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152
62. 소림사
‘짭짤하니 좋구만.’
넉넉하게 채워진 전낭의 무게감에 만족하며 소종천은 밝은 미소를 지었다.
호북성 제일문파의 자리는 무당파에 내주었지만, 그래도 확고한 2등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제갈세가의 자금력은 대단했다.
뛰어난 머리를 이용해 정계는 물론 상계에도 꽤 깊게 관여하고 있는 제갈세가는, 오히려 재정의 튼실함에 있어서는 무당파보다 앞서는 부분도 있다.
거기에 처음 시비를 걸었던 송서범도 꽤나 알아주는 상가의 자식이었고, 뒤에서 구경하고 있던 다른 동료들도 돈 나올 구석은 충분한 신분의 사내들이었다.
소종천은 자신의 일행들이 하루를 더 휴식하는 동안, 이번 일과 관계된 자들을 쫓아다니며 상당량의 금자를 뜯어낼 수 있었다.
체면을 목숨처럼 중시하는 무림인들은 상호간의 배분을 따지는 데에 민감하다.
사소한 시비와 말 한마디 때문에 은원이 생기고, 심심치 않게 칼부림이 벌어지며 쉬이 목숨이 날아가는 세상.
이번 사태는 제갈진과 그의 친구들이 무림의 큰 어르신(?)에게 결례를 범한 것이니, 그에 걸맞은 배상을 해야 하는 것이 당연했다.
대부분 이런 상황이면 그쪽 가문의 어른들 중 비슷한 배분의 인물이 나서서 정식으로 사과하고, 적당히 선물을 안겨주며 관계를 마무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소종천은 말뿐인 사과와 현물 배상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야, 돈 내놔.
-예?
-돈 내놓으라고.
-드, 드리겠습니다.
노골적으로 금전을 요구하는 소종천의 행동에 상대측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전부 당황했다.
초절정 고수라는 초인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보일 만한 행동은 아니었기 때문.
이제 막 무림에 명성이 퍼지고 있는 소종천이지만 그 배분은 대형문파의 장문인들에게 뒤지지 않으니, 대충 체면치레로 넘어가려 했던 상대측은 막대한 지출을 감당해야 했다.
그렇게 뜯어낸 돈이 조금 과장을 보태 중소규모 문파 하나의 몇 달 치 운영 예산에 맞먹는 수준.
‘돈 벌기 쉽네. 생활비만 조금 남겨두고 심 사형에게도 맡겨볼까? 이 정도면 하는 일에 꽤 도움이 될 수 있겠지.’
강호에 퍼지는 소문에 위신을 모르는 돈벌레라는 말이 추가될지도 모르지만, 소종천은 그딴 것쯤 아무래도 좋았다.
물론 자신은 새로 만들어진 소림의 홍보대사 같은 입장이니 명성 관리에 신경 써야 하긴 하겠지만, 어차피 심익한이 원한 것은 무력에 관한 명성이지 덕 높은 인격자로 칭송받길 기대하진 않았을 것이다.
주먹질로 끝날 일을 넘기고 이만큼 돈을 벌었으면 남는 장사다.
‘서향이를 포함해 문파에서 제자를 받아 키우려면 자금이 꽤 필요할 테니. 가는 길에 선물을 마련할 기회였다고 생각하면 좋지 뭐.’
작은 사건이 있었지만, 결과가 좋았으니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푹 쉰 일행들을 챙긴 소종천은 다시 여정길에 올라섰다.
* * *
중원에는 기암절벽으로 구성되고 산세가 험준하기로 유명하여 5대 악산이라 칭해지는 산들이 있다.
그중에서 다른 악산들의 중앙에 있다 하여 중악이라 불리는 곳.
하남성 등봉시 북쪽에 위치한 숭산.
불교의 발상지이자 소림사가 위치한 성지인 숭산을 오르며, 소종천은 후련하다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여기만 오르면 끝이구만.”
많은 우여곡절을 겪으며 중원대륙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몸은 멀쩡하지만, 하루 이틀도 아니고 한 달 이상에 걸친 여정이었기에, 정신적으로 조금 지치는 느낌이다.
‘즐길 거리가 부족한 세상이라 너무 지루하단 말이지.’
아무튼, 목적지인 숭산에 도착했으니, 당분간은 심익한이 재건한 소림 무문에 머무르며 휴식을 취해야겠거니 싶었다.
