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24
15. 야수(夜獸)와 검룡(劍龍)(2)
강서성에 위치한 사파 세력의 굵직한 기둥 중 하나인 적사방.
그리고 그곳의 방주 한자굉.
한사혜는 한자굉이 다른 세력과의 정략혼으로 들인 여인 중 한 명에게서 태어난 여러 자식 중 하나였다.
-또 계집이군.
기억하진 못하나 그것이 태어나서 처음들은 아비의 음성.
그 뒤로 한사혜는 6살이 될 때까지 아버지의 목소리는커녕, 먼발치에서조차 얼굴 한번 보지 못하며 자라왔다.
-호오, 제법 근골이 뛰어난 아이이지 않은가.
전대 방주와의 인연으로 적사방에 몸을 의탁하고 있던 어느 노고수의 눈에 우연히 띄지 않았더라면, 그녀가 아버지와 재회하게 되는 것은 한참 먼 나중에 일이 되었을 터였다.
-계집에게 무공을 가르쳐 봐야 어디 큰일이나 하겠소?
-무슨 그런 말씀을. 방주께선 따님의 근골을 살펴보지 않으신 모양이구려. 어디 내게 한번 맡겨보시겠소이까? 분명 여느 사내놈들보다도 더 적사방의 앞날에 보탬이 될게요.
-진 호법께서 알아서 하시구려.
어머니와 함께 지내던 작은 장원에서 영문을 모르고 끌려 나온 한사혜는, 독혈귀조라는 별호를 가진 늙은 고수의 제자로 들어가 무공을 배우게 되었다.
실상 감옥이나 다름없던 장원이었으나, 한사혜에게는 그곳이 자신의 세상이 전부나 마찬가지였던 곳.
-질질 짜지 말고 시키는 것들이나 제대로 하거라!
갑작스러운 환경의 변화에 더해, 도깨비 같은 무서운 노인에게 매를 맞아가면서 억지로 배우게 된 무공.
한사혜는 점점 어린아이가 가지고 있어야 할 순수한 모습을 잊어갔다.
봄이 지나고 겨울이 가기를 몇 차례.
10살이 된 한사혜의 무재가 또래 아이들을 압도하는 것이 알려지게 되자, 그녀의 주변에선 많은 것들이 바뀌게 되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장래가 기대되지 않소이까?
-으음. 나쁘지 않군.
적사방주가 딸들에게 전혀 관심을 주지 않는다는 것은 새삼스러울 것도 없던 사실.
하지만 무재를 인정받은 한사혜만큼은 아들들과 같은 후계권한을 받게 될 거란 소문이 퍼지며, 주변에서 그녀를 대하는 태도가 완전히 달라지게 된 것이다.
‘무공을 잘해야만 사람다운 대우를 받는 거구나.’
위치가 달라지자 많은 이들이 한사혜의 앞에서 굽실거렸고, 야차와도 같던 사부조차 은근히 태도가 부드러워졌다.
어린 나이에 현실을 깨달은 한사혜는 미친 듯이 무공을 파고들었다.
억지로 배웠으나 일상이 되어버린 무공의 수련에, 자발적인 노력까지 더해지게 된 것이다.
일 년, 또 일 년이 지나며 한사혜는 하루가 다르게 강해져 갔다.
하지만 폭발적으로 보이던 성장세는 어느 순간부터 점점 정체되어갔다.
제대로 된 실전 경험의 부족 때문이었다.
“제대로 죽일 듯이 덤비란 말이야.”
“이, 이게 최선입니다! 제가 졌습니다요!”
실력의 발전을 위해선 자신과 비슷하거나 한 수 위의 상대와의 대련 경험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런 상대를 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미 주변 또래 중에는 대적할 아이가 없었고, 수준이 맞는 상대들은 아직 어린 여자아이와 무를 겨루는 상황을 원치 않았다.
지면 망신이고 이겨도 좋을 게 없지 않은가.
하물며 그 대상이 강서성 무주 일대를 주름잡는 적사방주의 여식이었으니.
사파가 강성한 지역에는 자연히 사파의 세력들이 모이게 마련.
이런 흑도의 세력권이야말로 약육강식의 논리가 더욱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이다.
당연히 그들 중 혹시라도 적사방주의 심기를 거스르게 될지 모를 일을, 나서서 하고 싶어 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더 높은 경지에 오르길 열망하던 한사혜로서는 반길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전처럼 빠르게 늘지 않은 실력에 조급해진 한사혜는, 점점 신경질적이고 괴팍하다는 평을 드는 성격으로 변해갔다.
만일 잠룡학관에 입관할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다면, 어떤 식으로든 큰 사고를 쳤을 것이 분명했다.
잠룡학관에 들어와 그럭저럭 비슷한 수준의 또래들과 섞이게 되며, 한사혜의 자신의 욕구가 충족될 거라 기대했다.
하지만 한 달이 지난 지금.
한사혜는 만족감 대신 실망감을 안게 되었다.
