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31
20. 임무 그리고 임무
“아, 아니. 한 소저? 어떻게 된 일이오?”
초영호가 호들갑을 떨며 물어봤지만, 한사혜는 평소처럼 대답도 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무안함에 더 말은 못 걸고 낑낑대는 초영호를 보며 소종천은 혀를 찼다.
‘왜 꼭 쟤한테 말할 때만 말투를 바꾸는 거야? 어른스러워 보이려고?’
웃기는 놈이라고 속으로 생각을 하고 있자니, 이번에는 장자군이 조심스러운 말투로 말한다.
“누구와 대련을 하다 온 거야? 혹시나 무슨 사고라도 당한 건가 싶어서 묻는 거야.”
“……비무”
걱정스럽다는 듯한 표정을 한 장자군에게, 한사혜는 그제야 힐끔 시선을 주면서 대답한다.
“아아, 비무였구려. 난 또 큰일이라도 생긴 줄 알고 깜짝 놀랐잖소.”
“그러게. 꽤나 격렬하게 맞붙은 모양이네.”
두 사람 다 무슨 상상들을 하고 있었는지, 한사혜의 대답에 안색이 다시 평온해진다.
‘비무는 이년아 그게 비무냐? 습격이지.’
소종천만 홀로 어이없어하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렇게 조용히 끝나는가 싶던 대화는, 한사혜의 작은 신음과 함께 묘하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읏…….”
옷차림을 정리하다 통증을 느꼈는지, 한사혜가 가슴께에 손을 얹고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한사혜의 무복에 남은 거뭇거뭇한 발자국을 눈치챈 초영호가 눈을 부릅뜨고 목소리를 높인다.
“아닛! 한 소저, 괜찮으시오? 대체 어떤 파렴치한 작자와 비무를 하였기에 가스…… 큼! 그런 곳에 부상을 입었단 말이오?”
“영호, 목소리 좀 낮춰. 설마 한 소저에게 그런 험한 짓을 할 남자가 있겠어? 여자들끼리 조금 격하게 치고받기라도 한 모양이지.”
“흥! 동성 간이라 해도 그건 법도가 아니지! 혹시 상처를 입고 귀한 몸에 흉이라도 지면 어쩌려고?”
날뛰는 초영호를 보며 소종천은 기가 막혀 했다.
‘쟤 가슴에 흉이 생기는 걸 자기가 왜 걱정해? 하여간 지랄도 참.’
그만 신경을 끄고 운공이나 한번 한 뒤 잠을 자야겠다 생각한 소종천은, 돌연 시선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가 한사혜와 눈이 마주쳤다.
생각을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지긋이 이쪽을 바라보는 한사혜.
딱히 어떤 의미가 있어서는 아니었고, 누구냐는 질문에 반사적으로 소종천에게 눈길이 갔을 뿐이다.
“헛! 그러고 보니……? 설마 네놈!”
한사혜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따라 쫓은 초영호는, 두 사람이 비슷한 시기에 방으로 들어왔다는 것을 떠올렸다.
“네놈이 감히 한 소저의 가…… 에 발길질을 한 거냐!”
추궁해 오는 초영호의 태도에 소종천은 인상을 찌푸렸다.
‘하, 어째 귀찮아질 것 같더라니.’
여성과의 대련에서 지켜야 할 암묵적인 예의야 알고는 있지만, 한사혜와의 일은 정상적인 비무가 아니었다.
막무가내로 걸어온 시비였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이 피해자였던 상황.
그렇기에 잘못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그걸 이 시끄러운 자식에게 납득시킬 수 있을까?’
잠시 생각해 본 소종천은 해명하기를 포기했다.
처음 만난 날부터 자신을 업신여기고 고깝게 보던 초영호다.
어차피 뭐라 말해봐야 제대로 듣지도 않을 게 분명했다.
‘하여간 사람 상대하는 일이 제일 짜증 난다니까.’
소종천은 원래부터 말을 조리 있게 잘하는 유한 성격도 아니었고, 굳이 좋은 감정도 없는 상대와 관계를 완화시킬 생각도 없었다.
그렇기에 구구절절 설명을 늘어놓는 대신 퉁명스레 뻗대었다.
“어디를 뭘 어쨌다고? 말 흐리지 말고 똑바로 말해, 가슴! 이렇게 임마.”
“뭐, 뭣! 이 무뢰배 놈이 뻔뻔하게!”
