 대해 크게 오해한 곽진은, 문득 이 생도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권을 주로 익힌 모양인데, 검법에는 관심이 없느냐?”
“예? 검법이요? 그야 관심은 있죠.”
뜬금없는 질문에 소종천은 뭔가 싶으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럼 앞으로 내 수업에 들어오거라. 내 특별히 따로 신경 써 줄 터이니.”
“아. 음…… 예, 뭐. 나중에 기회가 되면 가보겠습니다.”
말투가 완전히 하대로 바뀐 것은 나이차가 크니 상관이 없지만, 어째 호의를 보이며 친근한 분위기를 풍기는지 모르겠다.
갑작스러운 제의에 소종천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 대답했다.
‘뭐야? 검법을 가르치는 교관이었나? 근데 나한테 왜?’
소종천 역시 언제까지고 권법만 수련하며 지낼 생각은 아니긴 했다.
다만 새로운 무공을 배워하는 시기에 대해서는, 당연히 뽑기를 통해 비급을 얻어 편하게 익힐 수 있을 때라는 생각뿐이다.
검법 수업 같은 것은 검법이 담긴 무공서를 뽑은 뒤에나 참가할 의향이 있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곽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만일 화산파내에서 자신이 직접 가르침을 주겠다며 같은 말을 한다면, 이미 스승이 있는 제자들조차 기회를 잡고자 달려들 것이다.
그런데 이 미적지근한 반응은 뭐란 말인가?
‘하긴, 나에 대해 아는 것이 없다면 그럴 수도 있겠지.’
눈앞의 생도에게 자신은 여러 교관들 중의 하나인 노인일 뿐이다.
잠깐 어이없어하던 곽진은 상대의 나이와 신분을 떠올리고는 수긍과 함께 입을 열었다.
“잠시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구나.”
곽진은 주변을 쓱 둘러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석식을 마친 후에 내 거처로 찾아 오거라.”
“네?”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말을 마친 곽진은 유령처럼 스르륵 사라졌다.
소종천을 비롯한 주변의 생도들이 두리번거리며 그의 모습을 찾았지만, 잘 쳐줘도 아직 이류 수준에 머물러 있는 그들이 절정 고수가 전력으로 펼친 신법을 정확히 좇을 수 있을 리 없었다.
“와, 쩐다!”
대단한 상승의 경신술이 펼쳐지는 것을 목격했기에, 뜬금없는 호출에 황당해하던 소종천도 잠시 넋을 잃었다.
‘아니, 그런데…… 그래서 대체 누구신데? 뭐야 이거! 그렇지 않아도 한시가 바쁜 상황인데!’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상대방의 이름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은 소종천은, 자신이 또 뭔가 귀찮은 일에 휘말렸음을 직감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 * *
저녁 식사 시간이 지나고 유시(酉時)가 끝나갈 무렵.
나이 많은 노인이자 검법 교관이라는 단서를 바탕으로 곽진의 이름을 알아낸 소종천은, 교관들이 머무는 전용 숙소로 향해 물어물어 찾아왔다.
‘여기도 처음 와보는 곳이네.’
딱히 생도들에게 출입이 금지된 곳은 아니지만, 교관들의 숙소를 굳이 찾아올 이유가 없긴 했다.
“음? 네가 여긴 어쩐 일이지?”
‘아이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소종천은 몸을 돌리며 고개를 숙였다.
“좋은 저녁입니다 교관님. 식사는 맛있게 하셨습니까?”
“그래. 대답은?”
언제나 무뚝뚝한 추오명의 얼굴을 마주하며 소종천은 설명을 늘어놓았다.
“어떤 교관님께서 저와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니 찾아오라 하셨습니다.”
“어떤 교관? 정확히 누굴 말하는 거냐?”
“그게…… 직접 듣지는 못했는데 알아보니 곽진이라는 성함을 쓰시는 분인 것 같습니다. 검법을 지도하는 교관이신 듯한데…….”
“곽 노사께서?”
소종천의 대답이 의외였는지 추오명이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분께서 왜, 음! 아니다. 곽 노사님이 머무시는 곳은 저쪽 길로 들어가 가장 안쪽이다. 혹여나 실례를 저지르지 않도록 조심하거라.”
“아! 네. 감사합니다.”
고개를 꾸벅이고 지나가려는데 추오명이 다시 소종천을 불러 세웠다.
“소종천.”
“옙!”
“으음.”
추오명은 잠시 말을 망설였다.
‘이 녀석. 뭔가 변한 것 같은데, 그게 뭔지 잘 모르겠군.’
매일 오전 행해지는 정기조례에서는 신경을 쓰지 않아 몰랐는데, 권법 수업에 들어왔던 며칠 전과는 묘하게 달라진 듯한 느낌이 들어 무심코 다시 불렀다.
그렇지만 무공을 사용하는 모습을 직접 본 것이 아니기에, 아직 절정의 벽에 닿지 못한 추오명은 소종천의 변화를 정확히 알아볼 수 없었다.
내공이라는 본질적인 부분이 달라졌지만 설마 그 짧은 시간에 심법의 교체에 성공했을 것이라고는, 그 역시 생각이 미치지 못한 것이기도 했다.
“……권법의 수련에 막히는 부분이 있어 지도나 조언 같은 것이 필요하다면, 따로 이곳으로 찾아와도 좋다.”
그렇기에 대충 다른 이야기를 꺼내 용건을 돌렸다.
“예? 아, 감사합니다.”
“흠흠! 지난번 수업에서의 비무는 나쁘지 않았다. 인내하다 보면 결국에는 기회가 찾아오는 법이지. 계속 정진하도록.”
“예!”
소종천은 인사를 나누고 추오명에게서 멀어졌다.
딱히 영양가 있는 대화를 나눈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뭔가 인정을 받은 느낌이라 기분이 나쁘지 않다.
‘안 좋게 찍힌 것 같아서 불편했었는데, 그래도 조금 다시 보게 됐다는 건가? 뭐 평가가 오른다면야 좋은 거지. 아! 저긴가 본데?’
가벼운 발걸음으로 이동하던 소종천은, 목적지에 가까워졌음을 깨닫고 속도를 줄였다.
지나치면서 본 다른 숙소들보다도 더 크고 고급스러워 보이는 장소가 눈에 들어왔다.
뽑기로 무림최강 16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