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34
21. 마인(2)
조영을 제외한 29호 조의 생도 셋이 선두에, 그리고 그들보다 조금 떨어진 뒤에서 초영호가 움직였다.
하나같이 얼굴이 일그러지고 눈동자가 떨리고 있는 모습.
신중하게 기회를 노리고 있다가 가한 공격이 아닌, 단지 두려움에 잡혀 있다가 빈틈을 보고 발작적으로 달려든 것에 불과했다.
‘성공할 리 없어.’
지켜보던 소종천의 입이 살짝 벌어졌다가 닫혔다.
차라리 이쪽을 돕기 위해 달려오는 다른 표사들과 협공을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두라고 말하기에는 너무 늦은 상황.
생도들이 각자의 무기를 휘둘렀다.
콰직.
‘……어? 못 피한다고?’
예상외의 결과에 소종천이 눈이 크게 떠졌다.
흑의를 뚫고 주창의 몸에 칼날들이 박혔다.
아무리 자세가 무너졌다 해도 당해줄 리 없다고 생각했는데, 이상하게도 상대는 아무런 반응 없이 등 뒤의 공격을 허용했다.
처음으로 성공시킨 공격을 보며, 굳은 얼굴로 이쪽을 향해 뛰어오던 표사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해치웠나!”
장칠의 외침이 들려옴과 동시에.
주창이 몸을 돌리며 섬전 같은 도격을 휘둘렀다.
“헉!”
“꺄악!”
양옆에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소종천의 시선이 허공으로 향했다.
펄떡거리는 팔목 하나.
잘려 나간 세 개의 머리.
자신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른다는 듯한 표정들이, 소종천의 망막에 새겨졌다.
생명을 잃은 몸뚱이들에서 피가 솟구치며 사방으로 뿌려진다.
“끄아아악!”
절단된 왼팔을 붙잡고 주저앉는 초영호의 모습이 보였다.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지 않았다면, 그 역시 세 명의 생도들처럼 목을 잃었을 것이었다.
소종천의 시선이 주창에게로 향했다.
넓은 범위에 도격을 휘두르느라 허리를 뒤틀고 있는 모습.
펄럭거리는 흑의무복의 찢긴 구멍 사이로, 미미한 출혈이 일어나고 있는 얕은 상처들이 눈에 들어왔다.
공격이 먹혔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거죽만 조금 베인 작은 상처들.
소종천은 정보창으로 확인했던 무공의 목록을 떠올렸다.
이름만 봐도 알 수 있는 심법과 도법과 달리, 정확히 어떤 종류인지 파악하지 못했던 마지막 무공.
‘……흑귀피각.’
경황이 없어 깊게 생각하지 못하고 넘겼었는데, 아무래도 그것이 외공의 일종이었던 모양이다.
피하지 못한 게 아니라 일부러 피하지 않은 것이었다.
소종천의 표정에 암운이 드리웠다.
‘미친…… 이러면 가망이 없잖아!’
일류의 경지에 이른 마인, 거기에 높은 성취의 외공 수련자.
어기충검을 이루지 못한 생도들과 일반 표사들로는 치명상을 입히기가 매우 어렵다.
그나마 유일하게 대적의 가능성이 있던 장 표두는 거의 무력화된 상태.
‘싸운다는 선택지는 애초부터 없던 거였나?’
망연자실해 하고 있는 소종천에게 주창이 살기를 흘리며 다가온다.
‘이런 썅! 갑자기 난이도가 이렇게 올라가는 게 어디 있어!’
처음으로 학관 밖을 나섰는데 곧바로 죽음의 위기를 맞이하다니.
이제 와서 도망칠 수도 없었다.
제각각 다른 방향으로 도주한다면 누구 하나는 살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어째 자신은 마인에게 제대로 찍힌 듯하니 해당 사항이 없다.
분명 다른 이들보다 먼저 쫓기게 될 터.
