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82
42. 수습
“몸은 좀 어떠세요?”
“그럭저럭 견딜 만하네.”
소종천의 질문에 심익한은 조금 창백한 안색으로 애써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마인들과의 혈전 이후로 삼 주가량의 시간이 흘렀다.
수왕족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야생의 생명력을 품은 튼튼한 육체를 타고난다.
질병에 걸리는 경우는 거의 없고 극독이 아니라면 독물에도 내성이 있다.
평범한 일반인도 어지간한 무인보다 몸의 내구성과 회복력이 뛰어나다 보니, 수왕채의 의술 수준은 중원보다 발달이 많이 뒤처지는 편이었다.
속칭 침만 발라도 낫는 경우가 많았기에.
‘제대로 된 의원이 없으니 회복이 많이 더디시네. 완전히 쾌차하실 때까진 아직 한참 남으신 것 같은데.’
그런 수왕족들의 산채에서 치료를 받고 있으니, 심익한은 빠르게 회복하질 못하고 있었다.
그나마 반야신공을 익힌 소림의 무승이었기에, 귀마 같은 강력한 마인에게 당한 내상임에도 회복이 진행되기는 하니 다행이다.
다른 무인이 이런 상황이었다면 절정의 경지였다 해도, 마기로 입은 내상이 점점 심해져 결국엔 죽음을 면치 못했을 것이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혼란을 수습해야 하거늘. 후우…… 사제, 미안하지만 자네가 려아를 많이 도와주게.”
“제가 뭐라고 도움이 되겠습니까마는, 그래도 할 수 있는 한 힘써보겠습니다.”
지금의 수왕채는 꽤나 어수선한 상태였다.
곳곳에서 일어난 전투의 과정에 사상자가 크게 발생하기도 했고, 그 와중에 수왕족의 우두머리인 대왕이 큰 부상을 입기도 했기 때문이었다.
홍려아의 모친이자 심익한의 딸이기도 한 현 수왕족의 대왕과는, 첫인사 정도만 나누었을 뿐 딱히 교류라고 할 만한 것이 없긴 했다.
그렇다 해서 별 친분이 없는 남의 부족 일이니 관심을 끄겠다고 하기엔, 홍려아는 몰라도 심익한과 쌓은 관계가 가볍지 않다.
목숨엔 지장이 없지만 팔 하나를 잃는 영구적인 장애가 생긴 대왕은, 사태를 어느 정도 진정시킨 뒤 왕권의 계승을 선언했다.
가장 서열이 높은 후계자인 소왕 홍려아에게 대왕의 자리가 이양되었다는 의미.
그 탓에 정신없이 바빠진 홍려아와는 전투 이후로 딱 한 번 마주쳤을 뿐, 며칠째 얼굴도 보질 못했다.
‘근데 사형이 저런 소리를 한다는 건, 내가 홍려아한테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모른다는 거로구만.’
얼마 전에 불쑥 찾아와 마음이 어지러워지는 상황을 만들고 간 홍려아를 떠올리며, 소종천을 살짝 호흡이 가빠지는 것을 느꼈다.
잠자고 있던 아랫도리의 화룡이 꿈틀거리며 눈을 뜨려 한다.
‘으음. 진정해라 나 자신. 사형이 보고 있잖아.’
야릇한 그 날의 일을 그녀의 할아버지 앞에서 상상하자 죄책감을 느끼기에, 머릿속에 떠오른 상념들을 애써 구석으로 다시 치워두었다.
“그럼 이만 나가볼 테니 푹 쉬세요.”
“그래. 고맙네, 사제.”
간단한 이야기를 조금 더 나눈 소종천은 심익한의 거처를 나섰다.
‘후우. 마교 놈들 때문에 일이 묘하게 되어서 마음이 싱숭생숭하네.’
상황이 이렇게 되고 나니 앞으로의 행동 방침을 정하기가 조금 애매했다.
복잡한 고민에 머리가 아파지는 것을 느낀 소종천은, 뒤통수를 벅벅 긁어대다가 다른 쪽으로 생각을 돌렸다.
‘마교 놈들은 용서가 안 되지만…… 그래도 덕분에 제법 많은 것을 얻긴 했지.’
귀마를 해치우고 얻은 결과물들을 떠올리며 기분 전환을 한다.
사건이 어느 정도 수습되고 난 뒤 가졌던 보상의 정리 시간.
350금과 15청강석, 그리고 대오의 서 2개.
‘대오의 서는 사용처가 딱 맞아떨어지고.’
8성 미만의 무공에만 적용이 가능한 대오의 서는, 7성의 성취도인 반야신공과 연대구품에 하나씩 사용해 주었다.
[반야신공 8성 습득.] [연대구품 8성 습득.]심법의 성장이야 처음 겪는 일도 아니었지만, 반야신공이 8성에 도달하며 이루어진 변화는 이전까지와 다른 특별함이 있었다.
‘으옷……?’
