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78
40. 혈전(2)
“이게…….”
참담한 광경에 일행들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학살의 현장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알몸의 괴인들이 수왕족 사람들을 죽이고 있었다.
사기가 가득한 눈빛.
새파랗게 변한 죽은 자의 피부.
‘강시가 왜 여기에?’
현 무림에 강시를 부리는 집단은 마교뿐이니, 자연스럽게 이곳에 마인이 출몰했다고 해석할 수 있었다.
어째서 이런 변방에 마교의 세력이 들이닥쳤는지는 알 수 없지만, 당장은 그런 의문을 고민하고 있을 새가 없었다.
“멈춰!”
“더러운 마물들이!”
수왕족에도 분명히 수준 높은 전사들이 있지만, 하필 이쪽에는 그 수가 적었는지, 사람들은 제대로 된 저항을 하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었다.
참혹한 광경을 목격한 일행들이 살기를 뿌리며 현장 속으로 뛰어들었다.
퍼걱!
선두에 서서 달려 나간 소종천이 공중으로 뛰어올라 강시 하나의 머리를 발꿈치로 내리찍었다.
강시의 머리통이 썩은 과일처럼 터져 버린다.
이후 반동을 이용해 신형을 움직여 가까이 있던 다른 강시 몇 구의 머리통을 더 박살 낸 소종천이, 연대구품을 펼쳐 사방으로 신형을 분산시켰다.
실체화된 신형 여섯과 본신이 주변을 휩쓸고 다니며, 눈에 보이는 강시들을 모조리 때려 부쉈다.
적이 얼마나 더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눈앞에서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으니 내력을 아낄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른 일행들 역시 같은 심정인지 매서운 기세로 움직이며, 아직 살아 있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전력을 다했다.
신들린 것처럼 날뛰며 강시들을 박살 내던 소종천은,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꺼림칙한 기운을 감지하고 잠시 멈춰 섰다.
‘마기. 두 놈인가?’
고개를 돌리자 온몸에 피 칠갑을 한 두 명의 중년인이 눈에 들어온다.
“뭐야 이것들은? 무림인인데?”
“덜떨어진 야만인 놈들만 사는 곳이 아니었나?”
각각 손에 큼지막한 박도를 들고 있는, 사오십 대 사이쯤 되어 보이는 두 명의 남성.
얼굴이 매우 비슷하게 생긴 걸 보아하니, 서로 형제지간인 것으로 짐작이 되었다.
시선을 살짝 아래로 낮춘 소종천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마인들의 허리춤에 장신구처럼 묶여 있는 사람의 목을 발견했기 때문.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시선을 눈치 챈 마인들이 웃음을 흘린다.
“아 이거? 마음에 드나? 클클!”
“이런 작은 머리들은 수집하기가 쉽지 않지.”
“맞아! 사람은 몸이 작아도 이 대가리는 금방 자라버린단 말이지.”
마인들이 낄낄대며 잘린 머리들을 손에 들어 흔들어 보인다.
하나같이 성인으로 보이진 않는 조그만 크기들.
수왕족의 평범한 부족원들을 학살한 마인들이, 그중에서 아이들의 머리만을 따로 잘라내 모은 것이었다.
“왜…….”
무심코 말을 내뱉으려 했던 소종천이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어째서 이런 짓을 하는가 같은 질문 따위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행동이라 여겼기 때문.
반야신공의 구결을 떠올리며 내력을 운용하자, 흥분이 가라앉으며 머릿속이 차가워진다.
물론 마음이 진정되었다고 해서 분노가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니다.
소종천은 마인들을 노려보며 하나의 구결에 따라 내력을 운용했다.
단전에서 내력이 용솟음치며 뱃속에 가득한 열기가 목구멍을 타고 올라온다.
“중원 놈들이 왜 이런 곳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릴 만난 걸 보아하니 죽을 운명이었던 모양이구나.”
