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32
20. 임무 그리고 임무(2)
“휴식 준비!”
장 표두의 음성에 인마의 행렬이 멈춰 선다.
“식사는 어떻게 하시렵니까?”
“건량으로 간단하게 해결하세. 짧게 쉬고 바로 움직여야 마을에서 반주라도 한잔 걸칠 수 있지 않겠나.”
“그럼요. 조금 피곤하더라도 산속에서 야영하는 것보단 낫습죠.”
한곳에 모인 표사들이 시끄럽게 떠들어대는 동안.
소종천은 심각한 표정으로 주변을 살펴보고 있었다.
‘생존이라. 대체 무슨 의미지?’
임무가 갑작스럽게 생성되는 거야 항상 그랬었지만, 이렇게 대상이 불분명한 내용은 처음이었다.
‘살아남으라니. 뭔가 위기가 찾아오기라도 한다는 거야?’
딱히 근방에 위험해 보이는 것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런 임무가 생성되었다는 것은, 필시 그럴 만한 원인이 존재하기 때문일 터.
“장 표사님. 이 근처에 혹시 뭔가 표행에 위협이 될 만한 게 있습니까?”
표사들이 준비해 온 건량을 나누는 동안, 소종천은 그나마 친분이 있는 장칠에게 다가가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다.
“위험할 게 뭐 있겠나? 이 지역에서 겪었던 가장 큰 사고가 아마 벌에 쏘였을 때던가? 붕독이 올라서 하루 종일 뻐근했던 기억이 있구먼.”
“산이니까 혹시 녹림도가 있다거나…….”
“여기에? 하하! 이 친구 농담도 참. 솔직히 이곳을 산이라 부르기는 조금 그렇지 않나?”
언덕치고는 높지만, 산이라기 하기에는 완만하지 않은가 싶은 애매한 지형.
산적 질을 해 먹으려 해도 생각이 있다면 이런 곳에 자리를 잡진 않을 터다.
“그럼…… 혹시 사나운 맹수가 산다거나?”
“흠. 그나마 산짐승은 좀 보긴 했군. 청설모나 토끼 정도? 뭐 맹수라면 맹금류인 올빼미쯤은 있겠군.”
위험한 동물도 없다는 소리.
소종천은 이맛살을 찌푸리며 뒤통수를 긁었다.
‘그럼 대체 무슨 위기가 있기에 생존하라는 임무가 뜬 거지?’
알 수 없는 상황에 신경이 곤두선 소종천은 계속 주변을 살피며 경계했다.
그런 모습을 본 장칠이 소종천 어깨를 툭 건드리며 말을 건넸다.
“우리 소형제는 여태까진 안 그러더니 왜 갑자기 그리 긴장을 하고 그러나?”
“그게…… 감이 좀 좋지 않아서요.”
제대로 설명할 수도 없기에 대강 둘러대자, 장칠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흐하핫! 감이라, 재미있는 친구로구먼. 그래도 확실히 이 바닥에선 감이라는 요소가 무시할 건 아니긴 하지. 나도 감을 믿고 따른 덕분에 목숨을 건진 적이 있긴 하다네. 그게 삼 년 전이었던가…….”
소종천의 말을 진지하게 여기진 않은 장칠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그게 절강으로 표행을 떠났을 때의 일이군. 날씨가 험해 평소보다 더 힘든 여정이었지. 표사들은 다들 지쳐 있었고, 이상할 정도로 짙은 안개가 끼어 있던 상황이었어.”
“저 아저씨 또 시작이군.”
“내버려 둬. 이런 때 아니면 누가 또 저 이야기를 들어주겠어.”
“하긴, 최근 들어온 신참도 세 번째부터는 귀를 막고 도망쳤지.”
주변에 있던 다른 표사들이 못 말린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흔든다.
태도를 보아하니 틈만 나면 지겹도록 꺼내 드는 이야기인 모양이다.
“아주 잔혹하고 악랄한 비적 떼들이었지. 암습을 눈치채지 못했다면 분명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을 상황이었다네.”
“예, 아아, 그렇군요.”
불길하게 느껴지는 임무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해져 있던 소종천은, 장칠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흘리며 건성으로 대답을 해주었다.
주변에 수상한 것이 보이진 않나 살피느라 무슨 말을 하는지 전혀 알아듣지도 못하고 있다.
그래도 반응이나마 해주는 게 기꺼웠는지, 장칠은 신이 나서 계속 자신의 이야기를 떠들어댔다.
한참을 쉬지 않고 움직이던 장칠의 입을 막은 것은 다름 아닌 초영호였다.
“하! 허풍도 정도껏 떠셔야지. 기가 차는군.”
냉소가 섞인 초영호의 음성에, 쉴 새 없이 떠벌리던 장칠이 움찔하며 입을 닫았다.
