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177
67. 천마
검마가 허리춤의 주머니에서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당장에라도 달려들 것 같았던 소종천이 멈칫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검마의 손에 들린 것은 사람의 심장이었다.
마치 여전히 몸속에 들어 있는 것처럼 살아서 팔딱거리며 맥동하는 모습.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다.
‘……뭐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잠시 멈춰 있자니, 검마가 다시 말을 건네 왔다.
“그분의 뜻을 전하겠다.”
검마의 손에 쥔 심장이 터지며 검은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이어서 흑색의 연기가 터져 나오며, 검마의 몸을 감쌌다.
기이한 현상에 소종천은 미간을 좁히며 경계 태세를 갖추고 뒤로 물러났다.
‘무슨 괴상한 짓을. 사특한 술법인가? ……어엇?’
검마를 감싼 검은 연기가 갑자기 사방으로 번지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어둠이 세상을 집어삼켰다.
몸을 긴장시킨 채 주위를 살피던 소종천은, 문득 강렬한 존재감을 느끼고 검마를 바라봤다.
‘……아니, 검마가 아니야.’
검마가 서 있던 자리에서, 누군가 다른 이가 웃으며 소종천을 지켜보고 있었다.
묘한 기분이 들었다.
분명 시각적으로는 주변이 검은 어둠에 뒤덮여 있다고 머리가 인식하고 있는데, 앞에 선 남자의 인상은 또렷하게 뇌리에 들어온다.
‘나도 모르게 요상한 술법에 당한 건가?’
크허어엉!
내력을 끌어올리며 사자후를 외쳤으나,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았다.
우렁찬 포효 소리와 함께 퍼져 나가야 할 파사의 기운이, 어둠에 잡아먹히는 것처럼 순식간에 사라진다.
‘이게 안 통하면 방법이 없는데…….’
표정을 딱딱하게 굳히고 있는 소종천에게로 고혹적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결국, 이렇게 만나게 되는군.”
남성의 저음 같기도 여성의 고음 같기도 한 종잡을 수 없는 음성.
그 목소리는 소종천에게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몸이 붕 뜨는 것 같은 부유감을 느끼며 눈빛이 흐려지던 소종천이,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다잡았다.
“크으, 썅! 무슨 짓거리를…… 누구냐 넌!”
“재미없는 질문이구나. 정말 모를 리가 없을 텐데. 본좌가 누구일 것 같으냐?”
“…….”
입을 다문 소종천의 머릿속으로 곧장 한 가지 단어가 스쳐지나갔다.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검마가 존칭을 쓰며 언급한 뒤에 기현상과 함께 나타난 존재.
누구라도 그 이름을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었다.
“……천마.”
“그래, 소종천. 반갑다고는 하지 못하겠군. 신의 꼭두각시여.”
“뭐?”
기묘한 발언에 소종천의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
천마와 대면하게 된 이런 상황은, 솔직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이전부터 예상하긴 했었다.
실종된 것으로 알려진 최강의 악역이 최종 보스로 등장하는 것은, 사실 짐작하기 어렵지 않은 전개이지 않은가.
한데 뜬금없이 꼭두각시 운운하는 건 무슨 소리인지 싶다.
“신? 갑자기 뭔 개소리지?”
“신이란 단어가 별로라면 다른 말로 불러도 되겠지. 세계의 의지라거나, 아니면 시스템 운영자라는 단어가 더 와 닿겠나?”
“너!?”
소종천의 눈이 커졌다.
처음 겪는 일이었다.
시스템의 존재를 언급하는 사람을 만난 것은.
소종천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대체…… 넌 누구냐? 뭘 알고 있지?”
“누구라니, 천마라고 방금 이야기하지 않았나.”
“장난치지 마! 내가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된 건지 알고 있는 거잖아!”
“후후…….”
천마는 쉬이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며 웃음을 흘렸다.
조급해진 소종천이 다시 닦달하려는 차에, 어느새 거대하고 화려한 옥좌가 눈앞에 나타났다.
자리에 앉아 몸을 기댄 천마가 팔걸이를 손끝으로 툭툭 치다가 입을 열었다.
“좋아. 친절하게 설명해 주지. 너를 이곳으로 데려온 것은, 쉽게 말하자면 이 무림세계를 만든 신이다.”
아마도 적으로 간주해야 할 인물이겠지만, 소종천은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본좌 역시 신의 일부였지.”
“……댁도 신이라고?”
“지금은 아니라고 했느니. 무의미하게 말 끊지 말고 들어 보아라.”
천마라는 이름을 대며 자신이 신의 일부였다 주장하는 남자는, 허황되게 느껴지는 이야기를 소종천에게 들려주었다.
