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181
68. 종천(終天)
-이놈! 무슨 짓을 한 것이냐!
기겁하는 천마의 심정이 생생하게 느껴졌다.
이미 육체의 주도권 대부분을 장악한 천마의 정신은, 소종천의 내공을 제어할 수 없다는 것을 느끼고 크게 당황했다.
몸속에 가득 채워져 있던 내력이 일제히 바깥으로 빠져나가고 있다.
물론 그런 현상 자체는 딱히 상관이 없긴 했다.
천마가 노린 것은 소종천의 몸이지, 그가 쌓은 내공인 것은 아니었으니.
어차피 소종천이 이룬 경지는 천마에 비하면 한 수 아래일 뿐이니, 마기에 붕괴되지 않고 오래도록 담아둘 수 있는 그릇의 역할만으로도 충분했다.
시간을 두고 천천히 반야신공의 내공을 자신의 힘과 융화시켜볼 생각이긴 했지만, 이대로 텅 빈 육체만을 손에 넣는다 해도 크게 아쉬울 것은 없었다.
문제는 폭발적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는 반야신공의 내공이, 상극의 기운인 천마의 마기까지 같이 밀어내고 있다는 점이었다.
-이게 대체!?
막 육체의 전환을 이루던 중이었기에, 천마의 마기 역시 새로운 몸에 온전히 정착되지 않은 불안정한 상태.
소종천의 내력이 방출되어 흩어지는 기현상에 휩쓸린 탓에, 육체를 차지하고 영혼마저 잠식해야 했던 천마의 전이술에도 차질이 생겼다.
‘뭐가 잘 안 되는 모양이지?’
-네놈……!
하나의 몸에 머문 두 개의 영혼.
본래는 육체의 장악이 끝나면 원주인의 정신도 무너져 없어지게 된다.
하지만 천마의 전이술에 문제가 생긴 탓에, 소종천의 정신은 아직 망가지지 않은 상태로 몸에 머물러 있었다.
미약하게나마 육체의 통제력도 일부 돌아왔다.
-무슨 수작을 부린 건지 모르겠지만, 그래 봐야 시간문제일 뿐이다. 아무리 발버둥 쳐봤자 네놈은 본좌에게 몸을 빼앗기게 되어 있단 말이다.
‘오냐, 개자식아. 너 가져라.’
-……뭐라?
소종천의 입술이 달싹거렸다.
“거으…… 찌르…….”
“종천!”
자괴감에 물든 얼굴로 소종천을 주시하고 있던 남궁건이 반응을 보였다.
소종천을 붙잡은 천마가 갑자기 허수아비처럼 픽 쓰러지는 모습을 보고, 남궁건은 소종천이 회심의 반격을 성공한 것인가 싶어 환호를 지를 뻔했었다.
그러나 이내 불길한 기운이 소종천의 몸을 감싸는 것을 발견하고, 기쁨의 감정은 곧 좌절로 바뀌었었다.
‘이럴 수가! 설마 종천이 천마에게 몸을 빼앗긴 것인가?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어떠한 준비도 없이 저렇게 쉽게 행할 수 있는 수법이었단 말인가!’
유일하게 천마에게 대항할 가능성이 있던 소종천이 사라지면, 더 이상 중원 무림에는 아무런 희망도 없다.
절로 손아귀에 힘이 빠져 검을 놓칠 뻔했다.
그러나 곧 자신을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에, 남궁건은 정신을 차리고 검을 콱 움켜쥐었다.
“찌르어…….”
소종천이 몸을 부들부들거리며 멈춰 서있었다.
‘아직 바뀌지 않았다! 천마의 수법에 저항하고 있는 것이야!’
남궁건은 소종천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그리고 본인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곧바로 이해했다.
오만가지 생각이 머릿속에 스쳐지나간다.
‘종천, 나의 친우여…….’
이것은 소종천이 만들어준 다시는 오지 않을 절호의 기회일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잔혹한 기회의 순간에, 남궁건은 손을 떨며 얼굴을 한껏 일그러뜨렸다.
애석한 일이었지만 지금은 감상에 빠질 여유조차 없었다.
남궁건은 슬픔을 삼키며 검을 뒤로 당겼다.
유려한 신법으로 거리를 좁힌 남궁건의 검이 소종천을 향해 찔러졌다.
-이런!