소종천은 자리에 앉아 운기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정순한 성질의 내공이 더욱 밀도가 높아지더니, 몸 전체를 흐르며 기혈에 쌓인 불순물들을 완전히 밀어낸다.
정수리에 위치한 백회혈에서 낭심 아래 위치한 회음혈까지, 기혈을 타고 거침없이 밀고 나가는 내력의 움직임.
임맥과 독맥.
무인에게 가장 중요한 경맥에 뚫려 있던 바늘구멍 같은 길이, 점점 넓어지며 새로운 기의 흐름을 만들어냈다.
임독양맥을 타통하며 소주천을 이룬 것이다.
[내공 0.03 상승.] [내공 0.01 상승.] [내공 0.04 상승.]운공에 집중하느라 확인할 수 없는 알림이 수차례 떠오른다.
소주천을 이루는 것은 절정의 경지로 나아가는데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현상이다.
내공의 수치만 절정에 걸쳐 있던 소종천은 임독양맥을 타통하며, 진정한 절정의 경지로 접어들 수 있었다.
[내공 0.02 상승.] [근골 0.04 상승.] [내공 0.03 상승.] [감각 0.02 상승.]내력의 수발이 더욱 자유로워지고 내력을 담은 그릇인 육체가 더욱 강인해지며, 기감 또한 더욱 확장되고 예민해진다.
무수히 떠오르는 알림의 향연.
뼈가 단단해지고 근육이 질겨지며 피부에 남아 있던 자잘한 흉터들이 사라진다.
환골탈태라고 표현하기도 하는 신체의 극적인 변화.
한참의 운공 끝에 소종천이 득도한 고승과도 같은 깊은 안광을 흘리며 눈을 떴다.
촐싹거리는 평소의 행실과 달리 거대한 사찰의 큰스님 같은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워메! 쉬버럴 거, 개쩌는데?”
물론 그런 느낌이 오래가진 않았다.
엄청난 변화를 인지한 소종천이 깜짝 놀라며 경박한 본인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부랴부랴 정보창을 확인한다.
[재능] [오성 6.67] [근골 8.14] [감각 9.02] [내공 7.04]‘이야!’
전체 재능 수치에 극적인 변화가 있었다.
오성과 감각 쪽은 약간의 상승이 이루어지고 끝이지만 내공 수치는 1점가량, 무인들의 기준으로 10년분이 증가했다.
특히 3점을 약간 넘게 상승한 근골 수치의 변화는 굉장히 컸다.
무재랄 것도 없는 평범한 일반인의 몸뚱이에서 그럭저럭 기재에 가까운 근골을 갖추게 된 것이다.
‘좋은 거 맞나? 흐음, 큰 차이는 없을지 몰라도 올라서 나쁠 거야 없겠지.’
어차피 시스템을 통해 무공을 익히고 발전시키는 소종천이기에, 근골이 이 정도로 변화해도 별 차이점을 느끼지 못하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하지만 근골이 좋다는 것은 단순히 무공을 쉽게 익힐 수 있게 해주는 것뿐이 아니다.
신체가 강인해지는 만큼 같은 내력으로도 더 뛰어난 움직임을 보일 수 있고, 내공의 성질과 회복력, 심법의 수련 효율 등에도 영향을 미친다.
건강한 육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다.
정(精)과 기(氣) 그리고 신(神)이 골고루 단련되어야 무인으로서의 완성에 가까워지는 법.
‘근데 이렇게 성장했어도 학관의 애들보다 조금 모자란 근골이네. 진짜 뽑기가 아니었으면 평생 이류에나 머물렀을 몸뚱이구만.’
기존과 현재의 차이를 확인한 소종천은 정보창을 닫고 뽑기창을 열었다.
기존의 재화와 임무의 보상이 합쳐져 지급 4번, 천급 1번을 뽑을 기회가 있다.
항상 그렇듯 낮은 등급의 지급부터 손을 댄다.
[은색 무구 당첨!] [동색 영약 당첨!] [은색 영약 당첨!] [금색 무공 당첨!]‘에이…….’
조금 아쉽지만 무난한 결과.
마지막에 금색 등급이 뜨지 않았다면 매우 화가 날 뻔했지만, 결과적으로 이 정도면 그럭저럭 나쁘진 않았다.
은색 무구에서는 제법 품질이 좋아 보이는 검이 나왔고, 동색과 은색 영약은 특별할 것 없는 물품들이 나와 바로 사용했다.
[내공 0.04 상승.] [내공 0.23 상승.]‘검은 뭐…… 일단 가지고 있어 볼까.’
검을 쓰는 장자군이나 남궁건에게 선물해 줄까, 잠깐 생각했었는데, 두 사람 다 손에 익은 검이 있으니 그럴 필요는 없어 보였다.
서자라 해도 잘나가는 집안의 자손인 남궁건은 명품에 가까운 검을 쓰고 있었고, 장자군 역시 그만은 못해도 제법 질 좋은 검을 가지고 있었다.
