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168
64. 북진(8)
‘뭐 하나 쉽게 되는 일이 없군. 그래도 지금이라면…….’
앞으로 나서는 소종천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송호빈은 긴장감과 가라앉히기 위해 노력했다.
소종천의 죽음을 바라고 있던 그는 이번 원정에서 마교의 강적들을 마주치게 되면, 일부러 소종천에게 위험을 몰아주겠다는 흉계를 꾸미고 있었다.
거기에 더해 따로 준비한 것도 있었다.
‘인정하긴 싫지만 권괴는 일반적인 무공 경지의 체계로 분류할 수 없는 괴물 같은 자이니.’
함정에 빠뜨린다 해도 소종천이 쉽게 쓰러질 것이라 생각하진 않는다.
마인들과 공멸해 준다면 최고의 결과겠지만, 권괴라면 어떻게든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아무 부상 없이 멀쩡할 리는 없을 터이니 준비한 ‘그것’과 함께 암습을 가한다면, 아무리 대단한 권괴라 해도 충분히 제거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
보는 눈들이 있으니 다른 무인들의 비난을 막을 순 없겠지만, 사문과 우호세력들에서 옹호해 준다면 맹주직을 내려놓고 무림에서 은퇴하는 정도로 마무리 지을 수 있으리라.
‘권괴가 세력을 일구고 나면 아무도 손댈 수 없는 독주를 이어가게 될 테니, 놈과 본문의 관계를 생각하면 이렇게라도 해서 막아야 하는 게 옳다.’
그러나 상황은 송호빈의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일단 어렵지 않게 승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마교의 전력이 너무 강했다.
절정급이 아니면 해치울 수가 없는 강시의 존재는, 그에게 상당한 위기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래도 결국 강시는 마인의 통제가 없으면 무용지물인 존재. 권괴가 열심히 날뛰어 마교의 간부들을 해치워준다면, 나머지는 어떻게든 연맹의 병력으로 상대할 수 있다.’
일반 무인들이 죽어 나가는 것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그편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권괴와의 분쟁으로 무당파의 세력이 약화된 지금, 타문파의 전력이 줄어 하향 평준화가 되는 것은 반길 만한 일이다.
굉장히 도의적이지 못한 생각이지만, 어차피 원래부터 송호빈은 의인이라 할 수 있는 인물이 아니었다.
이어서 오악과 소종천의 전투에서, 송호빈은 다시 한번 놀라게 되었다.
생각지도 못한 남궁건의 무위 때문이었다.
‘이런 미친! 설마 저자도 반로환동한 무인이기라도 한 건가?’
그럴 리는 없었다.
과거의 행적이 불분명한 소종천과 다르게, 남궁건은 남궁세가의 인물로 신원정보가 확실한 자였으니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걸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소종천의 편에 속하는 초절정 무인의 존재라는 것은, 계획에 큰 차질을 빚게 될 것이라는 의미나 다름없다.
‘이렇게 된 이상 권괴가 마인들과 공멸하길 기도하는 수밖에 없군.’
송호빈은 처음부터 끝까지 자신의 안위만을 신경 쓰며, 오악과 무혈마의 전투에서 소종천을 전혀 돕지 않고 방치해 두었다.
그럼에도 원하던 그림은 나오지 않았고, 결국 연맹의 무인들만 대거 죽음을 맞이한 채 물러나야 하는 지금의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마지막 기회다.’
무혈마의 혈강기와 부딪히며 나아가는 소종천의 등을 보며, 송호빈은 검집을 손에 쥐고 내력을 밀어 넣었다.
이번 일을 위해 특별히 제작한 검집의 내부에서 숨겨둔 장치가 작동하며, ‘그것’이 흘러나와 안에 고이기 시작했다.
맹주의 지위와 연줄을 통해 구한 극독의 물질.
초절정의 무인조차 중독을 피할 수 없다고 알려진, 사천당가가 자부하는 팔대극독 중 하나인 무형독(無形毒)이었다.
당가에서도 사용이 허가되는 경우가 드물어 외부로의 반출이 금지된 물건이었으나, 마침 소종천에게 원한을 가진 장로급 인사를 알고 있어 그를 통해 손에 넣을 수 있었다.
무형독은 무색, 무미, 무취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 이름 그대로 형체가 없는 무형의 독이다.