소종천과 육체의 통제권을 두고 보이지 않는 힘겨루기를 하고 있던 천마가 다급히 몸을 피하려 했으나, 아직 몸을 온전히 제어할 수 없던 탓에 반응이 늦어졌다.
급하게 호신강기를 일으켜 막으려 했지만, 그마저도 상태가 정상이 아닌지라 본래의 견고함에 전혀 미치지 못했다.
찬란하게 빛나는 검강이 강기의 막을 찢어냈다.
이어서 남궁건의 검이 소종천의 심장을 관통했다.
-안 돼!
‘으윽…….’
분노로 가득 찬 음성이 머릿속에 울리는 것을 느끼며, 소종천은 남궁건의 얼굴을 눈에 담았다.
‘야, 임마…… 내가 찌르라고 하긴 했지만 망설임도 없이 겁나 신속하게 쑤셔 버리네. 그래도 한 3초쯤은 고민하는 그림이 나와야 하는 거 아니냐.’
한순간도 머뭇거리지 않고 최선의 검초를 펼친 남궁건을 보며, 소종천은 괜히 복잡한 심경에 빠졌다.
그래도 굉장히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보니, 마냥 섭섭해할 수도 없었다.
사실 칭찬할 만한 판단이긴 하다.
‘조금만 늦었어도 통제력을 다시 빼앗겼을 거야. 잘했다 남궁건. 하하! 죽는 것을 고마워해야 하다니, 별 거지 같은 경험을 다 하네.’
소종천은 마음속으로 실소를 터뜨렸다.
육체의 주도권이 거의 다 넘어간 탓에, 심장이 꿰뚫렸음에도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죽음이 다가온다는 실감도 나질 않는다.
다만 의식이 천천히 흐릿해지는 감각은 들었다.
‘진짜 죽는 건가. 하…… 싫구만. 지랄 맞은 동네지만 그래도 제법 익숙해졌었는데.’
마지막 순간이 다가왔다는 것을 직감하고 소종천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
‘신인지 뭔지 양심이 있으면 나 좀 금수저로 환생시켜라…….’
그런 소시민들이 할법한 흔한 소망을 끝으로, 소종천은 더 이상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 * *
숭산 소실봉.
한 남자가 소림사라고 적혀있는 커다란 현판 아래를 지나 안으로 들어섰다.
이미 몇 번 방문한 적이 있는지 익숙한 태도로 내당의 한쪽 길을 따라 걸어가는 남자를 발견하고, 내방객들을 응대하던 지객(知客)승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왔다.
“시주. 그쪽은 관계자가 아니면…… 어엇!”
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승려가 그의 정체를 알아보고 깜짝 놀라 말을 멈췄다.
명실 공히 현 무림에서 가장 유명한 무인이니, 당연한 일이었다.
“검성!”
“따로 허가를 받아야 하오?”
“아, 아닙니다. 들어가시면 됩니다.”
물러나는 승려에게서 시선을 돌린 남궁건은 다시 거침없이 걸음을 옮겼다.
부지런히 움직인 남궁건은 이윽고 대청에 누워 낮잠을 자고 있는 한 사람을 발견했다.
“종천.”
익숙한 목소리에 소종천은 눈을 뜨고 일어났다.
“음냐…… 어어, 건이냐? 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네.”
남궁건의 검에 찔려 죽음을 받아들였던 소종천.
신의 장난이라고 해야 할지, 그는 목숨을 잃지 않고 다시 눈을 뜰 수 있었다.
검에 관통당했던 상처는 마치 거짓말처럼 깨끗하게 사라졌다.
사라진 것이 상처뿐만은 아니었다.
새로 얻은 생명을 대가로, 소종천은 뽑기 능력을 잃었다.
무림세계에 떨어진 소종천을 성장시켜준 그의 모든 것이나 다름없는 힘이었지만, 크게 아쉽지는 않았다.
어차피 더 이상 효용 가치가 없어진 능력이기도 했고, 똥밭에 굴러도 죽는 것보단 살아있는 것이 낫지 않은가.
“윽! 젖어버렸네.”
자리에서 일어난 소종천은 자신이 곯아떨어진 동안 흘린 침에, 반야신공의 비급이 젖어버린 것을 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불경하게 사문의 비급을 베고 잔 것도 모자라 이리 더럽히다니.
소종천이 아니라 소림의 다른 제자였다면 크게 경을 치렀을 것이다.
“아직 진전이 없는 것이오?”
