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36
23. 새 무공, 새 임무
‘수갑을 새로 구하고 싶은데. 그런 거 또 안 나와주려나.’
소종천은 팔에 착용한 보급형 수갑을 만지작거리며 입맛을 다셨다.
동색 무구로 뽑았던 상등품 수갑은 마인과의 전투에서 한쪽이 완전히 망가져 버렸다.
덕분에 지금은 수련장에 비치된 보급형 수갑을 착용한 상태.
품질 좋은 무구를 계속 끼고 다니다가 이런 중등품을 다시 쓰려니 영 느낌이 어색하다.
명장은 도구 탓을 하지 않는다지만, 질 나쁜 무기가 탐탁지 않은 것은 어쩔 수 없다.
“야.”
“응.”
불만을 담아 수갑을 쳐다보던 소종천은 이내 아쉬움을 떨치고, 한사혜에게 말을 건넸다.
“내가 조금 특이한 무공을 사용할 수도 있거든? 근데 이걸 다른 사람들에게는 알리고 싶지 않아.”
사람을 상대로 연습을 해보려면 결국엔 알려질 수밖에 없긴 하다.
그래도 새로운 무공을 또 익혔다는 사실을, 일단은 소문이 퍼지는 것은 최대한 막아보고 싶었다.
그간 봐온 한사혜의 사교적이지 않은 성정을 생각하면, 여기저기 막 떠벌리고 다닐 것 같진 않다.
그녀를 연습 상대로 정한 이유에는 비밀을 지켜주지 않을까 생각한 면도 있었다.
“함구해 줄 수 있겠어?”
소종천의 부탁에 한사혜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대답했다.
“마공?”
“아니, 미쳤냐!? 확실한 정파 계열의 무공이야!”
생각을 해도 하필 마공이라니.
그렇지 않아도 분위기가 어수선해진 상황인데, 잘도 그런 말을 입에 담는다.
단둘이서만 대련하기 위해 일부러 인적이 없는 곳으로 오긴 했지만, 소종천은 깜짝 놀라서 자신도 모르게 다시 주변을 확인했다.
마공을 익혔니 마니 하는 대화를 누가 듣기라도 하면, 오해가 밝혀지기 전까지 험한 꼴을 보게 될 수도 있다.
다행히 주위에는 참새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그럼 상관없어. 말 안 할게.”
“후, 진짜…… 그래, 아무튼 고맙다.”
하여간 사람을 곤란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는 녀석이라 생각하며, 소종천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너나 나나 부상에서 막 회복된 상태니까 살살 하자. 정말 가볍게 몸만 풀자고.”
“응.”
허공으로 주먹을 천천히 뻗으며 내뱉은 소종천의 말에, 한사혜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자세를 취한다.
그리고.
스으으으.
뜨거운 숨결을 길게 내쉬자 주변 공기가 마구 떨린다.
한사혜의 눈동자에 혈기가 맺히며 사나운 기세가 사방으로 흩뿌려졌다.
“……어이.”
분명 가볍게 하자고 했거늘.
시작부터 전력을 다해 부딪혀 오려는 속셈이 훤히 보였다.
한사혜가 땅을 박찼다.
난폭하게 할퀴어오는 손의 잔상들이 허공을 수놓는다.
“에라이.”
소종천의 신형이 재빠르게 움직이며 공격들을 피해냈다.
이미 한번 제압한 적이 있는 상대이기에, 공격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이 어렵진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마냥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한번 패배했다 하지만 한사혜 역시 잠룡학관에서 손꼽히는 무재를 가진 인물.
소종천이 혈사조의 투로에 익숙해졌듯, 한사혜도 소림오권의 초식들을 파악하며 자신의 기술을 다듬어왔다.
‘초식의 연계가 지난번보다 더 정교해졌는데?’
조금만 실수해도 몸의 살점이 다 떨어져 나갈 것처럼 매서운 변화를 일으키며, 한사혜의 손톱이 소종천의 주변을 휩쓸고 지나간다.
소종천은 막기보다는 최대한 회피하는 식으로 한사혜를 상대해갔다.
보급형 수갑의 질이 그다지 좋지 않아, 쉴 새 없이 몰아붙이는 공격들을 전부 쳐내다간 금방 망가지게 될 것 같았기 때문.
직접적으로 몸을 맞부딪히는 비중을 줄이니, 그만큼 반격의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다면 다른 방식으로 기회를 만들어 봐야겠지.’
대련을 시작한 이유.
새로운 무공을 시험해 보기 딱 좋은 상황이다.
아슬아슬하게 공격과 회피를 적당히 반복하던 소종천이, 내공을 잔뜩 끌어모았다.
단전의 기단이 맹렬하게 돌아가며 전신 곳곳으로 내기를 실어 보낸다.
