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157
63. 대결(3)
주변을 가득 메운 사람들 사이를 헤치며, 고풍스러운 복장을 갖춘 나이 든 무인이 앞으로 나섰다.
“무당파 장문직을 맡고 있는 현일이라 하오. 요즘 위명이 자자한 권괴 대협을 만나게 되어 영광이오만…… 반갑다고는 하지 못하겠군.”
그렇게 말하는 현일의 눈에는 소종천에 대한 적의 외에 다른 감정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꽤나 열이 받으셨구만.’
하기야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초인적인 경지를 이룬 무인이라지만, 이런 말도 안 되는 조건의 싸움을 이겨낼 수는 없다.
이득을 볼 수 있는 내기이기에 받아들이긴 했지만, 무당파를 얼마나 우습게 봤기에 이런 짓을 벌였나 싶어 화가 나기도 할 것이다.
‘음. 확실히 현 무림에서 가장 잘나가는 문파답네. 전력이 장난이 아니야.’
주위를 둘러본 소종천은 무인들의 수준을 헤아려 보고는 속으로 혀를 찼다.
사방에 무인들이 빼곡하게 채워져 있어, 기세가 뒤섞인 탓에 감각만으로 정확히 파악하긴 어렵다.
그렇기에 제대로 감지할 수 있는 것은 그들 중 가장 강렬한 기세를 풍기는, 초절정의 경계에 거의 근접한 무인들뿐.
일단 장문인이라는 자가 절정의 극에 달한 경지이라는 건 알아볼 수 있었고, 그와 비슷한 수준의 무인이 셋 더 있다는 것은 확인했다.
‘절정의 끝이면 한순간이나마 초절정에 준하는 위력의 무공을 펼칠 수도 있으니, 혹시라도 방심하다 실수하면 위험하겠네. 저렇게 넷은 주의해야지.’
그 외의 나머지는 아무래도 좋다.
강기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으니 호신강기도 펼칠 수 없지만, 평범한 절정급이나 그 이하 수준의 공격으로 위험에 빠질 일은 없을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체력과 내력이 바닥나기 전에 무당파의 무인들을 전부 꺾을 수 있느냐는 것.
평상시라면 아무리 초절정인 소종천이라 해도 불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의 소종천은 따로 믿는 구석이 있었다.
‘시작해 볼까.’
기감에 집중하다가 돌아온 소종천은 장문인이라는 자가 뭐라고 계속 떠들고 있는 모습에, 손을 내저으며 입을 열었다.
“아아, 그만. 시답잖은 이야기는 거기까지 하고, 슬슬 비무나 진행합시다.”
“큭! 오만한 자 같으니.”
“안하무인이로군!”
몇몇 나이 든 무인들에게서 불만이 터져 나오며, 적의의 감정이 살의에 가깝게 변한다.
아무리 선배로 대우받는 배분이라 하여도, 대문파의 장문인을 대하는 태도라기엔 너무 무례하다.
모욕을 받았다 여긴 무인들이 화를 내며 당장에라도 검을 뽑아 달려들 듯한 기색을 보였다.
“그만! 좋습니다. 바로 시작하도록 하지요.”
그런 제자들을 진정시킨 현일은, 냉정한 마음을 유지하려 노력하며 어딘가를 향해 손짓했다.
‘지금이야 그리 거만하게 굴겠지만, 과연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보겠다.’
현일의 신호에 따라 소종천의 앞으로 무인 한 명이 나섰다.
소종천의 눈썹이 살짝 꿈틀거렸다.
‘역시나 그렇게 나오는 건가.’
상대는 일류의 중상급 정도나 될까 싶은 경지의 무인.
소종천의 주먹질 한 번이면 쓰러뜨릴 수 있는 수준이다.
“후배 영환이 권괴 대선배님의 가르침을 받겠습니다.”
타격을 입힐 일말의 가능성도 없는 일류급을 내보냈다는 것에, 소종천의 체력과 내력을 야금야금 소모시키겠다는 속셈이 빤히 보였다.
“비무 중 치명적인 부상을 입는 이가 나오지 않도록 해주신다고 들었으니, 손속에 사정을 두시리라 믿겠소이다.”
태연한 얼굴로 뻔뻔한 소리를 지껄인다.
그래도 예상했던 일인지라 화가 나진 않았다.
오히려, 생각한 대로 나와 줘서 너무나도 고마웠다.
‘계획대로 굴러가 주니 얼마나 좋아.’
그렇게 생각한 소종천은 소지품창을 열어 몇 가지의 품목을 선택했다.
몇 달 동안 중원을 떠돌며 일일보상 재화가 모일 때마다 뽑기를 돌렸던 결과물들.
