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2
2. 뽑긴 뽑았는데
흔해 빠진 다른 모바일 게임들과 크게 다를 바 없는 무혼의 시스템.
등장하는 적을 해치우고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간다.
당연히 스토리를 진행함에 따라 적은 점점 강해지며, 승리하기 위해선 아군의 전력을 계속 상승시켜야 했다.
전력 강화의 방법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
유저의 아바타 캐릭터를 성장시키거나, 동료로 모집할 수 있는 영웅들에게 투자해야 한다.
그리고 그걸 위한 메뉴가 이 뽑기 시스템이었다.
[영웅 뽑기] [보물 뽑기]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듯이 반투명한 떠올라 있지만, 바로 할 수 있는 선택은 하나뿐이었다.
‘이쪽은 어째 비활성화되어 있는 거 같은데.’
영웅 뽑기의 칸은 아직 선택할 수 없다는 듯이 어두운색으로 칠해져 있다.
혹시나 싶어 눌러 보려고 했지만 아무 반응도 생기지 않는다.
‘뭔가 문제가 있나? 으음…… 그럼 결국 보물 뽑기뿐이네.’
보물 뽑기를 선택하자 창이 바뀌더니 선택지가 세 개로 늘어났다.
[천급 보물 상자-10청강석] [지급 보물 상자-100금] [인급 보물 상자-1,000은]“……잉?”
천, 지, 인 세 가지 종류로 나누어져 있는 보물 상자.
그런데 구매에 필요한 재화가 전부 제각각이다.
접속 보상으로 은은 얻었는데 금과 청강석도 같은 방법으로 얻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수단이 있는 건지 아직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은도 400밖에 없으니 결국 인급 보물 상자란 것도 지금은 구매할 수 없다.
‘보통 튜토리얼로 첫 구매는 무료 서비스해 주지 않나? 신규 유저를 전혀 배려해 주지 않다니 이거 완전 똥겜이네!’
불만을 늘어놓아도 바뀌는 것은 없기에 입맛을 다시며 창을 닫았다.
‘이런 상황이 될 줄 알았다면 적금을 다 깨서라도 현질을 했을 텐데.’
이런 흔해 빠진 모바일 게임들이 다 그렇듯 몇백만 원 정도의 현금을 지를 수 있었다면?
최강까진 몰라도 그럭저럭 뛰어난 고수가 만들어지지 않았을까 싶다.
‘하긴, 인트로에서 바로 넘어왔으니 결제할 시간도 없긴 했지만.’
할 수 없는 일에 미련을 가져봐야 본인만 손해.
그렇기에 그나마 접점이 있다고 할 수 있는, 1,000은으로 구매 가능이라 표시되어 있던 인급 보물 상자를 떠올렸다.
‘뽑기를 해보려면 일단은 은 천 개부터 모아야 하는 건가.’
일일 접속 보상이라 했으니 매일 한 번씩은 뭔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이 뽑기라는 것을 써먹어 보려면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럼 이틀 더 보상을 받아야 뽑기를 사용할 수 있는 건가? 아! 아니지. 처음에 룰렛 같은 것이 돌아가고 당첨이라고 떴으니, 보상이 400은으로 고정되어 있는 건 아닌 듯한데?’
어찌 되었든 다음 보상을 받을 때까지 시간이 지나야 뭐가 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정보라고 적혀 있는 창을 선택해 보았다.
사진으로 찍은 듯한 전신 그림 하나가 떠올랐다.
‘이건…… 이 몸이네? 캐릭터 정보 같은 건가?’
아직 익숙하지 않아 누군가 했는데 소종천 본인의 얼굴이었다.
그림을 누르자 창이 펼쳐지며 여러 가지 항목이 주르륵 나열된다.
[이름 : 소종천] [별호 : 없음] [재능] [오성 6.43] [근골 5.02] [감각 8.80] [내공 1.36] [무공] [청명토납공 8성] [추영권 8성]여러 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능력치나 기술 목록 등을 알려주는 상태창이었다.
‘이름이야 당연히 그대로고. 별호는 유명세를 떨치면 생기는 타이틀 같은 건가? 가전 무공이나 수련하다가 15살에 학관에 들어온 애송이에겐 없는 것이 당연하겠네.’
능력치는 네 가지 항목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대충 단어의 뜻을 떠올려보고 어떤 능력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
‘오성은 지능 쪽 능력인 것 같고 근골은 육체적인 능력이겠지. 감각은 조금 애매한데…… 오감의 발달과 연관이 있나? 내공은 말 그대로 내공이겠고.’