‘차라리 나대지 말고 혼자라도 도망쳐볼 걸 그랬나.’
허탈한 얼굴로 그런 생각이나 하고 있을 때였다.
그르르르.
짐승의 목울음 같은 소리를 내며, 한사혜가 소종천의 앞을 반쯤 막아섰다.
난폭한 기세가 사방으로 흩뿌려진다.
이전에도 본 적이 있었던 모습.
혈사심법을 최고조로 운용하며, 광인이 된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맹렬하게 달려들었던 그 상태였다.
‘……그래 봐야 소용없는 짓이야.’
헛짓하지 말고 그냥 도망치라고 말하려는데, 반대편에서 또 다른 인기척이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일격에 깨어져 나가 반 토막도 남지 않은 검을 내밀며, 부들거리는 몸으로 자세를 잡고 있는 장자군이 보였다.
소종천은 헛웃음이 나오려는 것을 참았다.
가망이 없다는 것을 보고도 모르는 걸까?
아니면 어차피 죽게 될 거 마지막으로 발버둥이라도 쳐보자는 생각인 건가.
“이 개노무쉐이익!”
“제길! 흐아아압!”
생도들의 죽음에 잠시 주춤했던 표사들이 주창을 향해 다시 달려들었다.
답이 없다는 것을 느꼈는지 하나같이 심각한 표정이지만, 그래도 전의를 잃고 손을 놔버리진 않는 모습.
“이길 수 있다! 다들, 살아서 돌아가자!”
남은 이들 중 최선임인 장칠이, 표사들을 지휘한다.
“크흐흐! 재촉하지 않아도 어차피 전부 죽을 것이다!”
주창의 도가 춤을 추었다.
가슴이 쩍 갈라진 표사 한 명이 허우적거리다가 쓰러진다.
목을 베인 표사 한 명은, 출혈 부위를 붙잡은 채 고꾸라지며 바닥에 머리를 처박는다.
키르륵!
벌레라도 때려잡듯 덤덤하게 살육을 벌이고 있는 적을 향해, 한사혜가 달려들었다.
붉은 안광을 쏘아내며 손을 내뻗는 기세가 사뭇 예리했으나, 그 역시도 여지없이 주창의 도에 막히고 만다.
콰드득.
“흐읏!”
혈사조라는 특수한 무공으로 단련되어, 내력을 담으면 쇳덩이와 다름없을 정도로 단단해지는 한사혜의 손.
범상치 않은 내구력 덕분에 칼날과 부딪혔음에도 손이 잘려 나가지는 않았으나, 부상을 피할 수는 없었는지 깊은 상처가 생기며 피가 튀었다.
비명을 참으며 몸을 빼는 한사혜를 노리고 주창의 도가 재차 움직였다.
빠른 속도로 수차례 휘둘러지는 도.
한사혜가 어떻게든 피하고자 몸을 움직였지만, 순식간에 몸 곳곳으로 혈선이 그어지며 무복이 피로 물들었다.
즉사는 면했으나 너무나도 위태위태한 상황.
“에이잇!”
두 사람의 사이로 소종천이 뛰어들었다.
희망이 없는 상황에 싸울 의지가 꺾이긴 했으나, 다른 이들이 이리 포기하지 않고 있으니 가만히 지켜만 볼 수가 없었다.
쾅!
“큽!”
강렬한 충격에 정신이 아찔해진다.
끼기기긱.
도격을 막아내기 위해 밀어 넣은 수갑에서 불안한 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보호대의 금속부가 부서지며, 금속을 감싸고 있던 가죽 부위까지 찢겨 나갔다.
오른팔의 수갑이 완전히 망가지며 바닥으로 떨어져 내린다.
그나마 공격을 막긴 막아냈으나, 더 이상 보호받지 못하는 팔뚝으로 칼날이 밀려들어 왔다.
“으윽…….”
“이얍!”
소종천의 왼편에서 튀어나온 장자군이 검을 내질렀다.
