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19
12. 재대결
모여든 사람들을 지나쳐 안으로 들어섰는데, 모용설호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아직 오지 않은 건가?’
잠시 기다리고 있자니, 생도들이 떠드는 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모용설호다!”
“이제 시작하겠군.”
“기다리다 지치겠어!”
눈을 돌리자 의기양양한 태도로 이쪽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오는 모용설호의 모습이 보였다.
‘아주 자기가 오늘의 주인공이라는 얼굴이구만.’
비무를 앞둔 사람이라고 보기엔 긴장감이 전혀 없는 것이, 얼마나 이쪽을 무시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소종천의 앞에 선 모용설호는 거만해 보이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부담감에 나오지 않는 것은 아닐까 걱정했는데, 그래도 용케 피하지 않고 왔군.”
“뭐래. 제발 비무 한 번만 다시 해달라고 바짓가랑이를 붙들고 늘어져서 받아줬더니.”
“뭐, 뭣! 내가 언제 그런 행동을 했단 말이냐!”
꼬락서니가 마음에 들지 않아 살짝 속을 긁어주었더니, 금방 인상을 구기며 버럭 소리를 지른다.
씩씩거리던 모용설호는 이내 검 자루를 향해 손을 가져다 대며 말했다.
“이제 와서 입 아프게 허례는 필요 없을 터! 기다리는 이들도 많으니 바로 시작하도록 하지!”
스르릉.
일반적으로 비무를 하기 전에 나누는 간단한 인사를 생략하고, 모용설호는 곧장 검을 뽑아 들며 기세를 발했다.
저릿저릿한 예기가 피부에 맞닿아 간질간질한 느낌을 받는다.
‘역시 검이 주력이다 그거지? 저번하고는 전혀 다른 느낌이네.’
권을 겨루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기세.
확실히 강하긴 강한 놈이다.
‘이런 말은 미안하지만 자군이보다 한 수 위긴 하겠어. 하지만…….’
이기지 못할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이쪽은 그래도 절정 고수의 맞춤형 속성 교육을 받은 몸.
답안지를 보고 문제를 푸는 것처럼, 모용설호의 수준에서 펼칠 수 있는 검법에 대해 이미 공략할 방법을 숙지하고 나온 상황이다.
고작 며칠 동안의 벼락치기이긴 하지만, 질 리가 없다 확신하고 있는 녀석의 빈틈에 치명타를 꽂아주기엔 충분하다고 본다.
“선수는 양보해 주지. 들어와라!”
“아니, 네가 와라.”
“뭣!? 이놈이 계속……!”
당당하게 외치는 녀석에게 소종천은 건들거리는 태도로 이죽거려주었다.
“까먹었냐? 너 나한테 졌었잖아? 까불다가 또 한 대 맞으면 이번에는 정말 후손도 못 보게 된다?”
다리 사이로 시선을 주며 말하자 모용설호의 몸이 움찔 떨리며 기세가 흔들린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모용설호는 이내 가라앉은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건방진 놈. 같은 수에 또 당할 성싶으냐? 지난번과 같은 방심은 없을 거다!”
말을 마친 모용설호가 자세를 바꾸며 달려 나왔다.
그리 잘생기지도 않은 얼굴이 잔뜩 일그러지니 못 봐줄 지경이다.
“오지 않겠다면 원대로 해주마!”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검이 날아들었다.
‘방심을 안 하긴 개뿔이.’
소종천은 전신에 내력을 퍼뜨리며 몸을 낮췄다.
곽진의 지도 덕분에 상대의 검로가 쉬이 눈에 들어온다.
천운삼검의 초식 중 하나.
‘정말 제대로 할 거면 모용세가의 기초 검법이 아닌 잘나신 다른 검법들을 꺼냈어야지!’
또래 중 수위를 다투는 무인답게, 검의 기세가 예사롭지 않다.
하지만 뭐가 올지 알면서 당할 만큼 엄청난 격차가 있는 상대도 아니고, 충분히 대응할 수 있는 속도였다.
“그 바닥을 기는 기수식은 뭐냐? 참으로 네놈에게 어울리는 무공이구나!”
몸을 한껏 낮춘 자세에서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검격을 피해내는 소종천을 향해, 모용설호가 조롱하며 외친다.
상대가 그러거나 말거나 소종천은 기억을 더듬으며, 펼쳐지는 검식에 정신을 집중했다.
‘여기서 한 번 꺾이고, 다시 찌르기…… 지금!’
묘한 자세로 회피를 반복하던 소종천이 땅을 박찼다.
소림오권 중 호권의 형.
맹호신요(猛虎伸腰)의 초식.
웅크린 호랑이가 허리를 펴니 비로소 산의 제왕이 가진 위엄이 드러났다.
“엇!”
심상치 않은 권격에 모용설호가 다급하게 검초를 변화시킨다.
검과 권이 격돌했다.
쿵!
중(重)의 묘리를 담은 호권의 형은 일권 하나하나에 거목을 부러뜨리는 위력이 실린다.
“크윽……!”
충격이 작지 않았는지 공격을 막아낸 모용설호의 안색이 나빠졌다.