“아아, 뭐 그렇지.”
소종천의 대답에 남궁건은 죄스러운 마음이 되어 숙연해졌다.
한때 모두가 인정하는 무림 최강자의 자리에 올랐던 자신의 친우는, 이제 내공 한 점 다루지 못하는 몸이 되어버렸다.
초절정을 넘어 미답의 경지를 개척해 가던 소종천이었으나, 지금은 심법을 처음부터 다시 공부하고 있다.
다 큰 어른이 기는 법부터 다시 배우는 꼴이나 다름없는데, 그마저도 몇 년째 아무런 소득이 없다.
남궁건은 전부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아,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본인이 천마와의 전투에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기에…….”
“응? 얌마! 넌 또 그 소리냐? 질리니까 그만 좀 해라.”
남궁건에게 핀잔을 주며 소매로 침 자국을 문질러 닦던 소종천은, 얼룩만 더 번지는 것을 보고 한숨을 내쉬며 비급을 내려놓았다.
‘10년이 지나도록 제자리걸음이라니. 역시 이제 다시는 무공을 쓸 수 없는 건가?’
소림의 절학들은 여전히 몸에 남아있지만, 기초가 되는 심법이 없으니 내공을 움직일 수가 없다.
반야신공의 1성은 과거에도 수련을 통해 익혔던 것이기에 노력하면 다시 습득할 수 있으리라 여겼는데, 어째 아무리 수련을 해도 진전이 없었다.
‘그때도 영약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이게 내 지능의 문제는 아닌 것 같은데. 구결을 달달 외워도 깨달음이 찾아오지 않으니 원.’
힘을 잃은 소종천은 수왕채의 씨왕 자리를 노렸던 꿈을 접고, 그 뒤로 쭉 심익한에게 몸을 의탁해 지내고 있었다.
대부분의 시간을 소림무문 안에서 보내고 있긴 하지만, 산 아래 가까운 곳에 거처를 두고 한사혜와 나름대로 알콩달콩하게 살아가는 중이다.
“아이는 잘 크고 있소?”
“어. 맞다, 너 제자 안 받을래? 자식이라서 하는 소리가 아니라, 우리 아들이 진짜 엄청난 천재인 거 같아.”
두 사람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난 뒤로, 한사혜의 의존 증상은 완전히 사라졌다.
이제는 아이에게 신경 쓰느라 소종천은 뒷전으로 밀려나서, 괜히 서운하게 느껴질 지경이었다.
“근골이 범상치 않다는 것은 전에 돌잔치 때도 보아서 알고 있소. 한데 직접 가르치지 않을 셈이오?”
“근골만이 아니라 머리가 비상한 게 아주 신동이라니까? 그리고 내 몸도 건사 못하는 마당에 무슨. 심 사형이 소림의 제자로 들이자고 눈독을 들이고 있긴 한데…… 이런 말은 사형에겐 미안하지만, 솔직히 스승을 둘 거면 최고한테 배우게 하고 싶잖아.”
방장에 오른 뒤로 수련에 힘쓰고 있지만 아직 초절정에 도달하진 못한 심익한과, 이미 초절정의 끝에 닿아 새로운 경지를 더듬고 있는 남궁건은 아무래도 급이 다르긴 하다.
“음. 본인의 무공은 사승관계를 맺었다 해도, 원래는 가문의 사람이 아니면 비기까지 전수할 수 없는 것이오만…….”
“윽! 십 년 전에 찔린 가슴에서 통증이!”
“……어차피 본인이 가주인데 누가 뭐라고 하겠소. 그런데 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떨어져 지내도 괜찮은 것이오?”
“세가로 데려가지 말고 여기 머물러서 가르치면 안 되나?”
“이런, 본인도 해야 할 일들이 많…….”
“아이고오! 심장이! 심장이 너무 아프다!”
“……일 년 정도는 크게 바쁘지 않을 것도 같소.”
“그래? 잘됐네!”
너스레를 떠는 소종천을 보며 남궁건은 절로 고개를 저었다.
“아, 먼저 내려가서 사혜하고 인사나 해. 우리 아들도 좀 봐주고.”
“따로 볼일이 있으시오?”
“심 사형하고 이야기 좀 하고 가려고. 이 짓도 이제 그만둘까 해서.”
