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44
26. 악산(5)
피투성이가 된 마인들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세 명은 치명상을 입어 당장에라도 숨이 끊어질 듯 피를 쏟고 있었고, 나머지 셋도 깊은 부상으로 제대로 거동하지 못하는 상태.
‘미쳤다.’
모든 것을 지켜본 소종천의 입이 쩍 벌어졌다.
눈으로 직접 보고 있었음에도 믿기 어려운 위력이었다.
딱 한 차례 펼쳐낸 검초로 일류의 무인 여섯이 무력화되다니.
아직 경지가 낮은 소종천은 곽진이 뭘 어떻게 한 것인지도 전혀 짐작할 수가 없었다.
“손해가 막심하군. 이런 곳에서 소모할 전력이 아니었는데.”
가까이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소종천이 움찔하며 뒷걸음질 쳤다.
어느샌가 거리를 좁힌 우두머리 마인이, 곽진과 스무 걸음 정도 떨어진 곳에서 나타났다.
마인, 요도엽은 곽진을 노려보며 걸걸한 목소리로 말을 걸었다.
“잠시 쉬고자 머무른 자리에 연맹의 벌레들이 들어왔기에 치우려 했더니, 설마 이만한 거물을 만나게 될 줄이야.”
요도엽은 자신의 애병인 쌍검을 꺼내 들며 말을 이었다.
“만개검이라. 추살명부의 오래된 기록에서 본 거 같기도 하군. 늘그막에 묏자리라도 알아보러 나타난 건가?”
“마두 놈이 혓바닥이 길구나.”
곽진은 약간 갈라지는 음성으로 대답했다.
마교의 진법을 파훼하느라 심력을 꽤 소모했었는데, 직후에 바로 이런 상황에 놓여 회복할 새도 없이 전력을 다해야 했다.
덕분에 피로감을 숨기기조차 어려웠다.
한 번에 정리하지 못하면 혹여나 생도들에게 뛰어드는 놈이 있을 수도 있기에, 과하다 싶을 정도로 내기를 운용한 탓도 있다.
‘역시 몸이 버티기 어렵구나.’
늙은 몸으로 오랜만에 한계에 걸친 검초를 펼친 탓에, 기혈에 제법 무리가 갔다.
그래도 적 앞에서 내색하지 않으려 노력하며, 곽진은 검을 고쳐 쥐고 담담한 말투로 말했다.
“들어오너라.”
“훗, 멀쩡한 척해도 다 보이지 않나. 많이 지쳐 있군.”
일류니 절정이니 하며 한데 묶어 표현한다지만, 같은 경지 내에서도 실력에는 고하가 나뉠 수 있다.
요도엽은 곽진이 펼친 검초를 통해 상대가 자신보다 한 수 앞선 고수임을 알아봤다.
그리고 동시에, 방금 같은 무위를 다시 보일 수 없다는 것도 알아차렸다.
상대의 몸 상태는 지금 정상이 아니다.
“살 만큼 살았으니 미련은 없을 터. 그 목숨 내가 거두어가겠다.”
요도엽의 신형이 일순 사라졌다가 곽진의 뒤에서 나타났다.
그와 함께 강렬한 귀곡성이 울려 퍼졌다.
끼아아아악!
10성으로 대성한 귀령규환공.
절정의 경지에 닿은 마인이 펼치는 귀령규환공은, 일류의 마인과는 위력 면에서 차원이 달랐다.
“웩!”
“꺽!”
기혈이 역류한 몇몇 생도들이 피를 쏟으며 주저앉았다.
내부가 진탕되어 움직일 수도 없어진 생도들이, 자리에 앉아 운기를 시작했다.
적을 앞에 두고 운기를 하는 것은 목을 쳐달라는 것과 다를 바 없지만, 버티고 있어도 내상이 점점 심해져 죽음에 이르게 될 테니 다른 방법이 없었다.
‘으윽. 다른 사람들이 겪는 게 이런 느낌이었나?’
반야신공으로 보호받는 소종천조차 음습한 마기가 몸을 더듬는 것을 느끼며 휘청거렸다.
내력을 운용하며 마기의 침입에 저항하고 나서야 겨우 바로 설 수 있었다.
주변을 둘러보자 다들 파리한 얼굴로 날뛰는 내기를 다스리는 모습이 보였다.
버티고 있는 것은 소종천과 남궁건뿐.
그마저도 남궁건 역시 서 있는 게 고작인지, 뭔가를 더 할 여력은 없어 보였다.
소종천은 내력을 실어 함성을 내질렀다.
“흐아아아압!”
끄아아악!
하지만 귀곡성은 잠시 약해지는 듯하다가, 끊어지지 않고 다시 주위를 맴돌았다.
퍼져 있던 마기가 일순 물러났다가 다시 다가온다.
‘망할. 안 될 것 같더라니.’
일류급의 마인들과는 확실히 격이 다르다.
