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158
63. 대결(4)
무당파는 개파 이후 지금까지 몇 차례나 초절정의 무인을 배출해 온 거대문파다.
당대에도 초절정 무인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당연히 초절정의 무인이 어느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도 제법 상세하게 파악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소종천이 만용을 부린다고 비웃으며 받아들인 내기였었다.
한데,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다.
“장문 사형! 피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알고 있다! 끄응…….”
사백 명의 비무 참가자 중 치명상을 입은 자는 없지만, 하나같이 심각한 내상을 입었다.
내상의 치료는 일반적으로 외상의 경우보다 더 귀하고 비싼 약재를 필요로 한다.
사백 명을 전부 치료하려면 막대한 자금이 소요될 것이다.
저 인원들이 몇 달간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회복에 전념해야 하는 것을 생각하면, 손해는 이중으로 겹쳐 더더욱 커지게 된다.
게다가 내상은 외상과 달리 완벽하게 회복된다는 보장이 없다.
저들 중 몇 명은 극심한 후유증에 시달릴 테고, 절반가량은 적게나마 영구적인 내력 손실을 입게 될 터.
심지어 비무는 아직 끝나지도 않았다.
‘권괴! 저 똥통에 파묻어 죽여도 시원찮을 놈!’
억장이 무너지는 심정으로 비무를 지켜보던 현일은, 곁에 서 있던 자신의 사제를 불러들였다.
“사제. 슬슬 우리 현자 배 사형제들이 나서야겠네.”
“으음, 괜찮겠습니까? 예상한 것과 너무 다른 결과인지라…….”
“조금 계산이 틀어지긴 했으나, 저리 보여도 분명 내력이 바닥을 드러내기 일보 직전일 걸세.”
“그렇겠지요. 알겠습니다.”
“그리고…… 진양 사백님을 모셔오게나.”
“헛? 그분이 과연 나서주시겠습니까? 칩거에 드신 지가 꽤 오래된 것으로…….”
“지금 이것저것 따질 때인가? 어서 사람을 보내게!”
“아, 알겠습니다.”
두 사람이 대화를 나누는 와중에도, 소종천의 주먹에 당한 희생자는 차곡차곡 늘어가고 있었다.
소종천은 기꺼운 심정으로 쏟아지는 시선들을 즐겼다.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
적의가 가득했던 시선에 점점 두려움이 스며든다.
‘내 상태가 어떤지 알면 기절할 듯 놀라겠지.’
영약들의 효능 덕분에 티끌만 한 피로감조차 느껴지지 않는다.
이만큼 날뛰었는데도 여전히 남은 내력은 거의 최대치에 가깝다.
다만, 무당파 측에서도 슬슬 방침을 바꾸기로 했는지, 일류급 무인의 출전 빈도가 확연히 줄어들어 가고 있었다.
‘이제야 본격적으로 최고 전력들을 투입하는구만.’
절정 상위급에 속하는 무인이 찔러오는 검을 쳐내며, 소종천은 간결한 동작으로 상대의 품을 파고들어 옆구리 부근을 후려쳤다.
“으윽!”
양강혈을 가격당한 무인이 순간적으로 마비 상태에 빠져 신음을 흘리며 동작을 멈춘다.
이내 마비에서 벗어나 재차 반격을 가하려고 했지만, 지근거리를 내주고 움직임마저 늦었으니 공격이 성공할 리가 없다.
소종천이 왼손으로 검을 쥔 팔을 휘감아 꺾으며, 오른팔을 접어 짧게 휘둘러 팔꿈치로 관자놀이를 가격했다.
정신을 잃고 늘어지는 상대를 밀쳐내며 427번째 비무를 마무리한다.
‘이제부터는 나도 내력 관리가 필요하니까.’
지금까지는 무당파에게 큰 엿을 먹여줄 심산으로 계속 내상을 유도했었는데, 이제부터는 내력을 관리해야 하기에 그런 짓은 자제하기로 했다.
일류급이야 내공의 우위로 상대를 짓눌러도 문제가 없었지만, 절정급부터는 계속 그런 식으로 싸웠다간 회복되는 양이 소모량을 따라가지 못한다.
무공의 기량만으로 상대를 제압하려면 합이 늘어나며 비무 시간이 길어지겠지만, 그편이 오히려 소종천에겐 이득이다.
영약 덕분에 내력의 자연 회복 속도도 빨라졌으니 적당히 시간을 끄는 것도 나쁘지 않다.
‘어차피 몸 상태가 최적으로 유지되니, 오래 싸운다고 체력적으로 지칠 일도 없…… 오! 주의해야 할 상대가 나왔네.’
다음 비무 상대를 마주한 소종천은 잡생각을 지우며 진지하게 자세를 잡았다.
처음에 주의를 기울였던 네 명의 무인 중 한 사람이다.
작은 깨달음만 있으면 초절정의 벽을 넘을 수도 있는, 절정의 끝자락에 도달한 경지.