세상을 만들어낸 신적인 존재.
그는 자신이 만든 결과물에 더 손을 대지 않고 오랜 세월을 관조자로서 지내왔다.
그렇지만 신격의 내면에는 변화를 바라는 소수의 의견도 있었다.
“무슨…… 신이 하나가 아니란 소리야? 다중인격 같은 건가? 신이라면 오롯이 존재하는 절대적인 완전체, 뭐 그런 느낌일 텐데.”
“신은 전능함과 무능함을 함께 갖춘 존재지.”
“그건 또 뭔 소리인지.”
“신처럼 불완전한 존재도 드물다는 거다. 그 조악한 두뇌로 이해하긴 어려우니 넘어가지. 대충 상반되는 선택지를 두고 심각한 고민을 느꼈다고 생각해도 좋다.”
관조하고자 하는 의지와 개입하고자 하는 의지.
후자의 의견을 품은 신격의 일부는 매우 작았으나, 나머지를 뒤흔들 정도의 격렬한 충동을 품고 있었다.
인간이라면 과한 고민이라고 해봐야 심력을 소모하는 정도에서 끝나겠지만, 신격을 지닌 존재에게 그러한 내면의 충돌은 스스로의 신성을 갉아먹게 된다.
결국 다수의 의지는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일부를 배출하는 결과에 이르게 되었다.
신의 찌꺼기.
세상 위에 내동댕이쳐진 그것은 품고 있던 신격을 잃었다.
신격을 잃은 찌꺼기는 원래대로라면 그대로 소멸했어야 하지만, 강렬한 의지를 품고 있던 그것은 암세포처럼 질긴 생명력으로 자아를 잃지 않고 세상에 융화되었다.
살기 위해 발버둥 치던 찌꺼기는, 신의 형상에 그나마 가장 가까운 존재인 인간의 몸에 스며드는 데 성공했다.
“그것이 본좌, 마교의 초대 교주이자 천마의 등장이었다.”
“…….”
찌꺼기에 불과하다고 하나 한때 신이었던 무언가를 품은 인간은, 당연히 평범함과 거리가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최초의 천마는 강력한 힘으로 다른 사람들 위에 군림했고, 힘의 율법으로 지배되는 종교를 만들었다.
다시 예전과 같은 존재가 되길 갈망하며 스스로를 신격화한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다.
찌꺼기나마 신의 힘을 담았지만, 생명체에 깃든 이상 정해진 수명 자체를 어찌할 순 없던 것이다.
게다가 인간의 몸으로 감당할 수 없는 존재의 힘을 품었기에, 생명력은 매우 급격하게 소모되었다.
“튼튼한 육체를 선별해 제물로 써도 보통은 사흘을 넘기지 못하고 붕괴되더군. 매번 재고를 채워 넣는 것도 귀찮은 일이었지.”
몇 년을 버텼던 최초의 육체는 운이 많이 따라준 경우였다.
변질된 신의 힘을 담고 다른 인간들보다 오래 견딜 수 있는 특별한 몸.
그런 육체는 백 년에 하나를 찾아내기도 쉽지 않았다.
“본좌는 그렇게 몸을 바꿔가며 수 세기를 살아남았다. 물질계인 이곳에 머무르며 힘을 간직하기 위해선, 정신을 담아낼 그릇이 꼭 필요했기에 어쩔 수 없었지.”
그러다가 가끔 특별한 육체를 손에 넣으면, 천마라는 이름으로 중원에 등장하기도 했다.
“내가 원하던 이야기는 아닌 것 같은데.”
가만히 듣고 있던 소종천이 딴죽을 걸었다.
흥미롭긴 하지만 그런 이야기로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자신이 이런 곳에 불려왔는지 설명이 되지 않는다.
“인내심이 부족하군. 뭐 좋아. 이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상대가 드물어 더 말하고 싶지만, 원하는 대로 조금 줄여주마.”
천마는 대답해 주었다.
“본좌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두 가지다. 신성의 수복 그리고 이 무림세계의 파괴.”
“……전자는 그렇다 쳐도 뒤는 이해가 가질 않는데? 아까는 변화가 어쩌고 하더니.”
“기존 체계의 파괴야말로 가장 확실한 변화의 시발점이지.”
“허.”
과격하긴 하지만 아주 틀린 말도 아니기에, 소종천은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일부나마 신격을 지녔던 본좌가 하나의 세계를 파괴한다면, 그 빈자리에 새로운 무언가를 창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아, 그렇다면 이해가 가네.”
천마가 무림을 지운다면 신성의 획득 역시 절로 따라오게 된다는 소리였다.
당연히 그것을 기존의 신이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없다.