경지에 걸맞은 식별능력을 갖춘 송호빈도 당가의 인물이 준비해준 장치를 통해야만 겨우 다룰 수 있는 것인 만큼, 뒤에 있는 다른 무인들은 그가 독을 사용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할 것이었다.
송호빈은 소종천의 곁을 스쳐 지나가며, 제법 자연스러운 동작으로 검집에 담긴 무형독을 분사했다.
그리고 이내 검을 몇 번 휘둘러 혈강기를 뚫으려는 시도를 하고는, 고의로 어깨 부근에 살짝 상처를 입으며 힘겹게 싸우는 연기를 펼쳤다.
* * *
‘그러면 그렇지.’
전력을 다하지 않고 몸을 사리는 송호빈을 보며, 소종천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아군을 위해 희생할 것처럼 나서더니, 결국 보여주기식의 행동이었을 뿐인 모양이다.
‘저러다 내게 떠넘기고 달아날 속셈인가? 맡아줄 생각 따윈 없는데 말이야.’
소종천은 고개를 저으며 일행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려했다.
그러나 한 걸음을 채 움직이기도 전에,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그 자리에 멈춰서야만 했다.
“큭!”
몸속을 침범하는 지저분한 기운이 느껴진다.
‘독?’
재빨리 내력을 모아 불순한 기운들을 통제하려 시도했다.
그러나 생각처럼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지간한 맹독이라도 소종천의 내공이라면, 가볍게 태워 모공으로 배출하거나 입으로 토해낼 수 있을 것이다.
한데 지금 몸속에 들어온 독기는 소종천이 가진 강대한 내력으로도 뿌리쳐지지 않고, 끈덕지게 달라붙으며 점점 몸 내부를 잠식하려 들었다.
‘망할! 설마 맹주 저 인간이? 이런 미친놈이!’
근처에 있던 사람이라곤 송호빈 하나뿐이니, 범인이 누군지 고민할 필요도 없다.
소종천의 전신 피부 위로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바깥으로 독기를 배출하기 위해 절로 신체가 반응하는 것이다.
매우 지독한 독이었지만 독기를 차단하는 보의의 효과가 있기에, 몸 안에 들어온 독의 양은 극히 소량에 불과했다.
소종천의 내공이라면 운공을 통해 독기의 배출에 집중할 경우, 반 시진 내로 몸에 들어온 독을 전부 해독할 수 있을 정도.
그러나 지금은 여유롭게 바닥에 앉아 운기를 취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큰일이다.’
소종천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무당파와는 이미 척을 졌기에, 송호빈과는 연맹이라는 틀 안에서 같이 행동할 뿐인 잠재적인 적대관계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설마 마교와의 전투가 한창인 와중에 이따위 짓을 벌일 줄이야.
당장 독을 해독하는 데에 전념할 수 있는 상태도 아니고 상당한 양의 내공이 독기가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묶여 있어, 매우 위험한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무혈마를 상대로 검식 몇 번을 펼치던 송호빈이 슬금슬금 거리를 벌리며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곧장 표적은 다음으로 가까이에 있던 소종천으로 바뀌게 되었다.
“으윽…….”
소종천은 이를 악물고 날아오는 혈강기를 쳐내며 몸을 빼려 했지만, 제 기량을 낼 수가 없어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종천!”
“뭐 하고 있는 거야!”
이상한 낌새를 느낀 일행들이 재빨리 신법을 펼치며 소종천의 곁으로 다가왔다.
그러는 동안 송호빈은 수뇌부들에게로 돌아갔다.
“어서 물러납시다.”
“이게 무슨…….”
“이 몸이 부족하여 아무래도 권괴 선배께서 대신 남아주실 모양이오.”
“크흠, 어쩔 수 없는 일이군요.”
분위기가 묘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할 리 없지만, 자세히 따지고 드는 사람은 없었다.
도의니 명분이니 챙기는 것도 목숨이 붙어 있고 나서야 따질 수 있다.
수뇌부의 대부분이 송호빈 못지않은 이기심으로 가득한 이들이기에, 본인이 살 수만 있다면 희생하는 사람이 누가 되었던 상관할 일이 아니라고 여겼다.
도주하는 수뇌부를 무혈마가 공격했지만 나름대로 절정 상위급의 한가락 하는 무인들이다.
거기에 송호빈도 포함된지라 심각한 부상을 입은 사람은 없었다.