세 개의 큰 봉우리로 산세를 형성한 숭산은 동쪽의 태실봉과 가운데의 준극봉, 마지막으로 서쪽의 소실봉으로 나뉜다.
소종천의 목적지인 소림모찰이 위치한 곳은 그중 소실봉(少室峰).
애초에 소림사(少林寺)라는 이름의 연원 자체가, 소실봉 북쪽 숲속에 위치한 절이라 하여 그렇게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봉우리를 오르는 길은 과연 악산이라 불릴 만큼 가파른 것이, 실수로 길을 잘못 들었다가 발이라도 헛디디면 큰 사고로 이어질 것으로 보였다.
“이 정도면 오르락내리락하는 것만으로도 수련이 되겠구만.”
“그래도 통행자가 많은 곳이라 그런지 다행히 길은 잘 다듬어져 있소.”
“이렇게라도 관리가 되어 있지 않았다면 오가는 사람 여럿은 죽었겠지.”
소종천 일행은 주변 풍경들을 감상하며 천천히 산을 올랐다.
중원에 불교 신자가 한둘이 아니니 자연히 숭산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은 하루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
그렇기에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오갈 수 있도록 길이 잘 만들어져 있어, 험한 산길이라도 부주의한 행동만 하지 않으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무공을 모르는 일반인이 섞여 있고 여태까지처럼 마차를 이용할 수 있는 길이 아니니, 자연스럽게 일행들의 속도는 느릴 수밖에 없었다.
“어머님, 제가 업어드릴게요.”
“어이구, 아녀 아가씨. 불가에 귀의하려고 찾아온 사람이 이런 곳을 몸 편히 지나가려고 하면 쓰나.”
“아……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소종천을 비롯해 무공의 고수인 동료들의 도움을 받으면 아무리 험한 산길이라도 순식간에 올라갈 수 있겠지만, 모친의 뜻이 저러하니 어쩔 수가 없다.
‘여기까지 와서 급하게 행동할 필요도 없으니 괜찮다만.’
주위를 둘러보자 불교의 성지답게 승려의 차림새를 한 사람들이 많이 보였다.
숭산을 대표하는 절이 소림사라지만 그 외에도 크고 작은 절들이 각 봉우리마다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이들 중 정식으로 입적한 승려만 만 명 단위에 이르고, 외부에서 불공을 드리고자 찾아오는 이도 상당할 터.
눈이 닿는 곳마다 매끄러운 두피가 보이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민머리 대머리 맨들맨들 빡빡…….”
“음? 뭐라고 한 것이오?”
“뭔가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 들리네. 종천, 기분이 좋은 모양이야?”
“아, 아무것도 아냐. 신경 꺼라.”
자신도 모르게 여러 사람들에게 즐거움 혹은 슬픔을 느끼게 만들어준 노래를 흥얼거렸다.
‘입조심해야지. 매번 입이 말썽이라 일을 만들었으면서, 이게 참 안 고쳐진단 말이지.’
이쪽 세계의 언어가 아니었기에 아무도 못 알아들어서 다행이다.
남은 인생을 절에서 봉사하며 살겠다는 뜻을 밝힌 모친이 알아들었다면, 스님들을 모욕한다고 크게 한 소리 들었을지도 모르겠다.
간간이 여러 갈래의 갈림길이 있었지만 표지판이 잘 세워져 있었기에, 일행들은 방향을 헤매지 않고 나아갈 수 있었다.
어느덧 산행도 끝을 보이고, 소림사라는 글자가 음각된 현판이 걸린 거대한 입구가 일행들을 맞이했다.
“굉장히 크네.”
“괜히 가장 유명한 사찰인 게 아니구나.”
안으로 들어서자 거대한 전각과 승방으로 가득한 공간이 눈에 들어온다.
어디로 가야 하나 싶어 두리번거리며 걷고 있자니, 중년의 스님 한 분이 다가와 일행들에게 말을 걸었다.
“시주님들. 이쪽으로는 외부인의 입장이 제한되어 있습니다. 공양을 드리러 오셨다면 따로 법당이 마련되어 있으니, 제가 그리로 안내해 드리지요.”
“아, 저흰 소림 무문을 찾아왔는데요. 어디로 가야 합니까?”
“소림 무문……? 허허,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군요.”
“엥?”
승려의 반응에 소종천은 말문이 막혔다.
