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56
31. 무림출두(2)
아무 일 없는 조용한 학관의 생활이 두 달가량이 지나갔다.
그간 일일 보상을 통해 사나흘에 한 번씩 시도한 인급 보물 뽑기는, 무려 17번 연속 무색 영약이라는 대단한 결과를 토해냈다.
‘이 정도면 확률 조작 아니냐?’
무색 영약이 나쁘다고 할 수만은 없지만,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는 가능성이 있으니, 괜히 손해 보고 있는 것 같아 기분이 찝찝하다.
그리고 오늘의 일일 보상을 통해 시도된 18번째 뽑기.
[동색 영약 당첨!]‘후, 드디어.’
간신히 무색 영약의 저주에서 벗어났다.
거기에 중요한 사실이 하나 더 있으니.
[내공 0.04 상승.]‘이제야 겨우 앞자리가 바뀌었네.’
내공수치가 3.00에 도달했다.
일류 무인의 기준이 되는 최소한의 수치인 30년 내공.
반야신공의 효과로 내공의 질이 다른 무인들보다 빼어난 것을 감안하면, 이제는 그럭저럭 고수의 반열에 발가락은 걸친 게 아닐까 싶은 느낌이다.
물론 무공들의 성취나 턱없이 부족한 실전 경험 등을 생각하면, 아직 일류 고수의 대접을 받기엔 부족하긴 하다.
‘그래도 소림오권이 6성을 찍어서 그럭저럭 수준은 갖춰지긴 했네.’
적어도 이제 학관 내에선 교관을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생겼다.
밑바닥 생도에서 반년가량 지나 이 정도로 성장했다고 하면 과연 누가 믿어줄까?
그렇게 자신감이 차올라 한껏 콧대를 세우고 있던 소종천은, 곽진에게 난데없는 제안을 받았다.
“내일 나와 함께 바깥에 잠시 다녀오자꾸나.”
“네? 어디를 말입니까?”
“호남에 다녀올 것이니라.”
“……예?”
호남과 강서가 맞붙어 있는 지역이긴 하지만, 성에서 성을 오가는 거리는 산책이나 다녀오자는 듯이 말할 정도는 결코 아니다.
뜬금없이 무슨 소리인가 싶어 놀라는 소종천에게, 곽진의 설명이 이어졌다.
“……용봉대전이요? 제가 말입니까?”
“신청절차는 이미 다 끝내두었느니라.”
처분을 맡기고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던 그 초대장이 이렇게 쓰일 줄이야.
‘끄응, 악산의 사건 때도 내 이름을 마음대로 올려두시더니, 그런 중요한 사안을 상의도 없이 처리하깁니까…….’
이미 신청이 끝났다니 따져봐야 소용없는 일.
정사연맹의 주관하에 치러지는 용봉대전은 후기지수들이 이름을 알릴 수 있는 가장 큰 무대이기에, 젊은 무인들에게 상당히 인기가 많은 대회다.
원래는 참가 조건으로 자잘한 제한들이 걸려 있지만, 초대장을 보유한 이상 30세 미만이라는 나이 제한만 지키면 문제가 없다.
“대회 일정이랑 호남까지 다녀오는 시간을 합치면 하루 이틀이 아닐 텐데요? 수업은 어쩌시고요?”
“휴가를 신청했으니 괜찮다. 연맹에 무인이 몇인데 임시 교관 하나 못 채우겠느냐?”
“어…… 교관님은 그렇다 쳐도 하급 생도인 저에게 그런 허가가 나옵니까?”
“다른 때라면 애매했겠지만, 지금은 외부 임무가 제한된 시기라 어떻게든 밀어붙일 수 있었구나. 다만 신분을 위장할 필요가 있느니라.”
“신분 위장이요……? 그거 진짜 괜찮은 거 맞습니까?”
“허허헛! 내일 보도록 하자꾸나.”
굉장히 수상한 느낌이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교관이 진행하려는 일을 거부할 만한 명분이 없었다.
‘대회참가라. 나이 제한이 있다지만 본선이면 못해도 일류급의 무인들이 나올 텐데?’
학관 생도들 한정으로는 패왕이 될 자신이 있지만, 그런 큰 대회에서 과연 1승이라도 챙길 수 있을까 싶다.
물론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긴 하다.
영웅 뽑기를 사용한다면 상대가 누구라도 한 번 정도는 이길 가능성이 생기리라.
다만,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는지는 또 의문이었다.
‘뭔가 보상이라도 걸려 있다면 모를까.’
그래도 그만한 대회라면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도움이 되긴 할 테니, 교관을 따라나서는 것 자체는 일단 나쁘지 않다고 본다.
장소 자체가 연맹의 본부가 위치한 호남이고, 그렇게 무인들이 몰리는 곳이라면 위험한 일이 생길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고 여겨졌다.
요양 기간을 거치며 몸을 완전히 회복한 곽진이 동행한다니, 안전에 대한 걱정은 접어둘 만했다.