‘무형독에 중독되었으니 마인들을 당해내지 못하고 죽을 것은 확실하겠지. 기왕이면 마지막 발악으로 최대한 많은 마인들을 저승길 동무로 데려가 주길 바라네. 후후.’
소종천이 없다면 마교와의 전투가 굉장히 어려울 것이 분명하지만, 송호빈은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자신과 사문이 흘릴 피만 아니라면 희생이 얼마나 커지던지 상관없는 일이었다.
무수히 많은 무인들의 피가 흐르겠지만, 결국 시간이 지나면 살아남는 쪽은 언제나 그랬듯이 연맹이 될 것이라 여겼다.
빠져나갈 사람들은 다 도망가고 나자, 무혈마의 공격은 다시 소종천과 일행들에게로 집중되었다.
그에 더해 마침내 연맹의 무인 대부분이 전멸하여, 검마와 궁마까지 합류하며 일행들은 앞뒤로 포위당하게 되었다.
“버러지 같은 놈들! 더는 도망갈 수 없을 것이다!”
검마가 남궁건에게 시선을 고정하며 살기를 흘렸다.
마기와 상극인 힘을 다루는 소종천보다 남궁건을 더 신경 쓰는 모양새가 조금 우스웠지만, 어차피 누가 먼저가 되었든 이대로라면 전부 죽음을 면하기 어려울 것이다.
마인들과 강시 떼가 일행을 에워싸며 퇴로를 차단했다.
“으으!”
“여기가 마지막인가…….”
아직 살아 있는 연맹의 무인 몇 사람이 일행들의 곁으로 다가와 뭉쳤지만, 그 수가 고작 삼십이 채 되지 않아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여겨지진 않았다.
희망이 없어 보이는 전투가 시작되었다.
뭔가 대화를 나누거나 할 새도 없이, 다들 살기 위해 온힘을 다해 버둥거렸다.
검강이 난무하며 검마와 남궁건이 초식을 교환하는 동안, 장자군과 한사혜는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마인과 강시를 상대했다.
어느 한쪽이나 힘겹지 않은 싸움이 없었는데, 궁마가 쏘아대는 화살이 곳곳에 향하며 아슬아슬한 위험을 더해갔다.
‘빌어먹을…….’
소종천은 내력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쓸 수 있도록 기의 운용에 심혈을 기울이며, 무혈마를 향해 달려들었다.
독기 때문에 무공을 펼치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가만히 서서 죽을 수도 없으니 어떻게든 움직여야만 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핏빛 채찍을 휘두르며 수십 장에 이르는 범위를 장악하던 무혈마는, 혈강기의 방출을 멈춘 채 지친 기색이 역력한 상태였다.
마인들을 제물로 삼아 혈살마공을 극성으로 운용할 수 있었지만, 슬슬 한계에 달해 힘을 쓰기가 어려워지게 된 것이다.
강기가 실린 권격이 무혈마의 몸을 두들겼다.
“쿨럭!”
무혈마의 입에서 핏물이 흘러내렸다.
선천진기가 오염된 상태로 죽음을 각오하고 무공을 펼쳤던 무혈마는, 한계에 달하자 이전까지의 무위가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속절없이 소종천의 공격을 허용했다.
‘이 자식, 힘이 다했구나! 어쩌면 아직 살길이 있을지도 몰라.’
가장 위험해 보이던 무혈마만 쓰러뜨린다면 어떻게든 도망칠 기회가 생길지도 모른다.
할 수 있는 건 뭐라도 다 해야 했기에, 소종천은 공세를 이어가며 뽑기 창을 열었다.
[업적점수 1,000점 소모.]기존의 내력은 운용할 때마다 내부에 파고든 독기까지 같이 움직이게 되어, 어쩔 수 없이 상당량이 묶여 있는 상황이다.
영웅 뽑기로 더해지는 내력은 몸 안에 보유한 내력과 완전히 별개의 개념으로 운용되니, 독의 영향을 받지 않고 쓸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되었다.
‘인급으론 어림도 없어. 적어도 지급, 가능하면 천급이 나와 줘야…….’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는 말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기도가 통하기는 했다.
[천급 영웅 당첨!]원하던 알림을 눈으로 확인하며, 소종천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운이 다하진 않은 모양이니, 어떻게든 살아나갈 길을 만들어야 한다.
끝을 마주한 것일지도 모른다며 내심 체념했던 소종천의 눈빛에 다시 생기가 깃들었다.
뽑기로 무림최강 169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