물론 그 깨달음이라는 것이 보통은 죽을 때까지 찾아오지 않는 경우가 태반이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거의 초절정에 근접한 상대이니만큼 조심해야 한다.
강기를 봉인한 상태로 싸우는 것이기에, 저만한 실력자와 겨룬다면 부상을 입을 가능성도 있다.
“빈도는 현겸이라…….”
“뭘 또 새삼 자기소개는. 들어오기나 하시지.”
“……흥! 가겠소!”
다량의 내력이 주입되어 검명을 울리는 검을 쥐고, 현겸은 소종천을 향해 몸을 날렸다.
유운신법을 펼쳐 신형을 날린 현겸은, 곧장 소종천에게 달려들진 않고 주변을 맴돌며 기회를 살폈다.
대성한 유운신법으로 펼치는 종잡을 수 없는 움직임은, 그 이름처럼 연신 흩어졌다가 뭉치는 구름을 닮았다.
쉬익!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현겸의 검이 소종천의 뒤통수를 노리고 찔러 들어왔다.
하지만 소종천은 슬쩍 반걸음 옆으로 움직이는 것으로 현겸의 공격을 피해냈다.
날카로운 검초였지만, 초절정 고수의 기감을 속일 정도는 아니다.
첫 공격을 쉽게 피해내자 현겸은 초식의 연계를 포기하고 곧바로 뒤로 물러났다.
철저하게 치고 빠지기에만 주력하려는 심산.
‘신법에 자신이 있는 모양이네.’
소종천 역시 두 종의 절기를 가지고 있지만, 그가 익힌 것들은 짧은 거리 내에서 순간적인 움직임을 보일 때나 유용하지, 저런 일반적인 신법과는 성질이 많이 다르다.
물론 속도 자체가 부족한 것은 아니니 한 번이 아니라 수십 수백 번을 연달아 펼친다면, 현겸을 따라잡는 것 자체는 일도 아니긴 하다.
다만 그랬다가는 너무 다량의 내력이 비효율적으로 소모되어 버린다.
‘아미의 금정신법도 일단은 버리지 않고 계속 가지고 있긴 하지만…….’
고작 3성의 성취인 신법으로는 평범하게 이동할 때나 쓸모가 있지, 전투에 써먹기엔 아무래도 모자람이 있다.
‘하지만 뭐, 굳이 따라잡으려고 애쓸 필요는 없지. 어차피 저쪽이나 나나 전투를 그만둘 수 있는 입장도 아니니까.’
기다리면 기회는 오게 되어 있다.
아무리 빠른 신법을 펼치며 거리를 조절하고 있다 해도, 결국 공격을 가하기 위해서는 가까이 다가오는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휘이잇!
동상이라도 된 듯 우두커니 서 있는 소종천에게, 다시 한번 현겸의 검이 바람을 가르며 다가왔다.
매서운 공격이었으나 불영선하보의 걸음으로 가뿐하게 피해낸다.
말했다시피 근거리 내의 순간적인 움직임으로는 소종천을 앞설 수 있는 자가 흔치 않다.
열 번, 스무 번.
현겸의 공격은 번번이 빗나갔고, 그의 얼굴엔 점점 조바심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슬슬 넘어오겠는데? 낚아봐야겠다.’
확실한 기회를 잡기 위해 회피에만 주력하던 소종천은, 현겸의 다음번 공격에서 일부러 틈을 드러냈다.
“읏!”
이번에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는 듯이 조금 늦게 반응하며, 과장된 동작으로 몸을 뒤틀어 스스로의 자세를 무너뜨린 것이다.
아슬아슬하게 옷깃을 스치고 지나가며 검격은 피해냈지만, 누가 봐도 훤히 빈틈을 노출한 상태.
연이은 실패로 긴장하고 있던 현겸이 눈을 빛내며 처음으로 연계 공격을 시도했다.
‘기회!’
검을 찌른 자세에서 뒤로 몸을 빼는 대신, 그대로 몸을 회전시키며 전력을 다해 연환초식을 펼쳤다.
아래에서 위로 비스듬하게 휘둘러진 검격이 명문혈을 노리고 베어 들어간다.
인체의 중앙에 위치한 명문혈은 생명의 문이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기가 흐르는 곳으로, 신경 통로인 척수와도 붙어 있어 매우 예민하고 중요한 혈도이다.
목숨에는 지장이 없으나 작은 손상만으로도 하반신 전체가 마비될 수도 있는 급소.
최대한 많은 내력을 불어넣어 길게 뽑아낸 검기가 소종천을 두 동강 낼 것처럼 넘실거렸다.
‘여유를 부리더니 이런 실수를 하다니! 멍청한 놈!’
현겸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하지만 그것은 이내 흉한 일그러짐으로 변했다.
분명 피할 수 없는 완벽한 공격이라고 생각했는데, 어째서인지 상대의 몸이 점점 검로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가 옆에서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잡아당기기라도 하는듯한 움직임.
