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172
65. 탈각(2)
“아…….”
입을 살짝 벌린 채 굳어버린 한사혜를 보며, 소종천은 어색하게 웃어 보였다.
“음. 안녕?”
“…….”
말없이 멈춰 서 있던 한사혜는 잠시 뒤 굉장한 속도로 소종천을 향해 날아들었다.
“종천!”
순간 공격당하는 건가 착각할 정도로 맹렬한 속도였다.
온몸을 던져 안겨 오는 한사혜를 받아주려던 소종천은, 이내 자신이 노폐물로 인해 꽤나 지저분한 상태임을 자각하고 슬쩍 몸을 돌리며 그녀의 돌진을 흘려 보냈다.
“왜 피해!”
한사혜의 눈이 부릅떠지며 기세가 사뭇 사나워졌다.
“아니, 나 지금 많이 더러우…….”
“닥쳐!”
빽 하고 소리를 지른 한사혜가 다시금 소종천에게 달려들었다.
또 피했다간 상당히 화를 낼 것 같았기에, 소종천은 이번에는 저항하지 않고 얌전히 그녀를 포옹을 받아주었다.
‘이 녀석, 키가 조금 컸는데? 그리고 다른 쪽도…… 크흠! 성숙해졌구나.’
한사혜의 얼굴을 확인한 소종천은 살짝 인상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꽤 오래 쓰러져 있었다는 건 흐릿한 기억을 통해 대충 알았지만, 체감상은 그냥 하루 종일 푹 누워 있었다는 느낌이다.
도대체 얼마나 시간이 지났기에 이렇게 한사혜의 외형이 달라져 보이는 걸까?
‘나도 체형이 변하긴 했지만 그건 아마 내공이 3갑자에 달하며 환골탈태를 거쳤기 때문일 테고.’
살짝 적응이 되질 않는다.
일단 정보를 얻으려면 한사혜와 대화를 진행해야 했기에, 소종천은 절대 놓지 않겠다는 듯이 자신을 끌어안고 힘을 주고 있는 그녀의 등을 다독이며 입을 열었다.
“그래그래. 반가운 건 알겠는데 이야기 좀 하자.”
“……나쁜 새끼.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으음. 미안. 일단 좀 풀어 줘. 몸에서 나는 냄새가 상당할 텐데.”
“그동안, 네 병시중을 들면서 치우고 닦은 똥오줌이 얼마큼인데 새삼스럽게 무슨.”
“…….”
소종천은 붉어진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여자애가 말을 해도…….’
확실히 의식을 잃은 환자를 돌보는 일이 보통 고된 것이 아니긴 했을 터.
이렇게 적나라하게 들으니 민망함에 얼굴을 마주 보기 어려웠다.
“그, 내가 얼마나 누워 있던 거야?”
“3년도 넘었어.”
“……뭐? 3년?”
시간이 꽤 지났다는 건 눈치 챘지만 기간이 상상했던 것 이상이라, 소종천은 놀라움을 숨기지 못했다.
조금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난 후.
소종천은 한숨을 내쉬고는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한숨 자고 일어난 거 같은데 나이의 앞 자릿수가 바뀌었네. 이제 스무 살이라.’
기억이 아주 없던 것은 아니지만 일어나고 몸 상태가 너무 좋아서, 년 단위의 시간이 흘렀을 거라곤 짐작하지 못했다.
‘이게 3년 이상 침상에 누워만 있던 사람의 몸이라니.’
그만한 세월이라면 현대의 최첨단시설에서 연명 치료를 받고 지냈어도, 피골이 상접해야 정상일 텐데.
현재 자신의 몸은 조금 마르긴 했어도 탄탄한 근육이 오밀조밀하게 잡혀 있었고, 전신의 가는 세혈 하나하나까지 내력이 막힘없이 순행하며 더할 나위 없는 최고의 상태를 지니고 있었다.
막대한 내공과 변화한 신체는, 소종천에게 무엇이라도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전능감을 느끼게 만들 정도.
‘하긴, 무림에서 전설처럼 전해지는 환골탈태를 겪었다면 당연한 일인가?’
3갑자라는 인간이 닿을 수 없는 내공 수치에 도달했으니, 다 죽어가는 병자의 몸이 최적의 상태로 끌어올려졌다 해도 그러려니 하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2갑자의 내공만 해도 초절정의 경지라 불리며, 인간의 규격을 반쯤 벗어났다고 떠받들어진다.
그런데 3갑자라니?
그런 수준은 허구의 경지로나 치부되며, 삼류에서 초절정까지처럼 명확한 분류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3갑자의 내공은 인간의 수명으로는 도달할 수 없다고 여겨지기에, 허상의 존재로 치부되는 신선쯤이나 되어야 닿을 수 있는 경지라고들 말한다.
‘아니…… 한 명쯤 의심되는 존재가 있긴 한가.’
천마 강사익.
전대의 초절정 고수 여럿이 합공을 했음에도 당해내지 못했다는 마교의 정점.
