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39
25. 조달
“아이고 형님! 나오셨습니까?”
거지 꼬마를 붙잡고 있던 남자가 허리를 팍 접으며 고개를 숙인다.
바닥에 내던져진 꼬마는 끙끙거리는 신음을 흘리며 몸을 말았다.
“뭔데 그리 시끄러워?”
하나같이 흉터가 가득한 면상들을 거느리고 나타난 남자가, 거만한 손짓으로 인사를 받으며 입을 열었다.
꼴을 보아하니 건달패 중에서 두목 급쯤 되는 인물로 짐작된다.
“저 약삭빠른 새끼가 음식을 사 먹다 저한테 걸렸습니다요. 분명 평소에도 딴 주머니를 차고 있었던 게 틀림없습죠.”
“아, 아니에요. 어떤 분이 먹으라고 주고 가신, 아악!”
오해를 풀기 위해 말을 꺼내던 꼬마는 남자의 발길질에 비명을 흘리며 쓰러졌다.
“이 새끼가 계속 거짓부렁을!”
“살려, 살려주세요.”
“아아, 그만!”
건달 두목으로 보이는 남자가 소리를 꽥 지르고는 두 사람에게 성큼성큼 다가갔다.
그리고 곧장 꼬마를 걷어찬다.
“꺽!”
일체의 사정도 봐주지 않고 전력을 다해 걷어찬 발길질에, 꼬마의 몸이 붕 떴다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배를 부여잡고 바들거리며 경련하는 것이, 어딘가 크게 잘못된 것이 아닌가 싶은 모습.
“살려줘? 이 호로 새끼가 누굴 살인범처럼 취급하고 있어? 누가 들으면 우리가 흉악범인 줄로 오해하겠네.”
건달 두목은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가만히 앉아서 편하게 먹고 살게 해주는데, 감사히 여기지는 못할망정 감히 딴생각을 품어? 이런 놈들이 진짜 악질이지. 안 그러냐 얘들아?”
“맞습니다!”
바닥에 침을 찍 뱉어낸 건달 두목은, 옆에 있던 남자의 정강이를 툭툭 차며 목소리를 깔았다.
“애새끼들 관리 똑바로 해라. 요즘 마음에 안 들어.”
“죄송합니다, 형님.”
“저거 혹시 죽을 것 같으면 어디 안 보이는 데다가 치워라. 괜히 귀찮아질라.”
“예!”
대답을 한 남자가 몸을 돌리는데, 꼬마 거지의 앞에 누군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하아…… 끼어들지 않을 수가 없게 만드네.”
소종천이었다.
설마 이리 심하게 어린아이를 폭행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에, 개입하는 것이 조금 늦고 말았다.
“넌 또 뭐야? 괜히 까불지 말고 저리 가라, 아가야.”
험악한 인상을 더욱 구기며 위협하듯 얼굴을 들이미는 남자에게, 소종천은 가볍게 주먹을 휘둘러 주었다.
뚝!
빠르게 턱밑을 스치고 지나가는 주먹에, 남자의 고개가 살짝 돌아갔다.
이윽고 실이 끊어진 인형처럼 맥없이 픽 쓰러진다.
“어엇!”
“저놈 뭐야!”
깜짝 놀란 건달패거리가 우르르 움직여 소종천을 둘러쌌다.
그 숫자가 다해서 여덟.
하지만 소종천의 표정에는 여유가 가득했다.
저잣거리 양민들의 등이나 치고 다니는 건달패들이다.
느껴지는 기세가 무인으로서는 기껏해야 삼류.
그나마 두목인 남자가 이류 정도는 되어 보이나, 소종천은 이제 그 정도 상대로는 위협을 느끼기가 어려운 수준에 도달했다.
‘전원이 이류 무사 수준이면 모를까, 한 놈 정도야.’
“어린놈이 감히 누구 앞에서 행패를 부리는 거냐!”
“행패는 당신네가 부렸지. 저 꼬치 내가 준 건데, 왜 엄한 애를 잡고 그래?”
“이놈! 꼬치고 나발이고 우리 식구를 건드리고서 무사히 넘어갈 성싶으냐! 얘들아!”
