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166
64. 북진(6)
-선배님. 그쯤하고 물러나십시오.
송호빈에게서 전음이 날아왔다.
소종천은 짜증을 참지 못하고 그의 위치를 찾아 대답을 보냈다.
-이게 뭐하는 짓이야! 이쪽의 상황이 보이지 않는 거요?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
-당신이 힘을 보태 검마와 궁마를 해치우면 끝낼 수 있는 싸움이잖아!
-곧 합류할 후발대와 전력을 합치고 저희에게 유리한 장소에서 다시 전투를 벌이려는 겁니다. 굳이 저희가 당장 위험을 감수해야 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
-이런 미친!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음에는 더 큰 희생이 따를 수도 있어!
-제 생각과는 다르군요. 아무튼 어서 빠져나오십시오.
뻔뻔한 대답을 하는 동안에도 송호빈의 기척은 조금씩 멀어져갔다.
울화가 치밀어 올라 뒷목이 뻣뻣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주화입마에 걸린 기분이 이런 것인가 싶다.
하지만 열이 받아도 어쩔 수 없다.
이 상황에서 계속 버티고 있다가 아군이 없는 곳에서 완전히 포위된다면, 잘해봐야 검마와 공멸하고 끝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건! 빠져야 해!
“흐랴아압!”
전음을 보냄과 동시에 소종천은 크게 진각을 밟으며 호권의 형으로 주먹을 내질렀다.
상대는 극히 작은 기척만으로도 공격을 감지하고 반응할 수 있는 대단한 고수.
지금의 초식은 위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큰 동작을 취한 만큼, 정확한 타격을 기대하긴 어렵다.
그렇지만 막 남궁건의 검초가 교묘하게 옆으로 빠져나갈 수 있는 퇴로를 차단하며 베어왔기에, 검마는 소종천의 권격을 피하지 못하고 검초를 수비식으로 전환하며 검막을 만들어냈다.
콰르릉!
막대한 내력이 집약되어 들어간 강기와 강기의 충돌에, 벼락이 떨어지는 듯한 소리가 울린다.
소종천의 이번 공격은 내공의 우위에 있던 검마라도 가볍게 막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충격을 최대한 뒤로 흘려보내야 했다.
검마가 살짝 비틀거리며 세 발자국 물러났다.
그와 동시에 남궁건과 소종천이 몸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고작 세 걸음이지만 찰나의 순간에 판단과 행동을 할 수 있는 고수들의 싸움에선, 그만큼의 동작이면 두 사람이 몸을 빼내기엔 충분한 여유가 있었다.
‘적당히 견제는 해두고.’
소종천은 몸을 빼며 연대구품을 펼쳐 분신 셋을 만들어냈다.
대성에 이르며 전신이 강기 덩어리가 된 분신은 내력 소모가 너무 많아져, 다섯이 넘어가면 기혈에 자극이 가기에 이 정도가 딱 부담스럽지 않은 숫자다.
분신 셋이면 잠깐 정도는 검마의 발목을 잡아둘 수 있을 것이다.
‘빌어먹을 맹주 놈과 합류할 시간 정도는 충분히 벌어주겠지.’
“어딜 도망가느냐!”
성난 고함을 지르는 검마를 뒤로 하고, 소종천은 남궁건과 함께 길을 막는 강시들을 최대한 피하며 달렸다.
그러는 와중에도 소종천은 주변을 둘러보며 아군의 상태가 어떤지 살폈다.
‘그 몇 분 사이에 이만큼이나…….’
소종천이 검마와 대적하는 동안, 천명에 달하던 인원이 반으로 줄어들었다.
목숨을 잃은 것은 대부분 일류급의 무인들이고 절정급의 고수들은 대부분 생존해 있지만, 그렇다 해도 상당한 피해가 아닐 수 없다.
이런 피해를 입고도 이득을 본 게 하나도 없다니.
다시 한번 화가 치밀어 오른다.
‘멍청한 맹주 놈이 내게 협력했다면 마인들을 해치우고 남은 강시들을 쉽게 처리할 수 있었는데! 당한 사람들은 이게 무슨 헛된 죽음이야?’
연맹이라는 단체의 입장에서도 막대한 손실이고, 소종천 개인에게도 안타까운 일이다.
‘오악 중 아무도 해치우지 못했느니 임무 보상도 없을 테고…… 어라? 그러고 보니 임무가 있었나?’
문득 떠오른 생각에 소종천은 알림 창을 살폈다.
