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54
30. 영웅 뽑기(2)
“아이고 손님! 자리가 부족하니 합석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주문한 음식을 쟁반에 담아온 점소이가 굽실거리며 상을 차린다.
사내가 손을 내밀어 점소이를 막으며 입을 열었다.
“그럴 필요 없다. 여기 이 녀석은 다른 곳으로 가겠다는군. 가서 경장육사에 분주나 한 병 내오거라.”
“예……?”
점소이가 난처한 얼굴로 두 사람의 눈치를 살폈다.
이름도 알지 못하는 자칭 대선배가, 소종천의 맞은편에 앉으며 말을 이었다.
“나는 누가 밥 먹을 때 앞에 앉아 있으면 영 거슬려서 말이야. 뭐 바닥에서 먹겠다고 한다면 그 정도는 양보해 주도록 하지.”
턱짓으로 아래를 가리키며 이죽거리는 사내.
혹시 양보라는 단어의 의미가 자신이 아는 것과 다른 건가 곰곰이 생각해 본 소종천은, 이윽고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당연히 밖으로 나가려는 것이라 생각하며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사내에게로, 소종천의 목소리가 전해졌다.
“우리 대선배님. 지랄이 너무 심하시네.”
“……무, 뭐?”
뭔가 잘못들은 건가 싶은 표정을 하고 있는 사내를 뒤로하고, 소종천은 한 차례 더 입을 열며 가게 바깥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진솔한 대화 좀 하게 따라 나오세요. 이 새꺄.”
입을 뻐끔거리며 소종천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사내의 얼굴이 금방 붉으락푸르락해졌다.
“이, 이이…… 이런!”
화가 솟구쳐 제대로 말도 꺼내지 못하던 사내가, 바깥으로 사라진 소종천을 쫓아 신형을 날렸다.
가게 밖으로 뛰쳐나오는 사내를 보며, 소종천은 담담하게 몸을 풀었다.
‘그래. 그냥 넘어가면 섭섭하지.’
시야 한구석에 보이는 숫자를 곁눈질하며 피식하고 웃음을 흘렸다.
[39분 47초.]영웅 뽑기의 시간은 아직 충분히 남아 있다.
그리고 마침 힘을 시험해 보기라도 하듯 적당한 상대까지 구해진 상황.
소종천은 씩씩거리며 앞에 선 사내의 수준을 가늠해 보았다.
굳이 감정을 할 필요도 없이 느낌이 온다.
‘일류 수준. 그중에서 중간은 가겠네. 하는 짓은 양아치 같아도 일단은 대문파 출신이란 말이지.’
현 무림의 정파 세력 중, 영향력의 크기로는 세 손가락 안에 들어간다는 무당.
그런 대문파의 제자이니 인성은 그렇다 쳐도 무위가 떨어질 리는 없다.
‘내가 생각하는 무당파는 과거의 소림 못지않게 공명정대한 정파의 기둥인데.’
무인이라 해도 근본이 도가인 문파인데 어째서 저런 놈이 있는 건지 의문이긴 하다.
이걸 때 묻은 현실이라고 해야 하는지, 아니면 저 작자만 저따위로 구는 건지 지금으로썬 알 수 없었다.
“눈치가 없는 게 아니라 이제 보니 정신이 나간 놈이었구나. 혹시 오늘만 살기로 작정한 것이더냐?”
들려오는 상대방의 목소리에, 소종천은 잡생각을 지우고 그와 시선을 마주했다.
사내가 검을 빼 들고 소종천의 얼굴을 살피며 물었다.
“귀살검객 전우해. 네놈을 벌해줄 대무당파에 속한 어르신의 이름이다. 그래, 너는 대체 어디서 굴러먹던 놈이더냐?”
“뒷배가 걱정되시나? 딱히 출신문파 같은 건 없…….”
말하는 도중 잠시 멈칫거린 소종천이 다시 입을 열었다.
“음. 소림의 후예라고 합시다.”
이제는 소림과 연관이 없다고 말하는 게 더 이상한 수준이 되었기에, 그냥 아예 대놓고 소림을 언급하기로 했다.
“뭣? 소림? 소오오림? 하, 하하하하!”
소종천의 발언에 전우해는 크게 웃음을 터뜨리더니, 이내 안색을 딱딱하게 굳혔다.
“정말로 미친놈이었군.”
차라리 이름도 모를 삼류 문파였다면 그러려니 했을 것이다.
무문으로서의 소림은 사라졌지만, 불가의 정종으로서의 소림은 여전히 유명하다.
전우해는 과거의 소림이 자신의 사문과 비견되는 문파였다고, 이야기로나 들어서 알고 있긴 했다.
하지만 그 말이 사실이라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이 태어나기도 전의 일일 뿐.
그에게 있어 소림이란 그저 불도(佛道)의 교법을 설파하는 집단의 하나일 뿐이지, 감히 대무당파의 이름 앞에 무문이라 내세울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하긴 제정신이었다면 존장을 이리 모욕하지도 않았겠지. 내 너를 처벌하고 학관에 찾아가 사정을 알리겠다.”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듯, 전우해의 검이 소종천의 왼손을 노리고 찔러졌다.
