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175
66. 세여파죽(3)
사방으로 퍼지는 흙먼지를 뚫고, 두 사람의 신형이 재빠르게 쏘아져 나왔다.
“권괴? 이런 제길…….”
“권괴? 죽었다고 하지 않았나? 아니, 그보다 너는…….”
소종천을 발견한 송호빈이 침음을 흘리는 가운데, 황석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혼란에 빠졌다.
“본산에서 마주했던…… 으음!”
점창산에서 소종천과 손을 섞은 적이 있던 황석호.
점창의 무인들과 충돌이 있었던 당시의 소종천은 아직 초절정에 오르지 못한 상태로, 황석호가 과하게 처벌하고자 마음을 먹었다면 목숨을 뺏거나 불구로 만들 수도 있었다.
그 나이에 절정의 고수라는 점도 꽤 놀라긴 했는데 이제는 권괴라니?
권괴라는 명성은 들었어도 직접 마주하진 못했던 황석호는, 이게 대체 무슨 일인지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반로환동한 고수라고 하지 않았던가? 사기? 아니야, 저 기세는 분명 절정의 수준을 넘어선 자의 것이다.’
황석호는 소종천을 면밀히 관찰했다.
‘그러고 보니 얼굴은 거의 비슷하지만, 근골은 다른 것 같군. 인위적으로 바꿀 수 있는 체격의 수준을 한참 벗어났어.’
환골탈태를 겪은 소종천의 외형은 예전과는 미묘하게 다른 점이 있었다.
굉장히 닮았지만 다른 사람이다.
황석호는 그렇게 판단했다.
혼쭐을 내줬던 어린 무인이 잠깐 사이에 자신과 동일한 경지가 되어, 여기저기 명성을 떨치고 다녔다고 생각하는 것보단 그편이 이치에 맞았다.
‘둘 다 소림에 적을 두었다 했었다. 보아하니 정식 승려는 아닐 테니 속가의 제자일 테고, 아마도 전에 봤던 그 녀석은 이 자의 후손쯤 되는 모양이군. 그렇다면 헷갈릴 정도로 닮은 외모도 이해하지 못할 건 없지.’
속가제자가 본산절학을 물려받고 저만한 고수가 되었다는 점은 의아하긴 했지만, 한번 멸문했던 역사가 있는 소림이니 그 정도 파격은 벌어질 수도 있을 만하다.
짧은 순간 나름대로 정리를 한 황석호는 앞으로 나서며 소종천을 향해 따져 물었다.
“권괴라 하였소? 본인은 부족하나마 맹주직을 맡은 점창의 황석호요. 묻고 싶은 것은 많지만, 어째서 이런 행패를 부리는지부터 짚고 넘어가야겠구려.”
소종천의 시선이 황석호에게로 향했다.
“막지 마쇼. 저 인간하고 풀어야 할 과거가 있어 찾아온 것뿐이니.”
“굉장히 무례하군. 당신이 대단한 무인이란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소. 하지만 이곳은 정사연맹의 본부이고 본인은 연맹을 책임져야 하는 자리에 있는 사람이오. 개인적인 원한으로 날뛰는 것을 마냥 두고 볼 수는 없소.”
“쯧! 좋아. 잠깐 설명을 해주지. 창암산의 전투에서 난 저자의 배신으로 죽음을 맞이할 뻔했어. 내게 마교의 간부들을 상대하게 만들고 뒤에서 독을 써서 암습을 했지.”
“그런?”
황석호가 해명하라는 듯이 바라보자, 송호빈은 손을 내저으며 부정했다.
“헛소리! 내가 그런 짓을 할 리가 없지 않소?”
“그쪽이 후발대를 이끌었다니 잘 알거요. 선발대의 무인들이 얼마나 많이 죽어 나갔는지. 송호빈은 피해를 최소화하며 빠르게 후퇴할 수 있는 상황을 몇 번이나 수포로 만들면서, 날 제거할 기회를 잡으려고 했수다.”