“끌끌끌! 죽기 전에 이름이나 알고 가거라. 이 두 분 어르신들은 쌍도-”
커허어엉!
소종천의 입에서 터져 나온 거대한 짐승의 포효 소리가, 마인들의 목소리를 집어삼켰다.
“컫!”
“흐읍!?”
무형의 둔기에 후려 맞기라도 한 듯, 마인들이 헛숨을 삼키며 크게 비틀거렸다.
악을 멸하기 위해 만들어진 고절한 상승의 음공.
사자후에 담긴 기운이 마인들의 내부를 뒤흔들고 마기를 억눌렀다.
“관심 없다. 너희들의 이름 따윈.”
딱딱한 어투로 말을 내뱉은 소종천이 땅을 박찼다.
반야신공으로 쌓은 정순한 내공과 예민하게 발달된 기감이, 마기로 물들어 있는 상대의 내공 수준을 정확하게 탐지해 낸다.
조금 더 나이 들어 보이는 오른쪽의 마인은 절정 초입의 경지.
왼쪽의 마인은 아직 절정의 벽을 넘지 못한, 일류의 끝자락에 달한 경지다.
‘쉬운 상대부터 먼저 처리하자.’
소종천의 신형이 왼쪽으로 쏘아졌다.
“캬악! 이게 무, 흐어억!”
들끓는 내부의 기운을 통제하려 애쓰던 왼쪽의 마인이, 위기를 감지하고 뒤로 몸을 빼며 도를 휘둘렀다.
그러나 소종천의 공격이 더욱 빨랐다.
몸을 한 바퀴 돌리며 휘둘러진 소종천의 손등이, 마인의 얼굴을 가격했다.
툭.
핏물이 튀며 바닥으로 무언가가 떨어진다.
“끄이이에! 흐가으!”
내력을 가득 담아 후려친 소종천의 일격에, 아래턱이 통째로 날아가 무슨 말을 내뱉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다.
커다란 고통에 울부짖은 마인이 급하게 뒷걸음질 치다가 넘어지고 만다.
넘어진 마인의 위에 올라탄 소종천의 주먹이, 턱을 잃어 훤히 드러나 보이는 목을 파고들었다.
제대로 저항해 볼 새도 없이 숨통이 뭉개진 마인은 그 자리에서 절명하고 말았다.
절정에 근접한 무인답지 못한 허망한 최후.
아무리 상극의 힘이라 해도 미리 내력으로 단전을 감싸 보호했다면, 이렇게 쉽게 내상을 입고 치명타를 허용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항상 귀령규환공을 통해 쉬운 사냥을 하기만 했지, 역으로 자신들의 힘을 억제하는 무공이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못했으니, 허무하게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다.
“아아악! 규아야! 이노옴! 감히 내 동생을!”
허를 찔렸다지만 그래도 절정의 경지가 가볍지는 않다.
잠깐 사이의 짧은 시간에 내부를 진정시킨 나머지 마인이, 악을 지르며 살기가 가득한 도를 휘둘러왔다.
“너희들도 가족애는 있나 보지?”
몸을 세운 소종천이 입매를 뒤틀었다.
‘제 형제는 소중한 줄 아는 놈이 이런 짓거리를 해?’
냉소를 흘린 소종천이 수갑에 내력을 담아 도격을 비스듬히 흘려내고, 반대쪽 손으로 권을 찔러 넣었다.
상대의 칼보다 이쪽의 팔이 더 길수는 없으니, 당연히 권격이 몸통에 닿기에는 거리가 너무 떨어져 있다.
하지만 백보신권이 초식으로 더해진 권력의 방출이, 부족한 간격을 메워준다.
“큿!”
신권이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절기이지만, 상대도 절정에 경지에 발을 디딘 고수.
공간을 뛰어넘어 밀려오는 권력을 감지한 마인이, 몸을 살짝 뒤틀며 도를 쥐지 않은 손으로 공격을 방어해낸다.
