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151
61. 호북성 무한(3)
호북성에는 양대산맥이라 할 수 있는 두 곳의 거대세력이 존재한다.
연맹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지닌 대문파인 무당이 그중 첫째요, 박학다식하고 지적 능력이 뛰어난 것으로 유명한 인재들을 많이 배출하는 제갈세가가 두 번째이다.
물론 실질적인 무력은 현 무림에서 최고의 성세를 유지하고 있는 문파인 무당파가 훨씬 앞서고 있긴 하다.
하지만 제갈세가는 무림에선 드물게 무력만으로 영향력을 전부 평가할 수 없는 세력 중 하나다.
뛰어난 두뇌를 타고나는 혈통을 바탕으로 관직에 진출하는 인재가 많아, 관부와도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가문이기 때문.
호북성의 전역의 이권에 넓게 개입하고 있는 무당파와 비교하면 반도 되지 않는 수준이지만, 제갈세가는 여타 중소문파들과 비교하자면 충분히 높은 위상을 가지고 있는 명가이기도 했다.
그런 제갈세가의 출신으로 나름 호북 일대에 명성을 알려가고 있던 무인인 제갈진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매우 당황한 상태였다.
‘적어도 나와 동급에 속해 있는 무인!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저만한 내공을 가졌다니, 도대체 누구지?’
제갈진은 자신의 일행인 송서범과 시비가 붙은 젊은 무인을 바라보며 미간을 좁혔다.
삼십 대 후반의 나이로 최근 절정의 경지에 오른 제갈진은, 세가의 무학을 공부하는 혈족들 중에선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이다.
사실 하나의 대형세력에서 밀어주는 인재로 온갖 지원을 받은 것에 비하면, 서른 후반에 절정의 경지에 입문한 것은 대단한 성적은 아니었다.
그저 간신히 한 세가를 대표할 만한 무재이구나 하는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정도.
다른 명문무가들 중에서 그런 지원을 받는 위치에 있는 인물의 경우 빠르면 서른 초반, 아주 드물게 스물 후반에 절정에 오르는 무인이 나오기도 한다.
그래도 순수무가가 아닌 제갈세가에서 이만하면 충분히 뛰어난 무인을 배출했다고 할 수 있다.
다른 거대문파들의 유망한 후기지수들과 비교하면 조금 밀리는 감이 있지만, 제갈세가의 사람들이 오성에 비해 근골은 썩 대단치 않은 혈통임을 감안하면 만족스러운 수준.
실제로 세가 내에서는 마흔을 넘기 전에 절정에 오른 것을 두고, 원로직에 있는 웃어른들에게 제법 칭찬을 받기도 했다.
‘빌어먹을! 이놈의 세상엔 왜 이리 재능 넘치는 놈들이 많은 건지.’
하지만 제갈진은 자신의 무재에 그리 만족감을 느끼지 못했다.
당장 같은 성내에 자리 잡은 무당파에만 해도, 그와 비교할 만한 재능을 지닌 이가 여럿 있었기 때문.
연맹의 호북지부에서 어떤 행사가 있을 때마다, 제갈진은 무당의 무인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열등감에 사로잡혀야 했다.
평소에 항상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던 제갈진이니, 자신보다 한참 어려 보이는 소종천의 실력 행사에 마음이 불편할 수밖에 없었다.
‘어디서 온 놈이기에 벌써 절정의 경지를…….’
외부로 내력을 발산해 주변 사물을 흔들리게 만들 수 있을 정도라면, 필시 절정의 경지임이 틀림없다.
얼마 전 절정의 벽을 넘어서며 직접 여러 가지 내력의 운용 방식을 실험해 봤기에, 제갈진은 소종천이 자신과 동급의 무인이라 확신했다.
사실 소종천은 억지로 내력을 뿜어내 지금의 현상을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그저 막대한 내력을 운용하며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기의 흐름으로 주변을 뒤흔든 것이긴 하다.
하지만 제갈진은 상대가 설마 초절정의 무인일 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고, 어려 보이는 외모에 내심 확연히 높은 경지는 아닐 것이라 여기며 소종천을 자신과 같은 절정 초입쯤으로 판단했다.
뛰어난 두뇌로 유명한 제갈세가의 인물치고는 너무나도 일차원적인 생각.
다른 문제에 관해서였다면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겠으나, 제갈진은 그만큼 본인보다 뛰어난 무재를 가진 존재에 대한 거부감에 휩싸여 있는 인물이었다.
제갈진은 바닥에 넘어져 허둥거리는 송서범을 붙잡아 뒤로 넘기고, 소종천과 똑바로 시선을 마주했다.
“실례했군. 이 사람이 술이 과해 실수를 한 모양이오. 기분을 상하게 했으니 사죄의 의미로 그쪽의 술값은 내가 계산하리다.”
