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52
29. 징계
황보우빈이 쓰러지고 교관까지 끼어든 마당에, 백룡단원들이 소종천을 더 건드리기는 애매한 상황이 되었다.
그리하여 사건은 조용히 수습되는가 싶었고, 혼란 속에서 유일하게 홀로 이득을 본 소종천은.
“소종천. 분란 조장 및 교관에 대한 하극상의 죄를 물어, 징계동에 수감한다.”
징계동이란 이름의 건물에 갇히게 되었다.
‘왜 나만!?’
사고를 친 생도를 독방에 가둬두는 징계동은, 사실상 그냥 형식적인 수감장소다.
진짜 감옥처럼 철창으로 막혀 있거나 족쇄 같은 구속 장치가 있는 것도 아니다.
실제 감옥의 구조만 따랐을 뿐, 나무 창살로 입구가 만들어져 있기에, 일반인이라 해도 건장한 남성이라면 맨몸으로도 충분히 부수고 나올 수 있다.
물론, 그런 짓을 했다가는 곧바로 퇴관 조치를 받게 되겠지만 말이다.
‘아…… 억울하다.’
분란 조장은 그렇다 쳐도, 하극상은 뭔가 싶다.
교관이 비무 중에 끼어들어 험한 꼴을 당한 건, 소종천이 고의로 저지른 일도 아니지 않나.
게다가 함께 있던 황보우빈은 처벌을 받지도 않았다.
‘없는 집 자식은 서러워서 살겠냐.’
한 차례 투덜거린 소종천은 당분간 머물러야 할 방 안을 둘러보았다.
잠룡학관의 창설 이후로 이 징계동이 사용된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별다른 관리가 이루어지지 않아 건물은 상당히 노후화되어 있었고.
찌직.
“에이 씨. 저리 안 가?”
징그러울 정도로 쥐가 많이 보였다.
좁은 감방 안에서 소종천은 툴툴거리며 쥐똥을 발로 쓸어 벽 구석으로 몰아넣었다.
‘무진장 더러운 곳이네. 청소도 안 하나?’
여기저기 뚫린 쥐구멍에서 들락거리는 쥐새끼들이 계속 보인다.
대충 바닥을 정리한 소종천은 털썩 주저앉아 뽑기창을 열었다.
악산에서의 임무로 500점.
백룡단원들을 때려눕히고 얻은 300점.
황보우빈과 교관하고 얽히며 생긴 450점.
총 1,250점으로, 이제는 영웅 뽑기의 정체를 밝힐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걸 여기서 해도 되는 건가?’
뽑기를 눌러보려던 소종천이 멈칫거렸다.
지켜보는 이가 없는 상황에 놓일 때까지 참긴 했는데, 이런 감옥 안에서 시도해도 될지 조금 불안하긴 하다.
아직 영웅 뽑기가 정확히 어떤 효과가 있는 건지 알지를 못하니 말이다.
‘만약에 뽑기의 결과로 눈앞에 사람이 튀어나오기라도 한다면 어쩌나?’
이 좁은 감방 안에서 나란히 있어야 한다는 불편함은 둘째 치고, 다른 사람들에게 어떻게 해명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학관과 관계없는 외부인이 이런 곳에서 발견되면 소동이 벌어지지 않겠는가.
‘아, 이거 참 애매하네.’
그렇게 뽑기를 눌러볼까 말까 고민하며 소종천이 시간을 보내는 사이.
예상치 못한 손님이 찾아 왔다.
“쯔쯧, 며칠이나 지났다고 그새 사고를 치고 다니는 게야.”
“엇! 교관님!”
살짝 파리한 안색을 한 익숙한 얼굴.
치료를 위해 악산현에 남겨졌던 곽진이었다.
“아직 회복이 덜 되셨을 텐데, 어찌 벌써 돌아오셨습니까?”
“걸어 다닐 만하니 나오지 않았겠느냐.”
“헤헤, 아무튼 다행입니다.”
큰 이상 없이 회복되고 있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누워 있는 모습만 보고 떠났다가 이리 마주하니 엄청 반가웠다.