‘사기당한 기분이지?’
어렵지 않게 현겸의 검격을 피해낸 소종천이 씩 미소를 지었다.
불영선하보와 금강부동신법의 조합은 사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긴 하다.
자세가 완전히 무너진 것으로 보이는 상태에서도 얼마든지 회피가 가능하니, 빈틈을 보여 상대를 끌어들이기에 매우 적합하다 할 수 있다.
소종천의 손이 먹이를 노리고 웅크리고 있던 뱀의 아가리처럼 벌어지며, 현겸을 향해 빠르게 쏘아졌다.
대경실색하며 검을 거두고 물러나려던 현겸의 팔이 그 손에 붙잡힌다.
“잡았다 요놈!”
이어서 반대편의 주먹이 풍압을 일으키며, 현겸의 얼굴을 향해 내질러졌다.
빠악!
“카앗!”
팔을 붙잡고 있지 않았다면 공중에서 몇 바퀴쯤 회전했을 만한 강맹한 일격이었다.
거대한 충격에 현겸의 안면부가 혈육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심각하게 훼손되었다.
“그, 흐먀…….”
“으응? 잘 안 들리는데?”
순간적으로 정신이 날아갔다가 되돌아온 현겸이 항복 의사를 밝히려 했으나, 소종천은 못 들은 척 다시 한번 권격을 가했다.
이번에는 붙잡고 있던 팔의 어깨부위를 향해서였다.
쁘지지짓!
섬뜩한 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저, 저!”
“이런 악독한!”
최대한의 파괴력을 내기 위해서 마지막 순간에 아라한신권까지 운용하며 내지른 일 권이었다.
권강이 제한되어 있기에 권기만을 두른 주먹이었으나, 인체를 망가뜨리기엔 충분한 위력이었다.
소종천은 기절한 현겸을 던지듯이 내동댕이쳤다.
완전히 곤죽이 되어 떨어져 나갈 듯이 덜렁거리는 어깨가 눈에 띈다.
검을 쓰는 손 쪽의 어깨가 저 꼴이 되었으니, 무인으로서의 생명은 거의 끝났다고 봐도 좋으리라.
무림에서 신의니 의선이니 하는 의원들이 나선다 하여도, 저만큼 망가진 상태라면 고친다 해도 예전과 동일한 무위를 보이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으극…… 다음, 나가시게.”
현일이 이를 갈며 토하듯이 말을 내뱉었다.
무당파의 입장에서는 이미 충분히 큰 손실을 입었지만, 비무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제는 득보다 실이 더 커져 버렸군. 아니, 혹시라도 정말 본파의 제자들이 모두 당해 버린다면…….’
끔찍한 상상에 몸서리가 쳐진다.
무당파의 명성은 바닥에 떨어지다 못해 땅속으로 파고들 테고, 금전적으로 막대한 손해를 보는 것은 물론 많은 제자들이 본산을 떠날지도 모른다.
문파의 미래가 휘청거리게 되는 것이다.
‘사백께서는 아직이신가?’
이제는 다른 절정 무인들을 다 동원한다고 해도 이긴다는 확신이 들지 않았다.
현일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자신을 구원해 줄 누군가를 애타게 기다렸다.
절정 초입에서 상급 사이의 무인들을 연달아 상대하며 비무의 횟수가 500번째에 가까워질 무렵.
소종천은 어디선가 느껴지는 묵직한 기운에 잠시 움직임을 멈추었다.
‘어라?’
소종천이 시선이 비무 상대가 아닌 다른 곳으로 향했다.
“장문인. 이게 무슨 소란인고?”
“사백님!”
“쯧, 못난 자들 같으니.”
“……면목 없습니다.”
나이 든 노인의 모습이 소종천의 시야에 들어왔다.
당장 내일 눈을 감는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한 노인이지만, 느껴지는 기운은 다른 누구보다도 강대하기 그지없었다.
‘초절정이네. 그래, 더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은 했지.’
세간에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초절정 고수.
무림의 활동을 접고 본산에 틀어박혀 칩거 생활을 하는 나이 많은 무인들 중에, 간혹 그런 이들이 나오곤 한다.
삶의 마지막 순간이 다가올 때쯤 경지에 대한 욕심을 벗어던지고 검을 놓으려 했더니, 얄궂게도 깨달음이 찾아와 벽을 허무는 경우가 말이다.
무당파의 진양진인 역시도 그런 사정에 속했다.
스스로도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알기에 다시 무림의 일에 나서지는 않고, 그저 인생의 마지막 선물이라 여기며 새로 득한 깨달음을 탐닉하다 세상을 떠나는 자들.
알려지지 않은 은거고수의 출현에, 소종천은 살짝 긴장했다.
전혀 염두에 두지 않은 변수는 아니지만, 꺼림칙한 상황이기는 했다.
소종천과 진양,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부딪혔다.
뽑기로 무림최강 159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