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171
65. 탈각
한사혜는 침상에 죽은 듯이 누워 있는 소종천의 얼굴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마인들의 추적을 피해 하북을 떠나 서쪽으로 향한 일행들은, 산서성 외곽에 위치한 어느 시골 마을 인근에 은신처를 만들고 부상을 돌보았다.
의원은커녕 변변찮은 약초 하나 구하기도 쉽지 않았지만, 어느 정도 기력을 회복한 남궁건이 바깥을 돌며 약을 구했기에 그럭저럭 치료에 전념할 수 있었다.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한사혜는 소종천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대답했다.
“종천은 어떻소?”
“여전해.”
도주 이후 며칠이 지났지만 소종천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상태였다.
전문적인 의료지식은 없지만, 인체에 해박하고 기를 살피는 데에 뛰어난 고수인 두 사람은, 소종천의 몸 안에 좋지 못한 기운들이 잔뜩 얽혀 그가 회복하는 것을 방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내상도 심한 편인데 지독한 독기까지 맥 곳곳에 퍼져 있구려. 고강한 내력 덕분에 더 악화되진 않는 것 같지만, 아무래도 스스로 회복하길 기대하는 건 어렵겠소.”
“어째서 이런 독이?”
“급박한 상황이라 자세한 이야기를 듣진 못했지만, 정황상 맹주 그자가 배신하며 손을 쓴 것으로 보이오.”
“……죽여 버릴 거야.”
짙은 살기가 흘러나온다.
남궁건은 옅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그만. 환자에게 좋지 않소.”
그 말에 한사혜는 움찔하며 날뛰는 기운을 갈무리하고, 다시 소종천을 살피며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보복하는 것보다 소종천을 치료하는 것이 먼저요. 어차피 이 친구가 정신을 차린다면 당연히 앙갚음을 하려고 들지 않겠소?”
“그래. 그럼 실력 있는 의원을 찾아줘.”
“이미 근처 도시들은 다 돌아봤소만…… 마땅한 사람이 없었소. 이런 상태에 손을 대려면 상당히 고명한 의원이 필요할 것인데, 북부에는 의술로 이름난 가문이나 문파가 없으니 문제라오.”
“멀리서라도 끌고 와야지.”
“명성 높은 의원들은 보통 자신의 터를 벗어나지 않소.”
명의로 소문난 사람들은 찾는 이가 많아 환자들이 줄을 서가며 진찰을 받는다.
그렇기에 어지간해서는 멀리까지 이동하려고 하지도 않고, 상당한 신분이 아니고서는 환자를 가려 받으며 아예 상대를 해주지 않기도 한다.
그런 자들에게 성 단위의 왕진을 요청하려면 막대한 대가를 안겨주어야 할 터.
“그러면? 종천을 데리고 갈 순 없잖아. 어느 쪽으로 움직이던 북부를 벗어나면 연맹의 눈에 들게 될 텐데.”
소종천의 상태가 좋지 않다 해도 조심스럽게 옮긴다면 괜찮을 테지만, 독을 쓴 자가 맹주라는 점이 문제다.
저만한 중상을 치료하는 것이 하루나 이틀 만에 되는 일도 아닌데, 도중에 소종천이 살아 있는 것이 알려지면 위험한 상황에 놓이게 될 것이 분명했다.
맹주 한 사람이야 두 사람의 힘으로 막아낼 수 있다 해도, 뭔가 누명을 씌워 무인들을 동원한다면 어찌할 것인가?
“의원을 납치해 오자.”
막무가내로 말하는 한사혜를 보며 남궁건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해서 과연 제대로 협조를 해줄지도 의문이지만…… 그랬다가는 연맹의 눈을 피할 수 없을 것이오.”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
잠시 침묵하던 남궁건은 이내 답을 내었다.
“본가에 다녀오겠소.”
“남궁세가?”
“지금은 가문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을 것 같으니 말이오.”
남궁세가 정도 되는 배경이라면 제법 이름난 의원과의 인맥을 갖고 있을 터다.
물론 의원이 요구하는 대가를 치를만한 능력도 충분할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지만 남궁건의 말에 한사혜는 쉽게 그리하라고 대답하진 않았다.
남궁건이 가문 내에서 조금 복잡한 사정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대강 알고 있었기 때문.
“괜찮은 거야?”
걱정을 담은 질문에 남궁건은 힘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복잡한 문제들이 있긴 하오만 어떻게든 해결하겠소.”
남궁건이 의원을 알아보기 위해 떠난 후.