감각의 수치가 가장 높고 내공의 수치는 낮았으며, 오성과 근골은 다른 두 능력치의 중간쯤 되었다.
따로 비교할 대상이 없으니, 이 능력치들이 높은 건지 낮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당연히 낮은 쪽일 가능성이 훨씬 크겠지? 능력치가 높은 몸뚱이면 입관 성적도 좋았을 테니까.’
능력치들을 보고 있자니 다른 것보다 확연하게 낮은 내공 수치가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대부분 무협에서 내공이란 무공의 고하를 가르는 큰 척도 중 하나이지 않던가.
‘어째 영 허접한 것 같긴 한데…….’
마땅찮은 표정으로 시선을 내리니 무공 칸이 눈에 들어온다.
이쪽은 더 단출하게 청명토납공과 추영권 딱 두 개만 등록되어 있다.
집안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가전 무공들이라는 기억이 떠올랐다.
‘이것도 그다지 대단한 무공들은 아니겠지.’
살펴볼 수 있는 것은 전부 확인한 소종천은 창을 닫고 생각에 잠겼다.
아무래도 뽑기를 통해 성장할 수 있는 것 같긴 한데, 바로 써먹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 당장은 다른 생도들과 똑같은 활동을 해야 할 것이다.
‘일단은 이곳의 생활에서 실수를 하지 않도록, 이 몸의 기억을 더 살펴봐야겠네.’
눈을 감고 15살 소종천이라는 인물이 살아온 시간을 되감으며 정보를 모았다.
본인은 알지 못했지만 계속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시시각각 표정이 변하는 소종천의 기이한 모습에, 방 안의 나머지 사람들은 다들 떨떠름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거, 참 특이한 친구일세.’
‘배정을 잘못 받았군. 정신이 이상한 놈 같은데, 1년 동안 한 방을 써야 한다니.’
‘…….’
첫인상을 말아먹고 있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한 채, 소종천은 육신에 남겨진 기억을 더듬는 것에 집중했다.
* * *
[일일 접속 보상을 지급합니다.]“헙!?”
소종천은 머릿속에 떠오르는 글자들을 느끼며 눈을 떴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방 안의 풍경이 시야에 들어온다.
바뀐 현실의 불편한 잠자리에 꽤 오래 뒤척였었는데, 어느 순간 잠이 든 모양이었다.
‘꿈이…… 아니네. 그래. 기억을 살피고 무림에 대한 정보들을 알아보다가 잠자리에 들었지.’
호흡을 가다듬는 소종천의 눈앞으로 어제 보았던 원판이 모습을 드러냈다.
[보상 600은 당첨!]‘오?’
어제보다 늘어난 보상.
매일 보상 수준이 높아지는 건지, 아니면 단순히 운이 더 좋았을 뿐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보다 지금은 1,000은이 마련되었다는 게 중요하지.’
대강 이틀쯤 더 기다려야 하나 했는데, 생각보다 이르게 뽑기를 할 수 있는 재화가 모였다.
보물 뽑기창을 불러와 보물 상자 목록을 띄웠다.
[인급 보물 상자-1,000은]‘이걸 이렇게 눌러서…….’
[인급 보물 상자 1개를 개봉하시겠습니까?]‘그래.’
구매 항목을 누른다고 생각하니 1,000은이 사라지며 다시 한번 원판이 떠올랐다.
‘또 룰렛이야?’
접속 보상의 원판과는 조금 다른 형태로 여러 개의 칸이 나누어져 있었다.
아무 빛도 나지 않는 무색의 칸이 대부분.
그리고 중간중간 약간씩 섞여 있는 동색의 칸과 크기가 굉장히 작은 은색의 칸.
총 세 종류로 칸이 나누어져 있었다.
“이건 볼 것도 없네.”
누가 봐도 은색의 칸에서 가장 가치 있는 보물이 나올 것이라 예상할 수 있을 터.
이왕이면 좋은 거로 받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게 당연하기에, 방향표가 은색에 걸리기를 빌었다.
[무색 영약 당첨!]“X벌.”
바람을 비웃기라도 하듯 무색의 칸에 걸려 버렸다.
‘어차피 칸수와 크기만 봐도 무색의 확률이 가장 높았을 테니, 딱히 재수가 없다고 할 건 아니지만.’
아쉬움을 삼키고 획득한 물품이 무엇인지 알아보려고 생각하던 찰나, 알림이 추가로 떠올랐다.
