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57
32. 용봉대전
대회가 열리는 당일이 오기까지, 소종천은 하루 종일 명상에 매달렸다.
영웅 뽑기의 힘이 깃들었을 때의 감각을 열심히 되새기며, 전우해와 싸우며 겪었던 무당파의 검법들을 반복적으로 떠올린다.
백변통검의 지식은 사라졌지만 전우해의 검초를 상대했던 기억은 온전히 본인의 것이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그 대선배 놈을 더 오래 상대하면서 자세히 살펴볼걸. 그 부분이 조금 아쉽네.’
양의태극검과 현허칠성검법의 모든 검초를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기본적은 틀은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으니 충분히 도움이 될 터였다.
곽진은 소종천의 대답을 어린아이의 치기 정도로 여기고 웃어넘겼지만, 소종천은 정말로 상대를 이겨볼 만하다고 생각했다.
[일일 접속 보상을 지급합니다.] [보상 30금 당첨!]그리고 그 생각은 대전 당일 더욱 확실하게 굳혀졌다.
일일 보상으로 금을 받으며 지급 보물상자를 깔 수 있는 재화가 모였다.
[은색 영약 당첨!]‘오, 운이 따라주네.’
내공이야 오르면 오를수록 이득인 것이기에, 기분 좋게 고개를 끄덕이며 결과물을 감정했다.
[알 수 없는 내단] [어떤 영물의 내단인지는 알 수 없으나 굉장히 복잡한 성질의 기운이 불안정하게 뭉쳐 있어, 제대로 흡수하기는 어려울 것이 확실해 보인다.] [내공 증가치 0.06-0.09] [일시적 내공 증가치 0.63-0.68] [지속 시간 72시간]소종천은 설명을 읽으며 쾌재를 외쳤다.
‘기간제 강화 효과다!’
영구 증가폭은 일반 은색 영약의 삼분지 일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반대로 일시적인 증가폭은 세 배 정도에 달한다.
장기적으로 보면 당연히 평범한 영약이 더 좋은 물건이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오히려 이런 특수 영약이 도움이 되었다.
‘대회에서 활약하라고 등을 떠밀어 주는구만!’
“슬슬 첫 시합이 시작하겠구나. 안목을 넓힐 기회이니 슬슬 움직이도록 하자꾸나.”
“아, 옙!”
소종천은 곽진의 뒤를 따라 자리를 옮겼다.
커다란 대회이고 많은 사람이 모여드는 행사이기에, 여기저기서 통제하는 인원이 꽤 많았다.
시합을 구경할 수 있는 어지간한 자리는 죄다 사람이 차 있었지만, 화산파의 장로라는 위치에 있는 곽진이 연맹 주관의 대회에서 자리 하나 만들지 못할 리도 없었다.
두 사람은 금방 전망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역시 뒷배가 있으니 매사에 편해지네. 학관 놈들이 그따위로 구는 것도 현실적으로 생각하면 이해하지 못할 건 아니란 말이지. 아니꼬워서 부딪히게 되는 건 또 별개지만.’
각지에서 모인 젊은 실력자들이 무를 겨루는 자리.
뽑기를 통해 남들보다 훨씬 단축된 시간에 무위를 올리긴 했지만, 필연적으로 전투의 경험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소종천이다.
비슷하거나 한 수 뛰어난 이들의 비무는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꽤나 공부가 되었다.
“슬슬 가보겠습니다.”
이어서 소종천의 출전 순서가 다가왔다.
“오냐. 다시 말하지만, 전혀 무리할 필요가 없으니 위험하다 싶으면 기권을 해도 좋으니라.”
괜히 심한 부상을 입어서 남은 경기조차 관람하기 어려워지면, 대전에 참가한 목적이 본말전도가 된다, 라는 것이 곽진의 생각.
“염려 붙들어 매시라니까요.”
그런 곽진의 걱정에, 소종천은 씨익 웃어 보이며 자리를 떠났다.
앞선 시합이 끝나 잠시 소강상태가 지난 후.
심판의 호명에 따라 소종천이 무대 위로 향했다.
편의상 청군과 백군으로 분류가 나뉜 출전자들에게, 같은 색상의 끈이 지급되었다.
지급된 백색 끈을 팔에 맨 소종천이 무대 위로 오르자, 관중들이 수군거린다.
“뭐야 저 가면은?”
“특이한 녀석일세. 관심을 끌어보겠다는 수작인가?”
무인들 대다수가 자신의 이름과 얼굴을 알리기 위해 대전에 참여한 만큼, 가면을 쓴 소종천의 차림은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행색이었다.
그리고 그런 술렁임은, 심판의 소개가 이어지며 더욱 커지게 되었다.
“청군! 무당파의 검수! 한방애! 이어서…… 으음?!”
눈살을 찌푸리며 잠깐 머뭇거린 심판이 다시 입을 열었다.
“백군! 이름 불명! 소림권사!”
사람들의 시선에 의문이 서린다.
“소림?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푸하핫! 거 불심이 깊은 친구인가 보이.”
“쯔쯔, 출신과 이름도 밝히지 않고 뭐하자는 건지 모르겠군.”