경황이 없어 잊고 있었는데, 지금 살펴보니 글자 하나 없이 깨끗하다.
어째 매번 중요한 순간마다 떠올랐던 임무 알림이, 이번만큼은 잠잠했던 모양이다.
‘어째서? 그야 물론 검마 제거 같은 임무를 받았다면 결국 실패하게 된 거니, 임무가 없던 건 다행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 일인데?’
사소한 일도 아니고 이런 상황에 어째서 임무가 발생하지 않았던 걸까?
설마 자신의 전부나 마찬가지인 뽑기 시스템에 무언가 문제라도 생긴 것일까?
의아했지만 궁금증을 해결할 방법도 없고 당장은 깊게 고민에 빠져 있을 처지도 아니기에, 소종천은 생각을 길게 가져가진 못했다.
“음? 저건 또 뭐야.”
움직이면서 멀리 정면 쪽으로 시선을 집중하자, 아군의 전열이 흐트러지는 모습이 보였다.
강시 떼의 포위를 뚫고 잘 빠져나가고 있는 것 같았는데, 또 무슨 문제가 생긴 건가 싶다.
내력을 퍼뜨리며 기감을 넓게 확장한 소종천은, 이내 아군의 앞을 막아선 일련의 무리를 감지해 낼 수 있었다.
‘이런, 적이 더 있었나?’
혐오스러우면서도 익숙한 기운이 감지된다.
필경 앞에 있는 자들은 마기를 품은 마인들이 분명했다.
거리가 꽤 떨어져 있고 사방이 적이라 인지하는 것이 늦었다.
숫자는 대략 백여 명.
마인의 강함을 생각하면 심장이 철렁한 상황이어야 하지만, 의외로 위기감은 그리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전부 졸개들인가?’
품고 있는 마기의 양으로 봐서는 하나같이 간신히 일류급이나 되었을까 싶은 쭉정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도주하는 무인들을 붙잡아 두기 위해 남겨둔, 마교 측의 예비전력인 것으로 보였다.
돌파하는 과정에서 아군 무인들의 손실이 더 생기긴 하겠지만, 크게 위험하다고 할 만한 병력은 아니다.
이쪽의 절정급 무인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공략해 준다면, 충분히 어렵지 않게 뚫고 지나갈 수 있을 터.
“윽?”
그렇게 생각하던 소종천은 이내 눈을 부릅뜨며 놀라야 했다.
허수아비나 다름없어 보이던 마인들 사이에서, 무시할 수 없는 강렬한 기운이 피어올랐기 때문이었다.
* * *
마교는 마혈강시를 이용해 연맹에게 최대한 타격을 주고자 계획을 짰다.
하북에 위치한 연맹의 연락망을 모두 끊어내고, 하북지부를 습격해 궤멸에 가까운 상태로 만들어 연맹의 주력을 끌어냈다.
이후 생존자들을 창암산으로 몰아넣고, 끌어낸 연맹의 무인들을 그곳까지 유인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그렇게 마교의 사활을 건 계획을 실행하는데, 당연히 그들을 이끄는 이가 참여하지 않았을 리 없다.
“결국, 노부가 나서야 할 모양이군.”
마인들을 지휘하는 현 마교의 실질적인 지도자.
부교주의 위치와 무혈마라는 별호로 알려진 조곡이,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발을 내디뎠다.
무혈마가 다른 마인들과 처음부터 함께 등장하지 않은 것에는 이유가 있다.
그의 몸이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기 때문.
천마가 사라진 이후로 꾸준히 활동을 이어가며 악명을 쌓았던 오악과 달리, 무혈마는 무림인들의 앞에 거의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천마의 압도적인 무위에 가려 빛이 바래긴 했지만, 무혈마는 명백한 마교의 최고위 강자 중 한 사람이다.
그런 무혈마가 은둔 생활을 이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가 익힌 무공의 부작용 때문이었다.
무혈마의 혈살마공은 무림에 악명이 자자한 흡성대법 계통의 마공으로, 적의 피를 흡수해 자신의 내력을 회복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혈살마공에 당한 자들은 온몸의 피가 증발한 것처럼 사라지게 되기에, 그는 무혈마라는 명칭으로 무림인들에게 불리게 되었다.
혈살마공은 마교의 교주만 익힌다는 천마신공에 견줄 만한 최강의 무공이지만, 생명의 근원이 되는 선천진기가 오염된다는 단점이 있다.
무혈마가 활동을 중단한 것은 스스로의 무공 탓에, 생기의 균형이 무너지며 수명을 갉아먹게 된 탓.
