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167
64. 북진(7)
‘일반 무인들만으로 마교의 병력을 상대한다면 엄청난 손실이 발생할 텐데.’
아무리 삼 대 일의 싸움이라도 무혈마 정도의 고수를 제압하려면 제법 시간이 소요될 것이고, 오히려 그동안 아군이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반면 초절정 무인 중 누군가가 나서서 무혈마를 잠시 묶어두고 퇴각을 멈추지 않게 한다면, 휘말려 죽는 사람이 어느 정도 나올지언정 훨씬 피해를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다만 그렇게 되면 아군이 빠져나가는 동안 무혈마를 상대하던 이는, 거기에 더해 검마와 궁마가 포함된 마교의 병력까지 마주하게 된다.
자칫하면 도주할 기회조차 사라지는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다.
소종천은 아무리 아군의 피해를 줄이고 싶다 해도, 자신의 목숨까지 걸어가며 모두를 지키겠다는 생각을 하진 않는다.
남궁건에게 그런 일을 맡기고 싶지도 않으니 남은 건 맹주뿐인데, 솔직히 맹주가 그렇게까지 살신성인의 자세를 보일 것 같진 않았다.
해서 차라리 일부의 죽음을 감안하고 무혈마를 무시한 채 도주를 이어가자고 한 것인데, 어째서 맹주가 저딴 명령을 내리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망할! 지금은 이렇게 따지는 시간조차 아까워. 여기서 반발해 봐야 일이 더 꼬일 수도 있다는 걸 고려해야 해.’
남의 장단에 끌려다니는 취미 따위는 없지만, 소종천은 일단 송호빈의 말에 따르기로 했다.
설득을 위해 이야기를 나눌 만큼 여유로운 상황이 아니다.
대화가 길어질수록 그만큼 아군의 피해가 늘어날 것이고, 그럴 바에야 최선책이 아닌 것 같아도 빨리 시도하는 편이 낫다.
후열의 아군 무인들을 통과해 지나간 소종천은, 그대로 전열까지 도달해 무혈마를 향해 달려들었다.
휘리릭!
“흐읍!”
혈살마공으로 만들어져 피처럼 붉고 끈적끈적한 느낌을 주는 혈강기.
그 혈강기로 이루어진 줄기들이, 소종천의 몸을 찢기 위해 넘실거리며 다가왔다.
호흡을 들이쉬며 어지럽게 굽이치는 강기를 피해낸 소종천은, 파고들 만한 허점을 찾기 위해 무혈마의 주변을 맴돌았다.
‘……이거 영 빈틈이 보이질 않는데? 강기의 길이도 이젠 10미터를 넘어 보이고. 이만한 출력을 사람의 몸이 버틸 수 있는 건가?’
무혈마의 무위는 멀리서도 엄청나 보였지만, 가까이 다가와 상대하려니 한층 더 대단했다.
마치 검붉은 색의 회오리바람을 보는 것 같다.
‘칼이나 창 같은 병기와 전혀 다른 투로를 보이는 무공이네. 겉보기엔 채찍 같기도 하지만 전부 강기로 이루어진 만큼 완전히 같진 않을 테고.’
시간만 있다면 움직임에 익숙해질 때까지 상대의 권역 끝에서 가볍게 치고 빠지며 천천히 적응할 텐데, 지금은 그러고 있을 여유가 없었다.
빠르게 쓰러뜨리지 않으면 아군의 피해뿐 아니라 소종천 자신도 위험해질 수 있으니, 좀 과격하게라도 부딪혀 봐야 한다.
그나마 당장은 상대적으로 수적 우위에 있으니 그걸 이용해야 했다.
-건! 네가 틈을 만들어주면 내가 깊게 파고들어 볼게.
-알겠소!
소종천의 곁에 붙어 따라왔던 남궁건이, 전음을 받고 앞으로 나섰다.
즈응웅웅!
검명과 함께 하늘의 색을 닮은 검강이 솟구치며, 남궁건의 신형이 핏빛 폭풍의 벽을 파고들었다.
빠르지만 무거움을 잃지 않고, 단순해 보이지만 무수한 변화를 내포한 남궁건의 검법.
혈강기가 만들어내는 파괴적인 공간에 작은 구멍이 생겨나며, 남궁건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점점 틈이 넓어져 갔다.
파바바바방!
남궁건의 검강과 무혈마의 혈강기가 잠깐 사이에 수백 번 이상 충돌하며, 쉴 새 없이 소음을 만들어냈다.
“캬아아악!”
자신이 다루는 마기에 취해 반쯤 이성을 잃고 광인처럼 변한 무혈마가, 괴성을 지르며 남궁건을 제거하기 위해 더더욱 매섭게 혈강기를 휘둘렀다.
혈강기의 폭풍 속을 절반가량 걸었을 때쯤.
흔들림 없이 오연하게 걸어가던 발길이 멈추며, 남궁건의 무복이 여기저기 갈라지기 시작했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혈강기의 벽은 더욱 촘촘해진다.