적어도 학관에만 박혀 있는 것보단 확실히 나을 것이었다.
거기에 더하여.
[임무 발생!]등을 떠미는 임무까지 생성되었다.
[무명신인] [무림인들의 이목이 집중되는 커다란 행사인 용봉대전. 그곳에서 최대한 많은 이들의 기억에 남을 수 있도록 활약을 떨치십시오.] [보상 : 최종 대전 결과에 따른 차등 지급.]‘……이러면 또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네.’
임무의 내용을 보며 입맛을 다셨다.
정확한 보상 내용이 적혀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필 차등 지급이라니.
1승이라도 챙기기 위해 영웅 뽑기를 사용해야 할지 고민스럽게 만든다.
‘가서 보고 결정할 수밖에.’
명확한 답이 나오지 않는 문제이기에, 일단은 상황을 보기로 했다.
날이 바뀌고, 소종천은 곽진과 함께 학관을 빠져나갔다.
연맹의 본부는 호남성의 성도인 장사에 위치해 있고, 용봉대전 역시 연맹의 주관하에 열리는 대회인지라 그 근방에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장사로 향하는 동안, 소종천은 황룡단의 무복을 벗고 새로운 신분으로 변장을 해야 했다.
“그런데 굳이 왜 변장을 하는 겁니까?”
“네가 소림의 진전을 이었다는 것을 아직은 숨기는 편이 좋겠다고 여겼기 때문이니라.”
소림의 무공을 사용하는 자가 대전에 출현한다면 대부분은 그냥 신기하게 여기고 말겠지만, 분명 경계하는 이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과거에 이인자의 위치에만 머물러 있어야 했던 대문파들 중에는, 불편하게 여기는 반응을 보이는 이가 적지 않게 나타날 수 있다.
‘특히나 이 아이의 실력은 이미 또래 다른 아이들의 수준을 한참 웃돌기까지 하지 않은가.’
소림의 무공을 사용하는 학관의 하급 생도로서의 소종천은, 아직은 윗선에서도 단순히 별종 정도로만 여겨지고 있다.
하지만 용봉대전이라는 큰 대회에서 이름이 퍼져 더 윗선인 연맹 측에까지 주목받게 나면, 어떤 견제가 들어올지 모르는 일.
비록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꼴이 될지언정, 발뺌할 수 있는 시간은 최대한 벌어두는 것이 좋다.
‘적어도 완숙한 일류의 경지에는 들어서야 이 용담호혈에서 홀로 설 수 있게 될 터이니.’
곽진은 소종천이 소림의 무를 이었다는 이유 때문에 여러모로 불이익을 겪게 될 것이라 예상했다.
그렇기에 한 사람의 고수로 성장하기 전까지, 자신이 돌봐주고 싶다는 생각을 품고 있었다.
“이걸 쓰고 다니도록 하거라.”
“어! 이것은…….”
곽진의 손에서 무언가를 전해 받은 소종천의 눈이 파르르 떨렸다.
‘인피면구잖아!?’
무협 소설을 보다 보면 자주 등장하는 기물이다.
얼굴이 붙여 인상을 다른 사람처럼 바꾸는 용도로 쓴다는, 현대의 특수 분장 같은 물건.
“이거 진짜 사람 가죽으로 만드는 거 아닌가요?”
이런 흉악한 물건을 주다니.
꺼림칙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소종천을 보며, 곽진이 혀를 차며 대답했다.
“무슨 그런 끔찍한 소리를 하는 게냐? 당연히 가짜이니라.”
“아, 역시 그렇죠?”
잘 살펴보니 확실히 진짜 사람의 피부라고 보기엔 정교함이 많이 떨어진다.
“다른 사람의 흉내를 내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저 얼굴을 알아보기 어렵게 하기 위한 용도일 뿐이니라. 그리고 이것도 쓰도록 하고.”
인피면구도 모자라 아예 가면까지 받아들었다.
“이야…… 이렇게까지 합니까?”
“꼭꼭 숨겨야 졌을 때 덜 부끄럽지 않겠느냐?”
“아, 너무하시네.”
“자존심을 긁을 생각은 아니다만, 아마 한 번이라도 대전에서 이기기는 쉽지 않을 게다. 초대장이 있으니 참가를 이유로 빠져나올 수 있었다만, 주목적은 관람이라고 생각하자꾸나. 용봉대전의 참가자들의 시합이라면 네게 딱 도움이 될 만한 수준이라 할 수 있으니 말이다.”
비록 본인이 직접 참가를 신청하긴 했지만, 곽진은 소종천이 1승이라도 거둘 가능성은 현저히 낮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신분을 숨겼을 때의 장점이 거기에도 있다.
학관 생도에 불과한 어린 나이의 소종천이라면, 속칭 ‘졌지만 잘 싸웠다!’ 라는 분위기가 되어 주목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정확한 나이를 밝히지 않은 상태로 소림의 무공을 사용하여 패배한다면, 소림? 신기하긴 한데 별건 아니네. 라는 인식을 줄 수 있을 터였다.