지금은 세상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췄기에 아마도 죽었으리라고 짐작되긴 하지만, 그런 기록이 남아 있는 천마라면 3갑자의 내공에 도달하여 초절정을 넘어선 경지를 이뤘다 해도 이상하진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경지에 내가 도달했단 말이지. 뭐, 3년이나 지났다니 뽑기의 힘을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긴 하다만. 그나저나 나도 대단하네.’
정신이 온전치 않은 상태임에도 무의식적으로 뽑기를 돌렸다니, 스스로 생각해도 꽤나 기가 막힌 이야기이다.
환골탈태로 인해 몸 상태가 최적화되며 나쁜 기운이 모두 배출되지 않았다면, 아마 계속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로 누워 있다가 죽음을 맞이했을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혜의 헌신이 크지.’
소종천이야 시간을 건너뛰어 딱히 별 느낌이 없다지만 3년을 넘게 폐인이나 다름없는 자신의 뒤치다꺼리를 해준 것은, 의리나 애정이란 말로 쉽게 넘길 수 없는 대단한 희생이다.
‘게다가 사혜는 이제 손도 정상이 아닌데…….’
소종천의 시선이 한사혜의 양손으로 향했다.
오악들과의 전투에서 당시 한사혜는 궁마와 충돌하며 손에 큰 부상을 입었었다.
일상생활 자체는 그럭저럭할 수 있지만, 손목 아래에 위치한 기혈들이 엉망으로 찢겨, 예전과 같은 조법을 펼치기엔 무리가 있다.
무위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나 내력의 순환에 문제가 있어, 무공을 사용하기만 해도 손에 상당한 통증을 느끼고 위력 또한 크게 감소되었을 것이다.
새로운 경지에 접어든 소종천은 잠깐 눈길을 준 것만으로도 그런 한사혜의 상태를 알아볼 수 있었다.
‘무인으로서 앞으로의 발전에 큰 장애가 되겠지.’
소종천은 복잡한 심경을 느끼며 진지한 얼굴로 말을 건넸다.
“고마워. 덕분에 정신을 차리고 일어날 수 있었어.”
“많이 힘들긴 했지만, 너라면 반드시 부활할 거라 믿었어.”
“그래.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네.”
소종천의 말에 한사혜는 샐쭉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모를 리가 없잖아. 정말 모른다고 하면 종천은 구제 불능의 바보거나 세상에 다시없을 쓰레기야.”
“…….”
그야 알긴 했다.
이미 전부터 정보창의 감정 상태가 한사혜의 마음을 훤히 알려주고 있었으니.
그것이 이 정체불명의 능력을 이용해 심득을 부여하게 되며 만들어진 가짜 감정이 아닌가 싶어, 소종천은 여태껏 한사혜의 감정을 쉬이 받아주지 못하고 거리를 두었었다.
그래도 더는 그렇게 무시하는 것도 못 할 일이다.
잠시 침묵하던 소종천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만약 모든 일이 끝나고도 내가 계속 이 세상에 있고, 네 마음이 변치 않는다면…… 쭉 함께 있자. 네가 날 돌봐주었듯이 나도 널 책임질 테니까.”
멋쩍게 이야기하는 소종천의 말에, 한사혜는 표정을 풀고 웃음을 보였다.
“그럼 수왕족들에게 돌아가 여생을 보내겠다던 소리는 이제 안 할 거지?”
“앗!”
깜짝 놀란 소종천이 안절부절못하다가 이내 대답했다.
“그…… 우리 함께 수왕채에서 사는 건 어떨까?”
“…….”
한사혜의 얼굴에 냉기가 서렸다.
자신이 꽤 쓰레기 같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소종천은 물러서지 않고 자신의 꿈을 관철했다.
‘일부다처가 가능한 시대이고 수왕채라는 극락의 존재를 알고 있는데, 굳이 그걸 포기하고 살 필요까진…… 크흠!’
그곳에 매력적인 여인이 얼마나 많았던가.
솔직히 뜨거운 하루를 보냈던 홍려아도 다시 만나고 싶다.
소종천은 욕망에 충실한 남자였다.
“그런데 다른 친구들은?”
슬쩍 주제를 돌렸다.
입술을 삐죽이며 기분이 나쁘다는 티를 내던 한사혜는, 소종천의 질문에 살짝 몸을 경직시키며 시선을 내렸다.
“아…….”
무심코 친구들이라고 말했던 소종천은, 이내 그 표현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덩달아 표정을 굳혔다.
‘그래. 자군이는…….’
기절하기 직전의 기억도 흐릿하긴 하지만, 장자군이 큰 부상을 입고 쓰러졌던 것은 알고 있다.
진보된 무위에 들떠 있던 소종천의 마음이 차갑게 식었다.
‘제정신이 아니었다고 해도, 그걸 이제야 떠올리다니.’
마음 한구석에 분노의 불씨가 피어난다.
이어서 떠오르는 여러 가지 상념들을 연료 삼아 번지며, 불씨는 점점 커져 활활 타오르는 불길이 되었다.
자신을 향한 책망.
장자군을 직접적으로 죽게 만든 검마.
그리고 충분히 피할 수 있었던 그런 상황을 만든 원인 제공자.
