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160
63. 대결(6)
“인정할 수 없다.”
현일의 입에서 나온 말에, 안절부절못하고 있던 무당파 무인들이 시선이 그쪽으로 쏠렸다.
“장문 사형?”
“으음…….”
설마 이렇게 명백한 결과를 두고 억지를 부리는 건가 싶어 당황했으나, 그 말을 한 사람이 자신들의 장문인이기에 다들 표정을 관리하려 애썼다.
“뭘 인정할 수 없다는 거지? 내가 규칙을 어긴 것은 없을 텐데?”
“그 비정상적인 내공.”
소종천이 코웃음을 치며 묻자, 현일은 딱딱하게 표정을 굳히며 대답했다.
“권괴 당신이 아무리 반로환동까지 거친 대단한 고수라 하여도, 인간의 몸에 그렇게 마르지 않는 기운을 담을 수는 것이거늘.”
“뭐래. 내공 많은 게 죄라고? 트집을 잡는 게 너무 궁색한 수준이지 않나?”
“수백 명의 무사들과 쉬지 않고 비무를 거치고, 초절정 무인마저 꺾을 수 있는 자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아니, 딱 한 번 그런 자가 나오긴 했었군.”
현일은 소종천을 노려보며 말을 이었다.
“순리를 거스르는 역천의 마공으로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자.”
천마 강사익.
무림의 역사에 워낙 큰 족적을 남긴 존재이기에, 무림인이라면 그 이름을 모르는 이가 없는 마교의 교주.
현일의 말에 주변 무인들이 흠칫 놀라며 이내 크게 술렁거렸다.
소종천 역시 무슨 개소리를 하는가 싶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서? 내가 천마라도 된다는 소린가?”
“설마. 다만, 당신 역시 뭔가 사이한 방법으로 무공을 익힌 것이 아닌지 의심이 가는군.”
마교의 고위 마인들 중엔 인륜을 저버린 끔찍한 방법으로 자신의 경지를 높인 자가 적지 않다.
흡혈이나 식인을 통해 타인의 원기를 흡수하여 빠르게 내력을 쌓는 마공이, 마교에는 꽤나 일반적으로 퍼져 있는 것이다.
물론 그런 마공을 익혔다고 해서, 평범한 무인들과 완전히 궤를 달리하는 내공을 쌓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다만 딱 한 번의 사례이긴 해도, 천마 강사익이라는 기존의 상식을 초월한 괴물이 등장한 적이 있는 것도 사실이긴 하다.
“확실히…….”
“마공이 아니고서야 어찌 저런 내공을 지닐 수 있겠는가.”
“장문인의 의문은 합당하군.”
평범하지 않은 것들은 쉽게 배척당하기 마련.
아무리 초절정 무인이라도 내력과 체력에는 한계가 있기에, 오늘 소종천이 보여준 무위는 정도를 벗어난 것이라 의심을 사도 할 말이 없긴 했다.
‘망할. 질리지도 않고 또 사술 타령이냐.’
소종천은 짜증을 꾹 눌러 참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래서 어쩌겠다는 거지? 내기를 무효로 하겠다는 건가?”
“아니, 비무에 대해서는 본파가 패배했음을 인정하지.”
현일은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분파의 사업체 따위 이제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하지 않다고 해서 전부 포기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사백님. 권괴의 상태를 어떻게 보십니까? 끝을 모르던 내력도 이제는 정말 바닥난 것 같습니다만.
-패배한 주제에 할 말은 아니지만, 확실히 느껴지는 기운이 많이 약해진 것으로 보이기는 하다.
-권괴를 이대로 돌려보낼 수는 없습니다. 무슨 짓을 해서라도 오늘의 일이 외부에 퍼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무슨 소리인지 알겠네. 장문인의 뜻대로 하시게.
이미 너무 큰 피해를 입긴 했지만, 현일은 지금이라도 비무의 틀을 벗어던지고 권괴를 죽여 입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비무는 끝났지만, 의혹을 해결하지 않고 넘어갈 순 없소. 권괴, 그대의 신변을 잠시 우리에게 맡기시오. 조사가 끝나고 아무 문제가 없다면, 이 일에 대해선 합당한 사죄와 보상을 드리지.”
현일은 속마음과는 전혀 다른 말로 소종천을 구슬렸다.
그러면서 아직 남아 있는 절정급 무인들에게 전음을 보내, 신호를 주면 곧바로 소종천에게 살수를 펼칠 것을 지시했다.
‘남은 전력으로 불시에 기습을 가해 놈을 죽이고, 모든 것을 없던 일로 되돌리자. 사백께서도 딱히 심한 부상을 입으신 것은 아니니, 실패할 가능성은 없을 것이야.’