“오오!”
“뭐야? 제법 하잖아?”
“기대했던 것보다 더 재미있겠는데!”
관중들이 흥미진진해 하는 와중에, 충돌과 동시에 뒤로 튕겨졌던 두 사람은 재빨리 비틀거리던 자세를 고쳐 잡았다.
‘한 방에 끝나면 참 편할 텐데, 역시 그렇게는 안 되나.’
소종천은 아쉬움을 삼키며 시큰거리는 주먹을 털었다.
공격을 가한 것은 이쪽인데 밀려난 거리는 양쪽이 똑같다.
반야신공 덕분에 내공의 질이 급격히 상승했지만, 저쪽 역시 명가의 심법을 익혀 정순한 내공을 쌓은 무인.
거기에 아직 내공의 총량에서는 소종천이 부족하다 보니, 좋은 기회를 잡았음에도 결과적으론 동수를 이루는 정도로 끝난 것이다.
‘소림오권의 성취가 조금만 더 높았어도 이대로 승기를 잡아 공세를 이어갔을 것을! 2성밖에 되지 않는 게 너무 아쉽네.’
주는 김에 넉넉하게 좀 줄 것이지 하며 속으로 투덜거리고 있자니, 모용설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건방을 떠나 했더니 어디서 같잖은 수 하나를 익혀왔구나. 그래, 그 정도 발악은 해줘야 흥이 나지.”
흥이 난다는 말과는 달리 살짝 독이 오른 음성.
본래는 압도적인 실력 차로 가지고 노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일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전과는 달리 제법 위력적인 무공을 펼치는 소종천 때문에, 계획이 틀어져 기분이 상한 모양이다.
물론 그래도 아직까지는 자신이 질 가능성도 있단 생각은 추호도 하지 않는 모용설호.
“애써서 익힌 재주일 텐데 막혀 버려서 어쩌나?”
빈정거리는 모용설호를 보며 소종천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거, 걱정해 주니 눈물 나게 고맙네. 근데 보여줄 건 아직 더 있거든?”
다섯 개의 형에서 호권의 초식 하나를 펼쳤을 뿐이다.
이제 저쪽도 처음처럼 방심하진 않을 테니 좋은 기회를 잡기가 어렵긴 하겠지만, 아직 보여줄 밑천은 한참 남아 있다.
‘그리고 뭐? 같잖다고? 짜식이 소림 무시하네.’
소종천은 소림의 제자도 아니고, 소림오권 역시 뽑기로 쉽게 익힌 무공이긴 했다.
그렇지만 관련된 지식이 온전히 머릿속에 들어왔기에, 이것이 어느 정도의 가치를 가진 무공인지는 잘 알고 있었다.
이제는 망해 버린 문파라 해서 우습게 여겨질 무공이 아니다.
“겁먹은 개가 짖기만 한다더라. 그만 떠들고 하던 거 계속하지?”
“놈…… 아주 입만 살았구나. 언제까지 그럴 수 있나 보자!”
모용설호의 검이 바람 앞의 갈대처럼 흔들거린다.
비려십오검.
모용세가가 자랑하는 절기 중 하나가 사람들 앞에 선보여지게 되었다.
춤을 추는 듯한 유려한 동작과 함께 다가온 모용설호의 검이 소종천의 시야를 어지럽혔다.
부드러움 속에 날카로움을 숨긴, 언뜻 보기엔 힘이 빠진 것 같으나 상대하기 까다로운 검초.
“후웁!”
크게 숨을 들이쉰 소종천이 양팔을 벌리며 검을 맞이했다.
소림오권 학의 형.
백학량시(白鶴亮翅).
날개를 펼치는 백학과도 같은 모양새로 소종천이 휘두른 팔이 공간을 점하자, 넘실거리며 다가오던 검이 밀려나며 쉽게 거리를 좁히지 못한다.
유검(柔劍)에는 유권(柔拳)으로.
부드러움과 부드러움이 맞물리며 때아닌 춤판이 벌어졌다.
눈을 현혹시키고 손발을 어지럽게 만들어 빈틈을 찌르고 빠져나와야 할 검초가, 제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소종천의 주변을 맴돌기만 한다.
“큭! 또 알량한 수작을!”
자신 있는 초식을 펼쳤음에도 쉬이 상대의 방어를 파고들지 못하고 겉돌게 되자, 모용설호는 이를 악물고 내공을 끌어올렸다.
까강! 기기기긱!
검과 수갑이 부딪히며 귀가 따가운 소음이 발생했다.
위력이 증가한 검이 현란하게 요동치며 소종천의 방어를 뚫기 위해 거세게 밀어붙인다.
한 걸음, 두 걸음.
손을 부지런히 놀리며 검을 막아내던 소종천이, 위력이 증가한 검식에 뒷걸음질 치며 자세가 무너지는 듯하던 순간.
쿵!
‘미안하지만 그것도 파악하고 있었단다!’
강하게 발을 구른 소종천이 새로운 동작을 취하며, 밀려오는 검초의 안으로 뛰어들었다.