절정 고수인 요도엽의 귀령규환공은, 반야신공의 내공으로도 고함 한 번에 깨부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귀곡성 사이로 귀가 따가운 금속음이 쉼 없이 들려온다.
고개를 다시 돌리자 번쩍거리는 검광이 눈에 들어왔다.
곽진과 요도엽이 검초를 펼치며 공격을 주고받는 것.
눈으로 내력을 돌려 안력을 돋우었지만, 그럼에도 전황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쌍검을 귀신같이 휘두르는 요도엽의 검속은, 그간 제법 발전한 소종천에게도 인지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예민해진 감각으로도 본신의 움직임이 아닌 잔영을 쫓는 것이 고작.
‘그래도 교관님이 이기시겠지?’
희망을 담아 바라보았지만, 상황은 기대대로 흘러가지 않는 듯했다.
무의 경지만 놓고 보면 분명 곽진이 요도엽보다 한 수 위였으나, 그렇다고 해서 그 격차가 압도적인 수준은 아니다.
곽진은 다른 이들처럼 요도엽의 마기에 휘둘리진 않아도, 그에 저항하기 위해서 적지 않은 내력을 발산해야 했다.
게다가 이미 한번 무리하게 내력을 운용하였기에, 일시적으로 기혈이 손상되어 있는 상태.
핏!
스걱.
옷이 갈라지며 곽진의 몸에 상처가 생겨난다.
움직임에 지장이 없는 얕은 부상이었으나, 한 번 허용한 공격은 이어서 두 번, 세 번으로 늘어났다.
곽진이 휘두르는 검이 매화를 피워내기도 전에, 요도엽의 쌍검이 무자비한 정원사의 가위가 되어 가지들을 잘라낸다.
지켜보던 소종천의 표정이 초조해져 갔다.
자세히 보기는 어려웠지만, 곽진이 조금씩 밀리고 있다는 것은 알아볼 수는 있었다.
‘도울 방법이 없을까?’
저 사이로 직접 뛰어드는 것은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멀리서 돌이라도 던져봐야 하나?
하지만 괜히 돕겠다고 어설픈 공격을 했다가 오히려 역효과가 생기면?
끼히히히힛!
고민에 빠져 있던 소종천은 눈살을 찌푸렸다.
‘이 엿 같은 소리만 사라져도 마기가 훨씬 약해질 텐데!’
귀곡성만 없애도 교관에게 도움이 될 것 같은데, 소리를 지르는 것도 통하지 않고 마땅한 방법이 없어 답답했다.
“에이!”
해결책을 생각하던 소종천은 자리에 주저앉아 가부좌를 틀었다.
고민한다고 무슨 방법이 떠오를 것 같진 않으니, 되든 안 되든 뭐라도 시도해 보는 편이 낫겠다 싶어 행동에 들어간 것.
‘한 번에 몰아내는 게 무리라면, 조금씩이라도 밀어내보자.’
숨을 크게 들이마신 소종천이 내공을 운용하며 소리를 내뱉었다.
우우우.
목구멍을 거쳐 진동하는 소리에 반야신공의 힘이 실리며 천천히 울려 퍼진다.
끼에에에에!
낮게 깔리는 목울음소리 위로 귀곡성의 찢어지는 소리가 덮어졌다.
순간적으로나마 마기를 흔들었던 단발의 고함과 달리, 이 방법은 큰 효과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것밖에는 달리 시도할 수 있는 것도 없기에, 소종천은 끊임없이 소리를 만들어내는 데 집중했다.
우으으으.
끼이이…….
그리고 그 상태가 계속 지속되자, 미약하게나마 효과가 나타났다.
파마의 공능을 가진 내공이 깃든 소리가, 귀곡성에 담긴 마기를 조금씩 몰아내 간다.
귀령규환공 자체의 힘을 파훼하지는 못해도, 그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를 점점 밀어내고 있는 것이다.
주변에서 운기 중이던 생도들이 호흡을 정리하고 눈을 떴다.
마기의 압박에서 벗어나 몸이 정상으로 되돌아왔다.
하지만 정신을 차렸다고 해도, 생도들 역시 전투에 끼어들 수는 없는 것은 마찬가지.
생도들은 다들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분투하고 있는 곽진과 기묘한 행동을 하고 있는 소종천을 번갈아 바라봤다.
우우우우.
“……마기를 쫓아내고 있는 건가?”
아까 전과 방법은 다르지만 속을 뒤집어놓던 마기가 물러난 것을 보니, 소종천이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짐작하기가 어렵진 않았다.
“우리도 뭔가 해야…….”
생도 중 하나가 머뭇거리며 말을 꺼냈다.
하지만 의견을 제대로 끝맺지 못하고 입을 다문다.
이 상황에서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저게 대체 어떤 능력인지는 몰라도, 소종천이 아니었다면 다들 정신을 차리지 못했을 거라는 건 안다.
