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178
67. 천마(2)
쩌적!
무언가 깨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어둠이 흩어졌다.
소종천은 정면을 주시했다.
천마의 형상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검을 들어 권격을 막아선 검마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환상?’
조금 전까지 느꼈던 중압감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그렇지만 방금까지 이야기를 나눴던 천마의 존재가 완전히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이렇게나 마기를 쌓은 인간이거늘, 역시 특수한 육체가 아니면 제대로 실력을 발휘할 수가 없군.”
검마의 입을 통해 천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몸을 바꿀 수 있다고 했지. 검마의 육체를 차지한 거야? 아니…… 처음에는 분명 검마 본인이었는데? 거리의 제한 없이 갈아탈 수 있는 건가?’
정확한 정보가 없으니 판단하기 어렵다.
알고 있는 사실도 결국 적의 입으로 이야기한 것뿐이니, 그대로 다 믿을 수도 없는 노릇.
다만 소종천이 관찰하기에, 천마가 검마의 몸을 완전히 차지한 것은 아니라는 느낌이었다.
조금 전의 어둠 속에서 느꼈던, 천마라는 이름값에 어울리는 음습하고 강렬한 기운이 상당히 줄어들었기 때문.
‘원격 조종 같은 건가? 아까 그 요상한 공간에선 천마 본연의 기세를 보여줄 수 있었지만, 실제로는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니기에 훨씬 약하다는 거겠지?’
물론, 지금 감지되는 기운도 초절정을 넘어선 무언가라는 느낌이긴 하다.
하지만 그게 전부라면 딱히 겁낼 이유가 없다.
“종천!”
-오지 마. 위험할지도 모르니 뒤로 빠져 있어.
가까이 다가오려 하는 한사혜에게 전음을 보내고, 소종천은 천마의 조종을 받고 있는 검마를 향해 달려들었다.
“차앗!”
기합과 함께 방출되는 강기의 출력을 한층 높이며 밀어붙이자, 검마의 몸이 뒤로 주르륵 밀려났다.
“흠. 굳이 나를 적대할 필요가 있을까? 설사 네가 꼭두각시 노릇을 완벽히 수행한다 해도,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 하나 없을 터인데.”
“거참 싸우는데 혓바닥이 길구만!”
떠드는 상대를 무시하고 분신을 만들어내 공격을 마구 퍼부었다.
그러자 검마의 검에서 짙은 묵색의 검강이 치솟으며, 이어서 날카로운 검초를 펼쳐 분신들의 접근을 차단했다.
‘검마의 몸이지만 확실히 지금 상태는 검마가 아니긴 하네.’
자전마공을 익힌 검마의 강기는 진한 보랏빛의 광채를 띈다.
기의 색이 이전에 본 것과 다르다는 건, 무공의 근본이 되는 심법자체가 달라졌다는 의미.
‘편의상 지금은 그냥 천마라고 불러야겠군. 아무튼, 그럼 저게 그 유명한 천마신공인 건가?’
중원의 그 어떤 무공보다도 강력하다는 천마의 무공.
확실히 대단하긴 했다.
몸 전체가 강기로 이루어진 분신들이 천마의 검초와 부딪히자, 형태를 제대로 유지하지 못하고 조금씩 모양새가 일그러진다.
똑같은 강기라고 해도 빛깔이 제각각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듯, 펼치는 사람이 익힌 심법에 따라 기의 성질은 조금씩 달라지기 마련이다.
천마의 묵색 강기는 다른 어떤 무공으로 만들어낸 것보다, 한층 뛰어난 파괴력을 담고 있었다.
‘분신이…… 몇 합 못 버티고 금방 소멸되겠는데.’
강기라는 것이 기를 극도로 압축한 것이기도 하고 반야신공을 익혀 정순한 내공을 지녔기에, 소종천의 강기는 특히나 높은 밀도를 가지고 있다.
연대구품이 10성을 이룬 뒤부터 소종천의 분신은 그런 강기로 이루어져, 사실상 방어를 도외시하고 공격에 전념하는 식으로 운용해왔다.
강기로 뒤덮인 분신은 어지간한 공격은 그냥 몸으로 때워도 되었기에, 그런 방식을 통해 전투력이 급증했다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저 놈을 상대로는 그렇게 싸울 수가 없겠는걸.’
반야신공의 내공은 마기를 몰아내는 효과를 가졌다고 알고 있는데, 정작 충돌 후에 기운이 흩어지는 것은 이쪽이다.