“싸우다 보면 가슴을 찰 수도 있는 거지. 내가 뭐 손으로 주무른 것도 아니고, 쟤는 신경도 안 쓰는 걸 왜 네가 지랄이야?”
소종천의 태도에 초영호는 크게 당황하며 부들거리다가, 이내 허리에 맨 도를 향해 손을 가져갔다.
“놈! 정정당당한 무인은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얼씨구.”
소종천의 표정이 굳었다.
초영호가 어떻게 생각하던 알 바 아니지만, 말싸움은 몰라도 무기를 뽑아 든다면 곱게 넘어가 생각은 없다.
일촉즉발의 분위기 속에서, 한사혜가 초영호를 쏘아보며 입을 열었다.
“너 시끄러워.”
“한 소저?”
“입 좀 다물어.”
“으윽…….”
한사혜의 말에 초영호의 기세가 주춤했다.
“자자, 그만들 해. 비무를 하다 보면 작은 사고가 생길 수도 있는 거지. 한 소저도 저리 말하잖아.”
그 틈을 타 장자군이 사이에 끼어들어 싸움을 중재했다.
초영호는 이를 악문 채 소종천을 한번 쏘아보고는 자신의 자리에 털썩 몸을 뉘었다.
이날의 사건은 그렇게 끝이 나는 듯했다.
* * *
이틀 뒤.
지시가 내려온 대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황룡단 전체는 단장인 추오명의 인솔에 따라 잠룡학관을 나섰다.
‘정정당당 운운하더니, 저 치졸한 새끼 보게.’
안휘성으로 이동하는 동안, 소종천은 호의적이지 못한 시선과 수군거림에 시달려야 했다.
처음엔 무슨 일인가 싶어 의아했었는데, 초영호가 자신에 대한 험담을 늘어놓고 다닌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종천이 한사혜와 비무를 하면서 추잡하게 희롱했다 하더라 하는 악의적인 소문.
“종천 학우. 영 질 나쁜 소문이 도는 것 같소.”
도대체 얼마나 입을 놀리고 다녔던 건지.
소종천 못지않게 다른 이들과의 교류가 없는 남궁건까지 찾아와, 어찌 된 영문인지 물어보았다.
“터무니없는 소문이오. 비무 상대를 희롱하다니, 그대가 그럴 무인이 아님은 잘 알고 있소.”
“당연히 날조된 말이지. 뭐 싸우다가 가슴을 찬 건 맞긴 한데.”
“으음…… 그건 확실히 군자다운 행동은 아니긴 하나, 학우가 그랬다면 분명 그럴 만한 상황이었을 것이라 생각하오.”
“어, 그래. 고맙네.”
감정 관계가 호감 상태인 덕분인지, 남궁건은 소문에 흔들리지 않고 소종천을 지지해 주었다.
‘초영호 저놈을 어찌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사이가 틀어지는 건 상관없었으나, 이리 졸렬하게 행동하는 것까지 가만둘 수는 없었다.
일단은 황룡단 전체가 이동하는 중에 소란을 피우기도 뭐해서 지켜보고만 있는 중.
하지만 조별로 나뉘어 임무에 투입되었을 때도 계속 아니꼽게 군다면, 다시는 허튼짓을 하지 못하게 박살을 내줘야 하나 싶다.
천호표국 안휘성 지부.
황룡단원들이 일차 목적지인 그곳에 도착하기까지, 총 나흘의 시간이 걸렸다.
단원들이 휴식을 취하며 여독을 푸는 동안.
“오랜만입니다. 추 대협.”
“이번에는 총표두께서 배정되셨군요. 반년만입니까?”
“그쯤 되었을 겁니다. 지난번 행사 때는 표행을 나가 있던 터라 뵙지 못했지요.”
단장인 추오명은 이번 운송 임무의 책임자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나같이 헌앙한 기재들이군요. 연맹의 미래가 밝습니다.”
“아직 갈 길이 먼 녀석들입니다. 사고 없이 복귀할 수 있도록 신경 써주십시오.”
“허허헛! 언제 저희 표국과의 협업에서 사고가 생긴 적이 있습니까? 이미 철저하게 준비해 두었으니 염려치 마십시오.”
“총표두님만 믿겠습니다.”
여기서부터는 표국의 인사들에게 일정을 맡기기로 되어 있기에, 인계를 마친 추오명은 단원들을 모아두고 다시 한번 당부의 말을 전했다.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너희들은 황룡단원이자 천호표국의 하급 표사 신분이 된다. 항시 상급자의 지휘를 따르고 괜한 행동으로 문제를 일으키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인솔을 마친 추오명이 떠나가고 나자, 이번에는 표국의 인물들이 나서서 단원들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자자, 우리 소협들. 방을 배정해두었으니 호명하는 대로 나와서 이동해 주시기 바랍니다.”
