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153
62. 소림사(2)
원래 속가제자에게 전수한 무공이라 하여도, 그 무공을 본산의 허가 없이 자식에게 가르치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물론, 어지간한 결격사유가 있지 않고서야 대를 이어 사문의 무공을 익히는 것을 허락해 주지 않는 경우는 없지만, 그 대상이 여성이라면 이야기가 또 달라진다.
다른 문파는 몰라도 소림의 무공은 남성만 익히는 것이 오랫동안 굳어져 있던 규칙.
소림의 무공은 불가의 가르침이 동반되어야 하는 것인데, 남녀를 한데 묶어 지내게 하면 공부에 방해가 되는 것은 말해봐야 입만 아픈 일이다.
그렇기에 소림 본산의 심처는 예전부터 금녀의 구역인 곳이다.
여성이라 하여 체질적으로 소림의 무공을 익히지 못하거나 하는 건 아니긴 하지만, 관습이 그러하다 보니 자연히 속가에서도 여식에게 무공을 전수하는 것은 금지되어 있었다.
“으음. 사제도 알겠지만 소림은 본디 여성 제자를 받지 않는 것이 원칙이었네만. 그것은 속가제자라 해도 예외가 아닐세.”
“죄, 죄송합니다. 스님. 허가되지 않은 일인 줄 모르고 딸에게 무공을 전한 것은 제 잘못입니다요.”
질책하는 듯한 분위기에 백무종이 겁먹은 표정으로 자신의 딸을 몸으로 가리며 나섰다.
백무종은 소림무문이 망한 탓에 가문에 전해진 무공조차 제대로 전수받지 못했다.
지금은 그마저도 몸이 망가져 쓸 수 없지만, 그래도 하급 무사로나마 무림 생활을 경험했던 그가, 대문파의 엄한 규율에 대해 전혀 몰랐다고 하면 거짓말일 터.
하지만 먹고 살기도 힘든 상황 속에서, 자식에게 무언가 하나라도 더 가르치기 위해 애쓴 것을 잘못이라고 하기도 어렵다.
애초에 허가를 요청할 본산문파가 사라진 마당에 그런 걸 따지는 것도 우스운 일이지 않은가.
“사형.”
소종천이 나지막하게 심익한을 부르자, 그는 표정을 풀고 백무종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알았네. 지난 일은 말 그대로 지나간 일일 뿐이지. 문제 삼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게나.”
“아…… 감사합니다, 어르신. 감사합니다!”
“허허허.”
옛날 같으면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겠지만, 지금은 오래된 규율을 하나하나 깐깐하게 따질 만한 상황이 아니다.
게다가 조금 독특하긴 해도 그에게 있어 가장 믿을 수 있는 아군인 소종천이 데려온 사람들이지 않은가?
본산제자의 경우라면 물론 여아를 받아들일 수는 없겠지만, 속가제자에 관해서는 소종천의 체면을 생각해서라도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다.
‘소 사제도 생각이 있어서 이들을 데려온 것이겠지. 속가제자라도 본산에 잠시 머무르며 가르침을 받는 경우가 없진 않으니.’
당장 본산제자조차 한 사람도 없는 마당이니, 여성 속가제자가 입산하여 공부를 한다고 문제될 것은 없긴 하다.
소림무문의 권역 안이라 하여도 다른 승려들의 눈치가 있으니 이곳에서 숙식을 시킬 순 없겠지만, 어차피 사원 외부에는 남녀를 가리지 않고 수행을 위해 산을 오른 이들이 모여 사는 장소가 많이 있다.
그런 곳에 적당히 거처를 마련해 주면 약간 번거롭긴 해도, 여기까지 오가는 것이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다.
“아이야. 이름이 백서향이라 했더냐?”
“네.”
심익한은 백서향의 눈빛에 총기가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든다는 듯이 미소를 지었다.
‘재건 활동에 온 힘을 다하고 있다지만, 아직은 소림무문의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상태. 본산을 찾아와 제자가 되고자 하는 이가 없을 수밖에 시기이니, 속가제자 하나라도 잘 키워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야.’
근골도 저만하면 나쁘지 않고 눈빛도 또렷한 것이 꽤나 총명해 보이는 아이다.
몇 대에 걸쳐 소림과 인연이 있었다는 점도 가산점을 줄 만하고, 여자아이라는 점만 제외하고 보자면 충분히 제자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본산제자를 키우는 일은 문파의 미래를 지탱할 기반을 만들어나가는 매우 중대한 사항.
그리고 속가제자의 육성 또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다.