시간이 부족해 비려십오검의 모든 약점을 꿰진 못했지만, 지금의 흐름은 곽진이 상정해 준 파고들 여지가 있는 부분들의 하나였다.
오권 중 용권의 형.
용기횡강(龍氣橫江)의 초식.
종잡을 수 없는 몸놀림으로 유(柔)와 강(强)을 자유롭게 오가는 것이 용권의 형이다.
물보라를 일으키며 강을 유영하는 한 마리 수룡과도 같이, 소종천의 신형이 모용설호의 검초 속으로 부드럽게 파고들었다.
“어딜!”
거리를 좁히는 소종천을 뿌리치기 위해 모용설호가 더욱 거세게 검을 휘둘렀다.
하나 소종천에 몸에 닿는 검격은 하나도 없었다.
용권의 형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들어오는가 싶으면 물러가고, 빠지는가 싶으면 나아가는 발놀림.
즉, 용권에 속한 특유의 보법인 유룡보에 있다.
공수를 전환함에 막힘이 없는 혼란스러운 움직임은 상대를 희롱하기에 제격이었다.
“이 미꾸라지 같은 놈!”
아니나 다를까 분통을 터뜨리는 모용설호.
“흐흐! 좀 더 빠르게 못 하냐?”
약을 올리기 위해 일부러 더 이죽거리며, 소종천은 머릿속으로 다음의 수를 생각했다.
선전하고 있긴 하지만 사실 딱히 유리한 상황도 아니다.
‘여기서 더 나아갈 수 없다는 게 안타깝네.’
성취도만 더 높았더라면 용권만으로, 아니, 오권 중 어떤 형으로도 충분히 기회를 만들 수 있었을 것이었다.
하지만 2성의 성취로는 이 정도가 한계.
기민하게 움직이나 구름을 두르지 못하였으니 적의 눈을 완전히 속일 수 없고, 날카롭게 벼려졌어야 할 발톱 역시 갖추지 못해 공격으로 이어가지 못한다.
‘그래도 쓸 수 있는 게 이게 전부는 아니지.’
모용설호가 차지한 검의 영역권 끝에서 아슬아슬하게 들락날락하기를 반복하던 소종천은, 양팔을 들어 올려 억지로 검격을 받아내며 간격을 좁혔다.
까가가강!
보호대의 금속과 검날이 연달아 부딪히며 수십, 수백 개의 작은 불똥들이 사방으로 번뜩인다.
완벽히 막아내지 못한 검격으로 인해 소종천의 몸 여기저기에 상처가 생겨났다.
조금 무리를 해서 쏟아지는 검격 안으로 파고든 소종천은 모용설호와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이내, 활짝 웃음을 지으며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이, 이놈!”
살짝 오므라드는 다리가 보인다.
한쪽 무릎을 굽히며 몸을 뒤튼 소종천의 반대쪽 발이, 창을 내지르듯 찔러 들어갔다.
권법 대련에서 재미를 봤었던 추혼퇴를 다시 펼친 것이다.
“같은 수작에, 컥!”
뻑!
눈에 불을 켜고 소종천의 발목을 잘라낼 듯이 강하게 검을 휘두르던 모용설호가, 신음을 흘리며 밀려났다.
반사적으로 지난번처럼 낭심을 노린 공격이라 여기고 반격을 했는데, 들어오는 다리의 각도가 조금 달랐다.
텅 빈 아래쪽을 허망하게 가르고 지나가는 검.
일격을 허용하고 밀쳐진 모용설호의 가슴 부근에 선명한 발자국이 남았다.
“같은 수작에 또 당했네?”
“너……!”
얄밉게 내뱉어지는 소종천의 목소리를 들으며 모용설호의 호흡이 거세졌다.
“이야! 잘하잖아?”
“하하하!”
“뭐야, 모용설호! 지면 안 돼! 너한테 걸었다고!”
생각보다 볼만하게 흘러가는 비무 내용에 관중들이 환호한다.
‘자, 그럼…….’
장난스럽게 주변으로 손을 흔들어준 소종천은 숨을 고르며 머리를 굴렸다.
이득은 봤으나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다.
목덜미가 서늘해지는 감각과 함께 팔등에 살짝 소름이 돋았다.
‘이제부터가 진짜인데 말이지.’
찌릿찌릿한 예기 사이로 음산한 기운이 스며들었다.
살기(殺氣).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은 모용설호가, 소종천을 향한 검에 악의를 담기 시작한 것이다.
“네놈…… 몸 성히 돌아갈 생각은 버려라.”
빠득.
떨어져 있는 관중들에게까지 들릴 만큼 큰 소리로 이를 갈며, 모용설호가 검을 쥔 손에 내력을 집중했다.
소종천 역시 깐족거리던 기색을 지우고 자세를 취했다.
여기서부터는 곽진이 하나하나 짚어준 부분들을 넘어서는 상황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
이제부터는 정말 아차 하는 순간에 당할지도 모른다.
소종천은 상대의 눈을 응시하며 내공을 최대한도로 운용해, 움직임에 곧장 반응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를 갖췄다.
뽑기로 무림최강 2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