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33
21. 마인
귀령규환공.
마교의 심법을 익힌 마인들이 필수적으로 배우는 무공이라 들었다.
다른 무공들은 몰라도 귀령규환공을 익혔다는 건, 평범한 무인과 마인을 구분하는 결정적인 증거가 된다.
거기에 맨 아래 표시된 감정 관계가 확신을 준다.
일면식도 없는 전혀 모르는 인물이, 자신에게 살의를 품을 이유가 어떤 것이 있겠는가.
‘혼자인가?’
소종천은 반사적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른 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그럼 이길 수 있지 않나?’
상대의 정확한 무위를 알 수는 없으나, 내공 수치를 이쪽 기준으로 환산하면 대략 45년 공력에 달한다.
극소수의 경우를 제외한다면, 무공의 경지와 내공 수치는 대부분 비례해서 올라가는 편이다.
저만한 내공이라면 어림잡아 일류의 경지 중간쯤에 걸쳐 있는 인물.
소종천의 시선이 무리의 책임자인 장여훈에게로 향했다.
표행 동안 대기시간이 돌아오는 대로 다른 무인들의 정보를 구경했었기에, 표사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대강 파악하고 있다.
현재 일행 중 가장 강한 인물은 3.7가량의 내공 수치를 지닌 장 표두.
아마도 일류의 초입을 밟은 경지일 것으로 짐작된다.
‘장 표두가 조금 부족해 보이지만 어쨌든 같은 일류라 치고, 이쪽은 이류급의 표사들이 6명 더 있어.’
거기에 실전 경험은 부족하지만 표사들과 비등한 무위를 가진 생도들이 총 여덟.
개개인의 편차를 감안해도, 단 한 사람에게 밀릴 것 같진 않은 전력이다.
“멈추라 했소!”
“신원을 밝히지 못할까!”
소종천이 머리를 굴리는 동안.
점점 가까워지는 수상한 흑의인의 모습에, 표사들은 조금씩 긴장하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마인! 저 사람 마교의 인물입니다!”
그런 표사들에게 소종천이 경고를 던졌다.
“뭣이!?”
“마교!”
천호표국은 정사 연맹을 배경으로 두고 있는 단체이고, 이곳의 표사들은 정식은 아닐지언정 연맹 소속의 무사라 할 수 있는 이들.
마교라는 말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표사들이 전원 흑의인을 향해 무기를 겨누고 사나운 기세를 피워 올렸다.
정사 연맹과 마교는 대화가 필요 없는 극심한 적대 관계.
일개 생도가 꺼낸 말이라고 해서 가볍게 여길 수가 없다.
마교 혹은 마인이라는 단어가 나온 이상, 진위 여부를 떠나서 최고 상태의 경계를 유지하는 것이 당연하다.
흑의인이 발길이 멈추었다.
죽립이 살짝 올라가며, 창백한 느낌의 피부와 핏발 선 눈이 드러난다.
“눈치가 빠른 애새끼가 있군.”
걸걸한 음성과 함께 흑의인이 허리에 찬 도를 뽑아 들었다.
그 모습을 본 표사들의 기세에 한층 더 날카로운 살기가 더해졌다.
“뭐야? 마인이라고?”
“종천! 뜬금없이 무슨 소리야?”
분위기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생도들이 한곳으로 모여들었다.
불신을 드러낸 얼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
무언가 일이 벌어진다는 것에 기대감을 품은 이들까지.
소종천은 대답을 하지 않고 흑의인에게로 시선을 고정했다.
표사들이 슬금슬금 발을 떼며 상대를 포위하기 위해 움직였다.
“도와줘야 하는 거 아닌가?”
“마인이라니…… 진짜?”
“한 번도 본 적은 없지만, 그냥 평범하게 생겼는데?”
쫑알거리는 생도들의 목소리에 소종천은 미간을 찌푸렸다.
‘이것들은 왜 긴장을 안 하지? 직접 눈으로 마주하고도 저 위험한 기운이 느껴지지 않는 거야?’