[상점이 개방되었습니다.]‘상점?’
눈을 돌리자 기존 항목들 옆에 상점이라는 칸이 추가된 것이 보였다.
재화를 통해 무언가를 구매하거나 판매하는 기능일 것으로 추측되기에, 일단은 먼저 무색 영약이라는 것이 무엇인지부터 살펴보기로 했다.
소지품창을 열자 물음표 기호가 새겨진 불투명한 색의 구체 하나가 보였다.
‘이걸로 뭘 어떻게 하라는 거지?’
상상력을 발휘해 가상의 손으로 구체를 건드리자 알림이 떠올랐다.
[감정을 완료한 물품만 사용할 수 있습니다.]“아…….”
느낌이 싸하다.
굳은 표정으로 새로 생긴 상점창을 열자, 아니나 다를까 떡하니 감정서라는 물품을 팔고 있었다.
판매가는 100은.
“똥겜 보소?”
뽑기는 했지만 사용할 수가 없다.
허탈해하고 있자니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소 씨 친구. 눈뜨자마자 혼자 또 뭐라고 계속 떠드는 거야?”
고개를 돌리자 점창파 출신이라던 장자군의 모습이 보였다.
막 세안을 하고 왔는지 물기가 서린 얼굴.
“동이 트고 있으니 슬슬 준비하는 게 좋을걸? 첫날부터 태만한 모습을 보일 생각은 아니겠지?”
“그렇지 않아도 일어날 셈이었어.”
재화가 다 떨어져 감정서를 사지 못하니, 어차피 오늘은 더 이상 게임 시스템을 통해 뭔가를 할 수 없을 것이다.
잠자리를 정리한 소종천은 숙소에 비치된 일정표를 확인했다.
‘수업은 손시(巽時)부터 시작이랬나? 시계가 없으니 엄청 불편하네.’
시마다 타종으로 시간을 알려주는 종탑이 있는 모양이긴 한데, 원할 때마다 초 단위로 시간을 알 수 있는 세상에서 살았던지라 영 답답하긴 했다.
‘그래도 학관생도가 되어 빡빡하게 생활하게 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여유로운 곳인 모양이네.’
필수로 참가해야 하는 몇몇 과목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수업은 학생이 자율적으로 참석 여부를 정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다들 무공을 익힌 시간이 10년가량 되고 최상의 수련시설들이 도처에 있으니, 듣고 싶은 강의가 있을 때만 수업에 참여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본인이 원하는 수련을 하는 것이다.
필수 참여가 아닌 수업을 아예 포기하고 본인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혹은 더 갈고닦고 싶은 분야를 집중적으로 수련해도 좋다.
물론 게으름을 피우는 것도 자유.
다만 청강과 수련은 스스로의 선택이라 해도, 반기별로 이루어지는 종합 평가에서 낙제점을 받는다면 그로 인한 불이익 역시 자신이 감당해야 할 것이다.
‘대학이랑 비슷한 느낌 같기도 하고. 음…… 아무튼 첫날 수업은 필참이었지?’
수업까진 아직 시간이 남았기에, 일단 조식을 먹기 위해 식당으로 향했다.
지구처럼 물적 유통이 발달된 곳이 아니기에, 매끼를 챙겨 먹는 것도 쉬운 세상이 아니다.
그렇기에 삼시 세끼 균형 잡힌 식단을 챙겨준다는 것도, 나름대로 이곳의 장점이라면 장점이다.
식당에는 사람이 꽤 많아 줄을 서서 배식을 기다려야 했다.
‘생도가 200명이 넘으니 복작복작하네. 어? 저 녀석은?’
나무로 된 식판에 음식을 받고 두리번거리며 앉을 곳을 찾는데, 어디선가 본 적 있는 듯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남자도 감탄할 만한 준수한 외모.
같은 15살짜리들과 다른 무게감이 느껴지는 점잖은 분위기.
명가의 자손이라는 것이 이런 느낌인가 싶다.
‘왜 어디서 본 것 같지? 이 몸의 원래 주인과 친분이 있는 사람인가? 아니, 하지만 기억이 딱히…… 앗!’
왠지 신경이 쓰여 곰곰이 생각하고 있자니, 불현듯 기억이 떠올랐다.
창천검성 남궁건.
게임을 실행했을 때 인트로 영상에 등장했던 인상적인 영웅 중 하나였다.
뽑기로 무림최강 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