도초를 계속 펼칠 수 있도록 자세를 유지하면서 권력은 막아내는 선택.
하지만 소종천의 공격이 그것으로 끝나진 않았다.
티디딕!
내지른 주먹을 펼치며 손가락들이 튕겨진다.
검지부터 소지까지, 탄지신통의 기탄이 삼연발로 쏘아졌다.
“헉!?”
격공의 권법에 이어 추가적인 공격수법이 더 있을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던 마인은, 대경실색하며 급격하게 몸을 틀었다.
고작 2성에 불과한 탄지신통이지만, 근접전을 벌일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날아간 기탄은, 하나하나가 어지간한 암기 이상의 위력을 가지고 있다.
두 개의 기탄을 피해내고 하나를 쳐낸 마인은, 피해를 입진 않았으나 자세가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기껏 만들어 낸 빈틈을 그냥 넘어갈 소종천이 아니다.
잽싸게 신형을 날린 소종천이 마인에게 달라붙었다.
몸에 매달리며 다리를 꼬아 상대의 허리를 단단히 붙든 소종천은, 한 손으로는 도를 든 팔목을 붙잡고 반대편 손으로는 얼굴을 움켜쥐었다.
“끄아악! 이노오오옴!”
벌어진 검지와 중지가 마인의 양쪽 눈을 파고들었다.
상처 입은 안구에서 피눈물이 흘러나오며, 마인은 참기 힘든 통증에 악을 질러댔다.
비어 있는 상대의 손이 소종천을 떼어놓기 위해 움직인다.
피부를 긁어대고 늑골을 두들기며 옆구리 부근에 가해지는 발악적인 공격들.
소종천은 마인의 저항을 묵묵히 견뎌내며 내력을 더욱 끌어올렸다.
이를 악물고 손에 더욱 힘을 주어 상대의 머리를 밀어낸다.
몸이 완전히 맞닿은 상황이기에, 단순히 근력만이 아닌 내력의 격돌도 함께 일어난다.
“카아아악! 어떻게! 어떻게 이런 내공이!”
그리고 내공 싸움이라면 소종천이 더욱 유리해질 수밖에 없다.
절정이라지만 초입에 불과한 마인의 내력은, 소종천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양.
반야신공의 내력은 마공으로 쌓은 내력과의 상성에서 매우 유리하게 작용하기에, 내력의 격돌이 이어지자 마인은 힘이 쭉쭉 빠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비명을 질러댔다.
“있을 수 없…….”
쁘지직. 뿌득.
뼈가 어긋나는 소리가 들리며 마인은 더 이상 말을 할 수 없는 몸이 되었다.
뒤통수가 등에 닿도록 머리를 완전히 꺾어버린 소종천은, 상대의 죽음을 확인하고 손에서 힘을 뺐다.
“후우우…….”
전력으로 날뛰며 내력을 마구 쏟아낸 탓에, 전투가 그리 오래 지속되지 않았음에도 기혈이 꽤나 들끓고 있다.
‘예상했던 대로 절정 초입의 마인까진 어렵지 않네.’
길게 호흡을 하며 내부의 기운을 진정시키는 소종천에게로 알림이 떠올랐다.
[업적 점수 480점 상승.]알림에서 눈을 돌린 소종천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마인들과 싸우기 전에 미처 다 처리하지 못한 강시들이 몇 구 있었는데, 그쪽은 일행들이 해치운 모양인지 더 이상 적으로 보이는 것은 없었다.
“종천! 이건…….”
“이야기는 나중에. 아직 끝나려면 멀었어.”
다가오는 일행에게 손바닥을 내밀며 말을 끊었다.
‘적이 이게 다일 리가 없겠지.’
수왕족의 대다수가 모여 있는 이곳 수왕채의 본채는, 중원의 도시에 비견될 정도로 큰 규모를 갖추고 있다.
이런 안쪽까지 적이 들이닥칠 정도면, 다른 곳에선 더 많은 적과 커다란 전투가 벌어지고 있을 것이 분명하다.