“흐음!”
황석호의 표정이 굳어졌다.
사망자 중에는 그가 점창의 미래라 여기며 신경 썼던 장자군도 포함되어 있다.
그 소식을 전해 듣고 얼마나 안타까워했던가.
그러나 잠시 의심의 기색을 띠고 송호빈을 바라보던 황석호는 이내 고개를 저었다.
‘마교의 전력이 상상 이상이었다고 하나, 그 전투로 선발대가 거의 다 전멸한 것은 분명 미심쩍은 일이었지. 하지만 권괴의 말대로 전임 맹주가 의도적으로 그런 짓을 벌였다는 것은 과연 어떨지…….’
선발대에 속한 세력은 대부분 중원 북부에서 중부에 위치했던 문파들.
그들의 정예가 몰살당하며, 연맹의 실권은 후발대에 속한 남부의 문파들에게로 넘어왔다.
남부에서 가장 세가 큰 점창은 당시의 사태로 꽤 큰 수혜를 입었다고 할 수 있다.
그가 별다른 잡음 없이 곧바로 맹주의 자리에 오른 것도 그렇고, 점창파는 덩달아 현재 연맹의 중심이 되는 문파가 되었다.
‘무당과 권괴가 척을 졌다는 이야기는 들었지만, 그 하나를 잡자고 그렇게까지 크게 일을 벌였을까?’
빈대를 잡자고 초가삼간을 태우는 격이 아닌가 싶다.
물론 권괴가 빈대에 비유하기엔 너무 거물이긴 하지만 말이다.
어쨌거나 누구의 말이 사실이던, 이대로 방관하고 있을 수는 없다.
아무리 대단한 무인이라 하여도 개인의 복수에 연맹이 휘말려서는 안 되는 일이다.
주도권은 맹주인 자신이 쥐고 있어야 했다.
“그 부분에 대해선 본인이 조사를 통해 사실을 밝혀내겠다는 것을 약조하겠소. 그러니 이번 일은 연맹에 맡기도록 하고, 권괴께선 물러나 주시오.”
황석호의 말에 소종천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저쪽도 입장이라는 게 있으니, 마냥 누구의 말을 듣고 알아서 해결하라며 빠질 수는 없다는 점은 이해한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애초에 연맹의 일 처리 따위를 믿겠냐. 시간을 두고 보다가 저 인간이 도망쳐 숨기라도 하면 나만 피곤해지지. 뭐가 되었던 이 자리에서 처리한다.’
소종천은 더욱 기세를 강하게 뿌리며 입을 열었다.
“그럴 순 없지. 막지 마쇼. 난 여기서 끝을 봐야겠으니.”
살심을 품자 무지막지한 위압감이 주변을 짓눌렀다.
짙은 살기에 노출된 두 사람이 흠칫하며 검을 뽑아들었다.
‘이런 엄청난 기운이라니…….’
‘빌어먹을. 더 강해져서 나타난 건가?’
초절정의 고수들조차 식은땀이 흐르게 만드는 강렬한 기운.
황석호는 인상을 찌푸리며 외쳤다.
“권괴! 연맹을 적으로 돌릴 셈이오! 본인이 성실히 조사할 것을 약속했음에도 이 무슨 행패란 말인가!”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보느냐 따위는 관심 없수다. 내 일은 내 손으로 끝낼 거고, 난 막지 말라고 뜻을 밝혔어.”
소종천의 신형이 길게 늘어나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송호빈의 앞에 도달했다.
“헙!”
산도 허물 듯한 기운을 품은 주먹이 송호빈을 노리고 내질러진다.
콰앙!
반사적으로 마주 휘둘러진 송호빈의 검.
거기에 더해 황석호의 섬전 같은 찌르기가 소종천의 권격을 막아섰다.
‘이 무슨 위력이란 말인가!’
손에서 느껴지는 찌릿한 통증에 황석호는 당황하며 수염을 바르르 떨었다.
