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61
33. 대전 종료
도가 계열의 무인들은 대부분 사문에서 내려주는 도호와 함께 도인이라는 호칭을 사용한다.
그리고 진인의 호칭은 그런 도인 중에서, 높은 진리를 깨우쳐 경지에 오른 이에게 존경을 담아 부르는 호칭이다.
다만 그런 의미는 지금에 와서는 많이 퇴색되었고, 이제는 장로급의 인사나 연맹에서 적당히 한 자리 차지하고 있는 도문의 무인들에게 붙이는 호칭이 되었다.
상헌진인은 본래 진인의 호칭을 받을 만한 위치는 아니었지만, 연맹에서의 줄타기와 사문 내부의 정치질에 능해 꽤나 빨리 진인의 대우를 받게 된 인물이었다.
그런 이였기에, 논리를 앞세운 대화보다는 차라리 인맥을 들먹이는 것이 훨씬 더 이야기를 이끌어나가기 수월했다.
“상자 배분이면 창자 배분을 사부로 두고 있을 터!”
곽진에게 무당파의 인물 중 절친한 지음이라 할 만한 인사는 없지만, 살아온 세월이 몇 년인데 알고 지내던 인맥이 하나도 없을 리가 없다.
상대가 자신보다 윗배분의 도호들을 들먹이며 호통을 치자, 상헌진인은 진땀을 흘리며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창광? 창진? 그게 누구…… 억! 창연 사백? 그분은 스승님의 둘째 사형되시는 분이지 않나!?’
대부분은 무당파에서도 은퇴한 이들이었지만, 그중에는 상헌진인이 아는 이름도 있었다.
곽진이 자신의 스승보다도 연배가 높은 인물임을 알게 된 상헌진인은, 끽소리도 내지 못하고 꼬리를 말아야 했다.
문파가 다르니 배분의 차이가 나도 서로 공대를 하는 것이 예의지만, 나이 차가 40년쯤 되면 말조심하라고 따지기도 쉽지 않다.
뭐라 더 말도 못 하고 얼굴을 붉히며 떠나가는 상헌진인을 노려보던 곽진은, 눈에 힘을 풀고 소종천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엄지를 ‘척’하고 들어 올리는 의미를 알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소종천을 보며, 곽진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따져야 좋을지 곤란하구나.’
소종천이 태극혜검을 파고드는 장면에서는 곽진 역시 크게 놀랐다.
아니, 그 이전에 소림오권을 능수능란하게 펼쳤을 때부터 반쯤 정신을 놓고 구경했었다.
‘실력이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는 것은 알았지만, 이건 너무 하지 않은가?’
제법 훌륭해지긴 했지만 분명 아직 완성까진 갈 길이 멀었던 소종천이었다.
보통 무공을 익힘에 있어 10성의 성취를 대성이라 표현하고, 8성을 넘어서면 소성 정도는 이루었다고 친다.
소종천의 발전 속도가 남다르니 그래도 멀지 않아 소성을 이루리라 여겼는데, 오늘 보여준 소림오권의 무위는 분명 대성의 성취여야 가능한 위력이었다.
솔직히 소종천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대신 출전한 것은 아닌지 곽진조차도 순간 의심했었다.
‘잠깐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느껴졌었지. 마치 과거의 무승들을 보는 듯한…….’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지만 당장은 캐묻지 않았다.
소종천을 지켜보며 놀랐던 경험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에, 납득하기는 어려워도 일단은 잠시 묻어두었다.
아마도 소림의 안배와 관련이 있는 중요한 사안일지니, 대전 일정이 마무리되고 좀 더 여유로운 시기에나 물어보자는 생각을 가졌다.
“으윽, 힘드네.”
숙소로 돌아와 쉬던 소종천은, 영웅 뽑기의 지속시간이 다하자 곧바로 방바닥에 엎어졌다.
철권승의 힘을 깊숙이 받아들이느라 집중했더니, 탈력감이 더욱 짙어진 느낌이다.
그래도 지친 와중이지만 떠오르는 알림으로 인해 미소를 짓게 된다.
[내공 0.09 상승.] [심득 : 철권승 현청 획득.]내공의 상승과 심득을 얻었다.
‘소림무승이라. 백변통검 때보다는 더 도움 되는 무공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주저할 이유가 없기에 곧바로 소지품 창을 띄워 심득을 사용했다.
[동화율 적합 판정 : 상] [육합권 3성 습득.] [불광심법 2성 습득.] [소림오권 5성 습득.] [나한철종 4성 습득.] [금강석두공 2성 습득.]주르륵 떠오르는 알림들.
‘오오!’
무려 다섯 개의 무공을 습득하고, 그중에는 소종천에게 크게 도움이 될 소림오권도 포함되어 있다.
