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41
26. 악산(2)
장강의 지류가 흘러 악산과 마주해 지나는 악산현은,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지형에 있다.
근방으로 자잘한 크기의 마을들이 쭉 들어서 있어, 전체로 따지면 은근히 인구가 많은 지역이기도 하다.
악산현을 조사하던 정사 연맹 사천지부의 조사관들이 삼웅방의 존재를 인식하게 된 것은, 사실 어느 정도는 우연의 일치였다.
-지난 반년 사이 악산현 주변의 마을들에서 사망자 및 실종자의 수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습니다.
-자료 좀 보세. 음…… 크게 주목해야 할 수치는 아닌 것 같은데?
-가벼운 돌림병이 잠깐 돌았던 것은 아니오?
-딱히 그런 정보는 들어와 있지 않군요.
-잠깐, 악산 쪽과 관련해서 다른 보고가 있었던 것 같은데…… 아, 여기 있군.
각 성과 대도시들을 지나는 상단들과 그에 따른 물류의 이동에 관한 조사 보고서.
이런 자료들을 역추적하다 보면 간혹 중요한 문제를 찾아낼 수도 있기에, 주기적으로 수집하고 있는 정보들이다.
-이건 약간 이상하군요. 물자의 소모량이 꾸준히 늘고 있어요. 이 역시 주시해야 할 정도의 큰 차이는 아닙니다만…….
-방금 인근 주민들의 수가 감소했다고 하지 않았던가? 뭔가 냄새가 나는데.
-작은 마을들이 군데군데 널려 있어 유동인구의 확인에 오차가 제법 있긴 하오. 그래도 조사해 볼 필요는 있을 것 같군.
사람은 줄었는데 소비는 늘었다.
수상하게 여긴 조사관들은 악산 주변에서 탐문을 시작했고, 그런 물적 유통의 흐름에 삼웅방이 적지 않게 관여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삼웅방은 악산 부근의 별 볼 일 없던 흑도방파 세 곳이 힘을 합쳐 만든 세력이다.
말이 흑도방파지 조무래기라 할 수 있는 주먹패들이 대부분이라, 사실상 합병을 했다 해도 눈여겨볼 구석이 없는 작은 세력.
주먹패들이 하는 일이 으레 그렇듯.
삼웅방 역시 인근 주민들을 상대로 자잘한 사업을 운영하며, 돈을 뜯어내 자신들의 주머니를 채워왔다.
한데 조사결과 수상한 점이 한 가지 더 드러났다.
세력의 특성상 마을과 인접한 곳에 기반을 둬야 할 삼웅방이, 주기적으로 악산 안쪽으로 물자를 나른 정황이 포착된 것.
조사단은 삼웅방의 행동이 다른 어떤 세력과의 접점이 있을지 모른다고 의심했고, 그것이 마교의 끄나풀과 관련 있을 가능성에 관해 보고를 올렸다.
그로 인해 연맹의 무력 집단 중 천룡단과 형도회가 파견되었다.
마교의 연관 가능성을 의심했다지만, 고작 조무래기 흑도방파를 제압하기 위해 투입된 것치고는 과한 전력.
하나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그런 신중한 선택에도 모자람이 있었다.
“단주! 뭔가 이상합니다.”
“나도 안다.”
천룡단의 단주 조성극은 이맛살을 모으며 주변을 살폈다.
황량한 무덤가.
그 바로 옆에 위치한 조잡하게 지어진 창고 건물.
조성극은 포박되어 묶여 있는 삼웅방의 인물에게 다가가 호통을 쳤다.
“이놈! 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던 거냐!”
“흐흐흐…… 그냥 장례사업을 하는 것뿐이오. 먹고 살기 힘드니 여기저기 손대는 사업이 많은 게지.”
“말 같지도 않은 소릴!”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힘없이 실소를 흘리는 남자.
그나마 일류에 근접한 무위로 봐서는 최소 간부급의 인물일 터인데, 정보를 뱉을 생각은 없는지 저런 소리나 해대고 있다.
조성극의 시선이 건물 안으로 향했다.
특별한 점이 없는 그냥 널찍한 공간의 창고건물이다.
문이 부서진 창고 내부로 궤짝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여기저기서 단원들이 내용물들을 확인하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묘지로 쓰이고 있는 산속.
아무것도 없는 이런 곳에 물자를 쌓아놓고, 대체 무슨 짓을 하고 있던 것일까?
“단주님.”
창고 내부를 확인하던 부하 단원 하나가 다가왔다.
“딱히 특이한 것은 없어 보입니다. 광물이나 약초로 보이는 것들도 있긴 한데, 대부분은 숯과 기름이 담긴 통이나 소금 자루 같은 물품입니다.”
“기름? 역청을 말하는 건가?”