사실상 특별한 일 없이는 본산을 떠날 일이 많지 않은 직계의 제자보다는, 외부에서 활동하는 속가제자들이 문파의 이름을 알리는 측면에서 더 영향력이 크기도 하다.
“그래. 어떤 무공들을 배웠는고?”
“불광심법과 소림오권, 그리…… 그렇게 익혔어요.”
새로 배우고 있는 심법이 또 있기는 하지만, 백서향은 소종천이 눈짓으로 어떠한 신호를 보내는 것을 보고 눈치껏 입을 다물었다.
백서향의 말을 들은 심익한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엄숙한 분위기를 풍기며 입을 열었다.
“본승 백거가 현 소림무문 방장의 권한으로, 속가제자 백서향에게 전수된 본문의 무공이 정당한 자격을 지녔음을 인정한다.”
“흐흐. 감사합니다. 사형.”
“되었네. 여아를 제자로 받아들인다는 것이 조금 당황스럽긴 하지만, 사제의 말대로 우리가 만들어갈 문파는 과거와 다른 새로운 소림인 것이니. 옛 규율들에 너무 사로잡혀 있지 않은 편이 낫겠지.”
“그럼요.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남녀차별을…… 아니, 그런 시대이긴 하구나. 크흠! 아무튼…… 서향이를 잘 부탁합니다. 굉장히 똘똘한 아이예요.”
“고얀 사제 같으니. 이곳에 데려온 것을 보고 짐작은 했네만, 역시 내게 무공을 가르치도록 떠넘길 생각이구먼?”
“저야 뭐, 외부에서 열심히 활동해야 하니 말이죠. 이 녀석은 재능도 있고 열의도 가졌으니 키우는 맛이 있을 겁니다. 아마 조만간 반야신공도 습득할 수 있을 거구요.”
“그렇군. 반야신…… 뭐? 자, 자네 뭐라고 했나?”
소종천의 말을 받아주던 심익한은, 순간 뭔가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물었다.
“설마 바, 반야신공을 전수했다는 말은 아니겠지?”
워낙에 심상치 않은 사안인지라 절로 말이 떨려 나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소종천은 그게 무슨 별일이냐는 듯이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네. 가르쳤는데요.”
“아니, 자네!?”
심익한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반야신공은 소림 최고의 절학이라 할 수 있는 무공.
본산에서도 장문제자나 십팔나한 정도의 위치에 있는 자들에게나 전수되는 비기 중의 비기다.
십팔나한은 각 대 항렬의 제자들 중 가장 뛰어난 자질과 올곧은 인성을 지닌, 엄선된 18명의 무승들을 말한다.
무림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외부로 자주 파견되는, 소림의 명성을 가장 널리 퍼뜨렸던 뛰어난 인재들.
그 정도는 되어야 반야신공을 배울 자격이 되는 것이니, 속가제자에게 전수한다는 것은 원래대로라면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뭘 그리 놀라십니까? 저 역시도 정식으로 계를 받아 입적하지 않은 속가제자인데.”
“그건 사제가 극히 특이한 경우일 뿐이지! 이건 너무 파격적인 일일세!”
눈을 크게 뜬 심익한이 백서향에게 손을 뻗어 맥을 잡았다.
“아…….”
“스, 스님!”
안절부절못하는 백무종의 부름을 무시하며, 심익한은 내력을 움직여 딱딱하게 굳은 백서향의 내부를 탐색했다.
반야신공을 익혔다면 특별한 성질의 내공이 느껴져야 하는데, 백서향에게서 그런 기운이 감지되진 않는다.
아무리 미미한 내공이라 해도 같은 심법을 익혔고 절정의 경지인 심익한이라면, 이리 집중해서 살피는데 반야신공의 기운을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다.
그렇다는 것은 아직 1성의 성취도 이루지 못하였다는 의미.
“하긴, 아홉 살이라 하였으니 벌써 성취를 보았을 리는 없겠군. 사제, 지금이라도 가르치는 것을 그만두게. 문파의 비기라는 것은 그리 가볍게 전해져서는 안 되는 것이야.”
“이미 구결은 전부 암기했으니 제가 더 가르칠 건 없습니다. 아시다시피 이제 성취를 보는 건 스스로의 공부에 달렸죠.”
“뭐라!? 이런…….”
반야신공은 워낙 난해하기 짝이 없는 무공이기에, 단순히 구결을 외우는 것만 해도 평범한 사람은 몇 달이 걸리기도 한다.
소종천과 백서향이 만난 것은 아직 한 달도 되지 않았다고 들었다.