“흐읍!”
크게 숨을 들이쉰 소종천의 신형이 흐릿하게 흔들리는가 싶더니, 일순 반으로 쫙 갈라졌다.
혈기를 머금고 있던 한사혜의 눈이 크게 떠지며 놀람의 감정이 드러났다.
소림의 여러 무공 중에서 최상승의 절기들만을 분류한 칠십이종절예.
그 안에서도 상위에 이름을 올려두고 있는 극상승의 신법.
둘로 나뉜 소종천의 모습은 계속해서 분열하며 늘어났다.
어느덧 각기 다른 자세를 취한 아홉 명의 신형이 나타나며, 한사혜를 둥글게 포위한다.
연대구품(蓮臺九品).
소림의 전설적인 무공 중 하나가 소종천의 몸을 통해 펼쳐졌다.
‘윽. 내공 소모가 어마어마하잖아?’
연대구품은 성취도에 따라 최대 아홉 개까지 실체를 갖춘 신형을 만들어내는 신법.
쉽게 말해 분신술의 일종이다.
보통 분신술이라 하면 환영을 만들어내 눈속임 용도로 쓰는 환술을 말한다.
시각과 청각에 크게 의존하는 일류 아래의 무인들에게는 잘 먹히지만, 내기의 흐름을 기감으로 파악할 수 있는 고수들에겐 하등 쓸모없는 잡술.
하지만 연대구품은 그런 실체가 없는 환술과 다르다.
신형 하나하나에 내력을 담아, 기감으로도 구별할 수 없는 실체를 만들어내는 사기적인 무공이다.
단점이라면 내공 소모가 극심하다는 정도.
‘이래서는 최대치는 유지하지도 못하겠네.’
소종천은 금색 등급의 무공에서 연대구품의 비급을 받았고, 무려 5성이라는 성취도로 익힐 수 있었다.
신형을 9개로 나누는 것 자체는 1성부터도 가능하지만, 내력을 불어넣어 실체화시키는 단계는 최소 2성부터 할 수 있다.
5성의 성취도는 본신을 포함한 5개의 실체를 형성할 수 있는 경지.
하지만 지금 상태로는 5개는커녕 2개의 실체를 오래 유지하기도 쉽지 않았다.
9개의 신형 중 본신을 제외한 하나의 실체만을 추가로 구현했는데도, 내력이 미친 듯이 빨려 나간다.
소종천은 분신들과 함께 한사혜를 향해 돌진했다.
이 중 7개는 실체화시키지 못한 환영일 뿐이지만, 한사혜는 아직 환영과 실체를 기감으로 구별할 수 있는 경지는 아닌 무인.
그렇기에.
크르륵!
한사혜는 그저 전력을 다해서 보이는 모든 것들을 찢어발기겠다는 선택을 했다.
사방에서 덮쳐오는 공격에 대응하여, 한사혜의 안광이 짙어지며 살 떨리는 기세가 방출되었다.
9명으로 변한 소종천은 한사혜의 투지를 9배로 증폭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미 가볍게 하자던 말은 무의미하게 사라진 지 오래.
반쯤 이성을 놓아버린 한사혜가 사방으로 손을 휘두르며, 칼날의 비가 휘몰아치는 듯한 작은 폭풍을 만들어냈다.
“야, 이!”
무리하게 파고들 생각이 없던 소종천은 기겁하며 뒤로 몸을 뺐다.
분신의 신형들이 갈기갈기 찢겨 나간다.
실체화시켰던 하나만 한사혜의 복부에 얕은 일격을 가한 채, 얼굴이 여섯 토막으로 갈라지며 사라졌다.
짧게 몰아쳤던 폭풍이 거두어졌다.
순간적으로 과도하게 내력을 소모해 머리가 어지러워진 한사혜가, 비틀거리며 몇 차례 더 허공에 손을 흔들었다.
그러고는 이내 바닥으로 픽 쓰러진다.
기혈에 충격이 갈 정도로 무리한 끝에 혼절해 버린 것이다.
“나 참…… 환장하겠네.”
슬금슬금 다가간 소종천은 발끝으로 한사혜의 머리를 툭툭 건드려 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멍청했지. 좀 더 정상적인 녀석을 연습 상대로 골랐어야 했는데.’
실체화를 하나만 한 덕분에 아직 두어 번쯤 더 연습해 볼 내력이 남아 있었으나, 상대가 이렇게 되었으니 어쩔 수 없었다.
불만스럽게 구시렁거리던 소종천은, 한사혜를 주워들었다.
부상을 입은 것은 아니니 숙소에 데려다 놓을까 했으나, 혹시나 마주치는 이들에게 괜한 오해를 살까 싶어 그냥 의룡전에 던져두고 나왔다.