“아! 아닙니다. 참기름 같기도 하고……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시장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그런 종류인 것 같습니다.”
“흔한 생필품들이란 말인데, 상단도 아닌 것들이 그런 물자들을 비축할 이유가…….”
말을 하던 조성극은 멈칫거리다가 돌아섰다.
뭔가가 떠오를 듯 말 듯 하다.
무덤가.
시신이 모이는 곳.
늘어난 사망자와 실종자의 수.
“숯과 기름, 소금……?”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물품들이고, 음식을 파는 곳이라면 대량으로 소모하기도 한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다른 용도로 쓰일 수도 있는 것들이었다.
“방부제? 이놈들!?”
방부 효과가 있는 물품들.
무언가를 깨달은 조성극이 일그러진 표정으로 외쳤다.
“시신들을 다른 곳으로 운반하고 있었구나! 정말로 마교의 앞잡이들이었던 건가!”
사람의 시신은 한번 묻히면 다시 꺼낼 일이 없어야 정상이지만, 그런 시신을 필요로 하는 분야가 있다.
강시술.
죽은 자의 몸에 특별한 대법을 시술해 움직이는 병기로 만드는 사악한 비술이다.
그리고 강시는 마교와의 전투에서 심심찮게 접할 수 있는, 그들의 주요 전력 중 하나였다.
강시술을 금기로 지정한 현 무림에서 시신을 활용하는 단체는 마교 한 곳뿐이다.
삼웅방은 마교에 시신을 납품하는 하부 조직 중 하나가 된 것이었다.
“흐흐, 이리 금방 덜미를 잡힐 줄은 몰랐는데. 그런데 어쩌나? 하필 좋지 않은 날에 오셨소. 큭큭…….”
싸늘한 얼굴로 삼웅방도를 내려다보던 조성극은, 문득 이상한 낌새를 감지하고 주변을 다시 살폈다.
특별히 문제 되는 것은 느껴지지 않는다.
소쩍새의 울음소리.
무덤가를 지나는 스산한 바람.
자욱한 안개.
‘……안개? 언제부터 이렇게 안개가 꼈지?’
조성극은 갑자기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안개가 점점 짙어진다.
바로 근처에 있던 단원의 모습조차 흐릿하게 보였다.
“어엇!?”
“단주님!”
무언가 이상함을 느낀 단원들이 소리쳤으나, 조성극은 대답하지 못했다.
기이할 정도로 걸쭉한 느낌을 주는 짙은 안개가, 천룡단의 인원들을 집어삼켰다.
* * *
“이건…….”
생도들이 따라붙을 수 있게 속도를 조절하며 이동하던 곽진은 급하게 자리에 멈춰 섰다.
불길한 느낌을 주는 안개가 사방에 자욱했다.
‘자연적인 안개가 아니로다. 대규모의 진법이 펼쳐진 게야.’
평범한 안개 따위가 절정 고수의 시야를 가릴 순 없다.
곽진이 발 근처에 있던 조그마한 조약돌을 걷어차, 안개 속을 향해 날렸다.
쐐액!
내력이 실린 돌멩이가 굉장한 기세로 쏘아진다.
하나 안개를 뚫고 들어감과 동시에 돌멩이의 기척은 사라졌다.
‘시야를 차단하고 소리까지 잡아먹는 안개라니.’
심장이 마구 뛰었다.
이런 종류의 안개를 만들어내는 술법을 예전에도 경험한 적이 있었기 때문.
‘마교 놈들이 쓰던 진법이지 않은가! 위험성이 낮은 임무라 들었거늘?’
일이 크게 잘못되었다.
연맹의 조사과정에서 놓친 부분이 있는 것일까.
“교, 교관님. 저쪽에 시체가…….”
생도 중 한 명이 떨리는 목소리로 곽진을 불렀다.
돌아보자 생도가 가리키는 방향 한쪽에, 쓰러져 있는 사람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복장을 보니 형도회 소속의 무인.
천룡단이 삼웅방의 거점을 덮칠 동안 형도회는 주변에 포위망을 형성하기로 되어 있다.
‘검에 베인 상흔이구나. 깔끔하지만 그것뿐. 상대는 절정에 이르지 못한, 일류에 머물러 있는 검객이로다.’
곽진은 시체와 주변에 남은 흔적들을 보며 상황을 유추했다.
형도회 무인의 무기에는 핏자국이 전혀 묻어 있지 않다.
적에게 상처도 입히지 못했다는 의미.
몸에 남은 상처들을 봐서는 기습으로 일격에 당한 것도 아니다.
정상적으로 맞상대를 했는데, 일방적으로 밀리다가 죽었다?
형도회의 인물들도 일류에 발을 걸친 무인이거늘, 이렇게 맥없이 당했다는 것은 한 가지 경우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마인.’