잠깐 사이에 죽은 생도의 검으로 바꿔 들었는지, 멀쩡한 칼날이 주창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하지만 박히는가 싶던 칼날은 역시나 검 끝만 조금 들어가다 말고 덜컥 멈춘다.
쓰러져 있는 장 표두를 제외하고, 이제는 둘만 남은 표사들이 합세하여 주창을 공격했다.
물론 이 역시도 부질없는 행동이었다.
다들 나름대로 혼신의 힘을 다한 공격이었으나, 얕은 생채기만 남길 뿐이었다.
주창은 다른 것보다 소종천의 목숨을 먼저 끊고야 말겠다는 듯이, 주변의 공격에 아랑곳하지 않고 팔뚝에 박아 넣은 도에 힘을 주며 밀어붙였다.
그그극.
‘까윽!’
예리한 금속이 뼈를 긁는 소름 끼치는 통증에, 소종천은 이를 악물었다.
반대편 손으로 칼날을 붙잡고 밀어내려 해봤지만, 꿈쩍도 하지 않는다.
이대로 조금만 지나도 팔이 잘릴 위기였으나, 더는 어떻게 다른 행동을 할 여력이 없었다.
핏기가 빠진 얼굴로 그저 버티고만 있자니, 한사혜가 옆으로 돌아 주창에게 뛰어드는 모습이 보였다.
그렇게 부상을 입고도 아직까지 투지를 잃지 않은 한사혜가, 주창의 등에 매달리며 양팔을 목에 둘러 당긴다.
일반적인 공격이 통하질 않으니, 숨통을 조여 보기라도 하려는 것.
“귀찮게 하지 마라!”
물론 가만히 당해줄 리 없는 주창은 비어 있는 손을 뒤로 돌리며, 역으로 똑같이 한사혜의 목을 붙잡았다.
숨이 막힌 한사혜의 얼굴이 금세 붉게 달아오르며 입이 벌어졌다.
“꺼…… 흐…….”
하지만 그럼에도 절대로 놓지 않겠다는 듯이, 목에 두른 팔에 더욱 힘을 주며 잡아당긴다.
“큭! 이년!”
귀찮아하는 표정을 지은 주창이 내력을 끌어올리며 손아귀에 힘을 더했다.
아예 이대로 목을 꺾어버리려는 심산.
하지만 그 행동이, 뼈아픈 실책이 되어 돌아왔다.
“크아아압!”
내력을 분산시킨 탓에 팔을 찍어 누르던 힘이 순간적으로 줄어들자, 소종천은 악을 지르며 도를 밀쳐내고 땅을 박찼다.
심한 부상으로 덜렁거리는 오른팔은 쓸 수 없다.
왼팔 역시 도를 붙잡느라 손바닥이 깊게 베이고 찢어진 탓에, 제대로 주먹을 쥐기가 어려웠다.
그렇지만 뭐라도 하긴 해야 했다.
소종천은 있는 힘껏 내력을 운용했다.
뭘 어떻게 고민할 여유도 없었기에, 그냥 달려들던 자세 그대로 주창의 복부를 머리로 들이받았다.
지켜보기 안쓰러운 공격이었고, 별다른 타격이 없어야 정상이었다.
“컥!”
그런데 우습게도, 그 형편없는 공격이 효과가 있었다.
반야신공으로 끌어올린 내력의 일부가, 들이받은 주창의 복부 안으로 스며들어 단전으로 흘러갔다.
주창의 움직임이 일순간 멈췄다.
작은 촛불 하나가 방 안의 어둠을 몰아내는 것처럼, 소종천의 내력이 단전에 뭉쳐 있던 마기를 일순간 흐트러뜨렸다.
“뭣!? 어떻게!”
순간적으로 자신의 통제를 벗어나는 내력에 당황한 주창.
그런 그의 옆구리로, 날카로운 창날이 파고들었다.
“크억!”
“이…… 악적 놈…….”
