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154
62. 소림사(3)
그간 중원 각지를 돌아다니느라 여행은 질릴 만큼 했기에, 소종천은 며칠 더 숭산에 머무르며 모친과 백씨 부녀가 잘 자리 잡아가는지 지켜보기로 했다.
소림사 주변에는 승려가 아니어도 수행을 하고자 찾아온 이들이 만든 암자나 움막들이 널려 있었기에, 심익한이 나서주자 어렵지 않게 거처를 구할 수 있었다.
“해줄 수 있는 게 이 정도뿐이라서 미안하네. 마음 같아선 사찰 내에 머물게 해주고 싶네만…….”
“그게 뭐 사형이 미안해할 일입니까.”
소림무문의 방장이라지만 이미 한번 망해 버린 문파의 수장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았다.
과거 소림은 마인들과 무림인들의 혈전에 매번 앞장서며,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혁혁한 전공을 세웠었다.
이에 마교는 소림을 중원제패의 가장 큰 걸림돌로 여겼고, 천마 강사익을 필두로 몰려든 마교와의 총력전을 버티지 못하고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다.
당시 무공을 모르는 불문의 일반 승려들은 대부분 미리 대피를 해 있었기에 큰 피해를 입지 않았고, 전쟁통에 크게 손상된 사원을 복구하는 일은 그들의 노력이 있었기에 이루어질 수 있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자연히 소림무문의 입지는 크게 좁아질 수밖에 없었다.
누굴 탓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소림의 이름으로 된 사업체를 지켜줄 무문이 사라지다시피 했으니, 신자들의 기부금만으로 사원의 복구가 이루어져야 했다.
당장 대규모 공사를 할 수 있을 만큼 풍족한 상황이 아니었기에 복구는 십여 년에 걸쳐 천천히 이루어졌고, 재건 활동을 하던 무승들은 거대문파들의 외면에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야 했다.
그 과정에서 소림무문의 흔적들은 대부분 사라지게 되었다.
“이제 와서 뭐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지. 사실, 수십 년 만에 불쑥 찾아온 내게 무문 방장의 권한을 인정해 준 것만 해도 감지덕지였으니.”
방장실과 호법원.
무승들의 수련을 위한 나한전과 달마원.
경서와 비급이 모여 있던 장경각.
자운당, 계율원, 백의전 등 유명했던 전각들이 이제는 모두 사라지게 되었다.
중원 무림에 무승들이 싹 자취를 감추었으니, 새로 세워진 사찰들은 모두 일반 승려들을 위한 건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섭섭하셨겠네요.”
“우리 무문의 업보였으니 누굴 탓하겠나? 그나마 무문의 방장이라면 불문에서도 높은 법계를 인정해 주기에, 이렇게 한 자리라도 받아낼 수 있었다네.”
마음의 공부와 몸의 공부로 나눠진다지만 어쨌거나 불문과 무문은 한 뿌리.
수많은 무승들 중에서 최고위직인 방장의 제자였던 심익한은 불문에서도 입적의 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고, 무문의 방장직을 계승하겠노라 주장할 수 있는 자격이 충분했다.
다만 무문의 재건을 인정받았다 해도, 기존의 영역을 전부 되돌려 달라는 것은 무리한 요구일 수밖에 없다.
불문 사람들의 노력으로 복구한 건물들이었으며, 이미 그곳에 터를 잡고 생활하는 승려들이 있는 상태.
이제 와서 원래 무문의 땅이었다며 그들을 전부 퇴거시킨다는 것은 여러모로 말이 되지 않는다.
그렇기에 받아낸 것은 작은 사찰 하나.
‘예전 소림무문의 위상을 생각하면 수백 평짜리 펜트하우스에서 한 5평 원룸으로 옮긴 것보다 더한 수준이긴 할 텐데. 그렇다고 뭐라 따지고 들 수도 없긴 하겠네.’
그마저도 고작 홀몸으로 활동하고 있는 심익한에겐 과분하다 생각하는 승려들도 많은 모양이다.
하긴 아무리 작다 해도 수십 명의 불자들이 불공을 드릴 수 있는 사찰이다.
대부분의 승려들에겐 심익한의 존재가 못마땅하게 여겨지는 것도 당연한 일일 것이었다.
‘오래전에 가문을 떠난 사촌의 자식이라는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 집안 재산을 요구해 받아간 것과 비슷한 느낌이려나.’
그렇게 생각하면 처음 안내를 해줬던 스님의 태도도 이해가 간다.