‘신의 힘 어쩌고 운운하더니, 상극의 성질인 반야신공의 내공도 튕겨낼 만큼 강력한 건가.’
하기야 천마는 마교를 창시한 시조니, 다른 마인들과 동일하게 여길 순 없다.
마교의 마인들이 쌓은 마기는 결국 평범한 인간의 몸에 맞게 희석된 기운.
천마가 다루는 마기는 반야신공과는 반대의 의미로 극히 순수한 힘이니, 이쪽이 상성에서 꼭 앞선다고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규모가 작은 쪽이 밀려나는 것도 당연하다.
약간 불리하게 느껴지는 상황 속에서 몇 수를 주고받은 뒤, 소종천을 향해 천마가 다시 말을 걸어왔다.
“혹시 원래 세계로 돌아가고자 애쓰는 거라면 헛짓이다. 운 좋게 날 제거한다 해도, 너는 그 몸에 갇혀 이곳에서 삶을 마감해야만 하지.”
“으음…….”
마냥 무시할 수가 없는 소리였기에, 재차 달려들려던 소종천의 발이 잠시 멈추었다.
“너는 이미 신이 안배한 그 육체에 깊이 동화되었다. 기억을 떠올려봐라, 과거의 넌 어떤 존재였지? 생각나는 것이 있느냐?”
“나는…….”
천마의 말에 무심코 기억을 더듬었으나 아무 것도 생각나는 것이 없었다.
외모, 나이, 이름.
당연히 기억해야 할 것들임에도, 무엇하나 떠오르질 않았다.
학관 시절 이전의 기억이 먹칠을 한 것처럼 완전히 지워졌다.
당황하는 소종천에게로 천마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기존 세계에서 너의 존재는 이미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얼 위해 신의 지시를 따라야 하겠느냐?”
감미로운 목소리가 소종천을 유혹했다.
“신은 너를 그저 장기짝으로 쓸 뿐이지, 애초에 무언가 보상을 해줄 생각도 없었을 거다. 소종천. 그딴 운명에 휘둘리지 말고 차라리 내 수족이 되어라.”
“날…… 나보고 네 부하가 되라고?”
“무림세계를 파괴하고 신성을 얻게 되면, 널 본좌가 새롭게 창조해나갈 세계의 반신으로 만들어주마. 본좌를 제외한 세상의 모든 것 위에 군림할 수 있는 절대자가 되는 거다.”
“반신이라…….”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본래 세계로 돌려보내 준다는 선택지도 있다. 비록 기존의 몸은 이미 사라지고 없겠지만, 그 육체와 힘을 간직한 채 돌아간다면 아쉬울 것은 없을 테지.”
“그런 것도 가능한가?”
“후후, 본좌가 제대로 된 신격을 품게 되면 그쯤이야 문제없느니.”
매력적인 조건이긴 했다.
하지만 아무리 소종천이 자기중심적인 성격이라 해도, 하나의 세계를 파괴한다는 극악한 행위에 어울릴 만큼 도의를 저버린 인간은 아니다.
‘과거에 딱히 그리 대단한 사람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잊어버리면 뭐 어떠냐. 본래 세계? 솔직히 지금도 그럭저럭 적응해서 잘 지내고 있는데, 굳이 이쪽의 인연을 다 내팽개치고 돌아갈 필요가 있을까? 저 말대로라면 어차피 기존의 내 몸은 사라진 마당인데?’
소종천은 고개를 저었다.
“집어치워. 난 크게 욕심부리지 않고 여우 같은 마누라 하나…… 아니, 둘…… 셋? 크흠! 아무튼, 몇 명쯤 데리고 이 땅에서 소박하게 살 거야. 절대자니 뭐니 까지 갈 필요도 없다고.”
땅을 박차며 내지른 소종천의 주먹에서 백보신권의 운용에 따라 권력이 뿜어졌다.
뿌드득.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천마의 가슴팍이 함몰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잉?’
천마의 몸이 뒤로 넘어갔다.
방금까지의 쉽지 않았던 싸움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어이없는 결말이었다.
“쿨럭! 이 몸으로는 이 정도가 한계로군.”
피를 토하는 천마를 바라보면서, 소종천은 허탈한 감정을 느끼며 자세를 풀었다.
‘어째 계속 입을 놀린다 싶더니, 금방 힘이 다하는 거였나.’