마기의 영향으로 인해 제대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죽음에 이른 것이 분명하다.
마교의 술법에 마인의 출현.
곽진은 고민에 빠졌다.
형도회의 무인들은 사방으로 분산된 바람에 쉽게 당했을지 모르나, 한 곳에 뭉쳐 있던 천룡단의 인원들은 아직 생존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
‘대적이 불가능할 정도로 격이 높은 마인이 출몰한 것이라면, 이리 진법을 유지할 이유도 없을 터이니.’
마교의 진법에 갇히게 되면 오감이 점점 둔해지고 환각과 환청에 시달리게 된다.
아군을 적으로 오인해 공격하기도 하고, 동료가 휘두른 눈먼 칼에 허무하게 당할 수도 있다.
어찌어찌 진의 영향에서 벗어났다 해도, 적지 않은 내력과 기력, 정신력 등을 소모하게 될 터.
진법이 이리 펼쳐져 있다는 것은, 천룡단의 무인들을 표적으로 삼아 서서히 말려 죽이겠다는 의미다.
‘도움을 줘야…… 하나 이 아이들을 어찌할꼬?’
진법을 탈출하기 위해선 정확한 탈출구인 생문(生門)을 찾아 벗어나야 한다.
비록 일선에서 물러난 지 오래되었다지만, 곽진은 마교를 상대하며 진법에 대한 경험도 적지 않게 쌓인 인물.
생존자가 있다면 충분히 구해 나올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아직 미숙한 생도들까지 보호하며 진법 안에 뛰어들 수도 없는 노릇.
그렇다고 두고 가자니, 어디 있을지 모를 마인의 존재가 염려된다.
“교관님.”
그런 곽진의 귀에 소종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위험에 처한 것 같습니다.”
“그래. 상황이 좋지 않구나.”
“저희는 교관님을 믿습니다.”
“으음.”
소종천의 말에 곽진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오해가 빚어졌다.
수상하기 짝이 없는 안개를 보며 머뭇거리는 곽진의 모습에, 소종천은 혹시나 그가 생도들을 두고 갈까 봐 나섰을 뿐이었다.
위험한 상황이니 제대로 지켜달라고, 낯부끄럽지만 넌지시 말을 전한 거다.
하지만 곽진은 조금 다르게 받아들였다.
연맹의 무사들이 위험하지 않느냐.
미숙하다지만 우리 역시 무인이다.
안전을 챙긴다고 아군의 곤경을 모른 체하고 물러날 수는 없다.
당신이 올바른 선택을 내릴 것이라 믿는다.
가끔씩 소종천에게서 친우의 모습을 비춰보곤 했던 곽진이기에 생겨난 오해였다.
‘효원…… 고지식한 성정은 이 아이도 그 친구와 다를 게 없구나.’
언제나 공명정대했던 친우의 얼굴이 떠오른다.
역시나 이 아이도 올곧기가 그지없다.
너무도 큰 착각이었으나, 곽진에게는 그것을 깨달을 길이 없었다.
“네 말이 옳다.”
“예. 어서 물러나…….”
“최대한 빨리 다녀오마. 다들 몸을 숨기고 있거라.”
“……네? 그게 무, 잠깐, 어디 가!”
소종천이 붙잡을 새도 없이, 곽진의 신형이 안개 속으로 사라졌다.
‘아니, 뭔데! 무슨 개떡 같은 경우야 이거!?’
소종천은 황당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뭘 어찌해야 하면 좋을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멀뚱거리는 얼굴들이 보인다.
자신을 포함한 열일곱 명의 생도들.
딱 봐도 뭔가 문제가 심각한 상황 속에서, 유일하게 믿을 수 있던 보호자조차 사라졌다.
‘잗 됐다.’
눈앞이 캄캄해졌다.
그래도 가만히 좌절하고만 있을 수는 없는 노릇.
일단은 곽진이 빠르게 복귀하길 기도하면서, 그동안 몸을 숨기고 있기라도 해야 한다.
‘이거 분명히 위기가 찾아온다. 그전까지 최대한 시간을 끌어야…….’
“이 병아리들은 또 뭐지? 크흐흐! 마신께서 내게 내려주신 은총이로구나!”
“썅?”
수풀에 몸을 숨기기라도 하자는 말을 꺼내기도 전에, 무언가가 나타나버렸다.
풀풀 풍기는 불길한 기운.
눈가 한쪽이 함몰된 징그러운 얼굴.
어지간한 장정보다 머리 두 개쯤은 커다란 거한이, 웃음을 보이며 다가왔다.
‘너무 빠르잖아!’
일전에 마주쳤던 주창과 비슷한 느낌.
확인해 볼 것도 없이 마인임이 분명했다.
뽑기로 무림최강 4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