한사혜는 지극정성으로 소종천을 돌보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시간이 지나 어느 날, 남궁건과 함께 의원으로 보이는 한 남자가 찾아왔다.
“휴! 눈까지 가리고 이게 무슨 짓인지 모르겠군. 그래, 환자는 이쪽이오?”
“잘 부탁드리겠소.”
“흥. 남궁세가의 의뢰가 아니었으면 받아들이지 않았을 거요. 아무튼, 어디 봅시다.”
잠시간의 진찰 뒤, 의원은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쯧쯧! 용케도 이런 상태로 버티고 있군. 보아하니 극독에 당했나 본데, 독기는 그렇다 쳐도 정체를 알 수 없는 탁기까지 머리까지 차올라 있소. 분명 뇌 쪽에 적잖이 손상이 생겼을 테지.”
“으음. 어렵더라도 어떻게 힘 좀 써주시오.”
“그나마 장기들이 제구실을 하는 걸 봐서는, 정신을 잃은 상태임에도 내력이 순환되며 스스로를 보호하는 모양이군. 필시 대단한 고수였겠소?”
“딴소리는 그만하고 빨리 치료나 해요!”
옆에서 보고 있던 한사혜가 소리를 지르자, 의원은 움찔하며 목을 움츠렸다가 퉁명스럽게 말을 이었다.
“이건 답이 없소. 몸을 보호하고 있는 내기의 흐름을 조금만 건드려도 한순간에 독이 퍼져 죽게 될 것이고, 약을 써서 독기를 중화시킬라치면 탁기가 더 깊숙이 밀려나 머릿속을 완전히 엉망으로 만들 것이오.”
“……치료가 불가능하단 뜻이오?”
“그렇소. 어쩌면 제정신이 아니어도 적잖은 고통을 느끼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괜히 고생시키지 말고 차라리 편히 보내주시, 히이익!?”
의원의 말에 한사혜의 몸에서 끔찍한 살기가 터져 나왔다.
남궁건이 막아서지 않았다면, 한사혜는 의원을 그대로 찢어 죽였을지도 몰랐다.
“……다른 방법을 찾아보도록 하겠소.”
오줌을 지리며 바닥을 기는 의원을 일으켜 세우고, 남궁건은 침울한 표정으로 은신처를 나섰다.
끓어오르는 화를 억누를 한사혜는 소종천의 머리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실력이 형편없는 돌팔이야. 네가 이대로 죽을 리가 없는데. 그렇지 종천?”
대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한사혜는 소종천에게로 얼굴을 가까이 대며 재차 입을 열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기적을 보여줘. 일어나, 제발…….”
말을 걸어보지만 아무런 반응도 생겨나지 않는다.
한사혜는 석상이라도 된 것처럼 그 자리에 굳은 채, 시체처럼 누워 있는 소종천을 지켜보았다.
눈물이 흘러나오며 뺨을 촉촉하게 적셨다.
감정을 추스르기가 어려워진 그녀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 * *
[일일 접속 보상을 지급합니다.] [보상 300은 당첨!]‘……접속 보상.’
소종천은 마음으로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게 뭐더라?’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프다.
생각을 이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뭔가를 떠올리려 해도, 머릿속이 백지처럼 하얘졌다가 먹칠을 한 것처럼 어두워지기를 반복한다.
그와 함께 머릿속에 그려지던 문장들도 휩쓸리듯 함께 사라졌다.
‘맞아. 마인들과 싸우고…… 그다음에 어떻게 되었더라?’
‘일어나야 하는데…… 근데 일어나는 게 뭐지?’
‘어지러워.’
생각이 또렷해지는가 싶다가 정신을 잃기를 되풀이했다.
[일일 접속 보상을 지급합니다.] [보상 400은 당첨!]‘자꾸 뭐야? 시끄럽네.’
‘은이라고? 어…… 뽑기를 해야 하는데. 응? 뽑기는 또 뭐야.’
머릿속에 떠오르는 문장들로 인해 자극을 받아, 가끔 뭔가가 또렷하게 생각날 때가 있었다.
아주 잠시일 뿐이지만, 그럴 때마다 소종천은 반사적으로 무언가를 행했다.
[무색 영약 당첨!]‘어라? 방금 내가 뭘 한 거지?’
[감정 성공.]‘모르겠다. 졸려…….’
[내공 0.01 상승.]정신을 잃고 다시 정신을 차리고.
기억이 남지도 않아 스스로도 알지 못했지만, 소종천은 계속 무언가를 반복했다.
