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69
37. 이미회
“나랑 같이 가면 되겠네. 나도 어차피 사문으로 한번은 돌아가 보긴 해야 했거든.”
“아, 맞다. 점창파가 운남성에 위치해 있지?”
홀로 떠나려던 여정은 어느새 둘이 되고, 이제 또 셋이 되었다.
가는 방향이 같은 장자군이 동행하기로 한 것.
‘자군이는 도움이 되겠지. 무공도 강해졌고 초행인 우리보다야 운남 쪽의 사정도 잘 알 테니.’
소종천과 남궁건이 운남으로 떠나 생활을 할 계획이라는 이야기를 듣자, 장자군은 도움을 주겠다는 뜻을 보였다.
“그런데 어떤 일을 할지는 생각해 둔 거야?”
“아니. 일단 가서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하긴…… 네 실력이라면 뭐든 못 하겠어? 그래도 혹시 필요하다면 사문의 사업체들과 관련 있는 일자리를 한번 알아보도록 할게.”
“오? 나야 그래 주면 고맙지.”
운남은 위치상 중원의 변방에 속하기에, 들어서 있는 대형문파라 할 수 있는 세력이 딱 점창파 한 곳뿐이다.
그만큼 점창파의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기에, 장자군이 나서준다면 확실히 도움이 되긴 할 것이었다.
물론 아직 성년도 되지 않은 장자군이 외부에 그럴싸한 인맥을 형성했을 리는 없지만, 점창이라는 이름값 하나만으로도 밥을 굶을 일은 없을 터.
‘다만 점창파 역시 연맹에 속한 대형문파이니만큼 직접적인 접촉은 없는 게 좋겠지.’
상황이 바뀌어 소림권사에 대해 관심이 사라졌다지만,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혹시라도 내 이름이 노출되는 일은 없도록 부탁해.”
“걱정하지 마. 사문의 사람들에게 네가 언급되지 않도록 할게.”
소종천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안다는 듯이 장자군이 고개를 끄덕였다.
심득의 양도 이후로 뭐라고 표현하기 어려운 특수한 신뢰 관계가 구축되었기에, 장자군은 사문의 일보다 오히려 소종천과의 친분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듯한 태도를 보였다.
남궁건에 장자군이 더해지며 학관을 나서는 일행의 수는 넷으로 늘어났다.
‘……넷?’
소종천은 당연하다는 듯이 따라붙은 한사혜를 보며 난색을 표했다.
“너도 어디냐 그…… 적사방으로 돌아가야 하지 않아?”
“안 가.”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라고 말하면 조금 과장이긴 하지만 한사혜의 출신 방파인 적사방은 학관과 같은 강서성에 위치해, 평범하게 이동하면 이틀 내엔 도달할 수 있는 곳에 있다.
하지만 한사혜는 학관이 이렇게 되고도 여전히 소종천을 따라다닌다는 행위를 포기하지 않고 있었다.
이야기를 많이 나눠보진 못했지만 그래도 함께한 시간이 적진 않기에, 소종천은 한사혜가 본인의 집안에 좋지 않은 감정을 품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다.
그렇기에 매정하게 그냥 집으로 가기나 하라고 말하진 못했다.
“놀러 가는 게 아닌 건 알지?”
“몸 쓰는 일이라면 나도 할 수 있어.”
“뭐…… 그렇기야 한데.”
어차피 무인인 일행들이 할 수 있는 일이야 한정적이기 마련이고, 한사혜의 수준이면 딱히 모자람이 없는 인재이긴 하다.
객관적으로 평가했을 때 한사혜의 무위는 이류에서 중상위권 정도.
소종천의 눈이 높아져 이류 정도는 이제 눈에 차지 않긴 하지만, 사실 그 정도만 되어도 어디 가서 무공을 배웠다고 말하기에 충분한 실력이다.
“나도 데려가.”
“끄응. 뭐 그러든가.”
어차피 뭔가 대단한 일을 하려는 것도 아니라 스님이 되기 싫어 달아나는 도피행이고, 한 명 더 늘어난다고 달라질 것도 없긴 했다.
‘그래도 칙칙하게 남정네들만 있는 것보단 낫겠지.’
소종천을 중심으로 뭉친 사인방은 그렇게 학관을 떠나 운남성으로 향했다.
* * *
운남성의 성도 곤명.
장장 보름에 걸친 이동 끝에 목적지에 도달하게 된 일행들은, 객잔에 짐을 풀고 향후의 일정에 대해 논의했다.