아직은 꼿꼿한 자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거기까지가 최소한의 위험부담만을 안고 접근할 수 있는 한계 거리였다.
“더는 어렵소!”
“그래, 잘했어.”
남궁건의 뒤에 바짝 붙어 따라왔던 소종천이, 칭찬의 말과 함께 앞으로 달려 나갔다.
오형 중 표권의 형.
가장 날렵하고 신속한 움직임이 가능한 형에 아라한신권을 중첩시키며, 소종천은 이제는 아예 그물망처럼 빽빽해 보이는 혈강기의 벽을 파고들었다.
‘뚫을 수 있다.’
칼끝처럼 첨예하게 예민해진 감각이 소종천에게 길을 제시했다.
밀려오는 혈강기의 파도를 전부 피해낼 수는 없지만, 돌파가 불가능한 것도 아니다.
아직은 운용이 살짝 어설프지만 호신강기를 보의에 씌운다면, 파괴적인 힘의 정점인 강기와 부딪힌다 해도 꽤나 탄탄한 방호력을 가지게 된다.
피하기 어려운 부분들은 호신강기를 두른 몸으로 때우며, 소종천은 표범과도 같은 날랜 동작으로 혈강기의 망을 찢어발기며 앞으로 나아갔다.
핏!
혈강기의 채찍이 정강이를 할퀴고 지나가며 선혈이 튀었다.
극도로 집중하고 있지만 모든 공격을 막거나 피할 수는 없으니, 자잘한 부상은 감수해야만 한다.
‘살을 주고 뼈를 취하면 된다.’
무혈마와의 거리가 점점 좁혀지며 이내 지근거리까지 도달했다.
거의 공성추나 다름없는 위력이 실린 소종천의 주먹이 무혈마의 몸을 두드렸다.
콰아앙!
“캬윽!”
‘쳇!’
제대로 공격이 들어간 듯 커다란 타격음과 함께 무혈마의 신형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지만, 소종천은 아쉬운 표정으로 혀를 찼다.
사혈(死血)의 일종인 당문혈을 때려 큰 타격을 입힐 생각이었는데, 상대 역시 쉽게 급소를 허용하지 않고 몸을 틀어 타점이 중심에서 크게 벗어났다.
공격 자체가 완전히 막힌 것은 아니니 타격이 없진 않겠지만, 행동에 제약이 생길 정도는 아닐 것이다.
‘아쉽지만 첫술에 배부를 순 없겠지.’
그래도 흐름이 나쁘지 않으니, 소종천은 이대로 계속 무혈마를 몰아붙이기 위해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그렇게 몇 차례 더 공세를 이어가고 있는데, 익숙한 기운들이 근처로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종천!”
한사혜와 장자군이었다.
‘안전하게 수뇌부들과 붙어 있으라고 했는데?’
두 사람의 실력이면 초절정 간의 전투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자칫 한순간에 목숨을 잃을 수도 있기에 비슷한 수준의 무인들과 합류해 있으라고 지시했었다.
잠시 둘의 얼굴을 살핀 소종천은 더욱더 의아함을 느꼈다.
두 사람 다 소태라도 씹은 것처럼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 것이, 아무 이유 없이 이쪽으로 온 것이 아닌 모양이다.
무슨 일 때문인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이런 개…….”
후열을 돌아본 소종천은 이를 악물었다.
마인들에 의해 연맹의 무인들이 학살당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맹주와 소종천 일행을 제외하고 가장 강한 무력을 가지고 있는 수뇌부들이, 적과 싸움을 피하며 일반 무인들을 앞으로 밀어 넣고 있기 때문이었다.
‘진짜 가지가지 지랄들을 한다.’
맹주의 지휘가 이상하다는 것은 수뇌부들 역시 알고 있다.
초절정이 둘이나 섞여 있는 마인들을 막고 있으라니, 사실상 목숨을 던지라는 소리나 다를 바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급박한 전투 상황에서 항명을 할 수는 없으니, 자신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진 않고 휘하의 무인들을 앞세워 시간을 벌고 있는 것이었다.
대부분 일류 수준인 일반 무인들로는, 마인은커녕 마혈강시들조차 막고 있기가 쉽지 않다.
절정급 무인들이 적절하게 분포되어 중심을 잡아줘야 하는데, 그러질 않고 있으니 마교의 병력에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사, 살려줘!”
“아아악!”
여기저기서 비명과 함께 핏물이 흩뿌려진다.
인세에 펼쳐진 지옥도가 따로 없었다.
혐오감을 담아 그 광경을 보던 소종천은, 고개를 홱 돌려 송호빈의 모습을 찾았다.
함께 무혈마를 상대하자고 지껄이던 송호빈은 소종천처럼 혈강기를 파고들지 않고, 딱 바로 몸을 뺄 수 있는 위험하지 않은 선에서 계속 깔짝거리고 있었다.
-맹주! 장난하는 거요? 이러다 다 죽겠잖아!