흑의인에게서 느껴지고 있던 불길한 기운이 점점 더 강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분명 수적으로 훨씬 우세한 상황인데, 어째 감각의 경고가 사라지질 않는다.
“제압한다!”
외침과 함께 장 표두가 흑의인을 향해 쏘아졌다.
약간의 시간 차이를 두고 다른 표사들 역시 땅을 박차며 달려들었다.
비류팔식연환창.
단창을 꺼내든 장 표두가 자신이 익힌 무공을 펼쳐냈다.
“크큭.”
멀뚱히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흑의인이, 비웃음과 함께 도를 휘둘렀다.
깡!
창과 도가 부딪히며 쇳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끼히이이이잇-
모골이 송연해지는 기괴한 소리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흡!”
“끄으!”
일행들의 안색이 변하며 몸이 부르르 떨린다.
귀령규환공은 마인들이 몸에 쌓은 마기를 귀곡성과 함께 주변으로 퍼뜨리는, 마교 특유의 무공.
평범한 사람이 마기에 노출되면 심령에 공포심이 깃들고 몸이 굳어지게 된다.
마기를 쌓는 심법과 연계하여 사용되는 귀령규환공이, 마인들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쌓아 올린 마기의 양과 귀령규환공의 성취가 높을수록 그 위력은 점점 강해진다.
특히 일류의 경지 이상의 마인이 흘리는 귀곡성에는, 듣는 이의 기혈을 뒤엉키게 만드는 사기적인 효과까지 담기게 된다.
기혈이 엉클어지면 무공을 제대로 펼쳐낼 수 없게 되고, 심한 경우 내기를 통제하지 못해 내상을 입기도 한다.
장 표두를 도우려던 표사들이 귀곡성에 영향을 받아, 안색이 변하며 손발이 어지러워졌다.
무기를 맞대고 있던 장 표두 역시 금방 위태로운 상황에 몰린다.
속이 진탕되어 내기가 가닥가닥 끊기는 상황.
장 표두의 무공은 신속한 연환초식을 강점으로 삼는 창술이다.
하지만 마기의 영향으로 제대로 연계를 이어가지도 못하고, 상대의 도격을 막아내기에만 급급하다.
‘망할! 저것 때문이구나!’
위기감의 정체를 알게 된 소종천이 욕설을 내뱉었다.
마기가 가지는 위력은 무시무시했다.
수적인 우세는 어느 순간 사라지고, 양 떼 사이에 뛰어든 늑대처럼 흑의인이 난폭한 기세로 도를 마구 휘둘러댔다.
소종천이 신음을 흘리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귀곡성의 영향은 여기까지 퍼져, 생도들 역시 정신을 차리지 못하며 바들거리고 있다.
개중에는 내기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하겠는지, 자리에 주저앉아 운공을 시작한 녀석까지 있었다.
‘저 병신은 뭐 하는 거야! 당장 적이 눈앞에 있는데!’
마교에 관한 수업을 통해 귀령규환공의 이야기를 몇 번씩 듣기는 했었다.
하지만 실제로 이렇게 마주하고 보니, 그 위력은 상상했던 것을 아득히 넘어선다.
“크하핫!”
“커윽!”
본신의 무공을 제대로 펼치지 못하게 된 장 표두가,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되어 넘어지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끄흐으으으-
주변을 둘러싼 나머지 표사들이 어떻게든 도움을 주려 했지만, 주변을 맴돌듯 울려 퍼지는 귀곡성에 쭉정이처럼 이리저리 휘둘리고 있다.
아주 짧은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이미 두 명의 표사가 목이 베여 쓰러졌다.
흑의인의 도법은 딱히 대단한 무리가 담겨 있지도 않고, 그저 빠르기만 한 투박한 움직임을 보였다.
하나 귀곡성이 울릴 때마다 하나같이 힘을 쓰지 못하고 비척거리니, 제대로 대항할 수 있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이러다 다 뒤지겠다!’
소종천의 머릿속에 도망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돌발적으로 떠올랐던 임무의 제목과 설명이 이해가 간다.
[생존] [살아남으십시오.]이건 애초에 대적할 수 없다는 것을 상정하고 생성된 임무다.