소종천이 오른손잡이인 것으로 보여, 반대편의 손목 하나를 끊어내는 정도로 처벌을 내릴 생각이었다.
전우해는 겨우 손목 하나로 용서를 해주는 자신을 매우 자비롭다 여기며 검초를 펼쳤다.
슉!
검이 허공을 갈랐다.
“엇!?”
설마 공격이 빗나갈 거란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던 전우해가 놀라서 소리를 내뱉었다.
“학관 내에서 똥군기 잡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는데. 바깥에서까지 이런 거로 엮이다니, 거참 징그럽네.”
가볍게 검격에서 벗어난 소종천이 소림오권의 형을 취하며 전우해에게 달려들었다.
“이놈이!?”
까가강!
검초와 권초가 섞여들며 충돌의 순간마다 불똥을 튀긴다.
백변통검의 힘이 깃들어 내력이 증폭되어 있는 지금, 소종천은 충분히 일류의 고수를 맞상대할 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물론 무의 경지라는 것이 내공의 많고 적음으로만 실력을 가릴 수는 없는 법이지만, 하필 공교롭게도 백변통검은 무당파 출신의 무인.
같은 사문인 전우해와는 동류의 무공을 익혔기에, 상대하기가 굉장히 쉬워질 수밖에 없었다.
‘양의태극검의 사 초식이다. 세 치 더 내려온 후 변화할 테고, 손목이 아래로 두 푼 꺾였으니 기문혈을 찌르겠단 거네.’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며 눈에 보이는 정보들을 백변통검의 경험과 연결해 해석한다.
‘구궁보를 밟으며 육 초식으로 연계. 어깨가 뒤로 두 치나 빠졌는데? 현허칠성검법으로 전환하려는 거군.’
하나부터 열까지 다음 동작과 의도가 뻔히 보이니, 패배하기가 더 어려울 정도.
검을 휘두르는 전우해는 그야말로 미칠 지경이었다.
하급 생도에 불과한 상대가 자신의 검속을 따라붙는 것도 말이 되질 않는데, 거기에 더해 완벽하게 파훼법을 알고 있다는 듯이 검초의 흐름을 툭툭 끊어낸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마치 무당파의 무공에 통달한 사람이라도 되는 것 같은 대응이 아닌가.
이런 답답한 감각은 항렬이 더 높은 사숙들과 비무할 때나 경험해 본 느낌이었다.
어처구니가 없지만 일단 내력으로라도 짓누르려 했는데, 상대에게는 그마저도 통하지 않았다.
“너, 너! 대체 뭐냐!”
느껴지는 기운은 절대로 일류의 수준이 아닌데, 검과 권이 맞부딪힐 때마다 전해지는 반탄력은 오히려 자신보다 내력이 깊어 보였다.
영웅 뽑기로 부여되는 내공의 보조는 타인이 감지할 수 없기 때문이었으나, 전우해로서는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다.
당혹감에 젖은 전우해의 복부로 소종천의 권이 파고들었다.
“컿!”
정신이 아찔하다.
머릿속으로 오만가지 생각이 다 스쳐 지나갔다.
‘내가 진다고? 새파란 후배 놈한테?’
있어선 안 될 일이다.
전우해는 필사적인 의지를 담아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죽엇!”
흉흉한 살기를 풍기는 검이 소종천의 급소들을 노리고 찔러 들어온다.
상대가 보여주는 노골적인 살의에, 소종천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그 정도로.”
뻑!
주먹이 얼굴을 깊숙하게 파고든다.
“죽겠냐!”
“끄악!”
위력적인 살초들이기는 하다만, 뻔히 눈에 보이는 공격에 당해줄 리 없다.
전우해가 비틀거리며 뒷걸음질 치다가 넘어진다.
그대로 발을 내질러 전우해를 쓰러뜨린 소종천은, 바닥에 몸을 누인 상대의 위로 올라탔다.
적당히 봐줘야 할 필요 따윈 느끼지 못했기에, 소종천은 신나게 전우해의 얼굴을 두들겼다.
부러진 이빨이 튀어나오며 금세 전우해의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었다.
“후우…….”
잠시 뒤.
축 늘어진 전우해를 보며 상대가 기절했음을 깨달은 소종천이,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웠다.
싱거울 정도로 쉽게 이겼다.
상대가 사용하는 무공을 전부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으니, 정답지를 보면서 문제를 푸는 것과 다를 바가 없었다.
수갑의 가죽부에 박힌 이빨 조각을 긁어내 떼고 있자니, 알림이 떠오른다.
[업적 점수 550점 상승.]상당량의 점수가 올랐다.
백변통검의 경험과 내력이 더해진 덕분이긴 했지만, 일류의 무인을 꺾은 것이니 그럴만하긴 하다.
‘1,100점이 됐네. 이제 어떤 형태인지 겪어봤으니, 아껴뒀다가 위험한 일이 생길 것 같을 때 써야겠구만.’
영웅 뽑기는 위기를 헤쳐 나갈 구명줄이 되는 수단이다.