“영호.”
장자군이 팔을 잡아당기며 눈치를 주었지만, 초영호는 뭐가 문제냐는 듯이 목소리를 높였다.
“달빛도 없는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감에 의지해 혼자 다섯을 베어 넘겼다? 그만한 실력이 있으면 왜 표사를 하고 있나? 연맹의 무사 직에 지원했어야지.”
빈정거리는 말투에 주변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표사들의 표정에 언짢은 기색이 스며든다.
표두 이상의 직책이라면 모를까, 일반 표사들은 대부분 일신의 무위가 그리 높지 않았다.
성인이 되고 나서야 저잣거리에 돌아다니는 삼류 무공을 익혀, 뒤늦게 칼밥을 먹기 시작한 이들이 흔했기에 당연하다면 당연한 현상.
물론 정식으로 거대문파의 무공을 배운 이들 중, 표국에 고용되어 상급 표사에서 곧장 표두까지 오르는 이들이 없는 건 아니다.
잠룡학관 출신 중에서도 표국일에 뛰어드는 이가 적지 않은 편.
하나 일반적인 대다수의 표사들은 이류의 수준에 계속 머물러 있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황룡단의 생도들과 표사들은 적게는 오륙년에서 많게는 이십 년 이상의 나이 차가 있다.
그럼에도 고르고 고른 인재들인 생도들과 일반 표사들의 무위는 거의 엇비슷한 수준.
생도들이 한창 빠르게 성장할 나잇대임을 생각하면, 몇 년 뒤에는 넘을 수 없는 실력 차가 벌어질 것이 분명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초영호처럼, 은근히 표사들을 깔보는 생도가 적잖이 있었다.
“일각 뒤에 출발할 것이니, 가만히들 있지 말고 뭉친 근육이나 좀 풀고들 있게!”
분위기가 나빠지자 표행의 책임자인 장 표두가 나서서 표사들의 주의를 환기시켰다.
잠룡학관과 협업을 하다 보면 초영호 같은 생도가 연례행사처럼 꼭 한 번씩 나타난다.
딱히 새삼스러울 것도 아닌 일이기에, 경험이 많은 장 표두는 괜한 충돌이 생기지 않도록 표사들을 다독이며 돌아다녔다.
잡담을 나누기 위해 모여들어 있던 표사들이, 건량을 질겅이며 하나둘씩 본래의 경계 위치로 돌아갔다.
‘저놈, 저거 싸가지하고는.’
확 뒤바뀐 분위기에 집중이 풀린 소종천은, 초영호를 보며 눈살을 찌푸렸다.
무안한 표정으로 괜히 멀쩡한 옷매무새를 다시 다듬고 있는 장칠에게, 소종천은 신경 쓰지 말라며 위로의 말을 건넸다.
“원래 좀 툭툭거리는 놈이니까 마음에 두지 마세요.”
“커흠, 아닐세. 내가 조금 과장이 심하긴 했네.”
“저는 연맹의 무사들 못지않게 표사도 훌륭한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흐흐, 그것참 고마운 소리군.”
적당히 듣기 좋은 말을 몇 마디 해주자, 위로가 먹혔는지 장칠은 얼굴에 화색을 띄우며 소종천을 향해 웃음을 지었다.
“소 형제. 이것 좀 보게나.”
“예?”
장칠이 혁대에 꽂혀 있는 대나무 통 하나를 뽑아 들었다.
뭔가 싶어 지켜보니, 손가락을 넣어 살살 긁으며 그 안에서 그림 한 장을 꺼낸다.
커다란 눈이 또랑또랑하게 표현된 여아의 그림.
“예쁘지? 내 딸이야.”
“아…… 네. 예쁘네요.”
“소개시켜 줄까?”
“…….”
아무래도 위로가 너무 잘 먹힌 모양이었다.
“오래된 그림입니까? 따님이 어려 보이는데…….”
“자네랑 얼마 차이도 안 난다네. 아장아장 걷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열한 살이지.”
“아니, 열한 살은 좀.”
“음? 뭐가 문제인가?”
“여러모로 위험한데요.”
당황한 소종천이 손을 내두르는데, 갑자기 장칠이 처연한 표정을 지으며 목소리를 내리깔았다.
“처가 몸이 좋지 않았던 터라, 내 일찍이 사별하게 되었다네. 어미 없이 키우느라 나도 힘들긴 했지만, 그보다는 못 해준 게 너무 많아 딸아이에겐 항상 미안할 따름이지.”
“아…… 저런.”
“딸아이는 훌륭한 남자를 만나 좋은 집안에서 고생 없이 살았으면 하고 항상 생각했다네. 자네는 이런 아비의 마음을 알겠는가?”