재능 못지않게 돋보이는 외모를 타고났던 한사혜는 15세가 되며 점점 여인의 태를 갖춰갔고, 활짝 피어나는 꽃 같은 아름다움을 뽐내게 되었다.
남녀에 차별을 두지 않는다지만 생도들의 성비는 아무래도 남자의 수가 압도적으로 많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들 중 눈이 번쩍 뜨이는 미모의 동갑내기를 상대로, 매섭게 대련에 임할 수 있는 생도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유독 자신을 상대할 때만 묘한 시선을 보내며 태도가 미적지근해지는 생도들 때문에, 한사혜는 점점 불만이 쌓여갔다.
그러던 와중, 소종천이 싸우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나도 저리 격렬하게 싸워보고 싶었는데.’
수준이 높다고 하긴 어려우나, 그동안 항상 경험하고 싶어 했던 그런 치열한 싸움.
저 사람이라면 다른 이들과 달리, 자신의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정확히 들어맞았다.
“마음에 들어.”
여태껏 실력을 겨뤄왔던 이들 중에서, 이렇게 서슴없이 얼굴을 가격하는 상대는 처음이었다.
통증보다 마음이 뻥 뚫리는 듯한 유쾌함이 더 컸기에, 한사혜는 오랜만에 환하게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 * *
‘잘못 걸렸다. 미친년이구나!’
소종천은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충격을 흘렸다고 해도 주먹질에 맞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을진대, 어찌 저리 즐겁다는 듯이 웃을 수 있단 말인가?
‘뭐더라. 그 무슨 피학성애인가 하는 그런 건가?’
당혹스러워하는 소종천에게로 한사혜가 재차 달려들었다.
‘망할! 왜 이런 이득도 없는 싸움을!’
욕이 절로 나왔지만, 일단은 머리를 비우고 다시 자세를 잡았다.
한가하게 딴생각을 하면서 여유롭게 대처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까드득.
끼긱!
할퀴어오는 손톱을 수갑으로 막아낼 때마다 심상치 않은 소리가 울렸다.
‘손끝에서 쇳조각이 자라나기라도 하냐!? 손톱으로 할퀴기나 하는 무공이 얼마나 강하겠나 싶었는데, 이거 장난 아니잖아?’
찌익!
옷자락이 또 찢겨 나갔다.
보호대로 방어할 때는 그나마 문제가 없지만, 조금만 반응이 늦어도 무복이 손상되며 몸에 상처가 늘어났다.
손톱에 제대로 걸리게 되면 살점이 푹푹 패여 떨어져 나갈 것이 분명했다.
‘의방에 실려 간 지가 고작 이틀 되었는데!’
이마의 상처는 이제 겨우 아물어 가는 중이고, 몸 여기저기에 생긴 자상도 아직 딱지가 붙어 있는 상태이다.
아직 몸이 다 낫기도 전에 원치도 않은 싸움으로 상처가 늘어가고 있으니, 그야말로 미치고 팔짝 뛸 지경이었다.
달밤에 난리를 치며 공격을 주고받기를 일각째.
“좋아.”
격한 움직임을 이어가느라 얼굴이 상기된 한사혜가 손을 거두고 물러났다.
사파의 심법들은 대체로 빠르게 축기를 할 수 있다는 장점을 가지지만, 정파의 심법으로 쌓는 내공보다는 정순함이 떨어진다는 단점을 안고 있다.
내공의 성질 자체가 기름과도 같아, 거센 불길을 일으키듯 순간적인 폭발력은 뛰어나다.
하지만 그만큼 내기소모의 효율이 떨어지고 회복 속도가 더딘 것이 사파의 심법으로 모은 내공의 특성이다.
길게 이어진 싸움은 아니지만, 한껏 욕구를 불태운 한사혜는, 만족했다는 얼굴로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좋기는 시버럴 거, 하…….’
조금 단정치 못한 차림이 되긴 했으나 전체적으로 멀쩡한 한사혜와 대조적으로, 소종천의 행색은 처참했다.
봉두난발 된 머리.
걸레로나 쓸 수 있게 된 무복.
드러난 피부 위로 군데군데 그어진 혈선들.
광인의 그것과도 비슷한 꼴이다.
치명상이랄 것은 없는 거죽의 상처가 대부분이지만, 꽤나 피해를 입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도도한 성격이라 아무하고도 쉽게 말을 안 섞는 것뿐인 줄 알았는데, 그냥 완전히 정신 나간 여자였어! 얼굴은 멀쩡하게 생겨서는……!’
두 사람 다 격한 움직임을 멈췄기에 주변은 다시 고요가 내려앉았다.
이참에 얻을 것도 없는 싸움은 그만두고 도망을 가야 하는 게 아닐까 고민하던 소종천에게로, 한사혜의 음성이 전해져왔다.
“고마워.”
“……얼씨구?”
사람을 실컷 상하게 만들어놓고 고맙다니?
역시 제정신이 아닌 상대다.
분하고 억울한 마음에 그저 기가 찰 뿐이었다.
옷차림을 정돈한 한사혜는 다시금 평소와 같은 차갑고 무표정한 얼굴로 돌아왔다.