‘송호빈! 씹어 먹어도 시원찮을 놈!’
“조, 종천…….”
떨리는 한사혜의 목소리에 소종천은 아차 싶어 마음을 가라앉혔다.
주변의 풀들이 순식간에 시들어버리고, 나무 위에서 벌레들이 우수수 떨어져 내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잠시 동안 흘린 진득한 살기의 여파.
누군가를 죽이고자 하는 마음을 품는 것만으로도 주변의 생명체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심즉살이라 불리는 현상.
방금은 제대로 통제하지 않은 채 무심코 기운을 흘렸기에 풀과 벌레를 죽이는 것에 그친 것이지, 만약 하나의 대상에게 살기를 집중한다면 살아 있는 사람의 심장도 멎게 만들 수 있을 정도였다.
살짝 창백해진 한사혜가 경애를 담은 눈빛으로 소종천을 바라보았다.
‘기적적으로 깨어난 것뿐만 아니라 더욱 강해졌어. 역시 종천은 대단해.’
직접 손을 쓴 것도 아니고 기세를 흘렸을 뿐인데, 절정 상위급의 무인인 한사혜가 내력을 끌어올려 심신을 보호해야 버틸 수 있을 정도.
아마 일류급 이하의 무인이라면, 살기만으로 극심한 내상을 입혀 죽음을 맞게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후우…… 좀 씻어야겠어.”
“저쪽에 개울이 있어.”
장자군의 죽음을 떠올리자 흥분을 가라앉히기 어려워진 소종천은, 일단 몸의 오물을 씻으며 마음을 진정시킬 시간을 갖고자 했다.
‘옷도 다 빨아야겠네.’
몸속의 모든 탁기와 노폐물들이 빠져나오며 만들어진 오물들은 워낙에 지독한 것이어서, 소종천은 실오라기 하나 남김없이 벗어던지고 냇물에 뛰어들어 몸을 씻었다.
시원한 물로 몸을 식히고 있으니 열이 오르던 머리도 제법 차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건이는?”
“남궁건은 본인의 가문으로 돌아갔어. 그래서 안휘성에서 활동하고 있을 거야.”
“남궁세가로? 활동이라면 어떤?”
소종천의 질문에 한사혜는 슬쩍 그의 눈치를 살피며 대답했다.
“안휘지부에 몸담고 연맹의 일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
“……연맹의?”
자신이 이 꼴을 당할 동안 함께 있었던 남궁건이 연맹 지부에서 일을 한다니,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하지만 곧 한사혜의 설명을 듣고 납득할 수 있었다.
‘과연…… 오히려 그게 맞으려나. 건이의 무위라면 더는 가문의 천덕꾸러기가 아니라 압도적인 실세가 될 수 있을 테니. 남궁세가를 등에 업고 연맹에 적극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편이 오히려 우리의 안전을 보장하는 길이 되긴 하겠네.’
몸이 망가진 소종천을 숨겨야 했기에, 남궁건은 자신을 노출시켜 주목받는 길을 선택했다.
‘건이가 내 사람인 건 맹주 놈도 알고 있지만, 함부로 건드릴 수는 없었겠지. 연고가 없다시피 한 나와는 달리, 건이를 노리면 연맹 내에서도 입지가 튼튼한 남궁세가와 척을 지게 될 테니까.’
애초에 초절정 무인인 남궁건을 어떻게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소종천도 정신없는 상황에서 암습을 당했기에 곤경에 처한 것이지, 명확히 적을 인지하고 대비하고 있다면 그리 쉽게 위험에 빠지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튼, 건이라면 충분히 연맹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을 테고, 오히려 그렇게 연맹에 속함으로써 맹주가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게 억제할 수 있었을 거야.’
친구를 가까이 두되 적은 더 가까이 두라는 말에 따랐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 나 때문에 건이 녀석도 꽤 욕보고 있었나 보네.”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자신이 깨어났으니까.
정신을 잃은 뒤로 무림의 정세가 어떻게 되었는지 알아보려면 아직 들어야 할 것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소종천은 다른 것은 제쳐놓고 명확하게 하나의 목표를 설정했다.
‘살아 있을 검마를 찾긴 해야겠지만, 그건 나중에.’
마교의 일도 문제지만 순서가 밀렸다.
일단은 스스로의 복수부터 처리하는 게 먼저다.
‘송호빈. 넌 뒈졌다.’
아직 자신의 무위가 얼마나 오른 것인지 정확히 파악하진 못했다.
그래도 지금이라면 검마와 궁마, 무혈마가 동시에 덤벼들어도 상대할 만하겠다고 느껴졌다.
맹주 하나쯤은 가볍게 짓누를 수 있으리라.
‘무당파가 막아선다면 전부 밟고 가주지. 그 외에 다른 어떤 방해가 있어도 타협하지 않는다.’
진정되었다고 해서 마음속의 분노가 어디로 사라진 것은 아니다.
잘 갈무리된 살기는 더 이상 밖으로 표출되지 않았지만, 소종천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열기가 끊임없이 일렁거렸다.
뽑기로 무림최강 17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