그러나 정상으로 돌아왔다 해도, 생도들에겐 마기에 대항할 방법이 없었다.
지이잉.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머뭇거리는 생도들의 사이에서, 검명이 들려왔다.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움직이자, 검을 빼 들고 기세를 퍼뜨리고 있는 남궁건의 모습이 보였다.
곽진과 싸우고 있는 마인이 있는 방향을 겨눈 채로, 고정된 자세로 내력을 방출하고 있는 남궁건.
무의미한 행동이었다.
절정을 뛰어넘어 인간을 벗어났다 여겨지는 초절정의 경지라면 모를까.
살의를 품으면 기세만으로 사람을 상하게 만든다는 의기상인(意氣傷人)의 경지에 이르지 않고서야, 저러고 있는 것은 그냥 내력을 쓸데없이 소진하는 행동에 불과했다.
“가만히 있을 바에는 뭐라도 해!”
남궁건의 옆에 하나의 검이 더해졌다.
장자군이었다.
남궁건에 비해 모자라긴 하지만, 장자군 역시 내력을 쏟아부으며 날카로운 기세를 일으켰다.
이윽고 한사혜가 그리고 나머지 생도들도, 하나둘씩 제각각 내력을 끌어올리며 기운을 보탰다.
이성적인 행동이 아님을 머리로는 다들 알았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고서는 무력감을 견디기 어려웠다.
열여섯 생도의 투기가 뭉쳐 마기에 대항했다.
그런 행동은 확실히 별 효과는 없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아주 쓸데없는 짓도 아니게 되었다.
생도들이 모여 방출한 첨예한 기세가, 뭉쳐져 있는 마기를 찔렀다.
눈으로 볼 수 있는 성질이 아니기에 아무도 알지 못했지만, 퍼져 있던 마기의 중심에 작은 틈이 생겨났다.
그리고 그 작은 틈을 비집고, 소종천이 흘리는 파마의 기운이 조금씩 스며들었다.
‘……갈라진다.’
소종천이 발산한 기운들이 좁은 틈에 집중되며 위력이 한층 끌어올려 졌다.
마기를 몇 걸음 밀어내는 정도에 그치던 파마의 힘이, 한 점에 모이게 되자 점점 세차게 안으로 파고들어 간다.
길이 만들어졌다.
마기를 만들어내는 흐름의 중심, 마인 요도엽에게까지 이르는 좁은 길이.
“으음?”
폭풍처럼 거세게 곽진을 몰아붙이던 요도엽은 불쾌한 감각을 느꼈다.
순간적으로 생도들이 있는 곳을 향해 신경이 쏠린다.
간신히 마기를 뚫고 흘러온 소종천의 기운은 너무나 미약했기에, 요도엽에게 무언가 영향을 끼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힘겹게 버티고 있던 곽진에게는, 숨을 돌릴 수 있는 짧은 기회가 되어주었다.
‘승부수를 띄워야 할 순간이로다.’
시각으로는 알아볼 수 없었으나 절정 고수의 예민한 기감이, 사방에 가득 찬 마기 사이로 벌어진 작은 틈을 감지해 냈다.
몸을 움직인 곽진이 한 가닥 실과 같은 좁은 길을 밟으며 검을 휘둘렀다.
윙윙윙!
전력을 다해 불어넣은 내기로 인해 곽진의 검이 세차게 진동했다.
“큭!”
실책을 깨달은 요도엽이 다시 집중을 되돌렸으나, 이미 빼앗긴 호흡을 바로 되찾아 올 수는 없었다.
두 사람이 검격을 교환했다.
지금의 기회를 살리지 못하면 더는 버티지 못할 것이라 판단한 곽진은, 동귀어진을 각오하고 요도엽의 검세를 파고들었다.
“이 늙은이가!”
같이 죽자는 듯이 달라붙는 곽진의 행동에, 요도엽이 이를 악물고 검을 움직였다.
요도엽의 좌검이 곽진의 가슴을 가르는 동안.
곽진의 검이 요도엽의 복부를 찔렀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요도엽의 우검이 곽진의 검을 때렸다.
찌잉!
‘아…… 깊이가 조금 모자라거늘.’
적의 몸을 파고들던 검이 산산조각으로 부서진다.
현역에서 물러난 뒤로 오랜 세월 잠들어 있던 곽진의 낡은 검은, 앞서 펼친 극한의 절초로 인해 이미 내구력이 크게 손상된 상태.
내력을 받아들일 수 있는 한계치를 계속 넘어선 탓에, 마지막 충돌을 버티지 못하고 깨지고 말았다.
조금만 더 파고들었다면 마인의 단전을 꿰뚫을 수 있었을 진데.
안타까운 심정을 얼굴에 드러낸 채, 곽진은 피를 흩뿌리며 바닥으로 쓰러졌다.
“교관님!”
“안 돼…….”
지켜보고 있던 생도들이 절망에 찬 음성을 내뱉었다.
뽑기로 무림최강 4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