두목의 신호에 건달들이 짧은 몽둥이를 꺼내 들고는 사방에서 동시에 달려들었다.
검이나 도 같은 날붙이 못지않게, 곤봉 역시 사람을 상대로는 충분히 위협적인 무기.
개개인의 무위가 낮다지만 사람을 패는 일에 익숙한 놈들이다.
포위당한 상태로 등 뒤의 공격을 허용하게 되면, 싸움은 이겨도 부상을 입게 될지 모른다.
그렇기에 소종천은 건달들이 달려듦과 동시에, 여유롭던 태도를 버리고 재빨리 신형을 움직였다.
뿌득!
“끄억!”
정면을 막아선 사내의 옆구리 위쪽으로 주먹을 찔러 넣자, 늑골이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사내의 몸이 크게 꺾인다.
“이놈!”
양옆에서 휘둘러지는 곤봉.
쓰러지려는 사내의 머리채를 붙잡아 당기며 등 뒤로 돌아간 소종천이, 교묘하게 몸을 숙이며 사내를 방패로 삼았다.
퍽! 빡!
늑골이 작살난 통증에 매질까지 겹쳐지자, 사내는 눈을 까뒤집고 기절해 버렸다.
“읏!”
“이, 이런.”
같은 편을 공격하게 된 건달들이 당황하며 잠깐 움직임을 멈췄다.
소종천은 기절한 사내를 바닥으로 내팽개치며, 반동을 이용해 공중으로 허리를 틀었다.
하늘을 향한 하체가 흐느적거리듯 움직이다가, 양쪽으로 쫙 갈라진다.
사권의 형.
양사분로(兩蛇分路).
두 마리의 뱀이 각자 다른 길을 향해 몸짓한다.
원래는 한 사람에게 두 번의 공격을 동시에 가하는 초식이었지만, 응용을 가미해 양발이 다른 방향을 향해 움직이도록 바꾸었다.
“케흑!”
“꺽!”
뱀처럼 쏘아진 양 발끝이 좌우에 있던 건달들의 목울대를 정확히 찔러 들어갔다.
목을 붙잡고 쓰러지는 아군들의 모습에, 나머지 건달들이 흠칫하며 발을 멈췄다.
머리가 가슴께에나 간신히 닿을까 싶은 어린놈인데, 잠깐 휙휙 움직이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세 명이 당했다.
“무인…….”
“……잘못 건드린 거 아냐?”
약자들의 등골을 빼먹지만, 강자에게는 철저히 굽히는 것이 흑도의 생리.
그런 흑도에서도 가장 밑바닥에 속하는 건달패들은, 소종천의 무위에 뭔가 잘못됨을 느끼고 주춤대기 시작했다.
“놈! 제법 한 재간 하는 모양이구나!”
조금 물러난 곳에서 지켜보고 있던 건달 두목이, 살짝 경직된 얼굴로 나섰다.
만약 소종천이 조금 더 나이 들어 보이거나 무기를 들고 있었다면, 아마도 머리 굴릴 것 없이 바로 무릎을 꿇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직 어린 태를 벗어나지 못한 외모에 맨몸의 상태인지라, 만만치 않겠는데? 싶으면서도 자존심을 버릴 정도는 아닌 것 같다는 판단을 내렸다.
“뭘 머뭇거리고들 있냐! 조져!”
건달 두목은 소리를 지르며 남은 부하들을 밀어 넣었다.
두목을 제외하고 일곱 중 셋을 쓰러뜨렸으니, 남은 수가 넷.
건달들은 내키지 않는 티가 역력했지만, 우두머리의 지시에 이를 악물고 달려들었다.
‘수갑에 익숙해졌다가 없으니까 불편하네.’
학관에서 쓰던 보급품은 개인적으로 반출이 불가능하기에, 임무에 나섰음에도 소종천은 달랑 무복 하나만 걸친 맨몸이었다.
혹시 몰라서 망가진 상등품 수갑 중 아직 쓸 수 있는 왼팔 부분은 가져오긴 했다.
하지만 미묘하게 틀어지는 균형이 거슬려서, 지금은 착용하지 않고 봇짐에 넣어뒀던 상태.