[소림오권 7성 습득.] [소림오권 8성 습득.]중복 무공의 숙련도 가산 효과로, 소림오권의 성취도가 무려 8성에 도달했다.
‘오르는 김에 바로 10성을 찍어주면 더 좋았을 텐데.’
소림오권을 대성한 경지를 경험해본 직후라 약간 아쉬움을 느낀다.
그래도 8성의 성취면, 그 무공의 진수를 살짝이나마 맛보았다 할 수 있는 수준이다.
평범하게 수련을 해서 경지를 올리려면 몇 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단계이니, 소종천이 이런 불평을 하는 것은 사실 양심이 없단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었다.
‘보자, 육합권과 불광심법은 딱히 필요 없을 것 같고.’
하급의 무공으로도 경지에 오르면 상승의 절기를 상대할 수 있다는 것을, 철권승 현청을 통해 알게 되긴 했다.
하지만 뽑기라는 능력이 있는 소종천은, 현청과 같은 길을 따라 걸을 이유가 없다.
애초에 몇십 년씩 우직하게 자신을 몰아붙여 고수가 되고 싶단 생각은 하지도 않는다.
‘인생을 날로 먹게 해주세요.’
그렇기에 육합권은 합성 재료로 소모하기로 한다.
반야신공을 익힌 소종천에게 소림의 일반 심법인 불광심법 역시 필요가 없으니, 함께 재료행으로 빠진다.
‘나한철종은 좋네.’
철권승이 수련한 소림의 외공인 나한철종.
전신의 피부가 더욱더 강인해지고, 근육을 유연하고 질기게 만들어준다.
소종천이 습득해 둔 철면피처럼 딱히 더 수련할 생각은 없지만, 이런 종류의 무공은 그냥 보유하고만 있어도 도움이 된다.
그리고 금강석두공.
‘이건 오로지 머리만을 강화하는 외공이네. 효능은 좋아 보이……. 이런 썅!?’
적용 범위가 좁다는 게 단점이긴 하지만, 금강석두공을 대성하면 일류 무인이 휘두르는 도검도 머리로 튕겨낼 수 있게 된다.
외공 중에서는 나름 고절하다 할 수 있는 상승의 무학.
다만 성취도를 올리다 보면 필연적으로 두피의 모공이 닫히고 모낭이 소멸하게 된다.
소림의 무승에게는 최적의 무공이라 할 수 있지만, 소종천은 질겁하며 신속하게 무공 합성서를 구매했다.
금강석두공, 불광심법, 육합권.
세 개의 무공이 어둠의 저편으로 사라진다.
‘무슨 사람을 대머리로 만드는 무공이 다 있냐?’
수련자 본인을 대머리로 만드는 무공이라니, 그런 것은 아무리 성능이 좋은 무공이라도 사양이다.
설마 그 잠깐 사이에 영향을 받진 않았을지 확인하기 위해 머리를 매만지자, 다행히도 풍성한 머릿결이 손길을 포근하게 감싸주었다.
‘진짜 놀라게 하지 좀 말자.’
그런 끔찍한 무공을 처리하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뭐가 나와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합성결과를 지켜보았다.
‘아니, 취소. 뭐가 나와도 좋은 건 아니지. 제발 평범하게 도움 되는 거로 나와라.’
혹시나 지난번처럼 같은 무공이 다시 되돌아오는 사태가 발생할까 봐 얼른 생각을 바꾼다.
[금정신법 3성 습득.]다행히 백량조 때처럼 금강석두공이 되돌아오는 끔찍한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신법인가. 무난하게 쓸 수 있는 게 나오긴 했네.’
금정신법은 소림과 마찬가지로, 천마가 활동했던 시기에 마교와의 전쟁에서 큰 피해를 입고 몰락해 버린 아미파의 무공이었다.
아미 역시 소림처럼 이제는 더 이상 무림행을 하지 않고 있기에, 내키는 대로 무공을 사용한다 해도 출처를 따지는 사람은 없을 것으로 보였다.
소득에 대한 정산을 마치고, 소종천은 내일의 시합을 위해 운공을 하며 내부의 기운을 다스렸다.
용봉대전 나흘 차.
영약의 기간제 효과가 사라지며 내공이 원상태로 돌아왔다.
네 번째의 대전 상대는 중소규모의 문파 출신으로, 예선을 통과해 본선에 진출한 무인이었다.
듣자 하니 예선부터 본선까지는 일정이 꽤나 빡빡하게 잡혀 있었다고 한다.
그 때문에 예선 참가자들은 본선으로 바로 참가하는 인원들에 비해, 아무래도 피로도가 많이 쌓여 있을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실력 면에서도 마량이나 진천휘와 비교해서 약간 떨어지는 상대였기에, 영약 효과가 없어졌음에도 소종천은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업적 점수 210점 상승.]‘간당간당하게 이겼네. 소림오권의 성취도가 오르지 않았다면 질 수도 있었겠어.’