“겨우 도착했네.”
“일단은 일자리부터 구해봐야겠지?”
“따로 생각해 둔 일이 없다면 마침 적당한 상단이 한 곳 있으니 거길 소개해 줄게.”
“상단? 장사라도 하자고?”
“설마. 물론 상행을 직접 주관할 수 있다면 많은 이문을 남길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그에 걸맞은 수완과 자금도 없는데 어찌 장사를 할 수 있겠어.”
“상단의 호송 일을 맡을 생각이오?”
“바로 그거지.”
이런 세상에서 금력과 무력은 따로 떼어놓을 수 없는 관계이다.
돈이 흐르는 곳에는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만큼 무인의 수요가 발생한다.
“이미회(耳尾會)라고 운남에서도 최남단에 위치한 경홍현에 본점을 둔 상회가 있어. 성도인 이곳 곤명에도 지부를 두고 있으니 그쪽을 찾아가 볼 셈이야.”
귀와 꼬리의 모임이라니 독특한 이름의 상단이 다 있다고 생각하며, 소종천은 장자군에게 질문을 건넸다.
“성도가 여기 있는데 본점은 최남단에 있다고? 보통은 반대로 성도에 본점이 있고 변두리에 지부가 생기는 게 정상 아냐?”
“그야 그렇긴 한데, 이미회는 조금 사정이 달라. 이남의 경계선 부근에 생활하는 소수민족들이 주축이 되어 차린 상단이거든.”
“아하?”
“우리 점창파가 직접 운영에 관여하는 상단들에 비하면 규모가 작지만, 적당히 영향력이 닿으면서 나름대로 명성이 있는 상단을 고르자면 이미회만 한 곳이 없을 거야.”
장자군의 말에 소종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거기부터 알아보지 뭐.”
일행들은 장자군의 안내에 따라 이미회의 지부가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조금 걷다 보니 주변의 다른 건물들보다 고급스럽고 으리으리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과연. 제법 돈 좀 있어 보이는 곳이네.’
열려 있는 대문으로 들어서며 소종천은 장자군에게 말을 걸었다.
“근데 여긴 어떤 상품을 취급하는 상단이래?”
상단이라 뭉뚱그려 칭하긴 하지만 중원에서 손으로 꼽을 만큼 초대형 규모의 거대 상단이 아니라면, 주력으로 삼는 품목을 한두 가지 집중적으로 정해두고 그에 맞춰 판매망을 운영하기 마련이다.
물론 품목이 뭐가 되었든 호송대가 하는 일이야 그리 달라질 건 없다.
그저 앞으로 일하게 될지도 모르는 곳이라기에 단순한 호기심에 말을 꺼냈을 뿐.
한데 장자군의 표정이 미묘해진다.
“아, 뭐…… 이것저것 하겠지?”
“응? 무슨 말이 그래?”
품목을 가리지 않고 취급한다는 말은 정말 거대한 상단이거나, 아직 제대로 자리를 잡지 못해 이리저리 찔러보고 다니는 소규모 상단이란 말과 다를 바가 없다.
이름도 처음 듣는 상단이니 전자에 속하는 곳은 아닐 테고, 후자라면 언제 망해서 없어질지 모르는 곳이니 고생만 실컷 하고 돈은 제대로 벌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뭐야. 제법 명성이 있는 상단이라 하지 않았어? 여기서 천년만년 눌러앉을 생각인 건 아니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불안정한 일자리는 곤란한데?”
“그게 아니고…….”
난감하다는 듯한 얼굴을 한 장자군이 목소리를 낮추며 입을 열었다.
“그쪽이 유명세를 쌓은 건 평범한 상행 때문이 아니라…… 밀수와 관련이 되어 있는 거거든.”
“엥?”
성년을 앞둔 전도유망한 무인들이 취업에 대해 논의하는 자리였는데, 갑자기 범죄와 관련된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당황한 소종천이 덩달아 목소리를 줄이며 말했다.
“아니…… 야, 그게 무슨 미친 소리야? 밀수라니? 그거 범법 행위잖아?”
성격 좋고 착실한 동료라 여겼던 친구가 추천한다는 일자리가 밀수업체라니.
황당해하는 소종천에게 장자군이 손사래를 치며 설명을 늘어놓았다.