“오자마자 듣게 된 소식에 많이 놀랐느니라.”
“흐흐…… 민망하네요.”
“백룡단 생도들과는 왜 싸웠다더냐?”
“음. 사소한 시비이기는 했는데, 제가 조금 과하게 날뛴 감이 있긴 하죠.”
소종천은 머쓱해하며 뺨을 긁적거렸다.
어색하게 웃는 소종천을 보며 곽진은 피식하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낭중지추라. 주머니에 송곳을 넣었으니 뚫고 나오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 재능이 너무 뛰어난 아이라 주변의 시기를 사지 않을 수 없음이니.’
언제나 그랬듯이 소종천에 대해서는 후한 판단을 내리는 곽진이었다.
“답답하겠지만 조금만 참고 있거라. 내 빨리 나올 수 있도록 힘을 써볼 터이니.”
“앗. 감사합니다, 교관님!”
소종천은 반색하며 외쳤다.
‘그래도 내 뒷배가 아주 없는 건 아니네. 나름 발언력 있는 교관님에게 예쁨을 받고 있으니.’
짧은 잡담이 오고 갔다.
막 복귀하느라 먼 걸음을 했고 아직 온전히 회복되지도 않은 탓에, 피로감을 느낀 곽진은 적당히 대화를 마무리했다.
“그럼 이만 가보마. 또 사고 치지 말고 얌전히 있거라.”
“하핫, 여기서 사고 칠 일이 뭐가 있겠습니까? 제 걱정하지 마시고 푹 쉬십시오.”
곽진을 보내고 소종천은 다시 바닥에 주저앉았다.
‘교관님도 돌아오셨고, 저리 말씀하셨으니 금방 나갈 수 있겠지.’
궁금함에 손이 근질근질하긴 했지만, 일단 영웅 뽑기는 밖으로 나가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시도하기로 했다.
가능하면 아예 안전하게 외출 신청을 하던가 해서, 학관을 벗어난 뒤에 알아보는 것이 좋을 듯싶다.
아무도 없는 징계동에서의 하루가 지나갔다.
“너무 심심하잖아…….”
아침에 눈을 뜬 뒤로 쭉 무료함에 시달리던 소종천은,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참으며 땅이 꺼지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매번 하던 권법의 수련조차 좁은 독방에서는 하기가 어렵다.
찍찍!
창살 앞에서 시궁쥐 한 마리가 주둥이를 까딱거리며 이쪽을 쳐다보는 모습이 보였다.
“뭘 봐! 저리 안 꺼져?”
괜히 신경질을 부리고 땅을 치며 위협하자, 후다닥 도망가는 시궁쥐.
하지만 금방 되돌아와 다시 소종천을 바라보며 콧구멍을 벌름거린다.
그것도 동료를 데려왔는지 이번에는 두 마리다.
찍! 찌직!
‘아, 괜히 열 받네.’
주변을 두리번거린 소종천은 손톱만 한 돌 부스러기를 발견하고 주워들었다.
손가락 끝에 올려놓고 잘 조준한 뒤, 내력을 담아 튕겨낸다.
쩻!
“오.”
정확하게 날아간 돌조각이 목표물의 머리를 세차게 강타했다.
외마디 비명과 함께 축 늘어진 채 경련하는 시궁쥐를 보며, 소종천은 쾌감을 느끼고 휘파람을 불었다.
심심해서 죽을 것 같은 시간 속에서 그나마 오락거리 하나를 찾은 것 같다.
찌짓!
건물 안에는 돌아다니는 쥐가 굉장히 많았다.
다시 돌 부스러기를 찾아 방 안을 둘러보던 소종천은, 탄환으로 쓸 만한 마땅한 재료를 찾지 못해 인상을 찌푸렸다.
‘뭐가 없나?’
바닥을 훑다가 문득 고개를 드니 살짝살짝 금이 간 벽이 눈에 들어온다.
조금만 깨서 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주먹을 들어 올렸다가 멈췄다.
설마 그럴 리는 없겠지만, 벽이 부서지거나 한다면 큰일이다.
‘그러고 보니 조법이 있으니까…….’