비등한 내력을 가진 상대들도 아니기에 맨살로 공격을 아예 막아내지 못할 건 아니나, 아쉬움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다.
용권의 형으로 전환한 소종천은 신묘한 움직임으로 건달들의 사이를 오가며 헛손질을 유도했다.
유룡보의 표홀함으로 적들을 농락하는 소종천에 의해, 바닥으로 쓰러지는 이가 하나둘 늘어갔다.
마지막 남은 조무래기를 처치하고 난 순간.
“크헝!”
기회를 엿보고 있던 우두머리가 고함을 지르며 달려들었다.
곤봉을 휘두르던 부하들과 달리, 건달패의 두목은 권법을 익혔는지 소종천을 향해 주먹을 내질렀다.
커다란 동작과 함께 두목의 팔을 덮고 있던 소매가 말려 올라간다.
일순 소종천의 눈에 이채가 번뜩였다.
‘엇! 저거?’
건달 두목이 착용한 세련된 형태의 수갑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묵빛으로 번들거리는 튼튼해 보이는 금속부와, 특별한 재료를 써 가공한 듯 윤기가 흐르는 가죽부.
상당한 고급품의 장비임이 분명했다.
뻑!
커다란 타격음과 함께 건달 두목의 주먹이 소종천의 안면을 가격했다.
소종천의 목과 허리가 뒤로 확 꺾인다.
공중에서 회전하며 요란하게 날아가는 소종천의 모습에, 기습을 성공시킨 건달 두목이 웃음을 터뜨렸다.
“크하핫! 이놈! 미꾸라지처럼 움직이더니 별것도 아니구나!”
지이이익.
손과 발로 바닥을 짚으며 몸을 멈춰 세운 소종천은, 기뻐하는 건달 두목을 보며 입을 열었다.
“그거 수갑 좋아 보인다?”
“흐흐! 좋다마다! 철우방의 유명한 장인이 만든 명품이지!”
“오, 제법 비싸겠네?”
“아무렴! 이걸 가지려고 내가 몇 년 동안 시장 바닥에서…….”
건달 두목의 목소리가 점점 작아졌다.
꼬박꼬박 대답을 해주면서 뭔가 이상함을 느낀 것.
“이, 이놈!? 어떻게 멀쩡한 거지? 제대로 주먹이 들어갔는데!”
평범한 사람이었다면 머리가 깨져 즉사할 수도 있는 위력을 지닌 주먹질이었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얼굴을 하며 손바닥으로 이마를 비비고 있는 소종천의 모습에, 건달 두목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제대로는 무슨. 그냥 내가 이마로 한번 받아본 건데. 어우, 목 뻐근해. 분명 주먹질은 별로였는데 생각보다 충격은 더 크네. 그거 확실히 고급품이구나?”
별 타격이 없어 보이는 얼굴로 입을 놀리는 소종천의 모습에, 건달 두목은 조금 떨리기 시작한 목소리로 악을 질렀다.
“허, 허세 부리지 마라! 이 몸이 펼친 무공은 무려 흑무련의 호왕권이다! 분명 머리가 울려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상태일 테지!”
정말 그렇게 생각하기보다는, 스스로를 안심시키기 위해 하는 듯한 말이었다.
“호랑이의 왕? 이름만 거창하네. 그냥 고양이 발장난 같았는데.”
“크윽…….”
건달 두목은 발끈했지만, 다시 달려들지는 못했다.
자신이 상대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님을 이제는 슬슬 깨달았기 때문.
소종천은 건달 두목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한마디를 던졌다.
“야, 벗어.”
“헉!”
잠시 온갖 상상이 스치며 정신이 달아날 뻔했던 건달 두목은, 이내 수갑을 벗으라 말한 것임을 깨닫고 안색이 창백해졌다.
“아, 안 돼! 이게 얼마짜리인 줄…….”
“몰라. 쓰레기 새끼야. 얼마가 됐든 저런 꼬맹이들 여럿 착취해 가며 모은 돈으로 산 거겠지. 그거 만든 장인이 알면 피눈물을 흘리겠네. 내가 좋은 곳에 써줄 테니 얌전히 넘겨라.”