대부분은 별 가치가 없는 낮은 등급의 물품들이다.
다만, 상황에 따라 쓸모가 있을지도 모를 애매한 효과의 물품이 나오기도 하곤 했다.
[철마대전탕] [체력을 최상의 상태로 유지하여 결코 지치지 않는다.] [지속 시간 24시간] [활전보환단] [내력의 자연적인 회복 속도가 급격하게 증가한다.] [지속 시간 36시간] [투귀의 혈옥] [지정 범위에 특수한 기문진을 설치하여, 그 안에서 전투에서 승리할 때마다 최대 내력의 1푼을 회복된다.] [일 회 사용 시 파괴된다.] [지속시간 24시간]‘처음 얻었을 때는 쓸모없어 보였지만…….’
두 가지의 영약과 하나의 무구.
영구적인 내공 증진의 효과가 없는 영약인 철마대전탕과 활전보환단은 솔직히 꽝이라고 생각했고, 투귀의 혈옥 역시 크게 도움이 되는 장비라고 여기진 않았었다.
‘하지만 이렇게 환경이 갖춰지면 충분히 쓸모가 있는 물건들이네.’
무당파에게 이길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내기를 제안했던 것은, 이 물품들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었다.
이것들만 있으면 오늘 하루에 한해서는 차륜전법에 당할 일이 없을 것이다.
물품들을 적용시킨 소종천이 한껏 웃음을 지으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쾅!
“커억!”
딱 죽지 않을 정도로만 위력을 조절한 권격에, 무당파의 무인이 피를 쏟으며 튕겨 나갔다.
약속대로 목숨을 잃을 정도의 치명상을 가하진 않았지만, 자칫하면 무인으로서의 미래가 위태로울 수도 깊은 내상을 입혔다.
단전이 파괴될 정도까진 아니지만, 기혈이 크게 손상되었으니, 솜씨 좋은 의원의 치료를 받으며 몇 달은 정양해야 겨우 회복할 가능성이 있을 것이다.
“저, 저런!”
“한참 말학인 후배를 상대로 너무 과한 것이 아닌가!”
배분이 높아 보이는 몇몇 나이든 무인들이 화를 내며 따졌으나, 소종천은 어디서 개가 짖느냐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여 보였다.
“조건대로 목숨을 빼앗지도 않았는데? 그렇다고 어디 하나 불구로 만든 것도 아니구만. 이 정도면 굉장히 봐준 것 아닌가?”
틀린 말도 아니기에 더 따지고 들 수는 없었다.
“크흐음…… 다음!”
순식간에 반송장이 되어 실려 나간 제자의 모습에 인상을 찌푸렸지만, 현일은 곧바로 다음 순번의 무인을 밀어 넣었다.
지구전을 통해 지치게 만드는 것이 목적이니 쉴 틈을 줘선 안 된다.
현일은 차라리 잘 되었다고 생각했다.
실력 차가 워낙에 크니 훨씬 더 효율적으로 제압할 수도 있었을 터.
그런데 저렇게 내상을 입히기 위해 필요 이상의 내력을 소모하는 걸 보니, 예상보다 빠르게 지치도록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나 사실은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거나 다름없는 짓을 하고 있다는 것을, 소종천을 제외한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좋아. 역시 일류 수준을 상대로는 내력 소모가 거의 없다고 봐야겠네.’
내력의 잔량을 확인한 소종천은 실소가 흘러나오는 것을 억지로 참아냈다.
내공의 정순함으로는 고금제일이 아닐까 싶은 반야신공으로 운용되는 내력은, 소모 효율이 그 어떤 심법들보다 뛰어난 편이다.
거기에 사용한 내력의 절반가량을 흡수해 되돌리는 용주회기요대를 착용하고 있고, 투귀의 혈옥으로 인해 추가로 내력이 회복된다.
‘1푼이라면 고작해야 백 분의 일밖에 되지 않는 소량이지만, 애초에 일류를 상대로는 내력을 많이 소모할 일이 없으니.’
게다가 활전보환단으로 자연적인 회복 속도마저 빨라진 덕분에, 첫 번째 무인을 상대하며 소모된 내력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순식간에 다시 채워졌다.
사기나 다름없는 상황이지만,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다.
‘꼬우면 노템전이라고 했어야지. 흐흐!’
소종천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두 번째 상대를 바라보았다.
이번에도 역시나 일류급의 무인.
앞사람이 나가떨어지는 모습을 봤기에 잔뜩 긴장한 모습이 애처로웠지만, 봐줄 생각 따윈 전혀 없다.