분명 심익한이 본산으로 가서 재건 활동을 벌인다고 했었는데, 어찌 이곳 생활을 하는 스님조차 못 알아듣는단 말인가?
“아니, 그…… 심익한…… 이 아니고. 뭐였더라? 아! 백거라는 법명을 쓰는 분이 여기 안 계십니까?”
당황해서 더듬거리던 소종천은 간신히 심익한의 법명을 떠올리고 다시 질문을 건넸다.
그런데 소종천의 말을 들은 승려가 표정을 굳히며 뭔가 불편한 듯한 기색을 드러냈다.
“허흠! 백거라 하셨습니까? 쯧…….”
가볍게 혀를 찬 승려는 이내 고개를 살짝 가로젓고는 일행들을 안내했다.
“이쪽으로 오십시오.”
“음. 네…….”
알 수 없는 반응에 소종천은 의아해하며 일행들과 함께 그 뒤를 따랐다.
‘승려들이 굉장히 많은 곳인데도 법명을 바로 알아듣는 걸 보면 사형이 잘 활동하고 있긴 한 모양인데, 왜 소림 무문은 몰라? 생각보다 뭔가 잘 안 되고 있는 건가?’
이름을 듣자마자 보인 불쾌해 보이는 태도도 그렇고.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여러 가지 의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심익한이 다른 승려들을 상대로 무슨 사고라도 친 걸까 생각하며 머리를 긁적이던 소종천은, 이내 아담한 크기의 사찰 한 곳 앞에서 걸음을 멈추게 되었다.
“백거 스님은 이곳에서 ‘홀로’ 생활하고 계십니다.”
어째 혼자라는 것을 강조하는 억양이라 잠깐 의아했지만, 소종천은 가볍게 고개를 숙여 인사를 전했다.
“안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험! 별말씀을.”
혹시나 다른 스님과 혼동하여 잘못 안내해 주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했었는데, 사찰 안쪽에서 익숙한 기운이 느껴졌기에 바로 걱정을 접었다.
“사형! 저 왔습니다!”
안으로 들어서며 목소리를 높이자, 곧바로 반가운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제! 와주었는가? 음? 어째 동행이 늘었구먼그래.”
“그렇게 되었습니다. 아, 이분은 제 어머니신데요.”
“이런! 빈승은 백거라 합니다. 소 사제에게 많은 도움을 받는 부족한 몸이지요.”
“아이고, 이를 어쩌면…….”
소종천에게 사형을 만나러 간다고만 들었지 자세한 설명을 듣지 못했던 모친은, 젊은 승려를 예상했다가 나이 지긋한 고승처럼 보이는 심익한을 마주하고 당황해하며 인사를 나눴다.
“그리고 이쪽은 과거 대를 이어 소림 무문의 속가제자로 지냈다는 백씨 집안의 사람들입니다.”
“백무종이라 합니다, 스님.”
“백서향…….”
“이 녀석아, 자신 있게 말해.”
70대의 노승인 심익한을 대하기가 어려운지 쭈뼛거리는 백서향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있자니, 반색한 심익한의 살짝 높아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오! 이런 깊은 인연이 있나! 사제는 역시 대단하군. 과거의 소림과 관계된 사람을 찾아내기가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
“그냥 우연히 만났는데요.”
“허헛! 겸양하는 모습까지. 무위가 높아지니 마음가짐도 달라진 건가? 좋은 태도일세.”
“예, 뭐…….”
좋게 포장해주는데, 아니라고 화를 낼 수도 없는 노릇이라 머쓱해하며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그쪽의 여아는…… 으음, 혹시 본문의 무공을 익혔는가?”
백서향에게 시선을 준 심익한의 눈이 가늘어졌다.
무공을 익히면 몸이 변화하기 마련이니, 아직 미약한 내공과 낮은 성취의 권법이라 해도 조금쯤 티가 나게 된다.
수준이 낮아 아직은 일반인과 비교해 미세한 차이를 보일 뿐이지만, 절정급인 심익한의 눈을 피할 수는 없는 노릇.
속가제자 집안의 아이라 하니 소림의 무공을 익혔냐고 묻는 것도 자연스러운 질문이다.
다만, 그 질문을 꺼내는 모습이 어째 달가워하는 느낌은 아니었다.
‘역시 여자아이인 게 걸리는 건가.’
탐탁지 않아 하는 심익한의 모습에, 소종천은 그를 설득하기 위해 머리를 굴려야 했다.
뽑기로 무림최강 15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