구경꾼 대부분이 소림권사라는 명칭을 진지하게 여기지 않았다.
무림에서 소림의 이름이 언급되지 않게 된 것이 고작 반세기 정도가 지났을 뿐이다.
물론 그것이 가볍게 여길만한 세월은 아니었으나, 천년소림의 영화가 전부 사라지기에는 짧게 느껴지는 시간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가장 위대한 무문이었던 소림의 이름은, 너무나 쉽게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잊혀져 있었다.
시끄럽게 웅성거리는 관중들의 소리를 들으며, 소종천은 맞은편에 오른 무인에게로 시선을 주었다.
스물을 갓 넘었을까 싶어 보이는 외모의 남성.
본선 참가자의 대부분이 이십 대 중반쯤 되는 걸 생각하면, 어린 축에 속하는 참가자다.
‘나한테는 고마운 일이지.’
경험이 많은 무인보단 적은 쪽이 상대하기 더 수월할 터.
소종천은 감정경을 통해 상대의 정보를 확인했다.
[이름 : 한방애] [별호 : 없음] [재능] [오성 7.33] [근골 8.08] [감각 6.14] [내공 3.06] [무공] [순양심법 10성] [태극권 5성] [삼재검법 9성] [구궁보 8성] [양의태극검법 7성] [유운신법 7성] [육양심공 2성] [현허칠성검법 5성] [제운종 3성] [감정 관계] [비호감, 경계]‘내공이 3.06? 흐흐…… 이건 무조건 이긴다.’
소종천은 승리를 확신했다.
인물 정보를 봐서는 자신이 꿀릴만한 요소가 전혀 보이질 않는다.
[내공 0.08 상승.] [내공 0.65 일시적 상승.]아침에 뽑아둔 영약을 사용했다.
이제 소종천의 내공 수치는 3.08, 거기에 일시적 상승 효과까지 더해 3.73이다.
게다가 상대의 주력 무공도 예상했던 대로 양의태극검과 현허칠성검.
한번 경험했던 검법들이고 계속 머릿속으로 검초의 파훼법을 떠올려왔으니, 어렵지 않게 상대할 자신이 있었다.
‘그나저나 그 순양심법을 익혔네. 강제 고자행인 놈이잖아?’
자신감에 차 상대를 보던 소종천의 눈빛에 약간 안쓰러운 감정이 섞여들었다.
그런 시선을 감지한 한방애가, 굉장히 불쾌한 기분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엄숙해야 할 용봉대전에서 그따위 광대놀음이나 하고 있다니. 부끄러운 줄 아시오.”
“맞아, 부끄러워. 그러니까 빨리 끝내고 내려가게 협조 좀 합시다.”
“하! 그리 원한다니 바로 떨어져 나갈 수 있도록 전력을 다해주겠소.”
한방애가 검을 내밀며 날카로운 기세를 풍겼다.
소종천 역시 소림오권을 준비하며 내력을 끌어올렸다.
‘간 볼 필요도 없지. 강권으로 밀어붙여서 빠르게 제압하자.’
굳이 수비에 치중할 이유가 없으니 바로 호권의 형을 취했다.
내공에서 앞서고 있고 상대가 어떤 검초를 펼칠지도 짐작이 가기에, 힘으로 찍어 누르기에는 더없이 적합한 상대다.
초반을 유리하게 가져가면 그대로 승기를 굳힐 가능성이 높았다.
준비가 됐다고 여긴 심판이 시작 신호를 보냈다.
신호와 함께 두 사람이 동시에 상대방을 향해 달려들었다.
‘됐어.’
소종천이 가면 아래로 보이지 않는 미소를 지었다.
만약 상대가 사용하는 초식이 이전에 경험했던 것과 달랐다면, 조금 더 신중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구궁보와 결합된 투로를 따르며 찔러오는 상대의 검초는, 이미 한번 전우해를 통해 봤었던 것과 판박이라 해도 좋을 정도로 일치했다.
오형 중 가장 투박하지만 제일 위력적인 호권의 초식이, 양의태극검의 검로를 파고들었다.
“헙!”
강맹한 기운을 품고 다가오는 권격에, 한방애는 경악성을 터뜨리며 수비초식으로 전환함과 동시에 퇴보를 밟았다.
몸에 익은 대로의 규범적인 행동이었으나, 차라리 피하지 않고 일격씩 교환하는 편이 나았을 터였다.
있는 힘껏 내력을 쏟아부은 주먹이 한방애의 검을 후려갈겼다.
까앙!
“큭!”
영약으로 인해 증가된 소종천의 내력은, 양으로만 따져도 대회 참가자들의 평균치를 살짝 넘어서는 수준이다.
거기에 질에서도 앞서고 있으니, 수세에 몰린 한방애가 압박을 떨쳐내고 반격의 기회를 잡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오호. 우스꽝스러운 차림과 달리 상당히 매서운 주먹질인데?”
“너무 단순해 보이긴 한데, 위력은 있어 보이는군.”