안내에 따라 움직인 소종천과 나머지 조원들은 어느 방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는 이미 네 사람의 남녀들이 들어서 있었는데, 아마도 함께 임무에 편성되어 있던 29호실의 인원들인 것으로 짐작되었다.
“여! 안녕?”
그중 한 사람이 소종천을 보고 인사를 해왔다.
200명이 넘는 인원 중에서 두 손 안에 꼽을 수 있는, 통성명을 나눈 몇 안 되는 생도 중 한 사람.
“조영? 너도 옆방이었던가?”
“와! 너무하네. 그렇게까지 관심이 없었던 거야?”
“숙소에서 마주친 적이 없으니 몰랐지.”
아는 얼굴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이렇게 보니 반갑기도 했다.
잠깐 조영과 인사를 나누고 있자니, 문이 열리며 수염이 덥수룩한 중년인 한 사람이 들어섰다.
“음. 반갑네, 소협들. 난 장여훈이라 하네. 자네들과 함께 이번에 떠날 표행의 책임자이지. 편하게 장 표두라 부르시게.”
본인을 장 표두라 밝힌 중년인은 일행들에게 표행의 경로와 일정에 관해 설명을 해주었다.
목적지는 안휘성 지주(池州) 석대현(石台县).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하지만 않는다면, 복귀까지 총 8일로 예정되어 있는 일정이었다.
“그럼 다들 푹 쉬고 내일 보도록 하게나.”
장 표두가 떠나고, 소종천은 구석에 자리 잡고 앉아 일행들의 면면을 쭉 둘러보았다.
껄끄러운 한사혜와 밉살스러운 초영호.
그나마 대하기 편한 장자군과 29호 조의 4인.
이 인원들과 8일 동안 함께 먹고 자며 계속 붙어 다녀야 한다.
‘학관에서 혼자 수련이나 하는 게 속 편했는데. 쩝…… 별일이야 안 생기겠지.’
가기 싫다고 빠질 수 있는 임무가 아니기에 어쩔 수 없긴 하다.
귀찮은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최대한 다른 생도들과 엮이지 않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하며, 소종천은 조용히 휴식을 취했다.
이튿날.
“그럼 출발하도록 하세.”
장 표두를 포함한 표국의 인원이 일곱 명.
표물을 실은 마차 두 대.
생도들을 더해 열다섯 사람의 발걸음이 길을 따라 이어졌다.
곽진에게 들었던 것과 같이, 표행은 지루하게 걷기만 하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끄응. 수련도 못 하고 괜히 시간만 아깝네.’
유람을 나왔다 생각하는 것도 하루 이틀뿐.
나흘째쯤 되니 지겹다 못해 도망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군대 행군이랑 다를 게 없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무작정 걷기만 하고 있으니 원.’
물자 관리, 사주 경계, 숙영 준비.
간간이 이런저런 보고 배울 점들이 생기긴 했지만, 솔직히 대단한 경험이라고 할 것도 아닌 것들이었다.
“매번 이렇게 다니면 지겹지 않으세요?”
지루함을 견디지 못하던 소종천이 옆에서 걷고 있던 표사를 향해 말을 건넸다.
장칠이라는 이름을 가진 30대 후반의 표사로, 며칠간의 표행 동안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나름대로 친분을 쌓은 인물이다.
혹시 장 표두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물었었는데, 성만 같을 뿐 아무런 인척 관계도 아니라더라.
“지겨워도 어쩌겠나. 이게 일인데.”
“……하긴. 괜한 질문이었네요.”
할 말이 없어진 소종천은 늘어지게 하품을 하고 눈을 비비적거렸다.
‘하아. 뭐라도 좀 안 나오려나.’
그렇게 심심풀이라도 되어줄 뭐가 없을까 생각하던 중.
[임무 발생!]‘오?’
정말로 무언가가 튀어나오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소종천이 바랬던 형태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생존] [살아남으십시오.] [보상 : 150금]“……어?”
임무의 내용을 확인한 소종천이 입을 벌렸다.
갑작스럽게 머리 위로 찬물이 끼얹어진 것 같은 기분.
문구의 뜻을 이해한 소종천은 몸이 싸늘하게 식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뽑기로 무림최강 3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