* * *
안휘성에서 출몰한 마인의 일 이후로, 무림의 정세는 굉장히 어지러워졌다.
마치 그 일이 신호탄이라도 되는 듯, 여러 지역에서 마교의 세력들이 눈에 띄게 활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정사 연맹은 그야말로 비상사태가 되어 최고 수준의 경계령이 떨어졌다.
매일같이 전투가 끊이질 않았고 곳곳에서 인명피해가 속출했다.
물론 그것은 어디까지나 외부의 일.
격전지와는 거리가 먼 최후방이라 할 수 있는 잠룡학관은, 오히려 평상시보다 더 조용하게 느껴졌다.
연맹 전체의 뒤숭숭한 분위기에, 잠룡학관의 관계자들은 수시로 모여서 각 단의 향후 일정에 관해 토론을 나눴다.
학관의 생도들은 강의와 수련에 집중하지 못하고 바깥의 일을 궁금해했다.
그리고 유일하게 한 사람.
[은색 영약 당첨!]“오! 개꿀!”
소종천만은 안전한 곳에서 성장하는 현재의 상황을 마음에 들어 하며, 하루하루 수련과 뽑기를 반복해 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요즘은 계속 영약만 나오네.’
무림에서 생활한 지 86일 차.
학관으로 복귀 후 정확히 17일의 시간이 지났다.
그간 모은 재화로 돌린 뽑기가 오늘까지 6번째인데, 어째 하나같이 전부 영약만 나오고 있다.
‘불만인 건 아니지만, 확률을 참 알 수가 없네.’
영약이 나오는 것 자체는 반길 만한 일이긴 하다.
기껏 얻은 금색 등급의 무공인 연대구품을, 내공의 부족으로 제대로 써먹기가 어려우니 말이다.
소종천은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하며 영약을 감정했다.
[감정 성공.] [200년 하수오 획득.]“그놈의 하수오는 참…….”
이놈의 영약은 종류가 원래 적은 건지 그냥 귀찮아서 우려먹는 건지, 지긋지긋할 정도로 자주 나오는 게 하수오다.
특히 무색 영약에서 워낙 자주 봤기에, 하수오라는 이름만 보면 괜히 기분이 가라앉는다.
그래도 이번에는 은색 등급인지라, 충분히 가치가 있는 물건이긴 하다.
[200년 하수오] [흔한 하수오지만 이쯤 되면 산삼이 부럽지 않다.]‘그래. 내공만 많이 올려주면 네가 산삼보다 낫겠지.’
뜸 들일 필요가 없으니 바로 사용한다.
[내공 0.19 상승.]‘……취소. 산삼보다는 좀 못하네.’
이전에 얻었던 같은 등급의 100년 산삼보다 미묘하게 떨어지는 상승치.
그래도 무색이나 동색과 비교하면 많이 오른 것은 사실이기에, 소종천은 즐거운 마음으로 자신의 정보를 확인했다.
[이름 : 소종천] [별호 : 없음] [재능] [오성 6.43] [근골 5.08] [감각 8.80] [내공 2.38] [무공] [청명토납공 8성] [추영권 8성] [추혼퇴 3성] [반야신공 4성] [철면피 4성] [소림오권 3성] [연대구품 5성]‘아주 좋고.’
2.38의 내공 수치.
이제 황룡단의 생도 중에서 소종천보다 내공에서 앞서는 이는 아무도 없다.
질과 양 어느 한쪽도 모자람이 없으니, 이제는 비교를 하려면 선배 기수인 청룡단이나 백룡단에서 상대를 찾아야 할 것이었다.
어쩌면 내년에 승단을 할 때쯤이면, 일류의 경지를 밟게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계속 이 안에서 안전하게 성장하다가, 고수가 되고 나서 무림출도를 하게 되면 좋겠네. 똑같은 환경이 좀 지겹기는 하지만, 내 생명은 하나뿐이니까.’
일류의 수준부터는 그럭저럭 고수 대접을 받지만, 그렇다고 아주 보기 드문 경지도 아니다.
바깥에 나가게 되면 주창과 비슷하거나 그 이상의 마인들이 분명 적지 않게 존재할 터.
사건의 중심에 서게 될 가능성을 의식하고 있는 소종천은, 위험한 상대와 마주치게 될 수 있는 흐름은 최대한 피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상황은 그를 편히 내버려 두지 않았다.
“임무다. 자세한 내용은 벽보를 확인하도록.”
“아…….”
정기 조회에서 나온 추오명의 말에, 소종천은 탄식을 금치 못했다.
시기가 어수선하다지만 일정을 전부 미루거나 취소할 수는 없는 법.
황룡단에 두 번째 임무가 내려졌다.
뽑기로 무림최강 3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