마침 쓸 일이 없다고 생각했던 백량조가 떠올라 갈라진 벽을 향해 손가락을 내밀었다.
성취도가 낮으니 위력이 강하지 않아, 적당히 부스러기만 긁어내기에 딱 안성맞춤이었다.
“흐흐…… 이 쥐새끼들, 다 뒤졌다.”
돌조각들을 챙긴 소종천은 창살 너머로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는 시궁쥐들이 보일 때마다 손가락을 튕겼다.
당연한 말이지만 빠르게 움직이는 쥐를 맞추는 것은, 가만히 서 있는 목표를 노리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소종천은 빗나가는 일 하나 없이, 깔끔하게 시궁쥐들의 몸에 돌조각을 박아 넣었다.
‘나한테 이런 재능이 있었다니!’
크기와 형태가 제각각인 부스러기를 이리 정확하게 쏘아 보낼 수 있다는 것에, 스스로도 굉장히 감탄했다.
딱히 실용성이 있어 보이는 재능이 아니라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내가 당문 출신이었다면 암기도 잘 날렸을 거 같은데. 이거 전공을 잘못 선택한 거 아냐?’
실없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가벼운 발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풀려나는 건가 싶어 기대를 가지고 쳐다봤는데, 그쪽 일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이었다.
‘어라.’
정확히는 매일 질리도록 보던 한사혜였다.
대나무를 엮어 만든 통 하나를 안아든 한사혜가, 소종천이 갇힌 방 앞으로 다가왔다.
“……여기는 왜 왔어?”
수감실의 창살 안쪽이란, 아는 사람과 얼굴을 마주하기에는 매우 겸연쩍은 자리다.
괜히 어색한 기분에 옷자락 위로 손바닥을 비비며 바라보고 있자니, 한사혜가 통 안으로 손을 넣어 무언가를 꺼내 들었다.
“엇!”
만든 지 얼마 되지 않았는지,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큼지막한 만두였다.
징계동에 들어올 때 반입된 맛대가리 없는 벽곡단을 억지로 먹으며 지냈던 소종천은, 침을 꼴깍 삼키며 참기 어려운 욕구를 느꼈다.
고작 하루가 지났을 뿐이지만 뭐라도 다른 음식이 먹고 싶던 차였다.
“그, 크흠! 고맙다.”
창살 안으로 넘어온 한사혜의 손을 양손으로 꼭 쥐며, 감사의 말과 함께 만두를 넘겨받았다.
매번 별 이유도 없이 따라다니는 게 영 부담스럽게 느껴졌었는데, 이렇게 보니까 아주 선녀 같다.
감동한 얼굴로 만두를 씹고 있자니, 슬쩍 떨어진 한사혜가 벽에 등을 기대고 쪼그려 앉는다.
무표정한 얼굴로 말없이 이쪽을 주시하는 모습에, 허겁지겁 만두를 뜯어 먹던 소종천은 괜히 민망한 기분이 들어 고개를 돌렸다.
‘쟤도 참…… 이상한 짓만 안 하면 괜찮은 녀석인데.’
물론 소종천이 남 말할 처지는 아니지만, 원래 본인의 행동거지는 스스로 파악하기 어려운 법.
소종천은 만두를 씹어 삼키며 곁눈질로 한사혜를 살폈다.
원래부터 외모 하나는 돋보이던 녀석인지라, 허름하게만 여겨지던 주변의 공간이 한층 화사해지는 느낌이다.
얌전히만 있어 주면 화보가 따로 없다.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쥐 사체들이 분위기를 상당히 깨긴 했지만.
“야.”
“응.”
“이건 고맙긴 한데.”
“응.”
한사혜의 얼굴을 살피던 소종천이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이제 와서 말하기도 좀 그렇지만, 그…… 평소에 나를 너무 따라다니는 거 아니냐?”
“응.”
“아니, 응이 아니라. 무슨 이득을 보겠다고 그러는지 묻는 거잖아.”
이득이 생겨야만 움직이는 몸이 되어버린 소종천의 발언에, 한사혜는 머리가 살짝 옆으로 기울어졌다.