뒤통수를 치겠다는 꿍꿍이를 떠올리며 다가오는 현일.
그런 현일을 보며 소종천은 코웃음을 쳤다.
‘흑심을 품고 대가리 굴리는 게 뻔히 보이네.’
몇 남지 않은 절정급의 무인들이 슬금슬금 주변을 에워싸며 몸을 긴장시키는 것이 느껴진다.
‘무당파 놈들, 그래도 생각보다 오래 참았네. 치졸하고 음흉한 족속들이니 이따위 짓을 할지도 모른다고 예상하긴 했지.’
내력은 바닥났지만, 딱히 걱정은 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이렇게 나왔다면 몰라도, 이미 상대측의 전력이 대부분 무력화된 상황에서 소종천이 위험에 처할 일은 없다.
이쪽엔 아직 팔팔한 초절정의 무인이 한 명 더 있으니까.
소종천은 비무 장소에서 조금 떨어져 있던 일행들을 힐끔 쳐다보고는 눈짓으로 신호를 보냈다.
아직 나서지 말고 대기하고 있으라는 의미.
분위기가 이상해지자 막 기세를 드러내려던 남궁건이, 소종천의 신호에 다시 스스로의 기운을 억눌렀다.
‘아낄 수 있는 패는 마지막까지 아껴둬야지.’
남궁건은 언제 발생할지 모를 마교와의 전투에 대비해, 평소에는 항상 자신의 기운을 통제하며 경지를 숨긴 채 생활하고 있다.
말하자면 소종천의 숨겨둔 검이라 할 수 있는 셈.
이번의 내기 비무는 무당파와의 관계가 악화될 수밖에 없으니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해 데려오긴 했으나, 아직 손 쓸 수 없을 만큼 위급한 상황은 아니기에 지금 남궁건을 드러내는 것은 아까운 일이다.
‘어차피 오늘 비무로 업적 점수를 꽤 모았으니, 간만에 한 번 써보자고.’
소종천은 뽑기 창을 띄워 곧바로 영웅 뽑기를 실행했다.
[업적 점수 1,000점 소모.] [인급 영웅 당첨!] [파산대부 임장욱의 힘이 깃듭니다.]얼마 남지 않았던 소량의 내력에 새로운 힘이 더해진다.
‘하필 인급이냐? 에이 뭐, 이 정도면 충분하긴 하지만.’
50년에 조금 못 미치는 내공 수치.
소종천의 본신 내력에 비하면 절반도 되지 않는 양이지만, 그 정도면 이 상황을 마무리하기에 충분한 수준이기도 하다.
다가오는 무인들을 쓱 훑어보며, 소종천은 소림오권의 기수식을 취했다.
“조사를 거부하려는 건가? 사이한 방식으로 무공을 익혔음을 인정하는 게로군?”
“개소리 집어치우시지. 딱 봐도 더러운 수작질을 부리려는 게 보이는구만.”
“크흠! 떳떳하지 못하니 날이 선 반응을 보이는군. 더 말할 필요도 없겠어. 제압하라!”
소종천을 둘러싼 무인들이 방진을 형성하며 검기를 피워 올렸다.
동일한 무공을 익힌 절정의 무인들이 펼치는 검진을 상대하는 것은, 초절정 무인이라도 제법 까다로운 일이다.
다만, 소종천에겐 크게 해당 사항이 없었다.
연대구품으로 신형을 늘린 소종천이, 들이닥치는 무인들을 상대로 분신을 내보냈다.
대성한 연대구품의 위력은 상당했다.
원래 실체화한 분신들은 소종천에 버금가는 파괴력을 갖췄지만, 약간의 공격만 허용해도 흩어지게 되는 종잇장 같은 내구력이라는 단점이 있었다.
한데 성취가 10성에 오르니 분신들의 구성이 아예 강기로 이루어져, 전신을 호신강기로 감싼 것과 같은 효과를 지니게 되었다.
자연히 일반적인 절정의 무인들이 상대가 될 리가 없다.
“크악!”
“끄어억!”
“이런! 아직도 저만한 힘이 남아 있단 말인가!”
이쪽의 공격은 통하지 않으면서 일격만 허용해도 강기에 맞은 것과 같으니, 무당파의 무인들은 순식간에 만신창이가 되어 나가떨어졌다.
유일한 초절정 무인인 진양이 잠시 버티긴 했으나, 그 역시 분신들에게 집중공격을 당하자 얼마 못 가 무너지고 말았다.