어차피 그런다고 고마워할 리도 없고, 일을 벌이기로 마음먹었으면 철저하게 손을 쓰는 편이 낫다.
쿵!
“어억!”
쾅!
“끄아악!”
충돌 소리와 비명이 반복적으로 울려 퍼진다.
“장문 사형.”
“알고 있네. 상자 배 제자들을 섞도록 하게.”
스무 명쯤 쓰러뜨리고 나자 무당파 측의 인원에 변화가 생겼다.
버림 패나 다름없는 일류급 사이에 절정급 무인이 섞여 나오기 시작한 것.
“차압!”
솟구치는 검기와 함께 칼날이 급소를 노리고 찔러 들어왔다.
소종천 역시 주먹에 권기를 덧씌우며, 이전까지보다 진지한 태도로 비무에 임했다.
‘절정 초입 정도인가. 그래도 절정쯤 되면 마냥 가볍게 상대할 순 없지. 내력의 소모를 최소화해야 하니 다른 절기들은 일단 봉인해 두고…….’
그나마 내력이 적게 들어가는 불영선하보를 소림오권과 연계하며, 소종천은 상대방의 현란한 검초 사이를 파고들었다.
무당파의 양의태극검법.
수비식 위주의 전반 초식과 공격식 위주의 후반 초식이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전환되며 연계를 이루는 뛰어난 검법이다.
하지만 흐릿한 잔상으로 몸을 감싸며, 실체를 파악하기 어려운 움직임으로 달라붙는 소종천을 떨쳐내기엔 역부족이 있었다.
퍽! 빡!
“크윽!”
퍼엉!
“우웨엑!”
수비를 무너뜨려 급소를 노출시키기 위해 권격이 두 번.
내부를 진탕시키기 위한 내력을 듬뿍 담은 권격이 또 한 번.
도합 세 번의 공격에 상대는 핏물을 토해내며 쓰러졌다.
나름대로 고수 소리를 듣는 절정의 경지치고는, 앞서와 별로 다를 바가 없는 허무한 패배다.
지켜보던 무인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저리 쉽게…….”
“역시 저것이 무의 끝을 보았다는 초절정의 경지인가.”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강기의 사용을 제한했음에도, 격의 차이가 확연하게 드러난다.
그래도 아직 무인은 넘치도록 많이 남아 있다.
그리고 절정에 들어섰다 해도 아직은 미숙한 초입의 수준이 아닌 완숙한 무인들이 나선다면, 저것보다는 훨씬 더 오래 버틸 수 있을 터다.
“계속. 다음 순번을 내보내게.”
“예.”
서른, 마흔, 쉰.
무인들은 계속해서 줄을 지어 소종천의 앞으로 나섰고, 그대로 다시 중환자가 되어 무대 밖으로 실려 나갔다.
‘차라리 수준 높은 무인들만 내보냈다면 나도 내력 소모를 신경 쓰며 싸웠을 텐데.’
소종천은 단전을 가득 채운 충만한 내력을 느끼며 헛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절정급 무인을 상대로는 차륜전법이 유의미할 만한 내력 소모가 있긴 했는데, 일류급 무인을 몇 번을 상대하고 나자 다시 소모된 내력이 전부 회복되었다.
일류급을 상대할 때는 내력의 소모가 거의 없다시피 한 탓이다.
‘소모되는 것보다 회복되는 양이 더 많아서 계속 만전의 상태가 유지되네. 이렇게 될 거라 예측하고 벌인 일이긴 하지만, 너무 사기적이라 미안할 지경인걸?’
일류급을 비무에 내보내는 것은 오히려 소종천에게 도움을 주는 것이었으나, 안타깝게도 무당파 측에선 이런 사실을 알 도리가 없다.
칠십 명, 백 명, 백오십 명.
한 번의 비무에 소요되는 시간이 길어봐야 십여 초를 넘지 않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주변을 둘러싼 무인들의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게 되었다.
“자, 장문인.”
“태연해 보여도 곧 지칠 것이다. 조금만 더 기다리면…….”
이백 명, 삼백 명, 사백 명.
소종천이 머지않아 지쳐 쓰러질 거라 기대하며 지켜보고 있던 이들은, 이내 안절부절못하며 불안감에 빠져들게 되었다.
‘뭐지? 어째서 전혀 지쳐 보이질 않는 것이냐?’
‘벌써 몇 번째지? 내력을 저렇게나 써대는데 아직도 멀쩡하다고?’
‘아무리 초절정이라 해도 불가능한 일이야!’
전혀 지친 기색이 없는 소종천을 보며, 무당파의 수뇌부들은 무언가 크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꼈다.
뽑기로 무림최강 15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