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29
18. 임무 대기
임무에 관한 안내가 적힌 방문(榜文)을 쭉 살펴본 소종천은, 내용을 머릿속으로 되새기며 생각에 잠겼다.
‘운송 호위라.’
무력 집단의 존속에는 적지 않은 자금이 들어간다.
정사 연맹은 정파와 사파 양쪽의 거대 세력들에게서 적지 않은 지원금을 받고 있지만, 그것만으로 연맹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자금을 전부 충당할 수는 없는 노릇.
그렇기에 연맹에서 자체적으로 벌이는 사업이 몇 가지 있었다.
무인들을 먹이고 입히는데 필요한 물자들을 저렴한 단가로 공급하기 위해 설립된 금화상단.
그리고 그 다량의 물자들을 각지로 안전하게 유통하기 위해 창설된 천호표국.
이번에 황룡단에 내려진 임무는, 간단하게 말해 천호표국에 임시로 투입되어 화물 운송에 동행하라는 내용이었다.
‘거리가…… 가깝다고 해야 할지 멀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 이 동네는 땅덩어리도 워낙 큰데 도로 사정마저 좋지 않으니.’
잠룡학관이 위치한 강서성에서 시작해 안휘성 경계 근처를 돌고 복귀하게 되는 경로.
강서와 안휘는 바로 옆에 맞붙어 있는 지역이긴 하지만, 성의 크기를 생각하면 왕복에만 최소 보름 이상이 소요될 운송 임무다.
‘그런데, 대 단위가 아닌 조 단위 임무네. 하긴 그게 당연한가?’
황룡단 단독 임무도 아니고 표국의 일정에 동행하는 것뿐이니, 수십 명이 우르르 몰려다닐 이유가 없긴 하다.
운송처가 한두 군데도 아니니 표행 한 곳에 전원이 뒤따를 수는 없는 노릇.
두 개에서 세 개 조당 표행 하나에 배정되어, 표국 쪽 담당자의 인솔에 따라 움직이면 된다는 모양이었다.
정말 필요에 의한 임무라기보다는 그냥 경험을 쌓으라는 의미에서 진행하는 일일 터.
‘우리 방이 30호니까…… 보자, 29, 30호가 한 묶음. 생도 8명이서 하는 임무네. 근데 29호에 누가 있었더라?’
바로 옆방이지만 딱히 교류를 가진 적이 없던 터라, 어떤 얼굴들이 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생각해 보니 입관한 지 두 달 가까이 되어가지만, 딱히 친하다고 할 만한 상대도 없긴 하다.
매번 혼자 수련을 하기만 하고, 그나마 제대로 말을 섞으며 어울리는 사람이라고는 같은 방의 장자군 정도.
‘……뭐 상관없겠지. 나는 내 앞가림하기도 바쁜데.’
어깨를 으쓱인 소종천은 출발 일자와 시간을 머릿속에 새기고 돌아섰다.
먼 길을 나선다지만 생도들의 입장에선 여벌의 옷가지 정도 외에는 딱히 준비할 것이 없다.
소종천은 출발 전까지 어제 하던 수련이나 계속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공이 강해진 것은 좋은데 아직 세밀한 조절은 능숙하지 못하다.
반야신공이 1성일 때와는 느낌이 너무 다르니, 몸을 적응시킬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하긴 했다.
‘힘 조절을 못 해서 사고라도 생기면 큰일이니까. 마침 임무가 이틀 뒤라니, 시간은 딱 적당하네. 그쯤이면 충분히 숙달이 되겠지.’
아직은 무인으로서의 경지가 높은 것도 아니기에, 완급 조절을 생각하기보단 전력을 다해 한계를 넓혀 가는 데 집중해도 될 시기이긴 하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자신의 힘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해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소종천은 하루 종일 땀을 빼며 수련에 열중했다.
그렇게 낮의 일과를 끝내고.
‘슬슬 곽진 교관님께 가볼까.’
석식을 마친 소종천은 남궁건과의 비무 이후로 찾아가지 못했던 곽진의 거처로 발걸음을 옮겼다.
일주일만의 방문이다.
“교관님. 저 왔습니다.”
“허어! 이게 누구시던가! 너무 오랜만이라 얼굴도 가물가물하구나.”
“흐흐, 뭘 그렇게까지. 남궁건이랑 어울리다가 부상을 좀 입는 바람에 그동안 찾아뵙지 못했습니다.”
“나도 듣는 귀가 있으니 의룡전에 머물렀단 소식은 들었다. 하나 심각한 중상을 입은 것도 아니면서 그간 한 번을 찾아오지 않을 줄은 몰랐구나.”
“아, 그게…… 죄송합니다.”
“되었다. 살날도 얼마 남지 않은 노인네가 뭐 보고 싶다고 찾겠느냐.”
핀잔을 주는 곽진의 태도에 소종천은 머쓱해져서 머리를 긁적거렸다.