한사혜는 소종천을 보며 재차 입을 열었다.
“다음에 또 해.”
“뭐야?”
펄쩍 뛰는 소종천을 내버려 두고 한사혜는 몸을 돌려 숙소를 향해 걸어갔다.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소종천은 더없이 황당한 감정을 느꼈다.
‘……대체 왜 이러는데!?’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 종료된 것은 다행이나, 마냥 안도할 수도 없었다.
어차피 숙소로 돌아가면 같은 방에서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
‘골 때리네, 진짜.’
왜 갑자기 기습해 온 건지 이유를 알 수가 없으니, 괜히 방으로 복귀했다가 또 공격당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머릿속이 복잡해져 정리조차 되지 않는 상황에 발작적으로 머리를 마구 긁어대며, 소종천은 자신의 방을 바꿔 달라고 건의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맹렬하게 고민했다.
* * *
“치료는 제대로 받고 있소이까? 내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어째 상처가 더 늘어난 것 같소만?”
“제대로 본 거 맞아.”
날이 바뀌고 친선 비무에 대한 정확한 약속을 잡고자 남궁건을 찾은 소종천은, 따끔거리는 상처들을 내려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어젯밤의 사건을 다시 떠올리자니 머리에 열이 오른다.
“후…… 이게 중요한 건 아니고. 전에 이야기했던 비무에 관해 논의하러 왔는데.”
“본인은 당장에라도 괜찮소.”
“그건 내가 조금 곤란하고. 음, 잠시만.”
승패가 중요한 승부는 아니라지만 남궁건이 원하는 것은 그럭저럭 대등한 수준의 싸움일 터.
남궁건이 모용설호보다 약할 것 같진 않으니, 어느 정도 준비를 갖추는 게 옳다.
괜히 허망한 결과로 비무가 끝나기라도 한다면, 호감을 사는 게 아니라 괜히 환멸을 느끼게 만들지도 모른다.
마침 아낌없이 주는 교관 곽진에게 떡밥을 뿌려놔 다시 한번 맞춤형 지도를 받기로 했으니, 적당히 기간을 두고 비무 일정을 잡는 게 좋을 것 같다.
소종천은 일정을 생각하는 척하며 감정경을 이용해 남궁건의 정보를 읽었다.
[이름 : 남궁건] [별호 : 소검룡] [재능] [오성 8.22] [근골 9.88] [감각 8.27] [내공 2.17] [무공] [창궁대연신공 4성] [대연검법 ?성] [천풍신법 ?성] [창궁무애검법 ?성] [제왕검형 3성] [감정 관계] [관심]‘오우야…….’
정보창을 확인한 소종천은 감탄을 터뜨렸다.
교관들이나 가지고 있던 별호가 달려 있다는 게 부럽기도 했고, 그 아래 보이는 재능 수치는 놀라울 정도였다.
‘모용설호나 한사혜, 그리고 곽진 교관님보다도 더 뛰어난데?’
거의 10점에 가까운 근골.
오성과 감각 또한 8점을 넘는 고수치를 기록하고 있다.
유일하게 낮은 내공이야 15세의 나이를 생각하면 당연한 거고, 그마저도 다른 생도들과 비교하면 충분히 우월한 수치였다.
‘대영웅이 어쩌고 하더니 확실히 싹수가 다르네.’
재능도 재능이지만 무공 역시 범상치 않았다.
소종천의 반야신공처럼 무려 신공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심법.
거기에 높은 수준으로 익혔을 것이 분명한 남궁세가의 검법들.
‘제왕검형…… 저거 무협지를 보다 보면 자주 나오던 건데. 남궁세가 최고의 절학 정도로 취급되는 검법이지?’
창궁대연신공과 제왕검형.
둘 다 성취도가 높진 않지만, 상승의 무공일 것이 분명하기에, 3성과 4성이라 하여 가볍게 볼 수 있는 수준은 결코 아닐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에 추가된 감정 관계.
‘이건 뭐 굉장히 단순하네. 관심 상태라. 딱히 호의나 악의도 없는 평범하게 긍정적인 상태라는 거겠지.’
정보를 얻은 소종천은 머리를 굴렸다.
남궁건은 자신과의 대결을 기대하고 있는 것 같은데, 못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면 꽤나 노력해야 할성싶다.
‘재능과 실제 무위가 완전히 비례하는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역시 모용설호보다는 어려운 상대일 거야.’
곽진의 지도를 받는다 해도 닷새 정도의 벼락치기로는 부족할 것 같았다.
“열흘. 열흘 뒤에 보자.”
너무 가깝게 잡자니 준비가 부족할 것 같고, 너무 뒤로 미루면 또 상대가 마음에 들어 하지 않을 터.
생각을 정리한 소종천은 남궁건에게 열흘 뒤에 비무를 치를 것을 제안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임무 발생!]‘어럽쇼?’
남궁건과 연관하여 또 한 번 새로운 임무가 떠올랐다.
뽑기로 무림최강 2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