어쩌면 그는 원래 이곳에 머물다가 심익한으로 인해 자리를 옮기게 된 스님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참…… 마음이 그러네요. 이 정도면 그냥 동네에 흔히 보이는 무관 수준인데.”
“어쩔 수 없지 않은가. 서향이를 시작으로 제자들을 잘 키워 천천히 세를 불려 나가는 수밖에 없겠지. 물론 당장 영역을 넓힐 방법이 있기야 하네만.”
“아, 그런 방법이 있습니까? 뭔데요?”
“당연히 돈이지 뭐가 있겠는가? 세상 대부분의 일은 돈으로 해결되기 마련 아니겠나. 값을 치르고 인수하는 게지.”
“……거참 맞는 말이긴 한데, 불제자의 입에서 나와도 되는 건가 싶네요.”
“크흠! 사제 앞이니 이리 말하는 게지. 민망하게 굳이 지적을 하고 그러나?”
불제자의 마음가짐을 전부 잊은 건 아니지만, 수십 년간 수왕채의 내정에 힘쓰며 이미회의 상단 운영에도 관여해 왔던 심익한이다.
재물을 멀리하는 것이 불가의 가르침이라 해도, 전능에 가까운 돈의 성질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는 삶을 살아왔다.
“흐흐. 그러고 보니 제가 모아온 돈이 조금 있긴 합니다만.”
소종천은 심익한에게 제갈세가와 기타 가문들에게서 뜯어낸 합의금을 넘겨주었다.
수왕채의 부를 사사로이 가져올 수는 없었기에 문파를 재건할 자본금이 부족했던 심익한에게, 소종천의 금전적 지원은 가뭄의 단비와도 같았다.
“이렇게나! 생각지도 못한 도움이군. 정말 고맙네!”
그렇지만 이것은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긴 하다.
소종천도 이제 연맹의 고위직이라 할 수 있는 자리에 오르긴 했지만, 사실상 이권에 관여할 수 없는 명예직이나 마찬가지인 자리.
물론 그렇다 해도 돈을 벌고자 하면 자기 한 몸 건사하기에 부족함 없이 벌어들일 수는 있겠지만, 마교 토벌의 목적을 뒤로하고 재물이나 쫓아다닐 수는 없다.
그래서야 썩어버린 연맹의 기득권 세력들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문파를 키우려면 자체적으로 수입이 발생하는 수단을 만들어야 한다.
“무문에서 돈을 벌어들일 수 있는 방법이라면 뭐가 있습니까?”
“으음…… 예전에는 속가제자를 두고 그들에게 받는 기부금만으로도 문파의 운영이 어느 정도 가능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만.”
무림 전체에서도 손가락으로 꼽아 셀 수 있을 만한 규모를 가진 대형문파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현시점의 소림으로는 불가능한 이야기.
“아무리 불가의 문파라지만 모든 것이 전부 기부금으로 운영되진 않았을 텐데요. 소림의 이름으로 된 사업체들도 있지 않습니까?”
“그건 그렇긴 하다네. 다만 이제는 우리가 소유권을 주장하기는 어려운 실정이지.”
문파가 망하면 기존의 사업체들은 당연히 와해되거나 다른 세력에게 흡수될 수밖에 없다.
다행스럽게도 소림은 그런 점에선 뒤탈이 생기지 않았다.
무문이 망했지만 같은 뿌리의 형제 격이라 할 수 있는 세력인 불문이 건재했기 때문.
같은 소림의 이름을 쓰기에 자칫하면 붕 떠버릴 수 있었던 사업체들을 수습하는 데에는 아무런 차질이 없었다.
다만, 그 사업체들을 기존처럼 유지하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
무력을 갖추지 못한 세력이 아무런 불협화음 없이 사업체를 굴릴 수 있는 세상이 아니다.
그것은 종교라는 체계를 통해 대중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불문이라 해도 마찬가지였다.
“알아보니 알짜라고 할 수 있는 사업체들은 대부분 지켜낸 모양이지만, 전부 다른 문파에게 운영을 위탁하고 있다고 하더군. 그것도 상당한 비율로 수익을 떼어가는지라 크게 남는 것도 아니란 말이지.”
“흐음.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겠네요.”
실질적인 무력을 가지고 있지 않으니, 지켜낼 힘이 없어 불공정한 계약을 해야만 했을 것이다.
그래도 아예 소유주의 권리를 빼앗기는 것보단 나으니 말이다.
“일단은 그 부분을 조정해 보기 위해 몇 번 이야기를 나누긴 했네만, 내 능력으로는 쉽지 않더구먼.”