천마가 품은 변질된 신의 힘.
이제는 마기라 불리는 그것을 제압하기 위해, 신은 인간들에게 계시를 내려 그와는 상극이 되는 힘을 다룰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신의 계시를 아무나 받을 수는 없었다.
마음을 비우고 내면을 청정하게 유지할 수 있는 사람.
아주 드문 극소수의 인간만이 신이 전하는 계시를 이해할 수 있었다.
불교에서 표현하는 공(空)의 경지에 닿은 고승들이 이에 속했다.
그들에게 전해진 뜻은 기존의 체계. 즉, 무림세계와 합쳐져 그에 맞는 형태를 이루었다.
소림무문의 탄생이었다.
“본좌는 몸을 바꿔가며 힘을 축적했다. 그리고 너도 알다시피 최근에는 무림을 거의 전복시키기 직전까지 가기도 했지. 아쉽게도 인간의 몸으로 담을 수 있는 힘에는 한계가 있기에, 계획한 것만큼 완벽한 준비를 갖추지 못해 결국 도중에 멈춰야했지만 말이다.”
“천마의 난에 대해선 모를 수가 없지. 근데 자꾸 말이 헛도는 것 같은데, 내가 궁금한 것은 그런 배경이나 과정 같은 게 아니라고?”
이야기를 듣다 보니 대충 알긴 하겠다.
처음 눈을 떴을 때 제시되었던 마교를 몰아내라던 목표.
이 몸이 천마를 상대하기 위해 준비된 신의 안배라는 것일 터.
반야신공을 익히게 된 것도 온전히 그의 선택이라기보단, 어떠한 개입에 의한 끌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다만 궁금한 것은 그런 것들보다, 현대의 수십억 인구 중에 왜 자신이 선택되었냐는 점이다.
“내 의사도 묻지 않고 왜 멋대로 이딴 곳에 던져뒀냐고.”
“그건 본좌가 대답해 줄 수 있는 문제가 아니군. 한때는 하나에 속해 있었다지만, 지금의 본좌가 신은 아니니 말이다.”
“쯧! 그럼 괜히 시간만 낭비한 건가.”
소종천은 내력을 운용하며 전신의 근육을 활성화시켰다.
단전에서 쉼 없이 쏟아져 나오는 기운이 주먹에 모여 강기를 형성했다.
“긴 이야기는 잘 들었는데, 어쨌든 결국 나와 당신이 싸워야 한다는 건 변함이 없네?”
신이든 뭐든 다른 이의 뜻에 조종당해 움직이게 되었다는 점은 불쾌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원해서 한 것이 아니라 해도, 지금까지 해왔던 일들에 마침표는 찍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쪽이 애꿎은 피해자라면 나도 멈추겠는데, 이야기대로라면 당신이 전례 없던 대악당인 것은 맞잖아?”
머리가 복잡해지는 이야기는 빼고 생각해도, 천마를 분명 한없이 악에 가까운 존재였다.
수백 년 혹은 그 이상의 세월.
긴 시간 동안 제물이 되어 육체를 뺏기고 목숨을 잃은 인간만 어림잡아도 몇 만 단위다.
거기에 마교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 분쟁으로 죽어간 사람의 수는, 그것의 몇 배를 가볍게 넘어갈 터였다.
“그리고 무림세계의 파괴를 운운하는 걸 보면, 그로 인해 중원에 살아가는 억 단위 인구가 다 죽더라도 댁의 계획을 감행하겠다는 소리 아냐?”
“그러하다.”
“아주 개새끼네.”
욕설과 함께 소종천은 천마를 향해 달려들었다.
상대의 강함이 어느 정도일지, 새롭게 확장된 감각으로도 측정이 어려웠다.
수차례 써먹었던 감정 역시 천마를 대상으로는 발동이 되지 않았다.
‘솔직히 승산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 요상한 공간에서 도망칠 수도 없을 것 같으니 싸우는 수밖에.’
천마가 이 자리에 나타난 이유가 고작 이런 잡담을 나누기 위함은 아닐 것이다.
소종천이 천마에게 대적하기 위해 준비된 자라면, 당연히 그를 제거하기 위해 찾아왔을 터.
강기가 가득 담긴 주먹이 천마의 가슴 어림을 때렸다.
‘……어라.’
소종천은 천마가 자신의 공격에 맞서 엄청난 절초를 펼칠 것이라 예상했다.
한데 결과는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여러 가지 경우의 수를 떠올리며 다음 초식을 준비하던 소종천은, 어안이 벙벙해져 주먹을 뻗은 자세 그대로 움직임을 멈추었다.
뽑기로 무림최강 17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