구결을 다 전하지 않았을 테니 지금이라도 중단시켜야겠다고 생각한 심익한으로선, 골치 아픈 이야기가 아닐 수 없었다.
“사제…… 속가제자에게 비기를 전수하는 것은 엄하게 금지되어 있던 일일세! 예전이었다면 저 아이의 단전을 폐했어야 하고, 심하면 사지의 근맥까지 절단하는 엄벌이 내려졌을 것이야.”
다시는 내력을 쌓을 수 없도록 단전을 손상시키고, 팔다리조차 움직일 수 없게 만든다는 소리.
끔찍한 이야기에 백씨 부녀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특히 소종천을 믿고 딸의 미래를 위해 여기까지 찾아온 백무종은, 당장에라도 숨이 넘어갈 것 같은 표정으로 변했다.
소종천은 침중한 눈빛으로 심익한과 시선을 마주하며 입을 열었다.
“그러시지 않을 거라 믿습니다.”
“후우, 사제. 이건 정말 아닐세. 무분별한 전수는 문파의 비전들이 외부로 유출될 수 있는 가능성을…….”
“애초에 바보 같은 소리네요. 소림의 무공이란 것은, 이미 멸문의 과정에서 세상 여기저기에 뿌려졌던 것 아닙니까?”
“그것은…….”
정확히는 시중에 흘러다니는 것은 아니고 몇몇 대형문파들이 나눠 가진 채로 비고에 잠들어 있는 거지만, 틀린 말도 아니기에 심익한은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내로라하는 명문들이 연구했음에도 그네들의 무공과 결합하지 못하고 사장되었죠. 소림의 무공은 어차피 불법의 가르침이 동반되지 않으면 써먹지 못하는 것들이잖아요?”
“그렇긴 하네만.”
“그리고 불법의 교리는 인간의 근본적 아집으로부터 벗어나 부처가 되는 것을 궁극적인 이상으로 삼는 걸 텐데요. 대체 뭘 걱정하는 겁니까?”
“끄음…….”
비인부전(非人不傳).
인간의 됨됨이가 갖춰지지 않은 자에게는 가르침을 전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무림의 모든 문파들은 자신의 비전 무공을 아무에게나 쉬이 전수하지 않는다.
소림 역시도 마찬가지였지만, 소종천이 보기에는 별 의미 없는 규율이었다.
고르고 고른다고 해봐야 인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은 어디에나 꼭 튀어나오기 마련.
그리고 애초에 소림의 무공을 높은 경지까지 익히려면 불법을 제대로 공부해야 하기에, 악인이 될 가능성이 다른 곳들보다 훨씬 낮은 편이다.
‘뽑기로 무공을 익힌 나는 예외로 둬야 하지만. 그래도 뭐, 나도 그리 나쁜 인간은 아니지 않나? 크흠!’
소종천의 말에 심익한은 길게 침묵했다.
조금 전까지 신 소림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잘한 규율은 중요하지 않다고 말했지만, 속가제자에게 반야신공을 전수하는 것은 도가 지나쳤다고 여겼다.
그렇지만 사제의 말을 들어보니 그것 역시 괜한 고집이 아니었는가 싶기도 하다.
‘따지고 보면 계를 한번 어겼던 이 몸이 방장직을 수행하는 것도 규율에 크게 어긋나는 것이었지. 그런 주제에 규율을 따지는 것도 우스운 일이 아닌가.’
열을 낼 필요가 없는 일이다.
심경이 변화한 심익한은 백서향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무서운 소리를 해서 미안하구나. 늙은이가 괜한 소리를 했어.”
“아…… 네.”
“휴우!”
분위기가 바뀌었음을 직감한 백씨 부녀는 이내 안도한 모습으로 깊은숨을 내쉬었다.
“사제 말이 맞네. 이 아이는 내가 잘 키워보도록 하지. 이참에 속가니 뭐니 따질 것 없이 본산제자로 들이도록 하세나.”
“어? 그래도 됩니까?”
“방장이 직접 가르치는 이가 직계제자가 아닌 것도 이상하고, 본산제자는 하나 없이 속가제자만 두는 것도 우습지 않은가? 자네 말대로 옛날 규율 따위는 이제 잊어버리도록 하지. 배우고자 하는 이가 있다면 누구라도 가르침을 전하겠네.”
“배포가 커지셨네요. 하하! 좋습니다.”
어떻게 잘 설득되어 기대 이상의 반응을 끌어낸지라, 소종천은 기분이 좋아져 씩 미소를 지었다.
뽑기로 무림최강 15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