“하남에 터를 잡은 문파라면…… 딱히 떠오르는 곳이 없네요. 어디랑 계약을 했답니까?”
소종천의 질문에 심익한은 복잡한 심정을 얼굴에 드러내며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무당일세.”
“엥?”
내뱉어진 말에서 미미하게 분노가 느껴진다.
소종천 역시 황당한 마음에 입맛을 다셨다.
‘이놈의 무당 종자들은 끼어들지 않는 구석이 없네. 또 이렇게 연관이 된다고?’
과거의 소림은 천하제일문이라는 명성에 부족함이 없는 문파였기에, 하남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며 유일한 대형세력으로 군림했었다.
그런 소림이 무너지자 무주공산이 된 하남에는 주변의 성에서 세력다툼을 하던 여러 문파들이 유입되었고, 그중에서 가장 빠르고 과감하게 행동을 한 것이 바로 무당파였다.
근거지인 호북성과도 가깝기에 무당은 하남에 재빨리 분파를 설립했고, 불문과 협상을 통해 알토란 같은 기존 사업체들의 운영에 간섭할 권한을 가져간 것이다.
한 곳에만 모든 걸 맡길 수는 없기에 다른 몇몇 세력들과도 계약을 했다지만, 들어보니 소림이 소유했던 사업체의 칠할 가량을 무당에서 굴리고 있다고 한다.
소유주를 넘긴 것은 아니기에 수익을 나누고 있다지만, 불합리한 비용을 관리비 명목으로 제하고 있어 사실상 거의 강탈당한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아주 생양아치 놈들이라니까.’
그래도 일단 소유 권한 자체는 남아 있으니, 이 부분을 잘 해결한다면 소림무문의 재건에 큰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되찾아와야 하겠군요.”
“쉽게 생각할 문제는 아닐세. 무당파가 호락호락한 놈들도 아니거니와, 운영 권한을 가져온다 해도 당장 우리에겐 마땅한 인력이 없지 않은가.”
“끄응. 그것도 그러네요.”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사업체를 완전히 되찾을 경우, 소종천이 가진 초절정 고수의 명성이 이들을 향한 범죄의 가능성에 큰 억제력을 가지긴 할 것이다.
하지만 결국 몸은 하나이기에 직접 움직여서 자잘한 부분까지 전부 해결해줄 수는 없을 터.
거기에 이미 오랫동안 사업체들의 운영을 대리해 온 무당파가 악의적으로 무언가 문제를 일으키려 한다면, 이쪽에서 대응하기도 쉽지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결국, 최선책은 운영은 이대로 맡겨두고 소림에서 거두는 수익 비율을 높이는 것뿐이겠네요.”
“원점으로 돌아온 이야기네만, 그걸 그치들이 받아들일 리가 없다는 걸세.”
“망할 놈들. 제가 어떻게든 방법을 마련해 보겠습니다.”
“으음. 너무 무리하지는 말게나. 나야 사제를 전적으로 믿고 있지만, 이번 일은 여러모로 해결하기 어려운 사안이니 말일세.”
“예 뭐, 무리야 안 하죠. 저도. 근데 무당의 분파가 어디에 있답니까?”
“낙양이라고 들었네.”
“그렇군요. 일단 알겠습니다.”
심익한과 대화를 나눈 소종천은 무당파에 대해 떠올리며,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생각했다.
‘샹노무 것들. 사사건건 악연으로만 이어져 있단 말이지. 어떻게 엿을 먹여줘야 하나?’
고민하던 소종천은 외출 준비를 하고 소림을 나섰다.
잘 굴러가지도 않는 머리를 쓰느니 그냥 직접 부딪혀 보는 게 낫다.
‘무당 놈들의 분파가 낙양에 있다고? 마침 숭산에서 그리 멀지도 않네.’
아무래도 그쪽과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눠볼 필요가 있어 보였다.
그게 입으로 하는 대화가 될지 주먹으로 하는 대화가 될지는 아직은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아마도 전자로 시작해서 후자로 끝날 가능성이 높긴 하겠다만. 가능하면 좋게 끝내야지.’
내세울 만한 능력은 무력뿐이니, 쓸 수 있는 곳이 있다면 써야지 어쩌겠는가.
숭산에서 낙양까지는 경공을 펼쳐 움직인다면 반나절도 걸리지 않을 거리.
“얘들아, 잠깐만 어디 좀 다녀오자.”
소종천은 믿을 수 있는 무력을 가진 세 동료들을 이끌고, 낙양에 위치해 있다는 무당파의 분파를 향해 움직였다.
뽑기로 무림최강 15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