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155
63. 대결
“이거 참 곤란한 말씀을 하시는군요.”
하남 분파의 최고 관리자로 임명되어 5년째 꿀을 빨고 있던 자영검객 황주방은, 난감한 표정으로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았다.
‘소림무문? 연맹과 본산에서 전해온 소식을 듣기는 했지만…….’
하남 분파의 수장이란 자리는 막대한 부를 보장한다.
사실상 하남의 돈줄 삼분지 일가량을 휘어잡고 있으며, 그로 말미암아 하남 상계 전체를 붙들고 흔들어댈 수 있는 권력인 것이다.
본파의 여러 장로들 중에서도 소수의 사람들만 거쳐 가는 자리.
아직 초임 장로에 불과한 자신이 이곳으로 발령받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지, 말로 다 표현할 수도 없을 지경이다.
보통 3년에서 4년 정도의 임기를 갖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황주방은 온갖 정치적 역량을 다 동원하여 아직까지도 자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슬슬 교체가 이루어질 시기라 마지막 단물을 빨아먹을 준비만 갖추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게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분파의 수입 전반을 지탱하는 사업체들이 대부분 소림의 소유라는 것은 본인도 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실질적으로 사업체들의 주인은 무당파나 다름없다.
서류상으로는 그럭저럭 공정한 계약처럼 꾸며놨지만, 업무 위탁을 맡고 있는 무당파에서 사기나 다름없는 지출 항목으로 빼가는 돈이 상당했던 것이다.
소림에게 돌아가는 몫이란 것은, 이를테면 지주의 세금과 마름의 착복을 거쳐 간신히 연명할 수 있는 수준만 받아드는 소작농이나 마찬가지.
엄연히 부정한 행위들이지만, 지난 수십 년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던 일들이었다.
세간에 승려들의 재산을 강탈했다는 인식을 주지 않기 위해 소유주의 권리만 남겨뒀을 뿐, 어차피 무슨 짓을 해도 힘없는 그들이 무당파에 따질 수는 없는 노릇이기 때문.
“아무리 소 대협이 명성이 대단한 무인이라 하셔도, 본파의 일에 이리 무례하게 끼어드실 자격은 없는 것 아닙니까.”
“없긴 뭐가 없어? 내가 어디 출신인지 모르나? 위탁자가 대행인의 업무처리를 확인하겠다는데 뭐가 문제지? 기록 장부 다 가져와!”
“그것이…… 끄응…….”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역전되었다.
‘권괴라니! 초절정의 무인이 날뛰는 것을 무슨 수로 막는단 말이야!?’
황주방이 아는 소종천이란 연맹에서 영입한 고수이지만, 마냥 든든한 아군이라고 생각할 수도 없는 요주의 인물이다.
이제 막 노년에 접어든 황주방은 과거의 일과 관련이 없지만, 무당과 소림의 관계가 어떠했는지는 어느 정도 들어서 알고 있다.
‘본파에 대해 앙심을 품고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들었지. 그래도 설마 이렇게 막무가내로 시비를 걸어올 줄은.’
원한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당대 무림에서 가장 큰 세력을 지닌 무당파와 정면으로 충돌하고자 하는 문파는 어디에도 없을 테니.
한데 상대는 그런 것 따위 상관없다는 듯한 태도다.
게다가 더 환장하겠는 것은 이자를 막을 방법도 없다는 것.
상대는 무려 초절정의 무인이다.
본산이라면 아무리 초절정이라도 이렇게 안하무인으로 밀어붙이진 못하겠지만, 분파에 불과한 이곳에서는 저만한 고수를 제압할 병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가능하다 해도 자신처럼 장로급 인사들을 포함한 수십, 아니, 어쩌면 수백 명의 희생이 있고 나서야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게 아무런 이득도 생기지 않는 시체 한 구라는 점.
그리고 혹시나 일이 틀어져 그가 살아나가게 되면 본파에 훨씬 더 큰 피해가 발생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 황주방의 정신을 아찔하게 만들었다.
‘아니야. 아무리 그래도 자신의 목숨을 던져 전쟁을 열고자 하진 않겠지. 이제 막 소림의 재건을 시작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자도 전혀 잃을 것 없는 혈혈단신은 아니란 소리야.’
장부를 확인하고 나면 부정한 항목들을 바로잡으려 들겠지만, 그럴 수 없다고 버티면 결국 이자도 어찌할 방법이 없을 것이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약간의 양보는 해줘야겠군. 아깝지만 어차피 나도 곧 다른 자리로 옮길 때가 되었으니, 이 부분에 따른 금액 차이는 후임자가 알아서 해결할 일이겠지.’