아무런 칠도 되어 있지 않은 밋밋한 가면을 목 뒤로 걸고, 소종천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가면의 권사라. 대중들의 관심을 끌기는 좋겠네.’
정체를 숨긴 인물이 보기 드문 무공까지 사용한다면, 사람들의 관심을 받기에 딱 좋다.
물론 졌을 때의 야유는 그만큼 심해지겠지만.
“그런데 이렇게 신분을 숨기고 참가할 수가 있는 겁니까?”
“출신 문파만 공개한다면 괜찮다. 네 경우엔 화산의 이름으로 신원을 보증하기도 했으니 아무 문제가 없느니라.”
“……?”
‘장로시라고는 듣긴 했지만 그렇게 사문을 막 팔아도 되나?’
한번 죽을 뻔했다가 살아나서 그런지, 어째 점점 행동이 막 나가는 것 같은 곽진이다.
어쨌거나 뒤를 봐주는 어르신이 저렇게 말하니, 이번 일은 그냥 믿고 따르기로 한다.
장사에 도착한 소종천은 곽진의 뒤를 졸졸 쫓으며 주변을 구경하느라 눈이 바빠졌다.
원래도 성도답게 번화한 곳인데, 대전 시기까지 겹쳐 오가는 사람의 수가 엄청나게 많았다.
‘강해 보이는 무인들이 사방에 널려 있네.’
무인들을 대상으로 한 행사이다 보니, 일반인들보다 무인들이 더 많이 보이는 것 같았다.
혼자였다면 괜히 여기저기 헤매다가 사고를 치지 않았을까 싶다.
초대장을 통해 등록한 본선 진출자들은 미리 방까지 대여할 수 있도록 주최 측에서 배려를 해두었기에, 소종천은 딱히 고생이랄 것도 없이 대전 날짜를 기다릴 수 있었다.
“이름을 숨겨야 하기에 별호로 등록을 하였느니라.”
“저는 아직 별호가 없는데요?”
“그래서 알기 쉽게 소림권사라는 가칭으로 올려두었다.”
“아…… 그거 참 단순 명확하네요.”
너무 재미없는 이름이라 하품이 나올 것 같지만, 곽진에게 따질 수도 없는 노릇.
“앞으로는 호칭에도 주의하도록 하자꾸나.”
곽진의 말에 소종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신분을 숨긴 마당에 계속 교관이라고 부르는 것은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있다.
“그러면 어찌 불러야 좋을까요?”
“편하게 부를 수 있는 호칭이면 되지 않겠느냐.”
“할아버지?”
“……흔히들 칭하는 것처럼 노사 정도로 부를 줄 알았거늘.”
“아. 그, 그럴까요?”
“커흠! 어차피 임시일 뿐이니 좋을 대로 하려무나.”
“흐흐, 네.”
배정받은 숙소에 머무르며 대전 일정이 나오길 기다린 지 하루째.
“대전 참가자들은 대진표를 확인하십시오!”
대진표가 배부가 되었기에, 소종천은 그 안에서 자신의 상대를 찾아 확인했다.
‘한방애. 별호는 없고. 어? 무당파 출신?’
여기서 또 무당파가 나오다니?
소종천은 의아해하며 곽진에게 질문을 건넸다.
“초대장이라는 거, 한 문파에 몇 개씩이나 뿌리는 겁니까?”
“으음. 보통은 하나로 끝나지만 대형문파라면 몇 장 정도야 더 구할 수 있었겠지.”
초대장은 수량이 한정되어 있기에 진위 여부를 판별할 수 있는 번호 표기가 되어 있지만, 지급대상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라서 양도가 가능하다.
연맹에서 큰 영향력을 확보한 무당파쯤 되는 곳이라면, 초대장을 더 구할 수 있는 수단이야 충분히 갖추고 있을 터.
“하필, 네 상대가 무당파라니. 이것 참 재미있는 상황이구나. 허허!”
곽진이 수염을 쓰다듬으며 웃음을 흘렸다.
무당파의 무인에게 강탈한 초대장으로 대전에 참가했는데, 첫 상대가 또 무당파라니.
인연이 꽤 길게 이어지는 모양이다.
무당파의 입장에선 악연이겠지만, 소종천에게는 아주 좋은 기회라 할 수 있었다.
백변통검의 능력은 사라졌지만 경험했던 기억까지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양의태극검과 현허칠성검법을 사용한다면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은데?’
특히나 감각만큼은 뛰어나게 발달되어 있는 소종천은, 한번 몸으로 겪었던 무당파의 무공에 대해선 어렵지 않게 대응할 자신이 있었다.
“무당파 놈들이 으스대는 꼴을 보고 싶진 않았다만, 져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니 적당히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내려오도록 하거라.”
“무슨 그런 말씀을.”
곽진의 말에 소종천은 씩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충분히 이길 가능성이 있으니까 응원해 주십쇼.”
뽑기로 무림최강 57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