‘그렇지만 도망갈 수 있긴 한 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일행들을 다 내버리고 혼자 도망간다면, 과연 살 수 있긴 할 것인가.
소종천이 익힌 무공 중에는 성능 좋은 경신술이 아직 없었다.
그냥 무작정 뛰는 것만으로 일류의 경지에 있는 고수를 따돌릴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도망을 선택하려면 임무가 발생했을 때 진즉에 그랬어야 했다.
머릿속이 복잡해진 소종천에게 문득 한 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근데 나는 왜 멀쩡한 것 같지?’
날뛰는 기혈을 통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일행들과 다르게, 소종천의 상태는 평상시와 같았다.
그러고 보니 마인들이 흘리는 마기에 잡아먹히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강의하던 교관이 말하던 것이 떠오른다.
상대보다 명백하게 윗줄의 경지 혹은 지극히 정순하게 갈고 닦은 특별한 내공.
그런 조건이 갖춰지면 귀령규환공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들었다.
소종천은 귀곡성을 듣고 소름이 쫙 돋긴 했지만, 기혈이 진탕되는 것은 전혀 느끼지 못했다.
자신의 경지가 마인보다 부족한 것은 비교할 필요도 없으니, 남은 이유는 명백했다.
‘설마? 반야신공 때문에?’
반야신공.
불가계통 최고의 심법.
4성의 성취로 오르며 한층 더 개선된 정순한 내공이, 자신의 심신을 보호해 주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혹시, 어쩌면.’
살길이 있을지도 모른다.
소종천은 반야신공을 극성으로 운용하며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정신차려어어엇!”
내공이 실린 외침이 크게 울려 퍼진다.
“헛?”
“으윽.”
효과가 있었다!
바로 곁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가만히 서 있기만 하던 생도들이, 잠에서 깬 사람처럼 화들짝 놀라며 정신을 차린다.
푸르죽죽한 안색에 혈색이 돌아온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던 표사들 역시, 호흡이 점차 편해지는 것을 느꼈다.
기혈이 안정되어간 표사들이 뒤늦게나마 다시 기세를 끌어올리며 무기를 휘둘렀다.
휙.
흑의인의 고개가 급격하게 돌아간다.
“이게 무슨? 이놈!”
마인, 주창은 흉악한 살기를 내뿜으며 소종천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꼬마 놈 하나가 고함을 질렀을 뿐인데, 방출한 마기가 밀려나며 귀곡성이 흩어졌다.
무슨 짓을 한 건지는 몰라도 내버려 둬서는 안 되겠다 여긴 주창의 신형이, 생도들이 있는 곳을 향해 쏘아졌다.
‘이런 썅?’
소종천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느낌을 받으며 주춤거렸다.
뭔가 전황에 도움이 된 거 같긴 한데, 적의 이목을 끌어버렸다.
한달음에 달려온 주창의 도가, 소종천의 머리를 쪼갤 듯이 벼락처럼 휘둘러졌다.
‘아.’
감각이 극한으로 활성화된다.
느려지는 시간.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대의 도는 너무 빨랐다.
어떻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했다.
오형 중 호권의 형.
아호심양(餓虎尋羊).
굶주린 호랑이가 양을 덮치는 형세.
맹수가 사냥감을 습격할 때 전력을 다하는 것처럼, 운용할 수 있는 최대한의 내공을 쏟은 강맹한 일격이었다.
다만 목표는 상대가 아닌 휘둘러진 도.
양손의 수갑이 비스듬하게 교차하며 칼날을 막아선다.
공격을 공격으로 맞받아내려는 수.
카앙!
“끅!”
충돌과 함께 강렬한 통증이 전신으로 퍼진다.
온몸의 뼈가 으스러지는 듯한 느낌.
발을 딛고 있던 땅바닥이 두 치가량 푹 파이며, 소종천의 신형이 주르륵 밀려났다.
두 배가 넘는 내력 차이를 지닌 상대이니, 단순해 보이는 공격임에도 막아내기가 버겁다.