적당히 논쟁을 벌이다가 수익이 낮은 소규모 사업체 몇 개의 수금안을 조정해 준다면, 이자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고 물러날 것이다.
그렇게 생각한 황주방은 마음대로 하라는 듯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정 그러시면 마음대로 둘러보시지요.”
그리고 반 시진 뒤.
황주방은 소종천이 생각했던 것보다 더 경우 없는 인물임을 알게 되었다.
“이거 순 사기꾼에 도둑놈 새끼들 아니야? 뭐냐? 이 추가 수당은? 기본 지급금에 몇 배를 남겨 먹는 거야?”
“그건 부득이한 사정으로 일정이 지연될 경우 발생하는 경비로써 고용주가 부담해야 할…….”
“개소리하네. 백 번이면 백 번 다 발생하는 어쩔 수 없는 사정이 대체 뭔데? 그리고 애초에 장부하고 맞지 않는 부분들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그게 무슨…….”
“여기 개봉에 파견된 관리 책임자가 왜 복귀하기도 전에 신향의 업무 지원단으로 들어가 있지? 다른 이름들도 보다 보면 이상하게 겹치는 부분들이 계속 나오네?”
“그건 단순히 기록에 실수가 발생한 거겠지요. 그 부분은 제가 담당자를 엄히 문책하여…….”
“예, X랄 마시고요.”
욕설을 하며 빈정거리는 소종천의 태도에, 황주방은 솟구치는 분노로 인해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아무리 초절정 고수에 반로환동한것으로 유명한 윗배분의 인물이라 해도, 이건 너무 심하지 않은가.
무당파의 장로직을 수행하며 어딜 가서도 극진한 대우를 받아온 자신이다.
“말씀이 너무 지나치시오! 더는 이런 무례를 참을 수 없구려!”
“참지 않으면 어쩔 건데?”
“이이익!”
화가 치밀어 올라 몸을 부들부들 떤 황주방은, 적당히 타협해 주기로 했던 마음을 접었다.
“마음대로 떠드시지! 본문이 위탁받은 사업체들의 수익 분배에 대해선 앞으로도 일절 수정될 일이 없을 거요.”
“아, 그래? 이런 부정행위가 외부에 알려져도 상관이 없으시다?”
“흥! 예로부터 소국이 대국의 뜻을 거스르면 큰 화를 입는다 하였소. 과연 누가 소림의 말을 들어줄지 궁금하군.”
“오, 그러니까 소림은 약자고 무당은 강자이니, 댁들 마음대로 해도 알아서 기어라?”
“허흠! 본인의 말을 어찌 받아들일지는 나름의 자유겠지. 이제 그만 가주시오. 멀리 안 나가겠소.”
황주방은 더 대화하지 않겠다는 듯이 몸을 돌렸다.
자신이 감히 건드리기도 어려운 강자에게 이런 태도를 취한다는 점이, 그에게 여러모로 복잡한 심정을 느끼게 해주었다.
약간의 두려움, 그것을 감싸는 통쾌함.
‘흥, 아무리 뭐라 떠들어봐야 내게 손을 댈 수는 없겠지. 초절정이 분명 절대적인 경지이긴 하지만, 제정신이라면 본문의 분파 안에서까지 경거망동할 순 없을 터.’
끽해봐야 저렇게 기분 나쁜 언행으로 속을 긁는 것이 한계일 것이다.
결국, 상대해 주지 않으면 다른 방법이 없으니 어쩔 수 없이 물러날 것이라고, 황주방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
근처에서 뭔가가 움직인다고 느낀 순간, 황주방은 자신이 허공을 날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크억!”
뒤늦게 통증이 찾아왔다.
부서진 기물들 사이에서 욱신거리는 복부를 움켜쥐고 일어난 황주방이, 황당한 심정으로 얼굴을 가득 물들이며 외쳤다.
“무슨! 본문과 척을 지고 전쟁이라도 벌이겠다는 것인가!”
“못할 건 없지.”
“이이, 미친 자가!”
소종천은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황주방에게 다가갔다.
황주방은 검에 손을 가져갔지만, 차마 그것을 뽑을 수는 없었다.
“끄으…….”
감당할 수 없는 무거운 기운이 그의 전신을 내리누르고 있었기 때문.
‘뽑으면 죽는다.’
황주방은 거대문파인 무당의 장로직에 오를 만큼 뛰어난 무인이다.
그러나 그는 개인재산의 축적에만 신경 쓰느라, 최근 몇 년간 최소한의 수련만을 유지해 온 상황.