장 표두였다.
행들이 분전하며 시간을 벌어준 동안, 어떻게든 창 한 번쯤 찌를 수 있도록 몸을 추스르고 합류한 것이었다.
정상적인 상태의 주창이었다면 당하지 않았을 공격이었으나, 순간적으로 마기가 흐트러진 탓에 미처 막아내지 못했다.
“끄흐…… 크아아아!”
금속이 내부를 헤집는 통증에 악귀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린 주창이, 소종천을 노려보며 소리를 내질렀다.
질 리가 없는 싸움이었다.
마기에 심령을 제압당한 약자들을 도살하는 것은, 원래대로라면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는 일이거늘.
한데, 저 어린놈 하나 때문에 일이 틀어졌다.
“이…… 놈…….”
도를 쥔 손을 부르르 떨던 주창이 앞으로 고꾸라졌다.
옆구리를 꿰뚫은 장 표두의 창격은, 목숨을 앗아갈 치명상이 되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주창이 쓰러지자 소종천에게 알림이 떠올랐다.
[임무 : 생존을 완료했습니다.] [150금 획득.]“하…….”
소종천은 바닥으로 털썩 주저앉았다.
‘살았구나.’
말도 안 되는 임무였으나 어떻게 해결이 되긴 하였다.
살아남기 위해 달아나는 것이 아니라, 위험 요소 자체를 제거하는 식으로.
‘이렇게 깨라고 나온 임무는 아닌 것 같은데. 어쩌면 발생하자마자 도망가는 게 답이었을 지도.’
전멸했어도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었다.
‘마인과 맞닿았을 때의 반응도 그렇고, 반야신공의 내공은 마기와 상극인 것이 분명해.’
마기를 몰아내는 반야신공의 공능이 아니었다면, 분명 아무도 살아남지 못했을 터.
다른 무공들과 달리 유일하게 자신의 선택으로 익히게 된 반야신공.
만약 반야신공이 아닌 다른 결정을 내렸더라면, 과연 지금 살아 있을 수 있었을까 싶다.
‘내가 잘했다기보단 운이 기똥차게 따라준 거지만. 하하…… 윽!’
긴장이 풀리고 나니 팔의 통증이 크게 느껴져, 비명이 나오려는 것을 간신히 참았다.
소종천은 일행들의 상태를 살펴보았다.
다들 지치고 꼴이 말이 아니라, 아무도 입을 열지 않고 있다.
“으…….”
“후욱, 후우.”
그나마 경험과 연륜은 자산이라는 말이 맞는지, 살아남은 표사들이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 비틀거리며 발걸음을 옮겼다.
상처를 지혈한 소종천은 그대로 바닥에 드러누웠다.
‘으, 어지럽네.’
긴장의 끈을 놓자 금방 잠이 쏟아질 것 같다.
부상도 부상이지만 심력의 소모가 너무 컸다.
‘임무도 끝났는데 설마 또 다른…… 아, 아니. 생각하지 말자.’
말이 씨가 될지도 모른다.
괜히 다른 문제가 또 발생할까 걱정하면 그대로 일어날까 싶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들을 떨쳐내었다.
소종천은 뽑기창을 띄웠다.
생각의 분위기를 전환하는 데에는 역시 뽑기가 제일이다.
임무의 보상으로 금이 들어왔기에, 지급 보물 하나를 구매했다.
원판이 돌아간다.
‘그나저나 150금은 너무 짠 보상 아니냐? 이번 임무가 차등 보상제였다면 훨씬 더 많이 받았을 것 같은데.’
목숨을 내던질 뻔한 상황이었음을 생각하면 너무 부족하다고 속으로 투덜거렸다.
그런 내심을 이해해 주기라도 한 것일까?
뽑기의 결과는 소종천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칸에 걸려 있는 방향표를 확인하고, 소종천은 미소를 지으며 덮쳐오는 수마를 받아들였다.
뽑기로 무림최강 3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