분노를 담아 전음을 보냈으나 답변은 오지 않았다.
무혈마와 적극적으로 싸우는 것도 아니고 뒤로 가서 아군을 돕는 것도 아니니, 사실상 가장 중요한 전력 하나가 하는 일 없이 놀고 있는 상황이나 마찬가지였다.
“이건 미친 짓이야!”
“이대로는 개죽음일 뿐이라고!”
몇몇 무인들이 소리를 지르며 전투를 포기하고 도주하려 했다.
“도망치지 마라!”
간부들 중 한 사람이 그들의 뒤를 쫓았다.
굳이 그럴 필요도 없는 행동이었다.
소종천을 지나쳐 간 무인들은 곧 혈강기에 휩쓸려 온몸이 잘려 나간 시체가 되었기 때문.
산세가 험하고 발 디딜 수 있는 공간이 넓지 않으니, 무공을 익힌 무인들이라 해도 빠져나갈 수 있는 길은 한정되어 있다.
허무한 죽음을 보며 무언가 감정을 느낄 새도 없이, 그들을 쫓던 간부가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시체들을 밟으며 내달렸다.
“큭!”
절정 중상급에 속하던 그 무인은 혈강기에 팔 하나가 거의 찢겨나가는 부상을 입었지만, 반대편 손으로 상처를 지혈하며 산길을 따라 도망쳤다.
“저, 저!”
“저런 쥐새끼 같은 작자가!”
수뇌부들이 전부 분통을 터뜨리며 욕을 했지만, 이내 그들 사이에서 미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몇몇 간부들이 서로의 눈치를 보며 소종천의 뒤편으로 슬금슬금 걸음을 옮겼다.
말하지 않아도 그가 싸우는 사이에 도망갈 기회를 엿볼 심산인 것을 알 수 있었다.
“하하…….”
소종천은 웃음을 흘렸다.
이런 자들이 무림을 대표하는 세력의 간부들이라니.
개판도 이런 개판이 없다.
‘18…… 그냥 빨리 다 망해 버리지 그랬냐.’
갑자기 주변이 고요하게 느껴지며, 마음이 평온해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화가 쌓이고 쌓이니 오히려 감정이 가라앉아 해탈한 상태에 이른 것이다.
왠지 득도한 고승이 된 것만 같다.
‘지금 심법을 수련하면 9성에 머물러 있던 반야신공을 10성으로 대성할 수도 있지 않을까?’
살짝 정신이 나갈 것 같아서 그런지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살육은 계속되었다.
“맹주님! 더는 버틸 수 없습니다!”
“이대로는 안 돼! 지금이라도 각자도생하던가 합시다!”
진형이 무너지며 무인들이 다 죽어가자, 슬슬 똥줄이 탄 수뇌부들이 맹주를 찾으며 다가왔다.
“으음.”
싸우는 시늉만 하며 몸을 보전하고 있던 송호빈이, 짐짓 침통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내 대처가 미흡했구려. 권괴 선배님.”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소종천은 시큰둥한 얼굴로 송호빈을 돌아보았다.
‘또 무슨 개소리를 하려고?’
이제는 뭐라 해도 그의 지시를 들을 생각이 없다.
궤멸 직전에 이른 무인들을 돕자고 가봐야 이미 늦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몇 사람 더 구한다고 해봐야 그다지 달라질 것도 없으니, 지금은 후일을 도모하며 발을 빼야 할 시기다.
소종천은 자신의 일행들이나 잘 챙겨서 후퇴한 뒤, 연맹의 후발대와 합류해 다음 전투에 대비하기로 마음먹은 상태였다.
“제가 무혈마를 막고 있겠습니다. 놈의 공격이 제게 집중될 수 있도록 최대한 다가가야 하니, 잠시 틈을 만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늦게라도 맹주라는 직함다운 일을 하려는 것인지, 송호빈은 자신이 시간을 벌 수 있게 잠깐 도와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남궁건이 했던 것처럼 파고들 수 있는 길을 열어달라는 것이다.
‘이 인간의 말은 이제 신뢰할 수가 없는데…….’
이제 와서 위험한 일을 자처한다는 게 이상했지만, 이치에 맞지 않는 부탁도 아닌지라 무시해 버릴 수도 없었다.
정말로 그가 가장 위험한 역할을 맡으며 시간을 벌어준다면, 그나마 남은 인원이라도 어느 정도 안전을 챙길 수 있을 것이다.
“쯧…… 그럽시다.”
-종천. 그 역할은 내가 맡겠소.
-아냐. 넌 자군이랑 사혜가 안전하게 빠져나갈 수 있게 붙어 있어 줘.
전황을 보아하니 앞으로 몇 초만 더 머물러 있다간 검마와 다시 맞부딪히게 될 상황이니,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자신이 대신 나서겠다는 남궁건과 전음을 주고받은 소종천은, 송호빈에게 다가가 그의 곁에 섰다.
뽑기로 무림최강 16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