이기긴 이겼지만, 내공이 확 줄어들고 나니, 분명 더 쉬운 상대임에도 여유가 없어졌다.
소종천은 이대로는 대전을 계속 속행하기는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심각한 수준은 아니지만 부상을 입기도 했고 체력적으로 많이 지친 상황이라, 다음 시합에선 실력을 제대로 발휘하지도 못할 것임을 스스로가 느꼈다.
“흠. 뭔가 기세가 조금 약해진 듯한 기분인데?”
“후개와 옥면기린을 연이어 쓰러뜨리면서 아무래도 많이 지친 모양이군.”
“앞의 시합들로 인해 조금씩 내상이 겹친 게 아닐까 싶네만.”
시합을 지켜본 관중들 역시, 소종천의 상태가 이전만 못 함을 알아보고 한 마디씩 아쉬움을 표했다.
“아무래도 여기까지인가 봅니다.”
“애썼다. 충분히 대단한 성적을 거둔 것이니 너무 안타까워하지 말거라.”
무리하게 다음 시합을 나가느니 기권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소종천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곽진은 말을 이었다.
“일정이 조금 남긴 했지만, 차라리 잘 되었구나. 바깥에서 석식을 해결하고 나서 곧바로 떠나도록 하자꾸나.”
“어? 남은 시합들은 참관하지 않습니까?”
“더 머물러 있다간 곤란한 상황에 처할지도 모르겠구나. 아쉽겠지만 이제 그만 돌아가야 하느니라.”
지금도 이미 과하게 주목을 받고 있다.
소종천의 정체를 궁금하게 여기는 이들이 적지 않으니, 귀찮은 일에 휘말리지 않으려면 이쯤에서 조용히 빠져나가는 것이 나을 것이다.
그런 곽진의 생각에 따라, 두 사람은 도망치듯 대전 장소를 빠져나왔다.
이목을 끌지 않기 위해 기권 신청도 생략했기에, 딱히 수상하게 여기거나 뒤를 따라붙는 사람은 없어 보였다.
“가면은 이제 오히려 눈에 띄니 치우도록 하거라.”
“그럴까요? 후, 이제 좀 답답함이 가시네요.”
본래의 얼굴로 돌아온 소종천이 뺨을 문지르며 대답했다.
대전은 포기했지만, 공식적으로 기권 처리를 하지 않고 나왔기 때문인지, 무명신인 임무가 바로 종료되진 않았다.
‘이러면 내일 시합 시간쯤에야 임무가 끝나려나? 에이, 보상이 뭐가 될지 빨리 알고 싶은데.’
하루를 더 참아야 한다는 사실에 투덜거리는 소종천에게, 곽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계획이 조금 틀어진 탓에 사흘 정도 여유 기간이 남았구나. 혹시 학관으로 돌아가기 전에 들르고 싶은 곳이 있더냐?”
“아뇨. 빨리 복귀하죠.”
괜히 다른 곳을 구경한다고 돌아다니다가 이상한 사건에 연루될지도 모른다.
소종천은 고민할 필요도 없다는 듯이 대답을 했고, 두 사람은 그대로 학관을 향한 귀환 길에 올랐다.
돌아가는 동안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잡담이나 나누는 것이 전부이기에, 곽진과 소종천은 꽤 많은 대화를 주고받았다.
“할아…… 아니, 교관님. 과거의 소림은 어땠습니까?”
“허허, 소림의 무공을 그만큼 익힌 네게 그런 질문을 들으니 기분이 묘하구나.”
곽진은 수십 년 전 소림이 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를 떠올리며, 어린 손자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는 할아버지가 된 느낌으로 말을 이어갔다.
“나 때는 말이다…….”
‘흠.’
소종천은 고개를 끄덕이거나 갸웃거리기도 하며 긴 이야기를 들었다.
워낙 칭송에 가까운 내용이 전부라, 곽진이 사실은 화산파 무인이아니라 소림 출신이거나 독실한 불교도였던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것 치고는 다들 소림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것 같던데요? 대전에서도 제가 펼친 무공이 소림의 것이라는 것을, 대부분은 모르는 눈치였던 것 같았고요.”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지만 이렇게까지 잊히는 것이 정상인가 싶어, 이야기를 듣던 소종천은 의아하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으음…….”
곽진의 말문이 잠시 막혔다.
소림의 몰락 이전과 이후의 시대를 경험한 무인 중 한 사람인 곽진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부끄럽다는 듯한 기색으로 말을 이었다.
“그것은 현재 연맹을 주도하는 문파들이, 그리 만들기를 원했기 때문이니라.”
뽑기로 무림최강 6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