단지 호의만으로 교관으로서의 업무시간 외에 따로 가르침을 주는 분이다.
따지고 보면 이곳에 와서 가장 많이 소통을 나눈 사람인데, 조금 무심하긴 했다는 생각이 든다.
‘정식으로 적을 올린 제자가 아니라 해도 사실상 사부님이나 마찬가진데, 내가 너무 신경을 못 썼네. 잠깐이라도 찾아뵙고 사정을 말했어야 하는 건데.’
무안해하는 소종천을 보며 한차례 혀를 찬 곽진은, 언짢아하던 기색을 지우고 입을 열었다.
“그나마 임무를 나서기 전에 인사라도 하러 왔으니 다행이구나. 그냥 떠났으면 괘씸해서 혼쭐을 내주려고 했다.”
“흐흐…… 정말 죄송합니다.”
“그래, 이틀 뒤에 천호표국으로 간다지?”
“그렇다고 하던데요.”
“임무라고는 하나 표사들이 정상적으로 배치될 터이니, 실제로 생도들이 할 일은 별로 없을 게다. 혹시나 무공을 쓸 기회가 오지 않을까 기대하진 말거라. 백에 한두 번을 제외하면 걷기만 하다 끝나는 것이 정상이니.”
곽진의 말에 소종천은 의외라는 듯이 대답했다.
“어, 그렇습니까? 표행이라 하면 그 무슨 녹림산채도 돌파하고 강도 떼도 마주치고 그러나 싶었는데요.”
“허허! 어디 저잣거리 주막에서 표사들의 무용담이라도 들었더냐? 그런 일이 흔해서야 어찌 표국을 정상적으로 운용할 수 있을꼬. 게다가 황룡단의 임무라면 안전이 확보된 경로에만 투입될 터이니, 생각하는 그런 일들은 벌어질 리가 없느니라.”
“그렇군요. 그럼 그냥 마음 편히 다녀오겠습니다.”
“괜히 촐싹거리다가 사고 치지나 말거라. 그래도 임무는 임무이니 너무 긴장 풀지 않도록 하고. 그리고…….”
곽진의 인내심은 거기서 다했다.
소종천이 찾아왔을 때부터 의문 하나를 떠올리게 되었던 곽진은, 이제 슬슬 말을 꺼내도 되겠다 싶어 주제를 바꾸었다.
“일주일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풍기는 기운이 그리 바뀌었는지 궁금하구나. 설명해 보도록 하거라.”
“음…….”
소종천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이곳을 찾아오기 전에 혹시 곽진이 자신의 변화를 알아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역시나 절정 고수의 눈에 보이는 무언가가 있는 모양이다.
소림오권의 출처를 말할 때처럼 거짓으로 얼버무릴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에, 소종천은 일단 진실에 가깝게 말하기로 했다.
“남궁건과의 비무 이후로 부상 때문에 다른 수련은 하지 못하고 심법에만 매달렸습니다. 그런데 그 와중에 무언가 알 듯 말 듯 하게 마음속을 떠도는 화두(話頭)가 생겨 거기에 매달렸는데…….”
“설마? 그사이에 반야신공의 성취가 높아졌다는 말이더냐?”
“예…… 미혹 하나를 걷어내니 작은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허어, 허허허.”
곽진은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고작 한 달여 만에 신공을 습득해 자신을 놀라게 만든 아이다.
범상치 않은 기재임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다시 한 달도 지나기 전에 심법의 성취를 높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진맥을 해봐도 되겠느냐?”
“네.”
이 상황에서 거절해 봐야 수상하게 여겨지기만 할 터.
내키진 않았으나 소종천은 곽진에게 팔을 내밀었다.
“흐음, 이런…….”
내기를 흘려 보내 소종천의 상태를 정확하게 파악한 곽진은 탄성을 내뱉었다.
이전에도 진맥을 한 적이 있었기에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이건 순수하게 심법의 성취를 높여 내기의 질을 향상시킨 상태가 맞았다.
뭔가 특수한 약을 먹었거나 누군가의 인위적인 개입으로, 체내의 기운을 일시적으로 변질시킨 것은 결코 아니었다.
‘굉장히 순수한 내공이로구나! 이 나이 또래의 아이가 지닐 수 있는 수준이 아니거늘. 볼수록 놀라운 아이로다.’
내기를 많이 쌓는 것은 오랜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내기 자체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은, 단지 시간과 노력만 들인다고 해결되는 일이 아니었다.
심법 자체의 성취도를 높이는 방법이 아니라면, 내공의 질이 개선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문제는 심법이란 것이 무인에겐 평생을 거쳐 해야 하는 공부로, 대성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에 있다.
하류로 취급되는 심법이라면 그나마 빠르게 성취를 올릴 수 있겠지만, 그런 잡공들은 1성이나 10성이나 큰 차이를 볼 수 없는 미미한 효능을 가지고 있다.