“권법은 둘째 치고 기회를 기가 막히게 잡았어. 미리 노리고 있던 것처럼 상대의 검초를 가볍게 파고들었잖아?”
“짜고 맞춘 합이 아니었다면 저런 광경이 나오기도 어려울 텐데 말이지.”
관중들이 이러쿵저러쿵 평가를 하는 동안에도, 소종천의 주먹은 쉬지 않고 한방애의 검을 두드렸다.
쾅! 콰앙!
난폭한 권력이 계속 몸 안으로 파고들자, 한방애의 안색이 거뭇하게 죽어갔다.
“크악!”
쏟아지는 권격을 막아내며 버티던 한방애가, 소리를 지르며 발악적으로 반격을 시도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소종천의 눈에 익은 초식이었기에, 결국 명치에 주먹이 꽂히게 되고 말았다.
몸이 허공으로 붕 떠오른 한방애가 나가떨어지며 바닥을 굴렀다.
“으으…….”
“백군! 승!”
의식은 있지만 제대로 몸을 세우지 못하고 엎어져 있는 한방애를 보며, 심판이 판정을 내리고 시합 종료를 선언했다.
관중들이 보기엔 소종천이 강했다기보다는, 한방애가 영 맥을 못 추다가 당해버린 것처럼 보이는 심심한 싸움이었다.
사람들이 형식적으로나마 쳐주는 박수 소리를 들으며, 소종천은 무대를 내려왔다.
[업적점수 370점 상승.]‘흠. 얼마 안 오를 줄 알았는데, 제법 오르네?’
딱히 강한 상대도 아니고 싱거운 싸움이었기에, 업적점수가 오르긴 할까 싶었다.
그런데 대회라는 특수성이 더해진 덕분인지 생각보다 점수가 많이 올랐다.
업적 알림을 보며 만족스러워하는 소종천.
그리고 그런 소종천의 앞으로, 싸늘한 인상을 한 몇몇 무인들이 다가와 길을 막아섰다.
옷차림이나 풍기는 기운을 보아하니, 위에 쓰러져 있는 한방애와 같은 무당파의 무인들로 짐작이 되었다.
“이런 좀스러운 놈! 강호의 도리가 땅에 떨어졌구나!”
그중 한 사람이 대뜸 비난의 말을 던진다.
“선배 된 무인이 어찌 후배에게 최선을 다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그리 포악하게 행동한단 말인가!”
“그런 짓이나 하려고 얼굴을 가린 모양이지!”
한 사람이 입을 열자 다른 이들도 한 마디씩 던지며 성을 냈다.
무당파의 무인들 입장에서는 간신히 본선에 진출할 자격을 얻은 자신들의 막내가, 제대로 무공을 선보일 새도 없이 무참하게 패배한 것이다.
한방애의 나이가 참가자들 중 어린 편에 속하다 보니, 다들 소종천이 그보다 나이가 많은 무인일 거라 짐작했다.
그렇기에 괜히 트집을 잡으며 화풀이를 하기 위해 온 것.
‘아니, 싸움에서 상대방한테 무슨 기회를 줘? 뭔 개똥 같은 논리인지 모르겠네.’
물론 소종천의 입장에서는 상대할 가치도 없는 개소리들이었다.
“뭐라는 거야. 거, 길 막지 말고 비키십쇼.”
“이, 이놈!”
“무례하다!”
소종천의 태도에 무당파의 무리들은 더욱 목소리를 높이며 화를 내었다.
‘아이 씨. 뭐 어쩌자는 건데?’
빽빽거리는 무인들 사이에서 한껏 짜증이 난 소종천이, 그냥 몸으로 밀치고 지나가려 하던 순간.
“그만.”
무리의 가장 뒤에서 뒷짐을 지고 서 있던 장년인이,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한 마디를 내뱉었다.
오십은 넘어 보이는 장년인의 말에, 다른 무인들이 조용히 입을 다문다.
앞에 나선 무인들이 대부분 이십 대에서 삼십 대쯤인 것을 감안하면, 뒤의 장년인은 이들 중에서 가장 배분이 높은 인물임이 분명해보였다.
“소림이라, 흙먼지 속에 파묻혀 있었을 유물이 용케도 모습을 드러냈군.”
장년인은 차가운 눈초리로 소종천을 노려보며 말을 건넸다.
“그게 귀한 도자기인지 아무 가치 없는 요강단지인지는 두고 봐야 알겠지만.”
“허?”
“엄한 상대에게 당해 탈락하지 말고 열심히 기어 올라오도록 해라. 그럼 결국에는 무당의 이름을 다시 마주하게 될지니.”
그런 말을 남기고 장년인은 몸을 휙 돌려 멀어져갔다.
나머지 무인들 역시 소종천을 한 번씩 쏘아보고는 그 뒤를 따른다.
소종천은 헛웃음을 흘리며 속으로 다짐했다.
‘참나. 별걸 가지고 다 시비를 거네. 무당파? 내가 다시 만나면 그쪽은 꼭 박살 내준다.’
영약의 힘으로 과연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소종천은 한 번쯤 더 무당파를 마주치기를 빌었다.
뽑기로 무림최강 58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