그런 무뎌진 정신력으로는 소종천이 진심을 다해 발산하는 기세 앞에서, 제 몸을 통제하는 것조차 버거웠다.
초절정 경지에 도달한 인간이란 그야말로 천외천의 존재.
절정지경의 무인이라 하여도 그 앞에 서는 순간, 필사를 각오하지 않고서야 뱀 앞의 개구리처럼 몸이 굳게 마련이다.
“이봐 당신. 나랑 내기 하나 하지?”
검을 뽑지도 물러나지도 못하고 어쩔 줄 몰라 하며 서 있는 황주방의 귀로, 소종천의 목소리가 흘러 들어갔다.
상관없다고 말하긴 했지만, 소종천이라고 해서 정말로 무당파와 사활을 걸고 싸움을 벌일 생각은 없었다.
무당의 분파에서 그들을 대표하고 있는 황주방을 해한다면, 무당파는 자존심 때문에라도 소종천을 적으로 규정하고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소림이 무당과의 계약 관계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은 것이 계기였다는 것이 알려진다 해도, 워낙 세력 차가 크니 이쪽의 편을 들며 중재하려는 곳은 없을 것이다.
현 정사연맹의 맹주가 무당의 인물임을 생각하면, 저런 증거들조차 조작하여 자칫 무림공적으로 몰릴 수도 있을 터.
‘나와 동료들의 힘은 분명 굉장한 전력이긴 하지만…….’
정말로 앞뒤 없이 싸운다면 무당파의 위상이 수직 낙하할 정도로 큰 피해를 강요할 자신은 있지만, 결국은 이쪽이 반드시 패배하게 될 것이다.
‘아마 나는 마교에 비견되는 악적으로 무림 역사에 기록되고, 나와 관계된 사람들은 전부 목이 날아가는 거로 끝나겠지.’
사업체에 관한 건 물론 큰돈이 걸린 문제이지만, 그런 결말을 각오하고 소종천이 나서야 하는 일은 아니다.
그렇기에 소종천은 이 문제를 해결할 수단으로, 황주방에게 한 가지 제안을 건넸다.
“내, 내기? 또 무슨 이상한 말을…….”
“그쪽이 이기면 소림이 위탁한 사업체들의 소유 권한을 전부 무당파에 넘기도록 하지.”
“으음!”
예상치 못한 상황 속에서 머릿속이 터질 것만 같았지만, 그런 와중에도 황주방은 소종천의 발언에 깜짝 놀라며 군침을 삼켰다.
이미 수익을 불공정하게 빼돌리고 있다지만, 사업체들의 소유 권한을 완전히 가져오는 것은 그와는 또 별개의 이야기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나는 이 자리에서 더 오래, 아니…… 어쩌면 공로를 인정받아 더 높은 자리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 미친 작자가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동안, 소종천의 말이 계속 이어졌다.
“대신 내가 이기면 계약상의 수익비율은 그대로 유지하되, 업무로 발생하는 모든 경비들을 무당파에서 부담하는 거로. 뭐 계약변동에 따른 세세한 조항들의 수정이 필요하겠지만, 일단 큰 틀은 그렇게 가자고.”
원래 수익 비율 자체는 소림이 실소유주인 만큼 소림에게 더 유리하게 적용되어 있다.
그래서 안심하고 계약을 한 것이겠지만, 무당파는 계약서에 제대로 명시되어 있지 않은 다른 방식들을 이용하여 부당한 이득을 취해왔다.
누가 봐도 말이 되지 않는 비정상적인 소요 경비를 청구하는 식으로 말이다.
모든 경비를 대행 측인 무당파에서 부담한다면, 그런 장난질을 치지 못할 것이다.
“무슨…… 크흠! 대체 어떤 내기를 하자는 것이오?”
황주방은 일단 내기의 방식에 대해 물어보았다.
분명 허튼소리를 할 것이 뻔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래도 상대가 내건 조건이 무시할 수 없이 매력적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황주방을 보며, 소종천은 서서히 기세를 거두어들였다.
‘한 대 얻어맞은 게 화나긴 하지만, 여기까지는 어떻게든 수습할 수 있는 불미스러운 사건이라 여기겠지.’
이번 일을 생각대로 해결하려면 무당파에서 이쪽의 제안을 받아주어야 한다.
하지만 자신들이 훨씬 유리하게 느껴지는 방식이 아니라면, 당연히 어지간해서는 내기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씩 웃어 보인 소종천은 이내 황주방의 질문에 대답해 주었다.
뽑기로 무림최강 156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