“그게 그쪽에서 내놓을 수 있는 대가의 전부인가? 많이 부족해 보이는데.”
“흠! 본인은 제갈진이라 하외다. 뛰어난 후배님의 성에 차지 않을지 모르지만, 이 몸의 얼굴을 봐서 이번 일은 좋게 넘어가 주는 것이 어떻겠소?”
이름을 밝힘으로써 자신이 제갈세가의 사람임을 알렸다.
제갈진은 상대가 분명 뛰어난 명문의 수제자일 거라 예상했지만, 거대한 배경이라면 이쪽도 꿀리지 않으니 적당히 사과를 받아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것은 큰 오판.
힘없던 시절이라면 모를까, 소종천이 대형세력을 등에 업은 인물이라고 좋게 봐주고 넘어가는 성향은 아니다.
“뭐래? 아저씨 나랑 아는 사이야? 언제 봤다고 얼굴 타령하면서 봐달라고 그래?”
“뭣…… 좋은 말로 넘어가려 했거늘 무례한 자로군! 사소한 문제를 굳이 더 키우려 하다니, 지금 제갈세가의 이름을 모욕하자는 것인가?”
“아니, 넘어가고 말고는 피해자인 우리가 정할 일이라는데 무슨 놈의 모욕은 모욕이야? 그리고 방귀 뀐 놈이 성낸다더니, 왜 그쪽에서 자꾸 목소리를 높이고 지랄이신지?”
“지, 지랄? 이런 방자한 놈이! 대체 어디의 문하기에 무림의 선배를 두고 그따위 태도를 보인단 말이냐!”
권주를 마다하고 벌주를 받겠다는데, 더 말로 풀어야 할 이유가 없다.
발끈한 제갈진의 손이 빠르게 움직이며 소종천의 가슴팍을 향해 쏘아졌다.
제갈세가의 무공 중 하나인 소천성장이란 이름의 장법이 펼쳐진 것.
‘이놈! 내공은 절정에 닿았을지 몰라도 실전경험은 아직 부족할 터. 첫수에 주도권을 가져와 유지하기만 한다면, 동급의 경지라 해도 어렵지 않게 제압할 수 있을 것이다.’
어느 상황에서나 전투에서 선공을 취하는 것은 큰 이점을 가지기 마련이다.
절정의 무인쯤 되면 후발선제의 이치를 담아낸 무공을 펼칠 수도 있긴 하지만, 제갈진은 상대가 그만큼 고차원적인 묘리를 다룰 만큼 스스로의 경지에 완숙한 무인은 아닐 것이라 판단했다.
피리릭!
짧은 순간 수차례의 변화를 보이며 나아간 제갈진의 장심이, 소종천의 가슴 사이에 위치한 옥당혈의 지척까지 다가갔다.
‘반응이 늦군. 역시 운 좋게 내공만 불린 애송이었나.’
과하게 경계할 필요가 없는 상대였던 모양이라는 생각을 떠올릴 때쯤.
소종천의 팔이 움직였다.
“헛!”
상상을 초월한 속도로 튀어나와 자신의 공격을 쳐내려는 손의 움직임에, 제갈진은 깜짝 놀라 투로를 수정하며 무공에 변화를 일으켰다.
응혈신조.
제갈세가가 자랑하는 금나수법이 펼쳐지며 소종천의 팔을 잡아채려 했다.
팔꿈치 위의 맥에 위치한 협백혈을 움켜쥐어 움직임을 봉쇄하려는 순간, 소종천의 주먹이 반 바퀴 회전하며 제갈진이 인지하기 어려운 가속을 이루어냈다.
퍽!
“커윽!”
코끝에서 느껴지는 화끈한 통증에 반사적으로 비명을 내뱉으며, 제갈진은 화들짝 놀라 다급하게 뒤로 물러났다.
이내 수치심을 느낀 제갈진의 얼굴이 형편없이 일그러졌다.
‘이게 무슨!?’
제갈세가에는 천기신행이라 하여, 순간적인 회피에 우월한 성능을 보이는 뛰어난 독문신법이 존재한다.
하지만 방금의 주먹질은 그런 신법을 펼쳐 피해낼 수도 없을 만큼 신속하기 짝이 없는 공격이었다.
움직임을 정확히 인식하기도 전에 타격을 허용할 정도였으니, 신법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말도 안 되는! 저 나이에 절정이란 것도 믿기 어렵거늘, 설마 초입이 아닌 상위에 속한 수준이란 말인가!?’
비록 경지에 들어선 지 얼마 되지 않았다지만 자신이 이렇게 밀릴 정도라면, 상대는 예상과 달리 초입은커녕 중간 단계의 경지도 아니라고 봐야 한다.
완전히 무르익은 절정의 경지.
무림 전체에 명성이 알려져 있을 만한 명숙의 반열에 든 무인인 것이다.