너무 진전이 없어 그사이 다른 간단한 심법들에 몇 번 손을 대기도 했는데, 어째 단전에서 계속 통증이 일어나 번번이 그만두게 되었었다.
오로지 반야신공을 다시 수련할 때만 아무런 이상이 없어 결국 한 우물을 팔 수밖에 없었는데, 이 역시도 소득이 없기는 마찬가지니 이제는 무공에 대한 욕심을 버리는 것이 맞나 싶다.
‘십 년이나 노력했으면 할 만큼 했지.’
“으음…….”
“야야, 표정 풀어. 네 탓이 아니라니까.”
다시 얼굴이 굳어지는 남궁건을 다독여 밖으로 보내고, 소종천은 반야신공의 비급을 손에 들었다.
십년간 무던히도 뒤적거려 닳고 닳은 비급.
“에이! 그 시간에 과거시험을 공부했으면 장원급제도 했겠다!”
막상 포기하려니 심통이 난 소종천은, 손에 든 비급을 한 장씩 잘게 찢어 바닥에 뿌렸다.
필사본이긴 해도 사문의 비전절학이 담긴 비급을 훼손하다니, 파문을 당해도 할 말이 없는 짓이었다.
한참을 씩씩거리며 난리를 치던 소종천은, 겉장만 남고 너덜너덜해진 비급을 집어던졌다.
지저분해진 바닥을 치워야 하겠으나, 만사가 다 귀찮아져 그마저도 누군가 하겠거니 하고 미루었다.
“무공 없으면 뭐 못 사냐? 후우! 내려가야지. 기술이나 배워서 먹고 살까?”
분풀이를 한 소종천은 이내 마음에 남은 미련 한 조각마저 내던지고 걸음을 옮겼다.
그러나 고작 한걸음 떼기가 무섭게, 소종천은 다시 몸을 멈춰 세워야 했다.
“읏?”
정수리로 벼락이 떨어진 것 같은 짜릿한 감각과 함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떠올랐다.
통째로 외웠지만 의미가 와 닿지 않았던 반야신공의 구결들이, 한순간에 번뜩이며 심상을 스쳐 지나갔다.
“……어라?”
미련을 내려놓고 나니 깨달음이 찾아왔다.
몸속에서 내력이 흐르기 시작하는 게 느껴졌다.
소종천은 자신이 반야신공의 1성을 이루었음을 알아차렸다.
‘하! 이것 참…….’
소종천은 눈을 감고 자리에 앉아 운공을 행했다.
내공이 모여든다.
잠시 시간이 흐른 뒤, 소종천은 깊은 숨을 내쉬며 개안했다.
다시는 느낄 수 없을 것 같았던 익숙한 성질의 내공이 전신을 충만하게 채웠다.
심법의 성취가 낮아 내공의 질은 예전과 비할 바가 아니지만, 200년에 달했던 막대한 양은 되돌아왔다.
소종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음…….”
단전에서 넘쳐 흐르는 내력에 몸이 가뿐하다.
강기를 덧씌운 채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내려다보던 소종천은,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마음을 비우고 나니 이제야 놀리듯이 되돌아온 내공이, 마냥 반갑지만은 않았다.
어차피 더는 싸워야 할 적도 없는데 뭘 그리 집착했었나 싶은 생각도 든다.
‘우리 아들내미 벌모세수나 시켜줄까.’
그래도 힘이 있는 편이 없는 것보단 좋긴 하다.
한결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소종천은 자신의 가족과 친구가 기다리고 있는 장소로 향했다.
소종천의 신형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한줄기의 강한 바람이 불어와, 바닥에 뿌려진 종잇조각들을 허공으로 날려 보냈다.
完
작품 후기
완결처럼 보이지 않을 수도 있지만 완결입니다.
모자란 작가의 글을 여기까지 따라와 주신 독자님들, 감사드립니다.
처음에는 글을 쓰는 게 재미있었지만,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자니 머리는 아프고 나오는 건 없어 꽤나 힘들었네요.
건강상의 문제로 휴재도 잦았고 갈수록 수준이 떨어져, 기대해 주셨던 많은 분들에게 실망을 안겨드려 죄송할 따름입니다.
그래도 결국 끝까지 오긴 했습니다.
후련하기도 하고 참…… 시원섭섭하네요.
바로 다음 작품을 구상하고, 이번에는 좀 더 준비를 갖춰 더 나아진 모습으로 돌아오겠습니다.
다시 한번 함께해 주신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