‘만약을 대비해 무기도 종류별로 하나씩은 갖춰두는 게 좋을 테고.’
소림의 무공이 다른 어떤 종류의 무공과 비교해도 꿀릴 것은 없다만, 언제 무기가 필요한 상황이 생길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동안 영웅 뽑기로 자신보다 높은 경지의 무인의 힘이 깃들었어도, 무기가 없어서 그들의 무공을 사용하지 못하기도 했었으니 말이다.
‘소림오권이 나쁘다고 할 순 없지만, 은색 등급이라 그런지 약간 아쉬운 점이 있지. 조금 더 위력적인 권법이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며 마지막의 금색 무공을 감정했다.
[금강부동신법 4성 습득.]‘이야?’
권법에 대한 아쉬움을 떠올렸으니 혹시 뛰어난 상승의 권법이 나오진 않을까 기대했는데, 등장한 것은 하나의 신법이었다.
‘새삼스럽지만 이쯤 되면 소림 무공 전용 뽑기라고 불러도 되겠네.’
금강부동신법 역시 소림 칠십이종절예에 속하는 절기 중 하나다.
이미 보법이자 신법인 불영선하보가 있어 또 다른 신법이 필요할까 싶기도 했는데, 머릿속으로 스며드는 무공의 정보를 확인하고 절로 감탄을 터뜨리게 되었다.
금강부동신법은 일반적인 신법들과는 그야말로 궤를 달리하는 무공이었다.
‘이것도 꽤나 골 때리는 무공인데?’
부동(不動)은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움직이지 않는 상태를 뜻한다.
그런데 몸을 빠르게 움직이는 무공인 신법에 부동이라는 이름이 붙다니, 이보다 더 어울리지 않는 단어가 또 있을까 싶다.
사실 여기서의 부동이란 불가의 교학에서 전하는 육무위 중 하나인 부동멸무위(不動滅無爲)의 준말이지만, 솔직히 무공을 익힌 소종천조차 이게 무슨 개풀 뜯어 먹는 소리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소림 무공은 너무 어려워! 뽑기 덕분에 익히고 사용하는 데 지장이 없다는 게 천만다행이지.’
원리를 이해하지 못해도 각인되듯 몸에 익혀져 있으니, 쓰고자 하는 뜻을 품기만 하면 무공이 펼쳐져 참으로 편하다.
아무튼, 영 이상한 이름을 가지고 있던 이 금강부동신법은, 이름에 대한 의문을 해결해 주는 담백한 효과를 가진 신법이었다.
소종천의 시선이 근처에 있던 나무로 향했다.
길게 뻗은 나뭇가지 끝에 매달린 손바닥만 한 나뭇잎이 눈에 들어온다.
‘그러니까…… 이런 식인가?’
소종천이 가볍게 공중으로 몸을 띄우며 돌려차기를 행했다.
앞으로 뛴 것도 아니고 그저 제자리에서 높이뛰기를 했을 뿐이기에, 나뭇잎에 발이 닿기에는 거리가 조금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어떠한 힘의 작용도 없어야 할 텅 빈 허공에서, 소종천의 신형이 스르르 미끄러지듯 앞으로 이동한다.
소종천의 발에 닿은 나뭇잎이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이건 무공이라기보단 무슨 염동력 같은 초능력이란 느낌인데.’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위치를 이동시킬 수 있는 부동의 신법.
그게 바로 금강부동신법에 담긴 신기한 공능이었다.
‘이러면 같은 신법 종류라 해도 불영선하보와 겹치는 효과는 아니네. 꽤나 도움이 되겠는데?’
신묘한 움직임으로 잔상을 남기며 적의 공격에서 벗어나는 불영선하보와, 어떠한 조짐도 없이 신형의 위치를 움직일 수 있는 불가해한 무공인 금강부동신법.
이 둘을 혼합해서 사용하는 소종천을 상대하는 적은, 그야말로 귀신을 상대하는 느낌을 받게 되지 않을까 싶다.
만족스러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던 소종천은 이어서 마지막 뽑기를 시행했다.
가장 기대되는 천급 보물상자의 개봉.
화려한 원판이 돌아간다.
‘이번에도 역시 어렵겠지?’
소종천의 시선이 찬란한 오색의 칸을 따라 빙글빙글 돌아갔다.
사람을 홀리는 영롱한 광채다.
원판의 속도가 점점 느려지자 소종천은 눈을 감고 오랜만에 기도를 올렸다.
‘금색은 너무 많이 봤소, 오색! 오색을 내놔!’
명확한 대상도 경건함도 없이 그저 욕망만이 넘실거리는 기도.
이윽고 원판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으아아악!?”
눈을 뜬 소종천이 커다란 비명을 질렀다.
‘떴구나!’
오색의 칸에서 아슬아슬하게 멈춘 방향표를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뽑기로 무림최강 83화