“…….”
갸우뚱.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 같은 모습.
한참을 갸웃거리던 한사혜는 약간 자신 없어 하는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친구?”
“엥?”
맥 빠지는 대답에 소종천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별다른 소통 없이 몇 번 치고받기나 한 게 전부인데, 거기서 무슨 우정이 피어날 부분이 있단 말인가?
‘무슨 애정결핍에 친구 하나 없이 자란 것도 아니고.’
정답에 매우 가까웠지만, 이내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지웠다.
본인도 어디 가서 사람들과 잘 어울린다고 할 수 있는 성격은 아니니, 남한테 뭐라 할 처지는 아니긴 하다.
학관의 생도들은 대부분이 나름대로 잘 먹고 잘사는 집의 자식들이지만, 그렇다고 모든 이가 고충 하나 없이 자라진 않았을 터.
‘하는 짓이 특이하긴 해도 딱히 나한테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고. 뭐…… 친구 비슷한 거라고 생각해도 되겠지.’
소종천은 피식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 친하면 붙어 다닐 수도 있긴 하지. 뭐 그렇다고 해두자.”
긍정적인 대답에, 한사혜의 얼굴에 안도감이 서렸다.
“…….”
“…….”
적막한 침묵이 이어졌다.
괜히 그런 말을 하고 나니까 더 어색해진 기분이다.
“거…… 괜찮으면 그 쥐들 좀 치워줄래?”
“응.”
뭐라도 말을 꺼내야 할 거 같아 눈에 보이는 시체들을 가리키자, 한사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대나무 통 안에 쥐들을 주섬주섬 담았다.
‘아니, 그…… 거기 담아도 상관없는 건가?’
그래도 방금까지 음식을 담아왔던 통인데.
뭐라 말은 못 하고 떨떠름하게 쳐다보고 있자니, 주변을 깨끗하게 정리한 한사혜가 소종천을 돌아보며 말을 건넸다.
“구워줄까?”
“뭐? 아니, 미친! 갖다 버리라고!”
기겁하며 외치자, 한사혜는 묘한 눈빛으로 입을 오물거리다가 몸을 돌렸다.
“갈게.”
“아, 그래. 만두는 고마웠어.”
뭔가 더 하고픈 말이 있던 거 같긴 하지만, 굳이 붙잡아 묻진 않았다.
태연하게 쥐를 굽니 마니 하는 걸 보니, 무슨 소리를 또 듣게 될지 꺼림칙했기 때문.
한사혜를 떠나보내고, 소종천은 다시 쥐잡기 놀이에 열중했다.
쌓여 있는 시체를 치워준 덕분인지 슬슬 활동이 뜸해지던 쥐들이 다시 돌아다니기 시작했기에, 그럭저럭 심심하지 않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삼 일째가 되던 날.
우르르륵! 쩌저적.
“억?”
조심스럽게 판다고 건드렸는데, 갑자기 벽이 허물어졌다.
거기에 더해 천장마저 금이 쩍쩍 가며 갈라지더니, 당장에라도 무너져 내릴 법한 조짐이 보였다.
‘으악! 공사를 얼마나 부실하게 한 거야!?’
돌 쪼가리 몇 개 긁어냈다고 방이 무너지는 것은 너무하지 않나.
가만히 있다간 그대로 잔해에 깔리게 생겼기에, 소종천은 나무 창살을 들이받아 부수며 방에서 뛰쳐나왔다.
그러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곧바로 붕괴가 멈춘다.
“……?”
소종천은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았다.
무너진 것은 삼화토로 마감한 흙벽의 일부일 뿐이고, 뼈대가 되는 굵직한 목조 기둥들은 그대로 멀쩡하게 잘 맞물려 있다.
“음.”
하긴 아무리 그래도 건물이란 게, 벽 조금 긁어냈다고 쉽게 무너질 리가 없긴 하다.
머리를 긁적거린 소종천은 엉망이 된 입구에 시선을 두고 허탈하게 웃었다.
“주옥 됐네.”
어떻게 변명하면 좋을지 머리가 아파져 왔다.
뽑기로 무림최강 53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