두 사람의 검격과 부딪친 소종천의 주먹은 거의 밀려나지 않았다.
초절정 무인 두 명이 검초를 펼쳐 대응했음에도 고작 동수를 이루다니.
명성은 익히 들었지만, 상상을 초월한 무위였다.
“하압!”
기묘한 떨림과 함께 무수한 원을 그리며, 태극혜검을 펼친 송호빈이 소종천에게 검을 찔러 들어갔다.
마음 같아선 그냥 달아나고 싶지만, 더 강해진 것으로 보이는 소종천을 뿌리칠 자신이 없다.
차라리 황석호가 도움을 주는 이런 구도에서, 어떻게든 소종천을 쓰러뜨려 입을 막는 편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곧 본부의 무인들이 몰려올 테니, 잘만 합공한다면 저놈을 붙잡을 수도 있을 게야.’
“이 새끼가 싹싹 빌어도 모자랄 판에!”
자신을 공격해오는 송호빈을 보며, 소종천은 눈에 불을 켜고 주먹을 뻗었다.
절정급의 무인이었다면 눈으로 쫓기도 힘들 정도의 속도였다.
빠르게 다가온 주먹이 순식간에 송호빈의 검초와 맞부딪쳤다.
파앙!
한 박자 늦게 허공에서 무언가 터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전력을 다한 권격이 소리보다도 빠르게 움직였기에, 뒤늦게 대기를 관통한 주먹을 기점으로 강한 파장을 이룬 충격파가 발생한 것이다.
음속을 돌파한 권격이 검과 닿으며 무시무시한 소음이 터져 나왔다.
“컥!”
팔이 통째로 뜯겨지는 듯한 통증을 느낀 송호빈은, 간신히 검을 놓치지 않고 충격을 흘려내며 몸을 뒤로 뺐다.
초절정에 오른 이후로 한 번도 다시 겪어본 적 없는 통증이 손바닥에서 느껴졌다.
찢어진 손바닥에서 흐른 피가 검 손잡이를 타고 흘러내렸다.
태극혜검의 묘리를 담은 초식이 끝없이 진동하며 수십 번에 걸쳐 충격을 조금씩 떨쳐주지 않았다면, 손바닥이 아니라 어깻죽지가 찢겨 떨어졌을지도 모르겠다.
“어딜!”
물러나는 송호빈을 쫓아 소종천이 재차 몸을 움직인다.
방금의 충돌로 생긴 반발력이 상당했기에, 소종천 역시 충격을 완전히 해소하지 못해 주먹과 팔 전체가 욱신거렸다.
그렇지만 잠시라도 멈출 상황이 아니기에, 몸을 돌보지 않고 곧바로 공격을 이어갔다.
그런 그의 진로 앞으로 한 줄기 섬광이 그어졌다.
쉬이익!
황석호의 검초.
소종천의 움직임이 초절정 무인조차 대응하기 어려울 정도로 빨랐지만, 황석호 역시 천하제일쾌를 논하는 점창파의 검법을 다루는 검수다.
눈으로 보고 판단한 것이 아니라 몸에 각인된 감각에 따라 반사적으로 검을 찌른 황석호는, 정확하게 송호빈에게 따라붙는 소종천의 이동 경로를 차단했다.
‘쳇! 이쪽은 원한은 없지만, 상황이 이러니 상대하지 않을 수가 없네.’
겨드랑이 아래 위치한 요혈을 노리고 찔러오는 검에, 소종천은 몸을 돌리며 팔꿈치를 틀어 곧게 뻗어지던 권격의 투로를 변경했다.
지지직!
권강을 두른 수갑 위를 검강이 긁고 지나가며 소음이 발생한다.
“귀찮게 하지 말고 비키셔!”
“크으음!”
위협적으로 크게 팔을 돌리며 강기를 흩뿌리자, 황석호는 재차 급소를 노리는 것을 포기하고 뒤로 물러났다.
“맹주! 제가 보조하겠소이다!”