업적 점수가 계속 이런 수준으로만 올라준다면 부담 없이 사용하고 다니겠지만, 분명 다음에 다시 일류의 무인에게 승리해도 이번보다 낮아진 점수를 받게 되리라.
‘그나저나 이놈은 어쩐다?’
기절한 전우해를 내려다보던 소종천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대로변에서 벌어진 칼부림에 구경하는 사람들이 꽤 모여들어 있다.
그렇지만 무인들끼리 시비가 붙는 경우는 딱히 특별할 것도 없는 일이기에, 승패가 갈리자 다들 관심을 끄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흠.”
소종천은 전우해를 끌어다가 대충 길 한편에 던져두고 몸을 뒤져보았다.
‘이 자식 때문에 시간과 심력을 낭비했으니, 수고비 정도는 챙겨도 되겠지.’
소림의 이름을 대놓고 한다는 짓이 흑도의 불한당이나 다름없었지만, 품위 없는 짓이라 지적해 줄 사람도 달리 없었다.
제법 묵직한 전낭을 찾아낸 소종천은,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그것을 챙겨 들었다.
“거, 후배 밥값이나 내줬다 생각하쇼.”
듣지도 못할 말을 내뱉어주고, 소종천은 휘파람을 불며 식당으로 돌아갔다.
싸움은 얼마 걸리지 않았지만, 소종천이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이라 여겼는지 자리는 이미 치워져 있었다.
“이런…….”
“엇!? 죄송합니다, 손님! 다시 음식을 내올까요?”
“빨리 좀 부탁할게요.”
“옙! 조금만 기다려 주십쇼!”
힘을 쓰느라 배가 더 고파졌기에 가볍게 재촉을 더했다.
조금 기다리긴 했지만, 곧 음식이 나왔고, 맛집이라 기대했던 만큼 만족스럽게 배를 채울 수 있었다.
계산을 하고 가게를 빠져나오는데, 옅은 탈력감이 들었다.
영웅 뽑기의 지속 시간이 다한 것.
몸 안에서 용솟음치던 내력이 사그라지자 꽤나 아쉬움이 들었다.
[내공 0.12 상승.] [심득 : 백변통검 양동하 획득.]그리고 그런 아쉬움을 달래주려는 듯, 괴상한 알림이 떠올랐다.
‘어라.’
내공 수치가 상승했다.
은색 영약만은 못하지만, 동색 영약보다는 높은 증가치.
게다가 심득이라는 정체불명의 무언가까지 얻었다.
‘심득? 뭐지? 강화 효과가 끝이 아니었던 건가?’
심득이라 하면 보통 어떤 경지나 무공의 발전에 대한 깨달음을 의미하는데, 내공의 증가 외에는 딱히 몸에 어떤 변화가 느껴지진 않는다.
뭔가 싶어서 갸우뚱거리다가 소지품창을 열자, 알림과 동일한 이름의 물품이 목록에 생겨 있는 것이 보였다.
‘굳이 소지품의 형태일 필요가 있나?’
의아해하며 사용을 시도하고 나자, 이유를 알게 되었다.
‘대상을 지정할 수 있잖아?’
본인이 아닌 타인에게 사용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정확한 효과는 몰라도 느낌상 해가 되는 건 아닐 것 같은데, 타인에게 쓸 일이 과연 있을지는 의문이긴 했다.
어쨌거나 일단 자세한 정보를 얻는 것이 중요하기에, 곧장 자신에게 심득이란 것을 사용해 보았다.
[동화율 적합 판정 : 하] [태극권 3성 습득.] [순양심법 1성 습득.]“아하. 이런 건가.”
비급을 사용했을 때와 비슷하게, 무공에 대한 정보들이 머릿속으로 흘러 들어온다.
소종천은 직감적으로 이해했다.
저 동화율 판정이란 것이 높은 등급일수록, 심득의 주인격이 되는 영웅에게서 더 많은 종류와 더 깊은 성취도의 무공을 받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무당의 태극권. 굳이 이쪽의 권법을 수련할 이유는 없어 보이고, 순양심법은…….’
새로 습득한 무공들을 살피던 소종천의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순양심법은 무당의 비전 중의 비전 심공인 순양무극공의 하위호환 격인 심법이다.
그리고 순양무극공은 심법으로서의 효과도 뛰어나지만, 동자공(童子功)의 일종으로 유명하기도 한 무공이었다.
지금 얻은 순양심법 역시 같은 계열의 무공이기에, 마찬가지로 동자공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
소종천은 냉큼 상점창을 열어 무공 합성서를 구매했다.
어차피 반야신공이 있기에 다른 심법을 돌릴 이유도 없고, 이 찝찝한 무공을 빨리 눈앞에서 치우고자 했다.
[태극권, 순양심법, 백량조.]세 개의 무공이 재료가 되어 소용돌이 저편으로 사라졌다.
딱히 등급이 높아 보이진 않은 무공들이기에, 소종천은 결과에 대해선 별 기대감이 없었다.
그런데.
‘헛! 이게 떴어?’
합성의 결과로, 생각지도 않은 무공이 나타나 주었다.
뽑기로 무림최강 5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