“이놈! 차라리 나를 죽여라!”
“오냐. 그냥 팔을 뽑아서 벗겨주마.”
소종천은 거리낌 없이 대답하며 차가운 표정으로 건달 두목에게 다가갔다.
정말 죽일 생각까지 한 것은 아니지만, 필요하다면 어디 한두 곳쯤 망가뜨려 줄 의향은 충분히 있었다.
버텨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안 건달 두목은 결국 눈을 질끈 감고 무릎을 꿇었다.
“크흑! 그냥 드리겠습니다!”
“필요 없어!”
소종천의 몸이 허공을 날았다.
뿌드득!
비호처럼 뛰어든 소종천이 건달 두목의 양쪽 어깨를 팔꿈치로 내리찍자, 견갑골이 으스러지는 소리와 함께 두 팔이 탈골된다.
“끄아악!”
소종천은 땅에 엎어져 몸부림치는 건달 두목을 무릎으로 내리눌러,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수갑을 벗겨내었다.
“으으, 필요 없다며…….”
“다물어.”
퍽.
“깡패 새끼가 따지기는.”
억울하다는 듯이 눈을 부릅뜨는 건달 두목을 후려쳐 기절시킨 소종천은, 빼앗은 수갑을 곧장 자신의 팔에 착용해 보았다.
‘와, 씨. 때깔 죽이네.’
상등품 수갑을 쓸 때도 꽤나 마음에 들었었는데, 이건 그보다 조금 더 품질이 좋아 보인다.
특히 금속부의 강도는 이쪽이 더욱 단단했다.
‘이 정도면 은색 등급 무구쯤 되는 거 아닐까?’
일류 이상의 고수가 써도 어울릴 만한 고급품이다.
저잣거리 깡패 두목이 쓰기엔 아까운 물건.
아마도 전 재산을 털어 넣어 구한 장비일 터였다.
‘가볍게 운동하고 좋은 선물까지 받았네.’
건달 두목이 알았다면 굉장히 억울해할 생각을 하며, 소종천은 몸을 일으켜 세웠다.
주위를 둘러보자 조심스레 구경하고 있던 사람들이 움찔 놀라며 고개를 돌린다.
쭉 관심 있게 지켜봐 놓고선, 혹여나 불똥이 튈까 두려워하는 모습.
소종천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거지 꼬마의 모습을 찾았다.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인지, 쓰러져 있었던 자리에 꼬마가 보이질 않았다.
“도망쳤어.”
“아?”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한사혜가 소종천의 의중을 알아차리고 설명을 해주었다.
“조금 전에 일어나서 도망갔어.”
“어, 그래?”
소종천은 머쓱해 하며 뒤통수를 긁적였다.
애초에 자신 때문에 일어난 일이긴 했지만, 이렇게 말없이 사라질 줄은 몰랐다.
“뭐 멀쩡히 움직일 수 있었다니 다행이네. 근데, 너 왜 나 안 도와줬냐?”
소종천의 질문에 한사혜가 눈을 크게 떴다.
상상도 못 했다는 듯한 태도.
“……도움이 필요했어?”
“아니. 그건 아니지만…… 음, 아냐. 괜한 소리였네.”
소종천의 실력을 잘 알고 있는 한사혜니, 끼어들지 않은 것이 당연하긴 했다.
“돌아가자. 너무 늦겠다.”
“응.”
길바닥에 엎어진 건달패거리들은 내버려 두고, 두 사람은 객잔으로 돌아갔다.
시장을 조금만 구경하고 돌아갈 셈이었는데, 너무 오래 머물러 시간이 꽤 지나 버렸다.
그 탓에 복귀하자마자 곽진에게 조금 꾸지람을 들었다.
그래도 덕분에 질 좋은 장비를 공짜로 구했기에, 소종천은 기분 좋게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 * *
이튿날.
가볍게 조식을 마치고 객잔을 나선 황룡단의 인원들은, 금화상단에서 준비해 둔 상선 위에 올랐다.
포양호를 떠나 장강의 물결을 탄 상선이, 거침없는 속도로 목적지를 향해 나아갔다.
뽑기로 무림최강 4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