‘으윽! 내공 소모가 미쳤다!’
다만 장점과 함께 단점도 더 커졌으니, 기존에도 상당했던 내력의 소모량이 몇 배로 늘어나게 되어버렸다.
미처 대비하지 않은 상태로 내력이 엄청난 속도로 빠져나가는 바람에, 하마터면 기혈이 꼬여 내상을 입을 뻔했다.
‘와 씨…… 이제는 분신을 한 번에 최대치로 만들어내는 건 자제해야겠네. 초절정의 경지로도 여유롭게 사용할 수 없는 무공이라니, 이런 건 진짜 대체 누가 만든 거야?’
사람 8명 분량의 강기 덩어리를 방출해 조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니, 영웅 뽑기로 채웠던 내력이 순식간에 사라져간다.
그나마 무구와 영약의 효과로 회복되는 양이 있어, 탈진으로 꼴사납게 쓰러지는 모양새는 막을 수 있었다.
장문인을 포함한의 무당파 수뇌부들이 전부 쓰러지고 나자, 더 이상 아무도 나설 수 있는 자가 없었다.
숨 막히는 적막 속에서 주위를 둘러본 소종천이 입을 열었다.
“더 덤빌 사람?”
급이 낮아 비무에 끼지 못하고 구경만 하고 있던 무인들이 황급히 뒤로 물러났다.
“없으면 말고.”
소종천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무당산을 내려왔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 앞을 막아서는 자는 아무도 없었다.
제법 시간이 지났는데도 입구에는 여전히 제법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엇! 권괴다!”
“비무는 어떻게 된 거지?”
“뭐야? 싸운 거 맞아?”
멀쩡한 몸으로 무당파를 떠나는 소종천의 모습에, 자연히 큰 소란이 일어났다.
“비무 이야기는 그냥 헛소문이었던 건가?”
“아까 무제한 비무니 뭐니 떠들던 새끼 어디 갔어?”
“어흠! 나도 그냥 지인에게 들었을 뿐이오.”
“하긴, 아무리 초절정의 무인이라도 무당파의 고수들을 전부 상대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지.”
“그냥 조금 분쟁이 생겨서 적당히 말로 풀고 돌아가는 거 같은데?”
대부분의 무인들은 그저 자신들끼리 떠들고 말 뿐, 차마 성격과 행동이 괴이하여 권괴라 불리는 소종천을 붙잡을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사람이 이만큼이나 모이면 개중에는 남들이 시도하지 않는 행동을 하는 자도 나오기 마련.
“권괴 어르신! 소문으로 떠돌던 비무 이야기는 어떻게 된 겁니까? 속 시원하게 사실을 알려주십쇼!”
누군가 용감하게 앞으로 나서며 소종천에게 질문을 던졌다.
주위가 순식간에 고요해진다.
다들 소문이 무성한 그 권괴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일지 기대하며, 숨을 죽이고 상황을 지켜보았다.
걸음을 멈춘 소종천은 자신을 부른 무인에게 시선을 주며 대답해 주었다.
“그쪽이 말하는 소문이 무슨 소문인지는 모르겠는데, 비무를 치르고 내려온 것은 사실이지.”
“오오!”
“하지만 겉보기엔 딱히 대단한 싸움을 벌인 것 같지 않은데…….”
“에이! 설마 소문처럼 무제한 비무를 벌였겠는가? 다툼이 있었어도 대충 형식적인 비무로 끝내고 적당히 대화로 풀었겠지.”
“그런가?”
소종천은 수군거리는 관중들에게 몇 마디를 더 남기고 다시 발길을 옮겼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궁금하면 올라가서 보던지. 아마 재미있는 구경을 할 수 있을 텐데.”
그 말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불씨가 되었다.
“젠장! 이제 막지 마쇼! 권괴가 떠났으니 들어가도 문제 될 것 없잖아!”
“맞아! 비무는 못 보게 막았어도 결과 정도는 확인하게 해주라고!”
수백 명의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밀어붙이자, 입구를 지키고 있던 무당파의 무인들은 더는 그들을 막지 못하고 길을 열어줄 수밖에 없었다.
‘뭐지? 정말로 그냥 대화로 푼 건가? 들은 대로라면 저렇게 몸 성히 떠날 수 있을 리가 없는데?’
‘권괴가 저리 지나가는데 위에선 아무도 소식을 전하러 오지 않다니.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모르겠군!’
더 이상 아무도 막는 사람이 없기에, 사람들은 거침없이 무당산을 올랐다.
그리고 이내, 무당파 내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모두가 알 수 있게 되었다.
뽑기로 무림최강 16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