“저 혹시 오해하실까 봐 말씀드리는 건데, 전 배경이 돼 주는 사문도 없고, 가문도 반쯤 망해 영 별 볼 일 없는 집안입니다만.”
“엇, 그랬는가?”
장칠은 얼른 그림을 말아 대나무 통에 다시 넣었다.
잠룡학관의 생도이다 보니, 소종천이 꽤 잘나가는 문파의 제자나 가문의 후손이라 생각했던 모양.
‘와…… 이 아저씨 보게?’
소종천은 다행이라는 감정과 함께 괜히 섭섭한 기분을 느꼈다.
대나무 통을 제자리에 꽂은 장칠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천연덕스럽게 말을 이었다.
“역시, 내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많이 벌어야겠지. 그나저나 내가 없는 동안 딸아이를 챙겨줄 사람이 필요한데…….”
말꼬리를 흐린 장칠은 갑자기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소종천에게 가까이 다가와 귓속말을 건네었다.
“이건 자네에게만 말하는 비밀인데, 사실 내가 요즘 눈이 맞은 아낙네가 있다네.”
점입가경.
전혀 알고 싶지도 않은 개인사를 들려준다.
무슨 얘기를 꺼내려고 귓속말까지 하나 생각했던 소종천의 표정이 뚱해졌다.
‘어쩌라는 거야?’
이런 소리나 듣고 있을 때가 아닌데.
대화 상대가 되어주었더니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렇지 않아도 이상한 임무 때문에 심란한데, 괜히 말을 붙였는가 싶었다.
“그래도 역시 돌아갈 집에 여자가 있어야 느낌이 포근해지지 않겠나. 다행스럽게도 자식이 있다는 걸 넌지시 말했는데, 별로 부담스러워하는 눈치는 아니더군.”
“아, 예. 그러시군요.”
“이번 일이 끝나고 돌아가면 그녀에게 청혼할 생각이라네.”
“…….”
건성으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소종천의 마음 한구석에서, 뭔가 꺼림칙한 기분이 피어올랐다.
“저, 장 표사님. 그런 이야기는 그만하시죠.”
“조금만 더 들어주게. 사실 내가 아직 예물을 어떤 거로 해야 할지 정하지 못하였는데…….”
“아! 그만하시라니까?”
자식뻘 되는 사람을 붙잡고 무슨 상담을 하는 건가 싶다.
그리고 그보다 더 큰 문제로, 이야기 자체가 이런 상황에서 하기엔 매우 부적절해 보이는 주제였다.
“제가 살던 지역에선 동료들과 먼 길을 떠났을 때, 고향이나 가족, 연인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않는 것이 불문율이었습니다. 그게 다 액운을 몰고 오거든요?”
“응? 내 표사 생활만 십구 년을 하며 온갖 곳을 돌아다녔는데, 그런 해괴망측한 미신은 또 처음 듣는구먼! 대체 어느 지방에 전해지는 이야기인가?”
“거, 아무튼 하지 말라면 하지 마세요!”
“허 참, 알겠네.”
떠들고 싶은 마음이 한가득한지, 장칠은 아쉬운 표정으로 물러났다.
괜스레 피곤해진 소종천이 한숨을 내쉬는 순간.
“정지!”
“신분을 밝히시오!”
행렬의 선두 쪽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앞쪽으로 시선을 옮기자, 커다란 죽립을 눌러 써 얼굴을 가리고 있는 흑의무복의 사람 한 명이 눈에 들어온다.
대놓고 수상해 보이는 차림새.
“뭐야?”
“물이라도 얻어 마시러 온 건가?”
주변의 일행들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한마디씩 던지는 동안.
소종천은 불길한 예감과 함께 심장이 빠르게 뛰는 것을 느꼈다.
그래야만 한다는 기분이 들어, 감정경을 사용해 흑의인의 정보창을 띄웠다.
‘……오, 이런 썅!’
정보를 확인한 소종천의 안색이 굳었다.
[이름 : 주창] [별호 : 없음] [재능] [오성 6.22] [근골 7.36] [감각 5.97] [내공 4.48] [무공] [혈륜심법 ?성] [귀령규환공 ?성] [지옥나찰도 ?성] [흑귀피각 ?성] [감정 관계] [살의]대부분의 수업에 불참하며 개인적인 수련에 매달려온 소종천이지만, 생도라면 필히 참석해야만 하는 수업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마교에 대한 정보를 가르치는 수업.
대상의 무공 목록을 확인한 소종천은 딱딱하게 경직되었다.
‘마인이잖아! 뭐야? 여긴 안전이 확보된 지역이라며!?’
마교의 무공을 익힌 마인.
임무의 발생 원인이 무엇인지 이제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
뽑기로 무림최강 3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