일류 이상으로 분류되는 심법쯤은 되어야 제대로 된 공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이름 있는 심법들은 성취를 올리기 위해서 깨달음의 과정이 동반되기에, 인연이 없는 사람은 평생을 가도 높은 성취에 오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나 신공이란 이름을 단 무공치고 어렵지 않은 공부는 없다고 봐도 무방하지. 반야신공은 그중에서도 특히 난해하기로 이름 높은 무공이거늘.’
하늘이 내린 재능이란 게 이런 것인가.
이미 뿌리 깊게 오해가 박힌 탓에, 곽진은 이 말도 안 되는 성장 속도를 받아들였다.
“정말 대단하구나.”
소종천의 손을 놓아준 곽진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을 건넸다.
“내공의 정순함만 놓고 본다면, 네 나잇대에서는 너를 능가할 아이가 없지 않을까 싶다.”
그 말은 사실이었다.
적어도 후기지수로 명성이 알려지기 시작한 이들 사이에서나 이만한 내공을 지닌 이를 찾을 수 있을 터.
만약 동일한 내기만 운용하기로 정하고 내력 싸움을 벌인다면, 후기지수 중에서도 최고로 쳐주는 용(龍)이나 봉(鳳)의 칭호를 받은 이들에게 밀리지 않는 수준이었다.
그리고 그런 별호들은 보통 약관(弱冠)에서 이립(而立) 사이의 무인들에게나 붙여진다.
즉, 소종천이 가진 내공의 질이, 또래의 기재들 사이에서도 10년 정도는 앞서 있다는 의미와 같았다.
“흐흐, 쑥스럽네요.”
저만한 경지를 이룬 고수가 진심으로 감탄하며 칭찬을 해주니, 소종천은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웃음을 흘렸다.
“하나 무인에게 내공이 전부가 아님을 너도 알고 있을 것이다. 자, 권법을 펼쳐 보거라. 어디 그간 녹이 슬진 않았는지 확인해 보자꾸나.”
“넵.”
흐뭇해하던 표정을 지운 곽진이 근엄한 얼굴로 돌아왔다.
칭찬의 시간은 끝났으니 이제 미비한 점이 보이면 크게 호통을 치겠단 태도.
‘오기 전까지 권법을 수련해 놔서 다행이네.’
그나마 소종천을 상대로는 많이 너그럽게 굴긴 하지만, 곽진은 이룬 경지와 적지 않은 나이답게 깐깐한 수업으로 유명한 교관이다.
확 바뀐 분위기에 소종천 역시 진지한 태도로 임하며, 낮 시간 내내 다듬은 소림오권을 펼쳐 보였다.
시간이 흘러 지도를 마칠 때쯤.
“나쁘지 않다. 다만 내공의 변화 때문에 균형이 약간 흐트러져 있으니, 조금 더 내기의 수발과 분배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겠구나.”
“예. 정진하겠습니다.”
곽진이 굳은 표정을 풀고 만족스럽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꾸지람을 들은 것 없이 지도가 끝났기에, 소종천 역시 안도하며 밝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곽진에게 인사를 남기고 소종천은 교관들의 숙소를 빠져나왔다.
일과를 모두 마쳤으니 황룡관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내일 하루 빡세게 연습을 하고 나면 교관님을 만족시킬 만한 수준까지 도달할 수 있으려나?’
뽑기에 크게 의지하고 있긴 하지만, 소종천은 나름대로 무공을 수련해 스스로를 성장시키는 것에 재미가 붙었다.
“음?”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걷던 소종천은 저 멀리서 사람의 형태를 발견했다.
내공이 개선된 뒤로 이전보다 밤눈이 더욱 밝아져, 어둡고 꽤나 떨어진 거리임에도 상대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었다.
‘저년! 그래, 나타날 줄 알았다!’
학관 내에서 가장 대하기 껄끄러운 동거인. 한사혜였다.
소종천은 콧김을 팍 내뿜고는 한사혜가 위치한 곳을 향해 다가갔다.
지난번처럼. 아니, 일주일을 쉬었으니 그보다 더 미친 듯이 달라붙어 제멋대로 날뛸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쪽은 이제 피하고 싶어 할 이유가 사라졌다.
사별삼일(士別三日)이면 괄목상대(刮目相對)라.
선비는 만났다 헤어진 뒤 사흘만 지나도, 눈을 비비고 다시 봐야 할 정도로 성장한 다른 사람이 된다는 의미.
소종천이 학식을 쌓는 선비는 아니지만, 내공의 변화로 인한 무위의 성장은 그런 표현을 인용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아주 혼을 내줘야지.’
마침 오늘은 빡빡하게 지도 대련을 한 것도 아니라서 내공과 체력도 그리 떨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땅을 박차며 빠르게 신형을 움직인 소종천은 당당한 태도로 한사혜의 앞에 섰다.
뽑기로 무림최강 3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