“대놓고 말하고 다니긴 그렇지만, 이미회는 관에서도 암묵적으로 눈감아주고 넘어가는 집단이야. ”
운남 아래의 국경 지대에는 부족 단위로 생활하는 소수민족들이 상당수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높은 산과 깊은 계곡이 복잡하게 펼쳐진 남부 지역은, 국경을 수비하는 관군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하기 어려운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야음을 틈타 산을 타고 넘으려 하는 자가 있어도 색출하기엔 여러모로 곤란한 점이 많아, 일부 국경 수비대는 아예 그곳의 토착민들과 교류하며 일차적인 경계 임무를 위탁하는 경우도 발생했다.
그런 형태가 오래 지속되다 보니 관에서도 소수민족들에게는 엄격하게 법을 적용시키지 않고 쉬쉬하며 편의를 봐주게 되었다.
소수민족들이 운남과 국경 이남의 국가들을 오가며 보부상으로 활동을 해도 관세를 부과하지 않았고, 그런 관례가 이어지다 보니 어느새 작은 거래가 큰 거래가 되며 합법에 가까운 밀수 업체라는 괴이한 단체가 생겨나고 말았다.
“정경 유착이 벌어진 건가.”
“그렇게까지 거창하게 말하기는 좀…… 아무튼, 이미회는 국경 이남에 위치한 소국들과 운남성을 오가며 무역으로 이득을 취하는 소수민족들의 자금줄이야.”
합법적인 불법이라는 농담 같은 이야기.
“사문의 사형 중에도 가끔 이미회의 호송 의뢰를 받는 분들이 있다고 하니, 아무 문제는 없을 거라고 봐.”
“그래도 굳이 찝찝한 일을 할 필요가 있나?”
“보수가 딴 곳들보다 좋은 편이라고 들었거든.”
몇 가지 다른 직종들과 그쪽의 평균적인 급여 기준을 거론하며, 이미회의 보수가 어느 정도 수준인지 비교해 주는 장자군.
찝찝하다고 무시하고 넘어가기엔 금액 차이가 제법 난다.
이야기를 들은 소종천은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흠. 그 정도라면 일단 이야기는 들어봐야겠네.”
반인륜적인 범죄를 저지르자는 것도 아니고 그곳에선 밀수가 딱히 위법으로 치지도 않는다니, 한번 자세히 알아보기로 한다.
일행들은 상단의 관계자를 만나 용건을 알렸고, 이윽고 이미회의 제법 고위직 인물을 만날 기회가 생겼다.
운남성에서 가장 세력이 큰 문파인 점창파 출신의 장자군이 속해 있다 보니, 나이가 어리다고 무시당하지 않고 금방 자리가 마련되었다.
“부상회장을 맡고 있는 마헌이라 하오. 그래, 점창에서 오셨다고? 무슨 용무이신가?”
“일자리를 알선해 주십사 이렇게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흐음. 실력 있는 무인이야 언제든 환영이네만…… 점창의 이름만으로 덥석 일을 맡기기엔 소형제들의 연배가 마음에 걸리는구려.”
대우를 받을 만한 실력을 갖추기엔 너무 어리지 않느냐는 말에, 장자군은 다른 일행들의 신분을 밝히며 설득을 시도했다.
“아아, 잠룡학관에 대해서는 본인도 들어본 바가 있소. 확실히 그런 곳의 인재들이라면 실력은 신뢰할 만은 하겠군.”
마헌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다만, 급여를 책정하기 위해서라도 한번 정도는 실력을 보여주어야 하오만.”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소협 중 한 분이 나서서 여기 이 친구와 가볍게 비무를 하면 어떻겠소?”
상단의 부상회장이라는 직책을 맡고 있는 이라면 호위무사 하나쯤은 있는 것이 당연했다.
마헌의 말에 일행들의 시선이 그의 뒤편으로 향했다.
팔짱을 끼고 서서 제법 진중한 기세를 흘리고 있는 남성이 눈에 들어온다.
적어도 일류의 초입 정도는 밟았을 거라 느껴지는 기도.
‘확실히 소규모 상단치고는 급여 수준이 제법 괜찮은 모양이네. 일류급의 무인을 상시 대동하고 다닐 정도면 말이지.’
반드시 이겨야만 하는 것도 아니니 일행 중 누가 나서도 문제는 없다.
하지만 이왕이면 실력이 뛰어난 이가 나서는 것이 더 좋은 모습을 보일 수 있을 터.
일행들의 눈길이 전부 자신에게로 향했기에, 소종천은 어깨를 으쓱이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사실상 이 일행의 대표는 자신이라 할 수 있으니, 아무래도 직접 나서서 실력을 발휘해야 할 것 같다.
“밖으로 나가시죠.”
뽑기로 무림최강 7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