그렇기에 경지가 깊어질수록 회춘하는 다른 초절정 고수들과 달리, 그는 자신이 그간 만들어낸 시체들처럼 볼품없는 외형을 지니고 있었다.
사실 마인들이 이번 계획에 사활을 걸게 된 것에는, 무혈마의 수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까닭에도 있다.
귀마와 권마, 도마에 이어 무혈마까지.
마교의 세력은 점점 약화되고, 고위 간부들도 계속 죽어 나가니, 구심점이 남아 있는 시점에 승부를 걸 수밖에 없던 것이다.
“신교의 영광을 위하여.”
나지막이 읊조린 무혈마가 무인들을 향해 신형을 날렸다.
그는 스스로의 남은 생명을 불태워 연맹의 최고전력들을 제거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섰다.
천마의 난 이후로 수십 년간 봉인되어 있던 혈살마공이, 연맹의 무인들 앞에 다시 등장했다.
무혈마가 무인들을 향해 거무죽죽한 손바닥을 휘젓자, 스무 자가 넘는 길이의 핏빛 강기가 튀어나와 그들의 몸을 가르고 지나갔다.
“크아악!”
“미, 미친!”
강시 떼를 돌파하는 과정에서 절정급의 무인들이 선두에 배치되어 있었음에도, 양손에 길게 강기를 뽑아내 채찍처럼 휘두르는 무혈마에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저놈이 무혈마…… 나타나지 않는 건가 싶었는데 따로 떨어져 있었구나.’
멀리서 정보를 확인한 소종천이 신음을 흘렸다.
굳이 자세히 비교하지 않아도 무혈마가 검마 못지않은 무시무시한 강자라는 걸 알아보기 어렵진 않았다.
무혈마가 공격을 시작하자, 뒤에 시립해 있던 백여 명의 마인들이 멍한 얼굴로 손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이내 기가 실린 손을 스스로의 목에 찔러 넣었다.
이들은 마공을 익혔으나 마교의 교인들이 아니다.
약물과 술법으로 세뇌되어 조종당하는 제물들일 뿐.
원래는 마혈강시의 재료로 쓰였어야 할 이들이지만, 귀마가 죽고 나서 쓸데가 없어져 버린 이들이다.
그들은 이제 무혈마의 마지막 생명의 불꽃을 화려하게 타오르게 하기 위한 제물이 되었다.
마인들이 쏟은 피가 바닥을 흐르며 무혈마를 향해 움직였다.
적의 피를 취해 힘을 발휘하는 혈살마공.
선천진기의 오염이 극에 달한 상태로 마공을 펼쳐 당장 시체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무혈마에게, 마기를 품은 자들이 바치는 피는 혈살마공의 부작용을 잠시 지연시키는 효과를 보였다.
“크하아아!”
무혈마가 붉은 안광을 내뿜으며 더욱 더 길고 굵직한 강기를 발산해, 양 떼 사이로 뛰어든 맹수처럼 살육을 자행했다.
인간 같지 않은 무위에 연맹의 무인들은 차마 그를 돌파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앞에는 미친 듯이 날뛰는 무혈마가 있고, 뒤에는 쫓아오는 검마와 궁마가 있다.
덤으로 제법 파괴당하긴 했으나, 아직 이백여 구가량 남아 있는 강시와 마인들까지.
진퇴양난에 빠진 무인들 사이에서 소종천이 외쳤다.
“뭘 가만히 보고 있어! 살고 싶으면 뛰어들어!”
강적이 두렵다고 가만히 있어 봐야 맞이하는 결말은 하나뿐이다.
차라리 죽음을 각오해야 살길이라도 열린다.
‘이젠 나와 동료들의 힘을 합쳐도 승산이 확실하지 않아. 이렇게 된 이상 어떻게든 빠져나가는 데에 주력할 수밖에.’
더 이상 누굴 지켜주거나 할 여유도 없다.
무인들이 빠져나갈 시간을 벌어주겠다고 무혈마와 치고받고 있다가 검마와 궁마가 합류해 덜미를 잡힌다면, 도망치지도 못하고 죽게 될지도 모른다.
죽을 놈은 죽고 살 놈은 산다는 말처럼, 일단은 아무것도 따지지 말고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 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송호빈의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나와 권괴 선배가 저자를 맡아 길을 뚫을 터이니, 다들 쫓아오는 적들을 잠시 막아주시오!”
‘아니, 이 인간이 또?’
또다시 의견이 충돌했다.
소종천은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뽑기로 무림최강 16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