[내공 0.01 상승.]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어느 순간, 소종천의 정신이 또렷하게 깨어났다.
[내공이 최대 수치에 도달했습니다.] [더 이상 영약을 통해 내공이 증가되지 않습니다.]‘뭐라고? 내공이…… 음? 나 지금 얼마나 누워 있던 거지?’
우드득.
쁘직.
기묘한 소리가 들려왔다.
온전한 정신으로 돌아온 소종천은 그것이 자신의 육체에서 나는 소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 몸…… 난 지금 어떤 상태지? 잠들어 있었나?’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갑작스레 끔찍한 통증이 느껴졌다.
“으, 끄!”
잊고 있었던 감각이 깨어나며 소종천의 정신이 본인의 몸을 인식했다.
소종천은 눈을 떴다.
‘여긴…….’
고약한 냄새가 코를 찌른다.
인상을 찌푸린 소종천은 악취의 근원지가 자신의 몸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볼 수 있었다.
“이게 뭐다냐.”
검고 끈적끈적한 정체불명의 무언가가 몸 여기저기에 달라붙어 있다.
굉장히 찝찝한 느낌에 빨리 씻어야겠다고 생각하며 일어선 소종천은, 이내 그런 것보다 훨씬 중요한 사실이 있다는 것을 깨우쳤다.
‘몸이!?’
초절정의 경지인 소종천은 스스로의 몸을 거의 완벽하게 인식하고 통제할 수 있는 무인이다.
그렇기에 자신이 기억하는 몸과 지금의 몸 사이에, 상당한 괴리가 있다는 것을 금방 눈치챌 수 있었다.
키가 조금 더 커졌고 근골의 형태도 달라졌다.
‘설마 또 다른 사람의 몸에 들어오기라도 한 거…… 아니, 그러고 보니 이 무지막지한 내공은 또 뭐야!?’
묵직하게 느껴지는 단전.
그곳에 쌓인 기운을 인지한 소종천은 당황하며 반사적으로 정보창을 떠올렸다.
[이름 : 소종천] [별호 : 멸악권괴] [재능] [오성 7.14] [근골 9.28] [감각 9.66] [내공 18.00]“허!”
재능 수치에 큰 변화가 있었다.
‘수치가 다 올라갔…… 내공 18!? 3갑자라고? 그러고 보니 아까 이상한 알림이 있긴 했지.’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모르겠다.
어리둥절해하던 소종천은 이내 한 가지 사실을 더 알아차렸다.
‘피부가 상처 하나 없이 깨끗해졌어. 잠깐, 이거 설마 그건가?’
이전과 다른 근골의 형태, 어린아이처럼 매끈한 살결, 단전을 가득 채운 내력.
무협 소설을 좀 봤다 싶은 사람이라면, 금방 환골탈태라는 단어를 떠올릴 수 있을 터였다.
‘그럼 이 검은 것들은 내 몸에서 나온 노폐물 같은 건가? 좋은 일이긴 한데 왜 이런 일이…….’
생각을 이어가던 소종천은 흠칫하며 놀랐다.
기억을 더듬는 과정에서 유추할 수 있는 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꽤 오래 정신을 놓고 지낸 것 같은데. 알림…… 그래, 일일 보상이랑 뽑기 알림도 꽤 많이 본 것 같고.’
정신이 온전치 않았던 상태의 기억이 드문드문 떠올랐다.
‘식물인간이 된 채로 계속 시간을 보낸 건가. 어림잡아도 고작 한두 달 정도만 지난 건 아닌 듯한데.’
멍하니 서 있던 소종천은 곧 무언가를 감지하고 몸을 돌렸다.
바깥에서 이쪽을 향해 익숙한 기운이 다가오고 있었다.
‘사혜구나. 잠깐, 이게 감지가 되네? 거리가…… 못해도 160장은 넘는 거 같은데.’
160장, 미터법으로 따지면 500미터에 달하는 거리.
소종천은 이전에도 예민했던 자신의 감각이, 더욱더 넓게 확장되었음을 깨달았다.
‘한숨 자고 일어난 거 같은데 뭐가 이리 바뀌었는지. 끄응, 아무튼 일단 사혜하고 대화해 그간의 사정을 알아봐야겠네.’
궁금한 점이 한둘이 아니다.
악취가 가득한 방 안에서 기다리고 있을 생각은 없기에, 소종천은 문을 열고 밖으로 나섰다.
뽑기로 무림최강 17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