소종천은 눈을 감고 기감에 집중했다.
‘……저쪽.’
기감을 점점 확장한 끝에 무언가 신경을 거스르는 느낌을 탐지해 낸 소종천이 몸을 돌렸다.
“급하니까 먼저 간다.”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소종천은 곧장 신법을 펼쳐 이동했다.
“우리는…… 이런.”
“혼자 가버리다니.”
남겨진 일행들이 눈빛을 교환했다.
다른 장소에서도 이런 참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라면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하지만 소종천 없이 자신들만으로 움직여도 과연 괜찮은 걸까?
“……일단 다친 이들을 수습하고 나서 움직여보자. 별 도움이 되지 못할지라도 마냥 가만히 있을 순 없지.”
“후우, 맞는 말이오.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소.”
동료임에도 함께 가자는 말을 듣지 못하고 남겨졌다는 것이 분했다.
무력감에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일행들은 살아남은 수왕족 사람들에게 다가가 부상자를 선별해 응급처치를 하기 시작했다.
* * *
“어디서 이런 것들이 나온 거야!”
홍려아는 짜증을 담아 외치며 달려드는 강시의 골통을 부수었다.
쓰러진 강시의 빈자리로 다시 새로운 강시가 뛰어든다.
끝없이 밀려드는 적들.
사방에서 몰려드는 강시의 수가 대충 어림잡아도 세 자릿수는 가볍게 넘는 것 같다.
“캬아오!”
“구어어억!”
함께 적에게 대항하던 부족의 전사 중 수인화가 가능한 소수의 인원이, 하나둘씩 짐승의 형상으로 몸을 바꾸며 강력해진 힘으로 적들을 밀어냈다.
열세인 전황을 뒤엎기 위한 분투.
하지만 밀리고 있는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저 역겨운 소리는 대체 뭐야!”
꺄아아아!
귀령규환공.
강시들 뒤에 있는 마인의 존재가 전투를 불리하게 만들고 있었다.
중원인과 다른 특별한 육체의 힘에 의존해 싸우는 수왕족은, 무림인들처럼 심법을 중히 여기지 않는다.
정확히는 홍려아처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면, 심법이란 것을 아예 익히지 않는다.
무공이라 부를 만한 것은 부족의 투술인 수왕권 하나뿐.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들의 몸 안에 내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심법이란 앉아서 외부의 기를 받아들이는 좌공(坐功, 즉 움직이지 않는 것을 기준으로 하는 정공(靜功)의 수련법을 따르는 것이 기본이다.
그렇지만 그와는 달리 몸을 움직이는 방식으로 기를 받아들이는, 정공과 반대되는 동공(動功)의 수련법이라는 것도 엄연히 존재한다.
그리고 수왕족 특유의 투술인 수왕권은, 동공의 묘리가 담긴 무공의 일종이라 할 수 있었다.
홍려아는 이를 드러내며 마인을 노려보았다.
저 괴상한 녀석에게서 기분 나쁜 소리가 울릴 때마다, 몸에 힘이 빠져 전사들이 제대로 싸우질 못하고 있다.
그나마 심익한의 교육으로 소림의 내공심법을 따로 익힌 홍려아만이, 마기의 영향을 덜 받아 그럭저럭 버텨내고 있는 편.
하지만 홍려아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점점 아군의 진형이 무너지고 있는 것이, 저항은 이미 한계에 도달한 상태였다.
“크르륵.”
짐승의 소리를 내며 홍려아가 수인화를 발동시킬 준비를 했다.
아직은 몸을 피할 수 있는 여력이 있지만, 부족의 소왕이란 지위에 있는 자로서 혼자 달아날 수는 없었다.
죽더라도 싸우다 죽겠다는 생각으로 몸을 변화시키려던 순간.
크허어어엉!
“흐갹!?”
어디선가 우렁찬 맹수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뽑기로 무림최강 79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