황석호가 빠지면 혼자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송호빈은 재빨리 황석호의 곁에 서며 위험을 분산하려 들었다.
“하, 치졸하게 구는 건 여전하네.”
“닥쳐라! 몇 년 만에 아주 괴물이 되었구나! 그 상황에서 어떻게 살아 돌아왔는지 의아했거늘, 마교의 종자들과 결탁해 사술에 손을 대기라도 한 모양이지!”
“……그놈의 사술 타령은 이제 지겨워 죽겠다.”
대화를 나눠봐야 화만 더할 뿐이다.
소종천은 입을 다물고 연대구품을 펼쳐 신형을 나눴다.
분신을 동원해 수적 우위를 역전시키자, 두 사람은 순식간에 수세에 몰렸다.
“이, 이런!”
초절정 무인 둘이서 힘을 합쳤는데도 한사람에게 형편없이 밀리는 사태에, 황석호는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해야 했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위태로운 순간.
“맹주님!”
“습격? 아닛!? 저자는…….”
소란을 듣고 달려 나온 연맹의 무인들이 주변을 에워쌌다.
몇몇 무인들은 소종천을 알아보고 눈을 크게 떴다.
“권괴?”
“죽은 게 아니었나?”
“뭣들 하나! 어서 돕지 않고!”
“으음…… 맹주님을 지켜라!”
송호빈의 외침에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어리둥절해하던 무인들이 전투에 합류했다.
무슨 그림인지는 모르겠지만 전임 맹주와 현 맹주를 공격하는 상대이니, 일단은 적이라고 생각하고 싸워야 한다.
‘조금 번거로워지겠네. 그래도 초절정이 아니면 어차피 날 막을 순 없어.’
소종천은 몰려드는 무인들을 밀쳐내며 송호빈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아군이 늘어나자 송호빈은 바로 슬금슬금 몸을 뒤로 빼며, 도망칠 기회를 노리는 모습을 보였다.
“보내줄 것 같으냐!”
소종천과 분신들이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운룡대팔식을 펼친 신형들이 공중에서 몸을 뒤틀며, 앞을 막아서는 무인들을 피해 움직였다.
그러나 아직 성취가 낮은 소종천의 운룡대팔식으론, 풍운신룡처럼 자유자재로 허공을 유영해 움직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연맹의 본부답게 이곳에는 무인들의 수가 상당했고, 지금도 시시각각 모여들고 있는 상황.
개중에는 소종천이 마냥 무시하고 지나갈 수 없는 절정급의 고수도 즐비했다.
비록 위협은 되지 않는다 해도 절정급 무인들은 아주 잠깐이나마 시간을 끌 수 있었고, 송호빈은 그 틈을 이용해 장내를 벗어나 달아나려 했다.
‘귀찮게 진짜! 저 인간을 이대로 보낼 순 없다고!’
소종천의 기세가 더욱 사나워졌다.
크허어엉!
들끓는 살기와 함께 사자후가 터져 나왔다.
파사와 멸마의 힘을 담은 사자후는 본래는 일반 무인들에게 영향을 끼치지 않는 무공이지만, 소종천의 강대한 내공은 소리에 담긴 미약한 물리력으로 사람을 밀어낼 정도가 되었다.
게다가 새로운 경지에 접어들며 매우 강력한 심즉살의 현상을 일으킬 수 있게 된 소종천이다.
“흐윽?”
“헉!”
살기에 노출된 절정 이하의 무인들은 대번에 뻣뻣하게 몸이 굳으며, 소종천이 뱉어난 사자후의 압력에 종이쪼가리라도 된 것처럼 나가떨어졌다.
공간이 벌어지며 길이 생겨났다.
“딱 대! 이 새끼야!”
고새 몸을 돌려 달아나고 있는 송호빈의 뒤통수를 눈에 고정하며, 소종천은 사냥감을 덮치는 호랑이처럼 몸을 날렸다.
뽑기로 무림최강 176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