반야신공으로 개선된 내공이 아니었다면 아예 한번을 버티지도 못했을 터.
과도한 충격에 경련이 일어나는 양팔을 억지로 움직인다.
소종천은 자세를 유지한 채 후속타에 대비하며 주창을 쏘아보았다.
어째서인지 상대는 바로 재차 공격해 오지 않았다.
소종천은 알지 못했지만, 주창은 굉장히 당혹스러워하는 중이었다
분명 압도적인 내력 차이로 찍어 눌렀거늘.
기묘한 반탄력으로 손에 전해진 상대의 내기가, 마기의 순환을 살짝살짝 방해한다.
크게 문제가 될 정도까진 아니나, 보이지 않는 작은 가시가 박힌 것처럼 굉장히 거슬리는 느낌.
처음 겪는 경험에 주창은 굉장히 불쾌해졌다.
“크아악!”
주창이 소리를 내지르며 자신의 도에 마기로 물든 내력을 잔뜩 주입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묘한 기운을 품은 어린놈을, 한시라도 빨리 제거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강하게 지배했다.
기이잉.
도신이 떨리는 소리와 함께 거무스름한 기운이 날 끝에 희미하게 서린다.
일 갑자 이상의 내공이 있어야만 제대로 구현할 수 있다는, 어기충검을 넘어선 검기상인의 경지.
주창이 선보인 것은 온전한 형태의 검기는 아니었지만, 무식하게 쏟아 넣은 내력이 순간적으로 그와 비슷한 현상을 일으켰다.
흑색 빛이 일렁이는 도가 소종천의 목을 노리고 휘둘러졌다.
‘큰일이다. 이건 못 막아!’
앞서보다 더욱 위력적인 공격.
피하기 어려운 위기를 느낀 소종천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린다.
급하게 뒤로 던지듯이 몸을 날려보지만, 도가 움직이는 속도가 훨씬 더 빨랐다.
‘안 돼! 베인다!’
라고 생각하는 순간.
소종천의 옆에서 번뜩이는 칼날이 쏘아져 나왔다.
한 자루의 검이 주창의 도를 막아선다.
장자군이었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잘 몰라도, 일단 마인에게 공격당하는 소종천을 도와야 한다는 생각에 달려든 것.
검과 도가 서로 맞부딪혔다.
까그극. 째앵!
“으윽!”
아주 잠깐 버티는가 싶었던 검이 산산조각이 나며, 장자군의 몸이 뒤로 튕겨 나갔다.
잠시도 버티지 못한 수준이지만, 그래도 덕분에 공격의 속도가 조금 줄어들었다.
소종천은 아슬아슬하게 턱밑을 스치는 정도로 주창의 도를 피할 수 있었다.
“버러지 같은 것들이!”
노호와 함께 주창이 다시 한번 공격을 가하려는 찰나.
쉬이이익!
파공음과 함께, 등 뒤로 무엇인가가 날아든다.
주창이 몸을 돌리며 도를 휘둘렀다.
깡!
창 한 자루가 빙그르 돌며 튕겨 나갔다.
부상을 입고 쓰러져 있던 장 표두가, 남은 기력을 쥐어짜서 창을 던진 것.
같은 일류급의 무사가 내력을 담아 가한 일격이었기에, 주창도 여유롭게 받아낼 수는 없었는지 자세가 무너지며 신형이 흔들린다.
바닥을 구르며 일어난 소종천의 눈이 주변을 살폈다.
부러진 검을 쥐고 비틀거리며 물러나는 장자군.
어쩔 줄 몰라 하며 창백하게 질려 있는 조영.
난폭한 기운을 풍기며 이를 드러내고 있는 한사혜.
그리고.
“이야압!”
“죽여엇!”
눈치를 보고 있던 주변의 나머지 생도들이, 휘청거리는 주창의 등 뒤를 노리고 달려드는 모습이 보였다.
몸을 일으키던 소종천이 반사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바보 같은 짓을!’
생도들은 기회라고 여겼는지도 모르겠으나, 소종천이 보기엔 전혀 현명한 판단이 아니었다.
뽑기로 무림최강 3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