긴장했던 것이 괜히 화가 날만큼 시시한 싸움이었다.
물론 이 자리에 있던 것이 진짜 천마였다면, 이리 쉽게 끝나진 않았을 것이다.
‘본인이 직접 왔다면…… 아니, 특수한 육체를 찾지 못하면 며칠 버티지 못한다고 그랬지. 잘은 몰라도 몸을 갈아타는 데에 뭔가 번잡한 준비가 필요하다면, 쉬이 근거지를 벗어날 수 없다 해도 이상하진 않겠어.’
말없이 자신을 내려다보는 소종천을 향해, 천마는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본좌가 머물고 있는 위치를 기록한 지도가 품안에 있다. 마음이 바뀌면 찾아와라.”
“……뭐? 허! 적인 나에게 숨어 있는 위치를 알려주겠다고?”
“만약 싸움을 원한다면 그것도 좋지. 자신 있다면 얼마든지 덤벼 보거라. 기다리고 있을 터이니. 크흐흐!”
“…….”
소종천은 대답하지 않았다.
실제의 천마라면 이렇게 금방 힘이 바닥나진 않을 테니, 솔직히 승산이 그다지 높진 않을 것 같았다.
“혹은 네놈의 말대로 어딘가에 틀어박혀 소박한 삶이나마 살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몇 년이 될지 몇 십 년이 될지 모르지만, 본좌가 적합한 육체를 찾아 다시 활동하기까진 아무 문제없이 살아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소종천은 눈살을 찌푸렸다.
천마의 말은 소종천을 깊은 고민에 빠뜨리기 충분했다.
‘승산이 낮은 싸움에 목숨을 던져가며, 굳이 목표를 이루려고 할 필요가 있을까? 내가 원하던 것도 아니고 이 세계의 신이라는 놈에게 놀아났을 뿐인데?’
이런 곳에 강제로 내던져놓고 얼굴한번 마주한 적이 없는 신의 뜻을 계속 따라야 할까 싶다.
‘신이라는 존재가 직접 나서지 않고 이런 번거로운 방식을 쓰는 건, 결국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없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긴 할 텐데.’
시키는 대로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천벌? 설마 바로 죽기라도 하려나? 뭔가 소통 자체가 없으니 알 수가 없네. 불이익을 감수하긴 해야 할 것 같은데.’
바로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긴 하다.
만약 천마와 싸우기를 거부하고 중원을 떠난다면, 어쩌면 그간 뽑기 능력으로 쌓아온 힘들을 전부 잃게 될 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히 이용당해 가며 목숨을 건 위험을 무릅쓰는 것보단, 차라리 남은 인생을 평범하게 사는 편이 낫지 않을까?
“흐하핫! 잘 생각…… 해브…….”
웃음소리가 잦아들었다.
“크윽! 아…… 마신이시여…….”
느껴지는 기세가 변하며 목소리가 바뀌었다.
다시 원래 몸의 주인인 검마로 돌아온 것이다.
잠시나마 천마의 힘을 쓴 탓에 검마는 생기를 전부 잃고, 마치 목내이(木乃伊) 같은 쭈그러지고 비쩍 마른 형상이 되었다.
흐릿한 눈을 깜박이며 입술을 달싹거리는 검마의 머리맡으로 이동해 그를 쳐다보던 소종천은, 이내 어깨를 당겨 주먹을 들어 올렸다가 내리꽂았다.
프확!
썩어서 물러진 과일이 터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검마의 머리가 으깨졌다.
주먹에 묻은 피와 살점을 닦아낸 소종천은, 검마의 품을 뒤져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돌돌 말린 종이가 눈에 잡힌다.
‘이게 그 지도인가.’
“종천…….”
지도를 챙긴 소종천은 숙였던 몸을 세우며 뒤로 돌았다.
복잡한 감정이 담긴 눈빛을 보내는 한사혜를 마주하며, 소종천은 입을 열었다.
“건이한테 연락 좀 보내봐.”
“어떻게 하려고?”
“글쎄. 고민을 좀 해봐야지. 일단 더 이상 검마를 추적할 필요는 없게 되었으니, 건이에게 상황을 알려주자고.”
“알았어.”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한사혜를 바라보며, 소종천은 생각에 잠겼다.
천마를 찾아 싸워야 하는가 아니면 피해야 하는가.
‘그것도 아니면…….’
소종천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쉬이 답을 낼 수 없는 문제였다.
뽑기로 무림최강 179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