‘하지만 그럴 리가…… 많이 쳐줘도 나보다 열 살 이상 어려 보이는 자가 대문파의 장로급의 실력자일 리 없다. 필시 사마외도의 사술일 것이야.’
제갈진은 자신의 판단을 부정했다.
이해를 벗어난 무위는 정도를 벗어난 사술로 치부되었다.
‘사술은 대부분 한순간의 속임수나 마찬가지인 비정상적인 수법. 정상적인 무공이 아닌 만큼, 몇 번씩 사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이다.’
이를 악문 제갈진이 다시 한번 소종천을 향해 달려들었다.
그런 그를 마주하며 차가운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던 소종천이, 팔을 쭉 뻗은 채로 주먹을 들어 올렸다.
딱히 견제를 위한 자세라거나 무공의 기수식이라 생각하기 어려운 엉뚱한 모양새.
“크읍!”
무슨 장난질인가 싶어 의아해하던 제갈진은 이내 복부를 움켜쥐고 바닥을 굴러야 했다.
8성의 성취까지 오르게 되며 이제는 다섯 걸음쯤 떨어진 곳까지도 권력을 방출할 수 있게 된, 소종천의 백보신권에 당한 것이다.
‘무, 뭐였지? 암기는 아니었는데…… 아, 격공? 격공권이란 말인가?’
셀 수도 없이 많은 무공이 존재하는 무림에서도, 허공을 격하여 상대방에게 타격을 주는 격공의 이치를 담은 무공은 굉장히 적다.
설마하니 상대가 격공권이라는 상승의 묘리를 다룰 정도의 무인일 줄이야.
불현듯 자신보다 뛰어난 무재를 지닌 이를 시기하느라 흐릿해져 있던 머릿속이 맑아지며, 하나의 소문에 관한 것이 떠올랐다.
‘절정급인 내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할 정도의 무위에, 어려 보이는 외모와 수준 높은 권법…….’
최근 사천을 중심으로 중원 전역에 퍼지기 시작한, 믿기 어려운 소문의 주인공.
“권괴?”
“뭐? 웅얼거리지 말고 제대로 말하지?”
“아, 그…… 혹시 멸악권괴…… 소종천 노사님이십니까?”
제갈진은 설마 하는 심정으로 떠듬거리며 질문을 건넸다.
노사라고 불릴 나이도 아니고 별호 역시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자신에 대한 호칭임을 알아들었기에 소종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소종천인 건 맞지.”
반로환동이란 오해를 부정하지 않고 계속 이용해 왔으니, 어르신 대우가 거슬리긴 해도 긍정해야 했다.
소종천의 대답에 제갈진의 안색이 핼쑥해졌다.
‘큰일이다! 건드려선 안 될 사람을 건드렸구나!’
아무도 이름을 모르던 은거기인에서 무림에 새로 등장한 초절정 무인으로, 그간 무수한 인명피해를 만들어냈던 오악의 마인들을 셋이나 해치웠다고 알려진 소종천이다.
연맹에 합류했다는 소문만 있지 공식적인 활동이 없어, 실물을 마주하고도 알아보는 것이 너무 늦어버렸다.
‘청년의 모습이라는 소문만 무성하지, 눈에 띄는 인상착의가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았으니. 제길…… 어쩌면 좋지?’
처음에는 주제도 모르고 헛소리를 하는 애송이들에게 훈계를 한다고 나선 친구로 인해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이내 실력은 있었지만 건방진 어린 후배 놈이라 인식하게 되어, 자신을 모욕한 대가를 치르게 해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정반대였다.
소문대로라면 상대는 무려 초절정의 무인이며, 자신보다 몇 배분은 위에 있는 대선배격인 인물.
지나가다 이유 없이 뺨을 맞아도 고개를 숙여야 할 판인데, 이쪽에서 먼저 시비를 건 것이 되었으니 어떻게 일을 해결해야 할지 감도 잡히질 않았다.
“무림말학 제갈진이 위명이 쟁쟁하신 멸악권괴 어르신을 뵙습니다! 고인을 몰라보고 무례를 저질렀음을 용서해 주십시오!”
세가의 태상가주조차 존대를 해야 할 인물이니, 일단은 무조건 몸을 굽히고 잘못을 빌어야 했다.
단지 배분만 높은 것이 아니라 초절정의 경지로 실질적인 무력도 엄청난 무인이니, 결코 원한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되는 인물인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제갈진은 방금까지의 태도를 완전히 걷어치우고, 소종천에게 향해 무릎을 꿇고 바닥에 머리를 박았다.
‘흠. 이러면 또 마냥 두들겨 패기가 좀 그런데.’
자신을 알아보고 엎드려 절을 하니, 기분이 상했다고 해서 계속 화를 내기가 머쓱해졌다.
사죄하는 제갈진을 앞에 두고, 소종천은 조용히 뺨을 긁적거렸다.
뽑기로 무림최강 15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